릴로

*보지 마.*

지안의 목소리였다. 문 안쪽 어둠에서 새어 나온 그 두 글자가 도윤의 뒤통수를 훑고 지나갔다. 허리께에 닿은 손잡이가 스스로 돌아가려는 듯 미끄러졌다.

봐야 산다. 안 보면 뒤에서 완성된다.

도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정면으로 노려봤다. 삼켜지던 상이 문 안에서 그를 마주 봤다. 그가 봐야 상이 나간다면—그렇다면 봐서는 안 되는 건 상이 아니라 그 목소리를 믿는 자신이었다.

"넌 지안이 아니야."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샴푸 냄새가 뚝 끊겼다. 부패의 단내가 다시 밀려들었다. 거울 속 문이 문틀부터 접혔다. 검은 눈으로 웃던 얼굴이, 지워지는 화면처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상이 유리 이편으로 돌아왔다. 손잡이가 허리에서 떨어졌다.

벽시계 초침이 멎었다.

도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이 벽에 닿았다. 아까까지 손잡이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벽지였다. 오래된 곰팡이 자국뿐인.

숨을 열두 번 셌다. 그러고도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았다.

---

아침 햇빛이 302호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왔다.

도윤은 밤새 그 자리에서 벽에 기대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잔 것도 깬 것도 아니었다. 목이 말랐다. 일어나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간밤에 그 문이 있던 벽. 손바닥으로 밀어 봤다. 딱딱한 콘크리트가 손을 되받았다. 손잡이도, 틈도, 아무것도 없었다.

거울을 봤다. 그의 얼굴이 정확히 그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손을 들면 손을 들었다. 시차는 없었다. 밤새 능력을 쓰지 않은 덕이었다.

문제는 그거였다. 어젯밤 그는 상이 실체를 앞질러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봤다. 능력을 쓸 때마다 상이 늦어지다가, 임계를 넘으면 반대로 앞서 나간다. 앞서 나간 상이 문을 열고, 문 안의 무언가가 그 상을 잡아끈다. 시차가 0을 넘어 역전되는 순간이 곧 끝이다.

봐야 산다. 그런데 볼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

도윤은 거울 속 자신을 오래 바라봤다. 이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대는 게 얼마나 값비싼 일인지 이제 알았으니까.

가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지안의 필체. *오빠, 이 일 그만둬. 여기 물건들이 어디로.* 문장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지안은 다 쓰지 못했다.

"어디로 가는데."

거울에 대고 물었다.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회사였다.

---

한명진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웠다.

"서도윤 씨, 어제 첫 현장 무사히 마쳤죠? 고생 많았어요. 오늘은 다른 데 하나 붙일게요. 혼자 하면 벅찰 테니 신입 한 명 같이 보낼게요."

"신입이요."

"정태오 씨라고. 성실한 친구예요. 둘이 손발 맞춰 봐요. 주소 문자로 넣었습니다. 아, 그리고—"

한명진이 잠깐 뜸을 들였다.

"현장 쪽지 있으면 사진 찍어서 나한테 먼저 보내요. 고인의 뜻이니까. 함부로 떼지 말고."

전화가 끊겼다. 도윤은 '고인의 뜻'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쪽지가 사람을 죽이는데, 그걸 뜻이라 부르는 사람.

주소는 재개발 예정 구역의 다세대주택 반지하였다. 지안이 사라진 3동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

---

정태오는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윤보다 대여섯 살 어려 보였다. 방독면을 벌써 목에 걸고, 형광 표시테이프를 손목에 끼운 채였다. 손에는 코팅된 종이가 들려 있었다.

"서 선배님이시죠? 정태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하는 손이 축축했다. 긴장인지 땀인지.

"이거 보셨어요? 대표님이 미리 보내주셨거든요. 이 집 규칙."

태오가 코팅지를 내밀었다. 냉장고나 거울 뒤에서 발견될 그 쪽지를, 태오는 이미 프린트해 코팅까지 해 온 것이다.

**생활 규칙** 1. 음식물 쓰레기는 화요일 저녁에만 배출. 2. 욕실 배수구는 항상 뚜껑을 덮어 둘 것. 3. 현관 등이 깜박이면 즉시 두꺼비집을 내릴 것. 4. 밤 열한 시 이후 세탁기를 돌리지 말 것. 5. 방문은 세 번 두드린 뒤 열 것. 6. 자정 이후 거울을 보지 말 것.

6번을 본 순간, 도윤의 손끝이 코팅지 위에서 굳었다. 어젯밤 그를 삼킬 뻔한 그 문장이 여기에도 있었다.

"저는요, 규칙 있는 현장이 오히려 편해요."

태오가 웃었다. 잇몸이 다 드러나는 웃음이었다.

"뭘 하면 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딱 정해져 있잖아요. 특히 3번. 이게 핵심이에요. 현관 등 깜박이면 두꺼비집 내린다. 어두워지긴 하는데, 그거만 하면 안전하대요. 대표님이 그러셨어요, 3번만 지키면 산다고."

"대표님이."

"네. 이 일 오래 하신 분이잖아요. 저 이번 달까지 삼천만 원 막아야 돼요. 위험수당 붙는 현장 골라서 왔거든요. 그러니까 규칙만 잘 지키면—"

"규칙을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태오가 말을 멈췄다.

"고인이 남긴 거라잖아요. 여기 살던 사람이."

"그 사람은 왜 죽었죠?"

태오의 웃음이 조금 얼어붙었다. 그는 대답 대신 코팅지를 가슴에 안았다.

"…들어가시죠. 냄새 빠지려면 시간 걸리니까."

---

반지하는 습기가 벽을 타고 올라와 있었다. 창은 지면 높이라 빛이 발목까지밖에 들지 않았다. 형광등을 켜자 접촉 불량인지 한 번 깜박이고 들어왔다. 태오가 흠칫 두꺼비집 쪽을 봤다.

"등 깜박였어요, 방금."

"현관 등 아니에요. 그건 거실등이고."

도윤은 냄새와 먼지 방향부터 읽었다. 부패는 안방에서 시작됐고, 시신은 이미 옮겨진 뒤였다. 바닥 장판에 얼룩이 번져 있었다. 가구 배치를 눈으로 재구성했다. 침대, 화장대, 그리고 화장대 위 거울.

거울이 많았다. 현관 신발장에 하나, 거실 벽에 하나, 화장대에 하나, 욕실에 하나. 반지하 한 칸짜리 집에 거울이 넷. 완성되지 않은 집의 징후.

태오는 코팅지를 벽에 테이프로 붙이고 그 아래 서서 항목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배수구 뚜껑을 덮고, 세탁기 코드를 뽑고, 성실하게.

도윤은 화장대 앞에 섰다. 거울에 손을 댈지 말지 고민했다. 대가를 안다. 시차가 벌어진다. 어젯밤엔 역전 직전까지 갔다. 밤새 안 썼으니 조금은 회복됐을 것이다—회복이라는 게 있다면.

그러나 태오는 3번을 믿고 있었다. 대표가 그렇게 말했다는 이유 하나로. 도윤은 자기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설명 가능한 원인을 먼저 찾자. 아직 아무 일도 안 벌어졌잖아.* 어젯밤 그 목소리를 삼켰다가 죽을 뻔했다.

미루면 안 됐다.

도윤은 화장대 거울에 손을 댔다.

---

유리가 차가웠다가, 뜨거워졌다. 그의 얼굴이 흐려지고, 다른 시야가 밀려들었다.

낮은 천장. 화장대 위에서 본 방. 이 집에 살던 자의 눈이었다.

거실등이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사망자의 시선이 코팅지가 아닌 종이 쪽지로 향했다—냉장고 문에 붙은 손 글씨 쪽지. *3. 현관 등이 깜박이면 즉시 두꺼비집을 내릴 것.*

사망자가 일어섰다. 현관으로 갔다. 두꺼비집을 열었다. 손이 차단기 손잡이를 잡았다. 내렸다.

집 안이 캄캄해졌다.

그 순간, 시야 속 어둠에서 소리가 났다. 등 뒤에서. 사망자가 돌아보려 했지만—늦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의 목덜미를 감쌌다. 서늘하고 축축한 것. 사망자의 시야가 아래로 무너졌다. 바닥이 가까워졌다. 마지막으로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거울 넷이었다. 전기가 끊겼는데 거울만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야가 검게 닫혔다.

30초가 끝났다.

---

도윤은 거울에서 손을 뗐다. 유리 속 그의 손이, 반박자 늦게 떨어졌다.

시차가 다시 벌어졌다. 상이 그를 뒤따라오는 데 한 호흡이 걸렸다. 도윤은 그것을 확인하고 이를 악물었다. 대가는 이미 치렀다. 그러니 얻은 걸 써야 했다.

"정태오 씨."

태오가 세탁기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3번, 지키면 안 됩니다."

"…네?"

"이 집에서 죽은 사람은 3번을 정확히 지켰어요. 현관 등이 깜박였고, 두꺼비집을 내렸고, 집이 어두워졌고, 그 어둠 속에서 죽었어요."

태오의 얼굴이 굳었다.

"선배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봤으니까."

"뭘 봐요. 여기 CCTV도 없는데."

도윤은 설명을 접었다. 능력을 말해도 태오는 믿지 않을 것이다. 대신 논리로 갔다. 물증으로 재구성한 순서로.

"생각해 봐요. 두꺼비집을 내리면 뭐가 꺼져요?"

"전기요."

"전기가 꺼지면 뭐가 꺼져요? 조명. 그리고 조명이 꺼지면?"

"…어두워지죠."

"3번은 당신을 어둠 속에 가두는 조항이에요. 현관 등이 깜박이는 건 경고가 아니라 신호탄이에요. 무언가가 움직이기 직전이라는. 그런데 규칙은 당신더러 스스로 불을 끄라고 하죠. 눈을 감기고, 뒤를 못 보게 만들고."

"규칙은 안전하라고 있는 거예요."

"누가 그래요? 대표가요?"

태오가 코팅지를 다시 가슴에 안았다. 방패처럼.

"6번 봐요." 도윤이 벽의 코팅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자정 이후 거울을 보지 말 것. 이것도 똑같은 구조예요. 눈을 멀게 하는 조항. 어제 내가 있던 집에서, 이 규칙을 지킨 사람이 죽었어요. 거울을 등진 순간, 등 뒤 방이 바뀌었어요. 3번도 마찬가지예요. 스스로 불을 끄게 만드는 순간, 어둠 속에서 방이 재배열돼요. 규칙은 함정이에요. 지키면 죽어요."

태오는 한참 도윤을 봤다. 그러다 헛웃음을 지었다.

"선배님, 그거 다 설명이 안 되는 소리잖아요."

"…"

"방이 바뀐다고요? 어둠 속에서 뭐가 목을 잡는다고요? 저 그런 거 못 믿어요. 저는 눈에 보이는 거만 믿어요. 규칙은 종이에 적혀 있고, 대표님은 십 년 넘게 이 일 하셨고, 살아 계시잖아요. 살아 있는 사람 말을 믿지, 죽은 사람이 뭘 봤는지를 믿어요?"

날카로운 반문이었다.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본 것은 물증이지만, 태오에게는 헛것이었다.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거울에 손을 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건 태오를 죽음으로 미는 짓이었다.

"태오 씨. 그냥 오늘은 3번을 지키지 마요. 등이 깜박여도 두꺼비집 건드리지 말고, 나랑 같이 밖으로 나가요. 그거 하나만."

"등이 깜박이는데 규칙을 안 지키면요? 그때 무슨 일 나면 그건 규칙을 안 지켜서 나는 거잖아요. 저 삼천만 원 있어요. 위험수당 못 받으면 저 진짜 큰일 나요. 규칙 어겼다고 대표님한테 찍히면 다음 현장 못 받아요."

돈. 규칙보다 무거운 것. 태오는 규칙을 믿는 게 아니라, 규칙을 믿어야만 하는 처지였다.

도윤은 그 얼굴에서 지안을 봤다. 오빠, 이 일 그만둬. 지안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해요." 도윤이 목소리를 낮췄다. "등이 깜박이면, 두꺼비집에 손대기 전에 나한테 딱 삼 초만 줘요. 삼 초. 내가 아니라고 하면 손 떼요. 그거면 돼요."

태오는 잠시 도윤을 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삼 초요. 대신 아무 일도 없으면 선배님이 오늘 밥 사세요."

"살게요."

---

작업은 계속됐다. 도윤은 시야에서 본 거울 넷의 위치를 표시테이프로 표시했다. 넷 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나던 거울들. 두꺼비집을 내려 전기가 끊긴 뒤에도 빛나던 거울. 그게 무슨 뜻인지 그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저 넷이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비추는 창이 된다는 것만은 알았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흘렀다. 반지하라 밖이 어두워지는 것도 몰랐다. 창밖 발목 높이로 들던 빛이 사라졌다.

거실등이 한 번 깜박였다.

태오가 얼어붙었다. 도윤도 멈췄다.

"거실등이에요." 도윤이 말했다. "현관 등 아니에요. 규칙은 현관 등이라고 했어요."

"…맞아요. 현관 등 아니에요."

두 번 깜박였다. 이번엔 현관 쪽에서.

현관 등이 깜박였다.

태오의 몸이 반사적으로 두꺼비집을 향해 돌아섰다. 코팅지 3번이 머릿속에 박혀 있는 사람의 몸이었다.

"삼 초." 도윤이 소리쳤다. "약속했잖아요. 삼 초!"

태오가 두꺼비집 앞에서 멈췄다. 손이 떨렸다. 등이 세 번째로 깜박였다. 그리고 깜박임이 빨라졌다. 명멸하는 빛 속에서 방 안의 그림자가 춤을 췄다.

"선배님, 저 무서워요. 규칙, 규칙 지켜야 돼요—"

"지키면 죽어요! 어둠 속에서 죽는다고요, 봤다니까!"

"못 믿어요. 저는—"

태오의 손이 차단기 손잡이를 잡았다. 도윤이 달려들었다. 반지하 방은 좁았고, 세 걸음 거리였고, 그 세 걸음이 멀었다.

"태오 씨, 안 돼—"

태오가 눈을 질끈 감고, 손잡이를 내렸다.

딸깍.

집 안의 모든 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완전한 어둠. 도윤의 발이 허공을 짚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거울 넷이 동시에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전기가 끊겼는데도. 사망자의 마지막 시야에서 본 그대로.

도윤은 반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화장대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그의 얼굴이 없었다.

신발장 거울, 거실 거울, 욕실 거울, 화장대 거울—넷 모두 같은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도윤의 얼굴이 아니었다. 태오의 얼굴도 아니었다. 넷 다, 눈이 검게 물든 채로 이쪽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는, 낯선 얼굴.

그 입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도윤은 그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세 번 두드리면 돼.*

방문 쪽에서, 세 번—

똑. 똑.

두 번의 두드림이 어둠을 갈랐다.

세 번째가 오기 전에, 도윤은 5번 조항을 떠올렸다. 방문은 세 번 두드린 뒤 열 것.

누가 두드리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