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자 냄새부터 밀려들었다.
도윤은 방독면을 내리지 않았다. 곰팡이와 부패가 뒤섞인 특유의 단내, 그 아래 깔린 습기의 방향을 먼저 읽었다. 냄새는 안쪽 화장실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발밑에는 신문지가 계절별로 겹쳐 깔려 있었고, 가장 위층 날짜가 여드레 전이었다. 여드레. 발견까지 여드레가 걸린 방.
"501호는 아니고, 그 아래 302호. 혼자 살던 남자, 예순둘. 심근경색으로 처리됐어."
한명진이 뒤에서 부드럽게 말했다. 대표는 늘 이 톤이었다. 신입을 안심시키는 톤. 위험한 걸 안전한 것처럼 발음하는 톤.
"오늘은 혼자 감 잡는 날이야. 무리하지 말고, 정리 순서만 지켜. 화장실 먼저, 그다음 주방, 마지막이 방. 알겠지?"
"순서가 왜 중요합니까."
도윤이 물었다. 한명진은 웃었다.
"오래 하다 보면 알아. 순서 틀리면 손해 봐."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계단 아래로 멀어졌다. 도윤은 302호 한가운데 서서 초를 셌다. 습관이었다. 현장에 들어서면 물건의 위치, 먼지가 앉은 방향, 빛이 드는 각도를 초 단위로 기억에 박아 넣는다. 나중에 무엇 하나가 어긋나면 즉시 알아채기 위해서.
냉장고 문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손글씨였다. 볼펜을 여러 번 눌러 쓴 자국이 깊었다. 도윤은 무릎을 꿇고 그것을 오래 노려보았다.
*생활 규칙* *1. 음식물 쓰레기는 화요일에만 배출할 것* *2. 현관 등이 깜박이면 두꺼비집을 내릴 것* *3. 세탁기는 밤 열 시 이후 돌리지 말 것* *4. 신발은 반드시 코를 안쪽으로 둘 것* *5. 방문을 잠글 때는 한 번만 돌릴 것* *6. 자정 이후 거울을 보지 말 것*
여섯 줄. 관리사무소가 붙인 안내문이라기엔 필체가 개인적이었고, 유서라기엔 감정이 없었다. 도윤은 손톱으로 종이 귀퉁이를 들췄다. 접착제 뒤에 또 다른 종이의 흔적이 있었다. 이전에도 이 자리에 다른 쪽지가 붙어 있었다는 뜻이다. 겹쳐 붙은 필체.
'이런 걸 여러 번 봤지.'
지안이 사라진 현장에도 이런 종류의 쪽지가 있었다는 걸, 도윤은 회사 보고서 사본을 훔쳐보고 알았다. 그래서 그는 6개월 전 다니던 물류회사를 그만두고 이 업체에 들어왔다. 여동생이 마지막으로 밟은 바닥을 자기 발로 밟기 위해서.
화장실부터. 대표가 그렇게 말했다.
도윤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순서가 중요하다면, 그 순서가 왜 중요한지 모르는 채로 따르는 게 가장 위험하다. 그는 거실 벽거울 앞으로 갔다.
이 집엔 거울이 많았다. 현관에 하나, 거실 벽에 큰 것 하나, 화장실에 하나, 그리고 방문 안쪽에 전신 거울. 재개발 예정 건물 중에서도 이런 집이 있다고 들었다. 거울이 유독 많고, 조명이 규칙적으로 깜박이는 집.
거실 거울 뒷면을 확인하려고 액자 틀을 살짝 당겼다. 그 순간, 손끝이 유리 표면에 닿았다.
세계가 뒤집혔다.
눈앞이 거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윤은 자기가 서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눈 안에 들어앉아 있다는 걸 알았다. 시야가 낮았다. 앉은키. 어깨가 굽어 있었다. 노인의 몸. 심장이 조여드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건 자기 것이 아니었다.
*자정 이후 거울을 보지 말 것.*
노인의 시선이 그 쪽지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규칙을 지켰다. 거울을 등졌다. 벽을 향해 돌아앉았다.
등을 돌린 순간, 뒤에서 소리가 났다.
나무가 삐걱이는 소리. 벽지가 찢어지는 소리. 도윤은—노인은—돌아보지 못했다. 규칙 때문에. 거울을 보면 안 되니까. 시야 뒤편, 방의 구조가 소리 없이 재배열되고 있었다. 없던 벽이 밀려나고, 있던 문이 닫히고, 다른 자리에 문이 생겼다. 노인의 등 뒤 어둠이 한 뼘씩 넓어졌다.
노인이 마침내 돌아봤을 때—
이미 늦었다.
30초가 끝났다. 도윤은 자기 몸으로 튕겨 나왔다.
무릎이 꺾였다. 그는 거실 바닥에 손을 짚고 헛구역질을 했다. 방독면 안쪽이 습기로 뿌옇게 흐려졌다. 심장이 자기 것인지 아직 확신이 안 섰다.
"봐야……"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거울을 등지니까 죽었어. 등진 순간에."
머릿속에서 규칙이 재조립됐다. 통념은 거울을 보면 죽는다는 것이다. 6번 조항도 그렇게 말한다. 자정 이후 거울을 보지 말 것. 하지만 노인은 조항을 지켰다. 거울을 등졌다. 그리고 그 등진 시야 밖에서 방이 바뀌었고, 그가 죽었다.
거울을 봐야 뒤를 볼 수 있다. 거울이 유일하게 등 뒤를 비추는 물건이니까.
'6번은 생존 조언이 아니야. 6번은 사람을 등 돌리게 만드는 함정이야.'
이 결론에 도달하는 데 물증이 있었다. 방금 죽은 자의 눈으로 직접 봤다. 도윤은 오랜만에, 미루지 않고 판단했다는 감각에 손끝이 떨렸다. 그는 늘 이상 신호를 보고도 설명 가능한 원인부터 찾느라 결정을 미뤘다. 그 우유부단함이 등 뒤에서 사고를 키웠다. 지안이 사라졌을 때도 그랬다.
이번엔 봤다. 봤으니 안다.
몸을 일으켜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방독면을 벗었다. 유리 속 자기 얼굴을 확인하려는 것뿐이었다.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거울 속 손은—움직이지 않았다.
도윤은 숨을 멈췄다. 그의 실제 손은 이미 이마에 닿아 있었다. 그런데 유리 안의 손은 아직 옆구리에 붙어 있었다. 하나, 둘. 그 짧은 셈 뒤에야 거울 속 손이 천천히 올라가 이마를 닦았다. 반박자. 딱 반박자 늦게.
"뭐야."
목소리가 잠겼다. 그는 일부러 오른쪽 어깨를 으쓱했다. 실체가 먼저 움직였다. 유리 속 어깨는 한 박자 뒤에 따라 으쓱했다. 다시 왼손을 들었다. 마찬가지였다.
'조명 때문인가. 잔상인가. 눈이 피곤해서……'
익숙한 습관이 튀어나왔다. 설명 가능한 원인. 하지만 조명은 잔상을 반박자나 지연시키지 못한다. 그는 그걸 안다. 알면서도 입으로는 '피곤해서'라고 발음하려 했다. 그게 그의 결함이었다.
도윤은 이를 악물고 그 발음을 삼켰다.
"능력을 쓸 때마다……"
거울에 손을 댔고, 죽은 자의 시야를 봤고, 그 대가로 자기 상이 늦어졌다. 인과가 붙었다. 봐야 산다. 그런데 볼수록 유리 속 자신이 실체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는 뒷걸음질로 거울에서 물러났다. 유리 속 자신은 여전히 반박자 뒤에 물러났다.
방으로 갔다. 짐 정리를 해야 한다. 그게 오늘의 일이었다. 손이라도 움직이면 머릿속이 진정될 것 같았다.
방 안쪽은 좁았다. 옷장 하나, 낡은 캐비닛 하나, 매트리스가 벽에 세워져 있었다. 캐비닛 서랍을 열자 잡동사니가 쏟아졌다. 죽은 노인의 물건. 손톱깎이, 약봉지, 개봉하지 않은 손편지, 오래된 영수증들. 도윤은 그것들을 봉투에 나눠 담았다.
두 번째 서랍 바닥에 종이 한 장이 깔려 있었다. 다른 물건들과 색이 달랐다. 새 종이. 접힌 자국이 아직 빳빳했다.
펼쳤다.
익숙한 필체였다. 심장이 먼저 알아봤다.
*오빠, 이 일 그만둬. 여기 물건들이 어디로*
거기서 문장이 끊겨 있었다. 볼펜 자국이 마지막 획에서 길게 미끄러져 종이 끝까지 그어져 있었다. 누가 팔을 잡아챈 것처럼.
"지안아."
도윤의 손이 떨렸다. 지안의 글씨였다. '오빠'라는 두 글자를 그는 수천 번 봤다. 받침을 쓸 때 마지막에 꼬리를 살짝 올려 쓰는 버릇까지 똑같았다.
지안이 이 집에 있었다. 302호에. 아니면, 이 메모를 여기 남길 수 있었던 누군가가 지안의 흔적을 옮겨왔거나. 어느 쪽이든, 6개월 전 사라진 동생의 손이 이 종이에 닿았다.
'여기 물건들이 어디로'—어디로 가는지 알아챘다는 뜻이다. 이 일을 그만두라는 건, 위험하니까 도망치라는 게 아니었다. 뭔가를 알아챈 뒤의 경고였다.
도윤은 종이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손끝이 얼어 있었다.
그리고 벽시계를 봤다.
11시 52분.
자정이 가까웠다. 6번 조항이 발동하는 시간. 거울을 보지 말 것. 하지만 그는 방금 증명했다. 봐야 산다는 걸. 등지는 순간 뒤에서 방이 바뀐다는 걸.
방문 안쪽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지안이 이 집에 있었다면, 거울에 손을 대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위험한 생각이었다. 상의 시차가 이미 벌어졌다. 또 쓰면 더 벌어진다.
'딱 한 번만.'
손이 유리로 향하는 순간, 그의 상이 반박자 늦게 손을 뻗었다. 그 지연이 눈에 거슬렸다. 도윤은 손을 멈추고 거울 속 자신을 응시했다.
거울 속 자신이 늦게 손을 멈췄다.
11시 58분.
그때였다.
거울 속, 자기 어깨 너머 뒤편으로—없던 문이 하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 거기엔 벽밖에 없었다. 그가 초 단위로 기억한 구조엔 문이 없었다. 옷장, 캐비닛, 세워진 매트리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유리 안에서, 그의 등 뒤 벽에 문틀이 그려져 있었고, 그 문이 소리 없이 안쪽으로 열리고 있었다.
도윤은 돌아보지 않았다. 배운 걸 지켰다. 등지면 죽는다. 거울로 봐야 뒤를 본다. 그는 유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거울 속에서 열리는 문을 지켜봤다.
문 안쪽은 검었다. 빛이 닿지 않는 검정. 그 검정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 있었다.
11시 59분.
거울 속 문틈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작고,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 방금 서랍에서 꺼낸 종이의 글씨와 같은 사람의 목소리.
"보지 마."
지안이었다.
"오빠, 보지 마."
도윤의 실체는 이미 그 문을 향해 몸을 틀고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은—아직 정면을 보고 있었다. 반박자 늦게. 시계 초침이 자정의 12를 향해 마지막 한 칸을 밀어 올렸다.
자정이 되는 소리는 없었다. 벽시계는 초침을 삼킨 채 12에서 멈춰 있었다. 아니, 멈춘 게 아니라 초침이 사라졌다. 방금까지 있던 가느다란 붉은 바늘이 문자판 어디에도 없었다.
도윤의 몸은 문 쪽으로 반쯤 돌아가 있었다. 발끝이 이미 그 방향을 향했고, 목이 따라가려 했다. 등 뒤가 서늘했다. 실제로 그의 등 뒤 벽에서, 거울 속에서 본 그 문이 열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무가 벽지를 밀어내며 늘어나는 소리. 노인의 시야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리.
'돌아보면 안 돼.'
그는 이를 악물고 목을 되돌렸다. 시선을 거울에 박았다. 거울만이 등 뒤를 보여준다. 등지면 죽는다. 노인은 등졌기 때문에 죽었다.
거울 속 문은 이제 완전히 열려 있었다. 검은 사각형. 그 안에서 흰 것이 떠올랐다. 사람의 얼굴 높이였다. 윤곽이 서서히 잡혔다. 갸름한 턱, 짧은 앞머리, 왼쪽 눈썹 끝의 흉터. 지안의 얼굴이었다.
"오빠."
목소리가 문틈이 아니라 이제 방 안에서 울렸다. 등 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돌아보면 나 못 봐. 여기로 와."
도윤의 손이 유리로 향했다. 보고 싶었다. 지안의 마지막 30초를 보고 싶었다. 손을 대면 알 수 있다. 지안이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사라졌는지. 6개월 동안 찾아 헤맨 답이 유리 한 겹 너머에 있었다.
손끝이 유리에 2센티까지 다가갔을 때, 그는 멈췄다.
거울 속 자신의 손은 아직 옆구리에 있었다. 반박자 늦게. 그런데 그 반박자 뒤에, 거울 속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실체는 손을 뻗었는데, 상은 뻗지 않았다.
도윤은 숨을 멈췄다. 지연이 아니었다. 상이 그의 동작을 따라오길 거부하고 있었다. 유리 안의 서도윤이 옆구리에 붙인 손을 그대로 둔 채, 고개만 천천히 돌렸다. 검은 문 쪽으로. 지안의 얼굴 쪽으로.
실체인 도윤은 정면을 보고 있는데, 상은 이미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상이 먼저 움직였어.'
시차가 반박자가 아니었다. 상은 늦은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앞서갔다. 세계관의 규칙이 머릿속에서 차갑게 정렬됐다. 시차가 0이 되면 상이 실체 앞으로 나온다. 그가 방금 능력을 두 번 썼다. 노인의 시야를 한 번, 그리고 지금 거울 속 문을 응시하는 것—그것 자체가 세 번째 응시였다.
상의 손이 마침내 움직였다. 유리 안에서, 서도윤의 손이 문을 향해 뻗어 나갔다. 지안의 얼굴을 향해. 다정하게.
실체인 도윤의 손은 여전히 유리 앞 2센티에 얼어붙어 있었다.
"이리 와, 오빠."
지안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등 뒤에서, 그리고 거울 안에서 동시에. 두 목소리가 반박자 어긋나 겹쳤다. 하나는 그를 부르고, 하나는 그를 붙잡았다.
도윤은 유리에서 손을 확 뗐다. 상은 떼지 않았다. 유리 속 서도윤의 손이 검은 문 안쪽으로, 지안의 손을 잡으려는 듯 계속 뻗어 들어갔다. 팔꿈치가 문틀을 넘어갔다. 어깨가 넘어갔다.
거울 속 자신이 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상이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안 돼."
도윤은 뒷걸음쳤다. 실체가 물러나는데 상은 앞으로 나아갔다. 둘 사이가 벌어졌다. 거울 표면에서 그의 얼굴이 지워지고, 텅 빈 방과 열린 검은 문만 비쳤다. 그의 상은 이미 그 문 안으로 절반쯤 삼켜져 있었다.
문 안에서 지안이 상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방독면 없이 마신 공기가 달라졌다. 부패의 단내가 걷히고, 익숙한 냄새가 밀려들었다. 지안이 쓰던 샴푸 냄새. 도윤의 무릎이 풀렸다. 그 냄새는 6개월 전 지안의 방에서 나던 냄새였다. 논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무너지려 했다.
'설명 가능한 원인.'
습관이 튀어나왔다. 청소 세제 향, 오래된 방향제, 기억의 착각. 그는 그 발음을 삼키려다—삼키지 못했다. 이번엔 삼키면 안 됐다. 미루면 안 됐다.
냄새는 미끼다. 지안의 얼굴도, 목소리도, 상을 문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다. 노인의 등 뒤에서 방이 재배열됐듯, 지금 그의 등 뒤에서 문이 생겨났듯, 이건 조건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6번 조항. 자정 이후 거울을 보지 말 것.
그런데 그는 봤다. 봐야 산다고 방금 증명했다. 봤기 때문에 상이 삼켜지는 걸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다.
'보면 상이 나간다. 안 보면 뒤에서 완성된다.'
둘 다 함정이었다. 6번은 두 갈래 다 죽음으로 통하도록 짜여 있었다. 보든 안 보든, 지안의 얼굴을 미끼로 걸어놓은 이상, 이 방에 자정을 맞은 자는 거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거울 속 도윤이 문 안에서 고개를 돌려, 이쪽을—실체인 도윤을 바라봤다. 지안의 손에 이끌린 채. 그리고 유리 이편의 도윤을 향해 입을 벌렸다.
상의 입 모양이 소리 없이 말했다.
*네 자리야.*
지안의 얼굴이 상의 어깨 뒤에서 웃었다. 웃는 순간, 지안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문 안쪽 검정과 똑같은 검정으로.
벽시계 문자판의 12 아래, 사라졌던 초침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반대로, 12에서 왼쪽으로.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윤의 등 뒤 실제 벽에서, 없던 문의 손잡이가 그의 허리께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