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소급 삭제의 규칙
이 세계에서 죽음은 피가 아니라 지움으로 온다. 규칙을 위반한 자는 즉사하지 않는다. 대신 '처음부터 이 버스에 탄 적 없는 사람'이 되어 명단, 좌석,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삭제된다. 방금까지 대화하던 사람이 사라져도 아무도 이상을 느끼지 못하며, 인원수 세기마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를 인지할 수 있는 건 오직 판독안을 가진 현우, 그리고 삭제 직전 물증(승차권, 유류품)을 몸에 지닌 자뿐이다. 그래서 생존의 열쇠는 '누가 사라졌는지 기억하는 것'이다. 사라진 이를 기억해내면 규칙의 조작을 역추적할 수 있다. 반대로 기억을 대가로 소모하면, 현우 자신이 스스로를 지우는 셈이 된다.
세력
여덟 번째 승객
좌석표에 없는 존재. 물리적으로 승객을 해치지 않는다. 대신 안내문을 조작해 규칙을 미�끼로 삼아, 승객 스스로 위반하게 만들어 '소급 삭제'로 지운다. 지워진 사람의 존재와 기억을 흡수하며 안내문에 대한 지배력을 키운다. 형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온도가 낮은 빈 좌석 주변에 응결하듯 나타나며, 승객이 방금 잃은 사람의 형상을 흉내 낸다. 목적은 명단을 전부 비워 국도 위의 버스를 영원한 '없던 운행'으로 만드는 것. 규칙을 완벽히 지키는 자는 살고, 의심 없이 따르거나 완전히 무시하는 자는 모두 지워진다. 유일한 약점은 문서다. 안내문은 결국 행정 양식의 흉내이므로, 어투의 부자연스러움과 오탈자가 조작의 흔적으로 남는다.
힘의체계
심야 운행 안내문의 법칙
폭설로 고립된 심야 고속버스 안에서 운전기사 뒤 유리에 붙은 '심야 운행 안내문'은 단순한 게시물이 아니라 세계의 규칙 그 자체다. 안내문에 적힌 문장은 실제 물리 법칙처럼 작동하여, 위반한 승객은 '애초에 그 자리에 탄 적 없는 사람'으로 명단과 모두의 기억에서 소급 삭제된다. 남은 이들은 실종을 인지조차 못 하고, 좌석은 처음부터 비어 있던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안내문이 두 겹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덟 번째 승객이 진짜 규칙 사이에 가짜 규칙을 섞어 넣어, 지킬수록 오히려 사람이 지워지도록 조작한다. 진짜 규칙은 안전을, 가짜 규칙은 파멸을 부른다. 규칙은 매 정거장마다 갱신되며, 이전 정거장에서 통했던 판단이 다음 정거장에선 함정이 된다.
지역
국도 위 폭설 버스
심야 서울발 지방행 고속버스. 폭설로 국도 한복판에 고립되어 통신이 끊겼다. 좌석표상 정원은 일곱 명(기사 포함), 그러나 실제로는 여덟 번째 승객이 타고 있다. 버스는 정상적으로 정거장에 멈추지만, 창밖 풍경은 눈보라뿐이고 문을 열어도 나갈 수 없다. 오직 '종점까지 규칙을 어기지 않고 도착한' 승객만 살아 내릴 수 있다. 정거장마다 안내문이 갱신되며, 이것이 규칙 판독의 재도전 기회이자 새 함정이 된다. 버스 내부는 폐쇄 공간 특유의 압박감으로 가득하고, 히터 소음과 눈 쌓이는 소리 외엔 정적이다. 좌석 번호판, 비상 망치, 하차 벨 같은 사물이 규칙과 얽혀 추리 단서가 된다.
힘의체계
판독안(判讀眼)과 기억의 대가
도현우가 얻은 골든핑거. 안내문의 글자를 응시하면 '진짜 규칙'은 검게, '조작된 규칙'은 붉게 번져 보인다. 또한 좌석의 온도 왜곡을 감지해 명단에 없는 여덟 번째 승객의 위치를 짚어낼 수 있다. 그러나 판독할 때마다 대가가 따른다. 규칙을 읽어낼 때마다 현우 자신의 기억 한 조각이 안내문 여백에 잉크처럼 옮겨 적히며 사라진다. 남용하면 가장 소중한 기억부터, 즉 동생의 얼굴부터 지워진다. 더 치명적인 것은 지워진 기억이 그대로 여덟 번째 승객의 힘이 된다는 점이다. 현우가 진실에 다가갈수록 적은 강해지고, 정작 진실을 밝힐 이유였던 동생의 기억은 흐려진다. 판독은 승리의 도구이자 자기 소멸의 카운트다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