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를 갈랐다. 클럽 블랙로즈의 VIP 구역. 네온 불빛이 피부에 달라붙고, 베이스 진동이 신발 밑창에서 척추까지 올라와 뼈를 두드렸다. 벨벳 로프 너머로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번지고,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다. 우범의 개들. 눈빛만으로 살의가 절여져 있다.
바텐더에게 위스키를 시켰다.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 시선은 바를 훑지 않았다. 유리잔에 비친 반사상으로 배치를 익혔다. 출입구 둘, 비상구 하나, VIP 룸은 2층. 계단 입구에 두 명.
그때였다.
2층 난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검은 드레스. 목선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곡선이 네온을 머금고 반짝였다. 채령이었다. 3년 만에 보는 그녀는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눈썹의 각도, 입술의 결, 손가락으로 잔을 쥐는 방식까지. 모든 게 계산된 무기처럼 다듬어져 있었다.
그녀 옆에서 우범이 웃고 있었다. 한 손은 그녀의 허리에, 다른 손은 위스키 잔에. 입가에 번진 미소는 승자의 여유 그 자체였다. 채령도 웃었다. 마치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사람처럼.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유리 밑바닥이 대리석 바를 두드리는 소리가 내 안에서 울렸다.
***
3년 전, 동묘 사무실 뒤편 골목.
빗방울이 깨진 가로등 불빛을 산란시키던 밤이었다. 채령의 손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피가 조금 번져 나와 붉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내 뺨을 만졌다. 차가웠다. 빗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날 잊어."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애원도, 슬픔도 아닌. 그냥 사실을 말하는 톤.
"그래야 너도 살아. 동묘는 끝났어. 우범이 모든 걸 가져갔고... 나도."
내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붕대 아래로 맥박이 뛰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붕대가 우범에게 넘어가기 전 마지막 저항의 흔적이었다는 걸. 아니, 그랬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 기억조차 흐릿하다. 방의 온도, 빗소리의 높낮이, 그녀의 숨결이 닿던 거리. 디테일이 빠져나간 필름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다.
"잊을 수 없어."
내가 말했다. 채령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오히려 더 처참했다.
"그게 문제야. 강현, 너는 항상 그게 문제였어."
그녀가 돌아섰다. 구두 굽이 젖은 아스팔트를 박차는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나는 거기 서 있었다. 빗속에. 그녀가 영원히 사라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진짜 채령이었다.
***
화장실로 향했다.
VIP 구역과 연결된 복도 끝. 대리석 벽면이 형광등 불빛을 차갑게 반사했다. 소변기 앞에 우범의 부하 하나가 서 있었다. 단단한 체격, 재킷 아래로 불룩한 권총 홀스터. 그가 지퍼를 올리며 돌아섰다.
"여긴 VIP 전용인데."
"알아."
내가 세면대로 걸어갔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차가운 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물줄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신경을 열었다. 폐공장에서 감염된 이후로 내 신경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물 분자를 타고 진동이 번져나갔다. 수돗물에 섞인 미량의 미네랄, 수도관의 금속 이온, 그리고 그 물에 닿는 모든 피부 표면의 전기 신호가 내 손끝으로 읽혔다.
"야, 너 뭐 하는..."
남자가 다가왔다. 그의 손이 내 어깨에 닿기 직전, 나는 검지를 물속에서 살짝 구부렸다. 신호 하나를 물에 실었다.
반대편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던 다른 남자가 갑자기 몸을 움찔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흐르는 감각이, 물줄기가 손등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세면대 가장자리에 손바닥을 짚은 촉감이 전부 왜곡되어 그의 뇌로 전달되고 있었다. 나는 그 감각들을 모조리 쾌감으로 바꿔치기했다.
"씨발..."
그가 신음했다. 무릎이 꺾였다. 바지 앞섶이 부풀어 올랐다. 물 몇 방울로 만든 오르가즘이 그의 척추를 타고 올라갔다. 동료가 놀라서 그를 붙들었다.
"뭐야, 너 왜 그래?"
나를 막으려던 남자도 그 순간 균형을 잃었다. 내가 흘린 물이 바닥에 고여 그의 구두 밑창에 닿았다. 그 접촉만으로 충분했다. 수용성 매개체를 통한 신경 간섭. 가능하다는 걸 이제 확신한다.
두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명은 사정으로 젖은 바지를 붙잡고, 다른 한 명은 이유 모를 쾌감에 허리를 떨고 있었다. 나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손을 털며 거울을 봤다. 내 눈동자에 푸른빛이 스쳐 지나갔다.
능력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이걸로 우범의 개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
2층 VIP 룸.
문을 열자 시가 연기가 먼저 코를 찔렀다. 가죽 소파, 마호가니 테이블, 벽면을 가득 채운 와인 셀러. 우범이 소파 중앙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꼬고, 위스키를 손에 쥔 채. 그의 왼편에 채령이 앉았고, 뒤로 경호원 셋이 서 있었다.
"동묘의 개가 아직도 살아있었나."
우범이 말했다. 목소리는 느긋했다. 마치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옛 동창을 대하는 것처럼.
"꼬리를 말고 숨어 지내지. 그게 개한테 어울리는 삶 아니냐?"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시선은 채령을 향했다. 그녀는 나를 보고도 표정이 움직이지 않았다. 3초. 나를 응시한 시간이었다. 그 3초 동안 그녀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마치 낯선 사람을 스쳐 보내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의 왼손 검지가 소파 가죽을 살짝 긁었다. 나는 그걸 봤다. 예전에도 그녀는 불안할 때마다 그 버릇이 나왔다.
"무슨 용건이지? 민 사장 일로 왔다면, 그 돈은 이미 탕감된 빚이다. 내가 인수했거든."
우범이 잔을 내려놓았다.
"네 빚은... 음, 아직 정리 안 됐나? 동묘가 망할 때 네 앞으로 남은 채무가 꽤 됐지. 그거 갚으러 왔나?"
"아니."
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 것을 찾으러 왔다."
우범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가 천천히 웃었다. 승자의 미소가 아니라, 사냥감이 스스로 덫 안으로 걸어들어왔을 때 짓는 미소.
"네 것? 여기 네 것 같은 건 없는데."
그가 손을 뻗어 채령의 턱을 잡았다. 엄지로 그녀의 입술을 쓸었다.
"이 여자 말이냐?"
그때였다. 우범이 채령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키스해."
명령이었다. 짧고, 단호한. 채령의 눈동자가 0.1초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미소를 지었다. 우범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녀의 입술이 우범의 입술에 닿기 직전.
내가 움직였다.
테이블을 박차고 튀어 오른 상체. 우범의 넥타이를 잡아챘다. 실크가 손바닥에 미끄러졌다. 그대로 벽으로 밀어붙였다. 등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경호원들이 움직이기 전에, 내 오른손이 채령의 손목을 잡았다.
0.1초.
그 짧은 접촉으로 충분했다.
내 신경이 그녀의 신경과 맞닿았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주파수. 그녀의 피부 온도, 땀샘의 미세한 개폐, 손목 안쪽 요골동맥의 박동 리듬까지 모조리 읽혔다. 그리고 나는 그 신호들을 덮어썼다.
각인.
과거에 내가 심어놓은 모든 감각의 흔적을 일제히 활성화시켰다. 내 손길만이 줄 수 있는 쾌락의 기억. 그녀의 신경망에 영구히 새겨진 지문 같은 것. 우범의 품에서 완벽한 마담으로 군림하던 그녀의 육체가,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원래 주인을 알아보았다.
채령의 동공이 풀렸다.
입술이 갈라졌다. 숨이 짧게 끊어졌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 근육이 경련했다. 검은 드레스 아래로 젖은 흔적이 번졌다. 질벽이 수축하며 애액이 흘러내리는 감촉이, 내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의 질 내부 온도, 점막의 미끄러움, 클리토리스가 발기하며 드레스 천에 스치는 촉각까지.
"아..."
채령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 짧은 소리 안에 3년의 공백이 녹아 있었다. 그녀의 무릎이 꺾였다.
나는 그녀를 놓지 않았다. 손목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줬다. 신경 신호를 한 번 더 쏘아보냈다. 이번에는 더 깊게. 척수를 타고 내려가 그녀의 성기 전체를 관장하는 신경 다발에 직접 명령을 내렸다. 축축하게 젖은 대음순이 부풀어 오르고, 질구가 저절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뇌는 이제 내 손길을 인식하는 순간 오르가즘 직전 상태로 진입하도록 재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크으윽..."
채령이 이를 악물었다. 우범 앞에서 소리 내지 않으려는 마지막 저항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정직했다. 유두가 드레스 위로 또렷하게 솟아올랐고, 허벅지 안쪽으로 애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공기 중에 여성의 체액 냄새가 번졌다. 짭짤하고, 약간 비릿한. 우범의 시가 연기조차 가리지 못하는 원초적인 냄새.
"채령?"
우범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모습일 테니까.
바로 그때, 우범의 눈빛이 바뀌었다. 당혹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차가운 분노가 스며들었다. 우범이 갑자기 채령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녀의 목이 뒤로 꺾이며 드러난 목선을 따라 핏줄이 솟았다. 그의 다른 손이 재킷 안주머니로 들어갔다. 소형 전기충격기를 꺼냈다. 채령의 허벅지 안쪽, 드레스가 젖은 바로 그 부위에 짓이겨 넣었다.
짧은 방전음.
채령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신경 각인이 전기 충격과 충돌하며 내 손끝에 비명 같은 피드백이 역류했다. 신호 간섭. 내 능력이 먹통이 되는 0.5초의 틈. 그 틈에 경호원 셋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첫 번째 놈의 주먹이 내 옆구리에 꽂혔다. 갈비뼈가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 놈이 내 뒤에서 팔을 걸어 목을 조였다. 세 번째 놈이 권총을 뽑아 내 이마에 겨눴다. 숨이 막혔다. 시야가 좁아졌다. 우범이 채령의 머리채를 놓지 않은 채 비웃었다.
"능력? 그런 걸로 내 앞에서 설칠 거라 생각했냐?"
나는 숨을 들이켰다. 목을 조르는 팔의 압력이 기도를 압박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날 수는 없었다. 내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위스키 잔으로 향했다. 깨진 유리 파편 사이로 액체가 흥건했다. 손이 닿지 않는 거리. 하지만 내 발바닥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신발 밑창을 통해 위스키에 섞인 미량의 물 분자와 접촉했다. 간신히 열린 신경 회로. 나는 그 물을 매개로 신호를 쏘아 올렸다.
경호원들의 신경이 아니라, 채령의 신경으로.
전기 충격으로 마비되었던 그녀의 신경망에 다시 한 번 각인을 박아넣었다. 이번에는 더 폭력적으로. 그녀의 질벽이 강제로 수축하고, 클리토리스가 터질 듯이 발기했다. 전기 충격과 쾌락 신호가 동시에 뇌로 쇄도하자 채령의 몸이 발작하듯 떨렸다.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신음도 울음도 아닌, 원초적인 단말마였다.
우범이 그 비명에 움찔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목을 조르던 팔을 비틀어 빠져나오며 뒤로 팔꿈치를 찍어넣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감촉. 두 번째 놈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이마에 겨눠진 권총을 옆으로 쳐내며 손목을 꺾었다. 총구가 천장을 향해 발사됐다. 굉음과 함께 석고 조각이 쏟아졌다. 나는 그대로 테이블을 밀어 넘어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유리잔이 깨지고 위스키가 카펫에 쏟아졌다.
그러고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우범이 경호원들 뒤로 숨는 그 잠깐의 틈. 나는 채령에게로 돌아섰다. 그녀는 아직 바닥에 쓰러져, 전기 충격과 쾌락의 잔향 사이에서 허벅지를 떨고 있었다. 드레스가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가 젖은 팬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우범이 아까 했던 것처럼. 하지만 내 손은 더 깊이, 더 집요하게 그녀의 두피를 압박했다. 아픔과 쾌락을 구분하지 못하는 신경을 가진 그녀의 몸은, 고통마저도 쾌감으로 받아들였다.
"입 벌려."
명령했다. 채령이 나를 올려다봤다. 눈동자에 이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각인에 중독된 암컷의 얼굴. 그녀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나는 지퍼를 내리고, 이미 피가 몰려 단단해진 성기를 그녀의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뜨겁고 축축한 구강이 나를 감쌌다. 그녀의 혀가 귀두 밑을 핥았다. 내가 가르친 방식 그대로. 3년이 지나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쪽, 쫍..."
채령이 머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입술이 단단히 조여들며 자지를 훑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더 세게 쥐고, 내 허리를 그녀의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구역질 반사가 목젖을 경련시켰지만, 나는 신경 신호를 쏘아 그 반사마저 쾌감으로 왜곡했다. 그녀가 내 성기를 빨면 빨수록, 그녀의 질은 더 많은 애액을 흘렸다. 카펫 위에 검은 얼룩이 번졌다.
"우범보다 내가 더 좋지? 말해 봐."
내가 물었다. 채령이 입에 성기를 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굴욕과 쾌락이 뒤섞인 표정. 나는 그녀의 입에서 성기를 빼냈다. 귀두와 입술 사이에 타액이 실처럼 이어졌다. 그녀를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드레스를 허리까지 올리고, 젖은 팬티를 찢어 내렸다. 대음순이 벌어지고, 질구가 내 성기를 기다리며 씰룩거렸다.
"잊을 수 없어, 라고 했잖아."
내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한 번에, 끝까지 밀어 넣었다.
"끄아아악!"
채령이 비명을 질렀다. 질벽이 내 성기를 물어뜯듯 조여왔다. 뜨거웠다. 애액이 넘쳐 흘러내리는데도, 내부는 터질 듯이 팽팽했다. 나는 허리를 빼다가 다시 찔러 넣었다. 그녀의 엉덩이가 내 골반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질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 길이, 내 굵기, 내가 가장 세게 찌르는 각도까지. 신경 각인이 아니어도, 그녀의 몸은 나에게 맞춰져 있었다.
"강현... 강현..."
채령이 내 이름을 불렀다. 우범 앞에서, 우범의 개들이 쓰러져 있는 바로 그 방에서. 나는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으로 비비며 허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질이 경련을 시작했다. 오르가즘이 임박했다는 신호.
"싸도 돼. 대신, 내 이름 부르면서 싸."
내가 명령했다. 채령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의 핏줄이 섰다. 그녀의 질이 내 성기를 쥐어짜듯 수축했다. 그녀가 울부짖었다.
"강현! 강현아아...!"
절정의 순간, 나는 그녀의 자궁 입구에 성기를 밀어 넣고 정액을 쏟아냈다. 그녀의 질벽이 내 사정을 받아들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수축했다. 나는 그녀의 몸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정액과 애액이 섞여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우범이 벽에 기댄 채 이를 갈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굴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채령을 바닥에 내려놓고, 지퍼를 올리며 우범을 돌아봤다.
"이게 내 대답이다."
그리고 비상구 쪽으로 몸을 날렸다. 문을 박차고 계단으로 뛰어내리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채령이 바닥에 쓰러진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강현...'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입 모양은 분명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3년 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을 감정의 균열이, 단 0.1초의 접촉과 그 뒤의 폭력적인 성교로 와르르 무너져내린 것이다.
나는 계단을 뛰어내렸다.
***
지하실 은신처.
철제 문을 닫고 잠갔다. 숨이 가빴다. 손가락을 펴서 확인했다. 아직도 채령의 체온이 묻어 있는 듯한 잔상. 그녀의 질벽이 내 성기를 조이던 감촉, 그녀의 입술이 내 귀두를 훑던 촉감, 그리고 그녀의 자궁 안으로 정액을 쏟아붓던 순간의 맥박 리듬까지. 모든 것이 내 혈관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 불꽃이 어둠을 찢었다. 첫 모금을 깊이 들이마시며 천장을 봤다. 물이 새는 자국, 녹슨 파이프,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질벽이 내 손길을 기억하고 수축하는 순간, 3년의 공백이 한 번의 경련으로 압축되었다. 이게 복수다. 우범 앞에서, 그녀의 몸이 나를 증명했다. 그녀의 애액이 카펫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절정하는 비명이, 그 개자식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소리였다.
나는 재떨이를 끌어당겼다. 담배를 한 번 더 빨고, 천천히 비벼 껐다. 연기가 가늘게 올라가 흩어졌다. 재떨이에는 아까 핀 꽁초가 여럿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필터가 찌그러져 있었다. 채령의 질이 내 성기를 조이던 그 리듬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꽁초를 다시 재떨이에 던졌다.
"3년 전과 달라진 건 하나뿐이다."
혼잣말이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이젠 내가 만지기만 하면, 넌 다시 내 것이 된다."
하지만 뭔가가 비어 있었다. 방금 전 일을 복기했다. 채령의 손목을 잡았던 순간,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던 장면, 우범이 그녀에게 키스를 명령했던 장면, 그리고 그녀를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뒤에서 찔러 넣던 장면. 모든 디테일이 선명했다. 그런데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려 하자, 기억이 흐릿했다.
채령을 처음 만난 게 언제였지?
겨울이었다. 아니면 가을? 비가 오는 날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첫마디가 뭐였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만, 그녀의 이름만 기억나고,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장면들은 모조리 안개 속이었다.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게 능력의 대가다. 신경을 조작할 때마다, 뇌 속의 기억 회로가 하나씩 지워진다. 가장 소중한 기억일수록 더 빨리 사라진다.
바지 앞섶이 다시 팽팽해졌다. 채령의 체액 냄새가 아직 내 손가락에 남아 있었다. 나는 지퍼를 내리고, 발기된 성기를 꺼내 쥐었다. 손바닥에 침을 발랐다. 채령의 질벽이 나를 조이던 리듬을 기억하며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질 내부 온도, 애액의 미끄러움, 그리고 내 귀두가 그녀의 자궁 입구에 닿을 때마다 터져 나오던 신음까지. 나는 그 잔향을 쫓아가며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사정 직전,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절정하던 순간의 질벽 수축 리듬을 떠올렸다. 그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낮고 짧은 신음과 함께 정액이 내 손바닥을 적셨다. 나는 손을 닦으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때였다.
노크 소리. 아니, 노크라기엔 너무 정확한 간격. 3초 간격으로 세 번.
나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볐다. 손을 허리춤의 권총으로 가져갔다. 이 은신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민 사장의 사무실에서 빼돌린 비상용 공간이었다.
"누구냐."
문이 열렸다. 복도의 형광등 불빛이 길게 실루엣을 그렸다. 정장 차림의 여자였다. 무릎까지 오는 H라인 스커트, 재킷의 어깨 라인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손에는 서류 가방. 왼손 약지에 낀 반지가 빛을 반사했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입술만 웃고 눈은 전혀 웃지 않는 미소.
"강현 씨."
목소리는 차분했다. 법정에서 익숙한 톤.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구두 굽이 콘크리트 바닥을 한 번, 한 번 찍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몸을 훑었다. 어깨에서 허리, 허리에서 손끝까지. 마치 증거물을 검증하는 검사처럼, 하지만 그 시선의 끝에 아주 잠깐, 다른 것이 스쳤다. 호기심. 그녀의 혀끝이 아랫입술을 살짝 적셨다.
"의뢰인 우범 씨를 대리하여 합의를 제안드립니다."
그녀가 서류 가방에서 서류 뭉치와 함께 작은 USB 메모리를 꺼냈다. 그녀의 손가락이 USB를 내 손바닥에 올려놓는 순간, 검지 끝이 내 손목 안쪽을 스쳤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느린 접촉. 피부 온도가 0.1초 길게 머물렀다.
"거절하신다면... 당신의 능력이 경찰에 알려질 수도 있겠죠."
USB를 내 쪽으로 밀며 그녀가 덧붙였다. 그녀의 상체가 살짝 기울어졌다. 재킷 안쪽 블라우스의 단추 사이로 쇄골 라인이 드러났다. 그녀의 숨결에서 희미한 장미 향이 났다. 사무적인 척 굴었지만, 그녀의 동공이 내 눈을 응시하며 살짝 확장되었다. 능력자에 대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내가 방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자극한 건지.
"폐공장 CCTV 사본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많더군요. 깨진 유리 챔버, 발광 액체, 그리고... 당신이 민 사장의 부하들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모습까지."
나는 담배를 다시 물었다. 천천히 불을 붙이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손가락에 머물렀다. 라이터 불꽃을 쥔 손, 방금 전까지 여자의 신경을 쥐락펴락하고, 여자의 질 안에 정액을 쏟아붓던 손. 그녀의 허벅지가 살짝 움직였다. H라인 스커트 안쪽에서 근육이 긴장하는 미세한 떨림이, 내 신경에 포착되었다.
그녀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라이터를 쥔 손이 아니라, 아직 채령의 체액 냄새가 미세하게 남아 있는 오른손.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바닥을 쓸었다. 일부러였다. 그녀가 내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쇄골 라인에 갖다 댔다. 블라우스 위로 그녀의 피부 온도가 전해졌다.
"이게... 당신 능력인가요?"
한수진이 속삭였다. 그녀의 입술이 내 손등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 그녀가 내 손을 더 아래로 끌어내렸다. 블라우스 단추가 하나, 둘 풀리며 브래지어의 레이스 가장자리가 드러났다. 그녀가 내 손바닥을 자신의 왼쪽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유두가 천 위로 딱딱하게 솟아 있었다.
"신경을 조작한다면서요. 그럼... 이걸 느껴보세요. 내가 지금 뭘 원하는지."
나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숨이 짧게 끊어졌다. 내 신경이 그녀의 피부를 통해 열렸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유두 주변의 모세혈관이 확장되며, 질 내부에서 애액이 분비되기 시작하는 신호. 그녀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짙은 흥분이 그녀의 신경계를 타고 흘렀다.
"이름이 뭐요?"
내가 물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잡은 채로, 자신의 스커트 안으로 끌어당겼다. 팬티 위로 젖은 부분이 내 손가락에 닿았다.
"한수진."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의 허벅지가 내 손을 조이며 떨렸다.
"법무법인 태산, 선임 변호사. 그리고... 당신 능력의 첫 번째 자발적 피험자."
그녀가 내 손가락을 자신의 팬티 안으로 밀어 넣었다. 뜨겁고 축축한 질구가 내 검지와 중지를 감쌌다. 그녀가 내 손목을 잡고, 스스로 내 손가락을 깊숙이 집어넣으며 신음했다.
"증거는 충분히 확보했어요. 이제... 협상하죠, 강현 씨."
내 손가락이 그녀의 질벽을 훑었다. 그녀의 애액이 내 손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내 쪽으로 잡아당기며 입을 맞췄다. 그녀의 혀가 내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장미 향과 담배 연기가 뒤섞였다.
오늘 밤은 길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