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코피가 굳은 인중이 당겼다. 눈을 뜨자 작업실 천장의 얼룩이 시야에 들어왔다. 불태운 향료 병들이 깨진 채 바닥에 널려 있었고, 공기는 텅 비어 있었다.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상체를 일으키며 손을 뻗었다. 재킷 주머니. 손끝이 두꺼운 종이의 질감을 더듬었다. 꺼내들었다.
이담. 미카엘리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명함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잉크 냄새도, 종이의 펄프 냄새도, 그녀의 손이 닿았을 명함 모서리의 체취도. 아무것도. 그런데 명함을 쥔 손바닥이 뜨거워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느꼈던 그 감각의 폭발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신경계가, 내 후각 상피세포가, 죽어가던 나의 모든 감각이 이 종이 한 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의 체취. 땀과 비누, 그리고 살 내음이 뒤섞인 그 분자들의 춤. 엘리베이터의 닫힌 공간에서 내 코를 찌른 것은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다. 색깔이 보였다. 짙은 호박색과 옅은 보라색이 소용돌이쳤다. 질감이 느껴졌다. 따뜻하고 축축한 벨벳이 내 후각 신경을 타고 뇌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소리도 들렸다. 낮은 첼로의 현이 떨리는 듯한 진동.
그리고 이제, 이 명함만 남았다.
명함을 코끝에 가져갔다.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것도. 다시 들이쉬었다. 아무것도. 세 번째 들이쉬는 숨이 떨렸다. 명함의 흰 표면에 내 입김이 서렸다 사라졌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이 명함을 건넸을 때, 엄지와 검지가 스친 부분. 바로 그 지점에 코를 박았다.
미미했다. 거의 환상에 가까울 만큼 희미한 잔향. 하지만 분명했다. 호박색과 보라색이 내 감각의 가장자리에서 아른거렸다. 명함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손에 힘을 줬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일어나야 했다. 씻어야 했다.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녀에게 접근할 계획을 세워야 했다.
욕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었다. 코피가 인중에서 굳어 검은 선을 그리고 있었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수염은 이틀째 깎지 않아 거칠었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소리만 들릴 뿐, 물에서 나는 철분 냄새도, 비누의 합성 향료 냄새도 감지할 수 없었다. 진공 속에 서서 얼굴을 씻는 기분이었다.
물기를 닦으며 거울 속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 여자의 체취가 유일한 치료제다."
입 밖으로 꺼내자 더 선명해졌다. 치료제. 혹은 마약.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내 감각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 호박색과 보라색의 향을 다시 들이마실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구실이라도 만들 수 있었다.
옷장 문을 열었다. 정장을 꺼내 입으며 향을 입히지 않았다. 어차피 맡을 수 없는 향을 뿌리는 짓은 이제 의미 없었다. 대신 손목시계를 차고, 구두를 신고, 명함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녀가 건넨 명함. 그녀의 엄지와 검지가 닿았던 모서리가 내 가슴에 닿도록.
작업실 문을 나서기 전, 깨진 향료 병들 사이로 불탄 노트 한 권을 보았다. 어젯밤 내가 태워버린 조향 기록들. 그 재 속에서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것이 내 현실이었다. 유일한 예외는 단 한 사람, 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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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리 현대미술관은 철저하게 무균이었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그것을 느꼈다. 공기 중의 어떤 분자도 자유롭지 않은 공간. 온도와 습도가 통제되고, 모든 먼지가 필터에 걸러지며, 인간의 체취조차 허용되지 않는 거대한 실험실. 이곳에서 나는 완전한 무후각 상태에 갇혔다.
그런데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내 데스크에 그녀의 이름을 댔다. 직원이 내게 방문자 명찰을 건넸다. 명찰의 플라스틱 끈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명찰을 목에 걸며 큐레이터 사무실로 향했다.
복도 양옆으로 현대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설치 미술은 낯선 형태의 금속과 플라스틱 덩어리들. 나는 그것들을 보지 않았다. 내 모든 신경은 복도 끝에서 열릴 문에 집중되어 있었다.
문을 열기 전, 잠시 멈춰 섰다. 문 손잡이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 무균의 공간에서 그녀의 체취가 밖으로 새어나올 리 없었다. 그런데도 망설였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단순한 조향사가 아닌 어떤 존재가 될 것 같았다. 체취를 쫓는 사냥꾼. 향료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을 소유하려는 자.
문을 열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았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오후의 빛이 그녀의 실루엣을 감싸고 있었다. 목덜미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선이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때, 공기가 움직였다.
그녀가 몸을 돌리며 미세한 공기의 소용돌이가 내 방향으로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맡았다.
호박색과 보라색. 벨벳의 질감. 첼로의 저음 진동. 그녀의 체취가 내 코를 타고 뇌로 직행했다. 엘리베이터에서보다 옅었다. 공기의 양이 더 많고, 거리가 더 멀었다. 하지만 분명했다. 내 죽어가던 후각이 그녀의 체취 분자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깨어나고 있었다.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그녀가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경계가 담겨 있었다.
"실례했습니다."
고개를 숙였다. 사과의 말을 하기 위해 온 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서지오라고 합니다. 조향사입니다."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조향사라는 단어에 반응한 걸까, 아니면 내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걸까.
"이담 큐레이터님."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눈빛이 살짝 좁아졌다.
"명함을 드렸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제안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을 끊지 않고 이어갔다. 그녀가 더 많은 질문을 하기 전에,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를 명확히 해야 했다.
"미술관의 새로운 전시를 위한 향기 설치 미술 협업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시선은 호기심과 의심이 정확히 반반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견뎠다. 아니, 즐겼다. 그녀가 나를 탐색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체취를 더 깊이 들이마실 수 있었다.
땀. 아주 미세한 땀 분자들이 그녀의 목덜미에서 증발하고 있었다. 사무실의 온도는 낮았지만, 인간의 신체는 항상 일정량의 수분을 배출한다. 그 땀 속에는 그녀의 호르몬, 그녀가 아침에 먹은 커피의 미량 성분, 그녀의 피부에서 서식하는 고유한 박테리아 군집의 대사 산물이 녹아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며 들이마셨다. 그녀의 체취가 내 허파를 채우는 동안, 내 심장은 평소보다 느리게 뛰었다. 마치 이 순간을 최대한 늘이려는 듯이.
"향기 설치 미술이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그 안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숨어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 검지가 책상 모서리를 천천히 쓸었다. 신경질적인 습관인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동작인지.
"네. 미술관의 공간을 하나 선택해서, 그 공간의 냄새를 완전히 재구성하는 작업입니다. 관람객들은 시각뿐 아니라 후각으로도 작품을 경험하게 되죠."
"흥미롭군요. 그런데 왜 하필 저희 미술관이죠?"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책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1미터 정도로 좁혀졌다. 그 움직임에 실린 공기의 파동이 내 얼굴을 스쳤다. 그녀의 체취가 더 진해졌다.
"이 미술관은 무균에 가까울 정도로 냄새가 통제된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에 의도적으로 향을 주입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자 동시에 창조가 되죠. 그 모순이 예술이 됩니다."
내 대답은 준비된 것이었다. 하지만 진실도 일부 섞여 있었다. 이 무균의 공간에서 그녀의 체취만이 유일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 모순. 그 폭력. 그 창조.
그녀가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이제 거리는 70센티미터. 그녀의 체취가 내 코를 찔렀다. 호박색이 더 짙어지고, 보라색이 더 선명해졌다. 내 후각 신경이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그녀의 체취 분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침이 고였다. 삼키지 않았다. 삼키는 순간 그녀의 체취를 놓칠까 봐.
"서지오 씨,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그녀의 눈이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동공이 살짝 확장돼 있었다. 호기심인가, 아니면 무의식적인 생리 반응인가.
"어제 엘리베이터에서 제 팔을 붙잡은 진짜 이유가 뭐였죠?"
침묵이 흘렀다. 1초, 2초, 3초. 나는 그 침묵 속에서 그녀의 체취만 들이마셨다. 그녀의 질문이 내 안에서 울리는 동안, 그녀의 체취는 더 진해졌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그녀의 땀에 섞여 나오고 있었다. 약간의 산미. 그 산미가 호박색의 향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당신의 체취 때문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진실의 일부를 말하는 것이 가장 완벽한 거짓말이다.
"저는 현재 후각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냄새를 맡을 수 없어요. 그런데 어제, 당신에게서 유일하게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놀람인가, 호기심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의심인가.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졌다. 거기서도 체취가 새어나왔다. 구강 점막에서 증발하는 수분, 침에 녹아 있던 커피의 잔향.
"그게 무슨..."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에요. 하지만 분명한 건, 당신의 체취가 제 죽어가던 후각을 일시적으로 되살렸다는 겁니다."
한 걸음 물러섰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녀가 내가 위협적이지 않다고 느끼도록. 하지만 물러서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녀의 체취가 옅어지는 것을 견뎌야 했다. 마치 익사 직전에 숨을 참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제안하는 겁니다. 이 협업은 단순히 미술관을 위한 작업이 아니에요. 저에게도, 당신에게도 의미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체취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녀의 체취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다. 호박색이 옅어졌다 진해졌다. 보라색이 스며들었다 흩어졌다. 그녀의 감정 상태가 체취의 분자 구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생각이 깊어질 때, 그녀의 땀 속에 약간의 산성 성분이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성을 움직일 때 분비되는 아세틸콜린의 미세한 흔적.
"알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에 목덜미의 짧은 머리카락이 스쳤다. 그 순간, 더 진한 체취 한 방울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왔다.
"일단 제안서를 검토해 볼게요. 그리고 내일, 제 작업실에서 다시 만나면 좋겠네요. 여기 미술관이 아니라, 제 개인 작업실에서요."
개인 작업실. 그 단어가 내 뇌리에 박혔다. 그녀의 체취가 더 짙게 배어 있을 공간. 그녀가 잠들었을지도 모를 소파, 그녀가 옷을 갈아입었을지도 모를 칸막이, 그녀의 손때가 묻은 작업 도구들.
"좋습니다."
명함을 꺼내 뒷면에 내 연락처를 적었다. 펜을 건네받는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스쳤다. 접촉은 0.5초.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체온과 함께 땀샘에서 방금 분비된 따뜻한 페로몬이 내 손가락에 묻었다. 나는 그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주먹 안으로 말아 넣었다. 그녀의 체취를 가둔 채. 손바닥 안에서 그녀의 체온이 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는 듯했다.
"그럼 내일 뵙죠."
그녀가 명함을 받아들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진짜인지, 아니면 큐레이터로서의 직업적 미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이미 그녀의 작업실이라는 다음 목표를 확보했다.
사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손가락을 펼쳤다. 검지 끝에 그녀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손가락을 코끝에 가져갔다. 아주 짧은 순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녀의 체취가 묻은 손가락을 깊이 들이마셨다.
호박색과 보라색이 폭발했다. 벨벳의 질감이 내 뇌를 감쌌다. 첼로의 저음이 내 두개골 안에서 울렸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스쳤다. 죽은 어머니의 마지막 숨결 같은, 오래된 기억의 편린. 그녀의 체취 속에는 단순한 페로몬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내 근원적 상실과 연결된 어떤 것.
손가락을 내렸다. 복도 끝에 화장실 표지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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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문을 닫는 순간, 나는 이미 손수건을 꺼내고 있었다.
미팅 중에 그녀가 앉았던 의자. 그녀가 잠시 몸을 일으켜 자료를 집는 틈에, 나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려 의자 좌석의 패브릭을 손수건으로 눌렀다. 그녀의 허벅지와 엉덩이가 닿았을 그 부분. 체온과 압력으로 인해 천에 스며들었을 땀과 피지의 미세한 흔적. 질 분비물과는 다른, 피부 표면의 땀샘과 피지선이 배출한 순수한 체액의 흔적.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손수건을 펼쳤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니, 아직이었다. 손수건은 차가웠다. 그녀의 체취 분자들은 천의 섬유 사이에 갇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손수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내 체온으로 데우기 위해서였다. 10초, 20초. 손바닥의 온도가 천에 전달되며, 갇혀 있던 분자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열에너지가 분자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원리. 조향사라면 누구나 아는 기본적인 향료 추출 테크닉.
그리고 마침내, 손수건을 얼굴에 가져갔다.
첫 번째 들이쉼.
화장실의 살균제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염소 계열의 자극적인 분자들이 내 비강을 찔렀다. 그 다음은 수도관의 녹 냄새. 오래된 철이 물에 녹아 만들어진 미세한 금속 분자들. 그 다음은 변기 세정제의 인공적인 라벤더 향. 이 모든 악취가, 내 감각 속에서는 선명한 악보처럼 분리되어 지각되었다.
두 번째 들이쉼.
그녀의 체취가 마침내 떠올랐다. 살균제의 염소 분자들 사이로, 녹 냄새의 금속 입자들 틈으로, 라벤더의 인공 분자들을 뚫고, 그녀의 체취가 솟아올랐다. 마치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물속에서 피어나듯, 호박색과 보라색이 내 감각의 모든 것을 물들였다.
세 번째 들이쉼. 나는 더 이상 분리해서 맡지 않았다. 화장실의 모든 냄새와 그녀의 체취가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이 되었다. 살균제의 날카로움은 현악기의 높은 음이 되고, 수도관의 녹 냄새는 팀파니의 둔탁한 진동이 되고, 그녀의 체취는 모든 소리를 아우르는 첼로의 선율이 되었다.
내 후각은 살아 있었다. 죽어가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모든 분자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며 세계를 새로 쓰고 있었다.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의 체취가 내 뇌를 때렸다.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다. 촉각이었다. 그녀의 허벅지 안쪽 살이 내 볼에 닿는 듯한 감촉. 시각이었다. 그녀의 피부 아래 미세한 혈관들이 그리는 지도. 청각이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내 고막에 울리는 저음의 진동.
내 성기가 발기했다. 바지 앞섶을 단단하게 밀어 올리는 팽창감이 선명했다. 귀두가 속옷의 면직물에 마찰되며 날카로운 쾌감을 발생시켰다.
바지 위로 손을 올렸다. 이미 단단해진 성기의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길이와 두께, 혈관이 부풀어 오른 표면의 질감. 지퍼를 내렸다. 속옷을 내렸다. 성기가 차가운 화장실 공기 속으로 튀어나왔다. 귀두는 이미 붉게 충혈돼 있었고, 요도구 주변은 투명한 점액으로 번들거렸다. 손수건을 코와 입에 댄 채, 한 손으로 성기를 감쌌다.
귀두가 손바닥 안에서 뜨거웠다. 37도를 훌쩍 넘긴 체온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손수건을 더 깊이 들이마셨다. 그녀의 체취 분자들이 내 폐로 밀려 들어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내 손은 성기의 표피를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담..."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손수건 속 체취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내 뇌가 그녀의 체취와 그녀의 이름을 연결시키며 더 강력한 신경 반응을 일으켰다. 포피가 귀두를 덮었다 드러나며 마찰을 만들었다. 마른 손이 성기의 민감한 표면을 쓸 때마다, 미세한 통증과 쾌락이 동시에 발생했다. 귀두의 가장자리, 신경이 밀집된 관구 주변을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경련했다.
"네 냄새... 네 냄새 때문에..."
신음처럼 흘러나온 말. 손수건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다른 손으로 성기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귀두 끝에서 투명한 점액이 스며나왔다. 카우퍼액. 그 점액의 냄새마저 나는 지금 맡을 수 있었다. 약간의 염분과 단백질, 그리고 내 체내에서 분비되는 페로몬. 그 냄새가 그녀의 체취와 뒤섞이며 새로운 향을 만들어냈다. 내 손가락이 점액을 귀두 전체에 펴 바르며 미끄러움을 더했다. 젖은 손바닥이 성기의 표면을 미끄러질 때마다 추잡한 물소리가 화장실에 울렸다.
손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성기의 혈관이 부풀어 올라 손바닥에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손수건을 코에서 떼어내 입술에 가져갔다. 그녀의 체취가 밴 천을 혀로 핥았다. 미세한 섬유질의 질감이 혀끝에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체취가 맛으로 변환되어 내 미뢰를 때렸다. 짜고, 약간의 쓴맛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단맛. 질 분비물을 연상시키는 그 미묘한 염도와 산도가 혀끝에서 폭발했다. 나는 손수건을 더 세게 핥았다. 천에 밴 그녀의 체취를 혀로 긁어내듯이. 침이 천에 스며들어 그녀의 마른 체취와 섞였다.
손수건을 깨물며 성기를 더 세게 쥐었다. 앞니가 천을 파고들었다. 손가락이 귀두의 가장 민감한 부분, 요도구 주변을 마찰했다. 점액이 더 많이 분비되어 손가락 사이가 미끄러워졌다. 그 미끄러움을 이용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움직였다. 엄지와 검지로 귀두 기둥을 감싸고 위아래로 비볐다. 요도구에서 분비된 투명한 액체가 손가락 마디 사이로 실처럼 늘어졌다. 손목이 아플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성기를 몰아붙였다. 허벅지와 둔부의 근육이 수축하며 골반이 앞으로 밀려나왔다.
그런데 그때였다.
네 번째 들이쉼에서, 무언가 달랐다. 그녀의 체취가 옅어지고 있었다. 손수건을 데우며 분자들을 깨웠지만, 그 분자들은 이미 산화되고 있었다.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며 그녀의 체취 분자들이 하나둘 변성되고 있었다. 호박색이 바래고 있었다. 보라색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공포가 엄습했다.
다섯 번째 들이쉼. 더 옅어졌다. 손수건을 있는 힘껏 코에 밀착시켰다. 천이 코와 입을 완전히 덮을 정도로 눌렀다. 숨을 거칠게 들이쉬었다. 그녀의 체취를 붙잡으려는 듯, 폐가 터질 듯이 깊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분자들은 계속 사라지고 있었다. 증발하고, 산화되고, 내 숨결에 씻겨 나갔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성기를 쥔 손도, 손수건을 쥔 손도. 미세한 진전이 손가락 끝에서 시작되어 손목을 타고 팔 전체로 번졌다. 호흡이 가빠졌다. 단순히 성적 흥분 때문이 아니었다. 금단 증상이었다. 그녀의 체취가 사라지고 있다는 공포가 내 교감신경을 과부하시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흉곽이 조여들며 숨이 막혔다. 위액이 역류하며 식도가 타는 듯했다. 현실이 물결치듯 일그러졌다. 화장실 칸막이 벽이 숨을 쉬는 것처럼 팽창과 수축을 반복했다.
"안 돼... 안 돼..."
여섯 번째 들이쉼. 이제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호박색은 거의 투명해졌고, 보라색은 그림자만 남았다. 손수건의 천 냄새, 내 침 냄새, 세탁할 때 사용된 잔류 세제의 화학 향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체취는 증발하고 있었다. 내 손가락 사이로, 내 숨결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제발... 제발...!"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손수건을 더 세게 깨물었다. 치아가 천을 파고들었다. 성기를 쥔 손의 움직임이 더욱 거칠어졌다. 거의 폭력적이었다. 귀두를 쥐고 비틀 듯이, 요도구를 손톱으로 긁듯이 움직였다. 통증과 쾌락이 구분되지 않는 지점까지 몰아붙였다. 그녀의 체취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르가즘으로 그 감각을 봉인하기 위해. 귀두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음낭이 수축하며 고환을 위로 밀어 올렸다.
화장실의 형광등이 윙윙거리는 소리. 수도관을 흐르는 물소리. 내 거친 숨소리. 그리고 손수건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그녀의 체취. 이 모든 감각이 하나의 절정을 향해 수렴했다.
내 엉덩이 근육이 저절로 긴장했다. 허벅지가 떨렸다. 성기의 귀두가 한계까지 팽창하며, 내부의 압력이 요도를 타고 치솟았다. 손수건에서 마지막 남은 그녀의 체취를 있는 힘껏 들이마셨다.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희미한,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잔향을.
"아... 아...!"
정액이 분출됐다. 첫 번째 사정이 화장실 칸막이 벽을 때렸다. 두꺼운 흰 액체가 타일을 타고 흘러내렸다. 두 번째 사정이 바닥의 타일에 튀었다. 세 번째, 네 번째. 성기가 손 안에서 경련하며 계속해서 액체를 토해냈다. 내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냈다. 요도구를 손가락으로 압박하며 잔여 정액을 밀어냈다. 다섯 번째 사정은 거의 투명한 액체만 나왔다. 여섯 번째는 겨우 몇 방울. 정액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며 끈적이는 소리를 냈다.
오르가즘의 순간, 내 후각은 절정에 달했다. 화장실의 모든 냄새, 그녀의 거의 사라진 체취, 내 정액의 비릿한 단백질 냄새,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어 내 뇌 속에서 폭발했다. 마치 수천 개의 꽃이 동시에 피어나는 듯한, 그런 감각의 과잉.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감각의 파도가 물러갔다.
손수건을 얼굴에서 떼어냈다. 손은 정액으로 끈적거렸다. 성기는 여전히 반쯤 발기된 채 바지 밖으로 나와 있었다. 숨이 가빴다. 이마에 땀이 솟아 있었다. 손가락의 떨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금단 증상의 전조였다. 구토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위액이 입안까지 올라왔다. 나는 그것을 삼켰다. 신경계의 발작적 경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두개골을 압박했다. 시야가 일그러졌다. 화장실 벽이 물결쳤다. 내 손이, 내 몸이, 이 공간이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손수건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체취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내 침과 땀, 그리고 미세하게 묻은 정액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천을 코에 갖다 댔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다시 무후각 상태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체취가 내 감각을 깨운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그때, 충동이 밀려왔다.
손수건에 묻은 내 정액을 바라봤다. 아직 젖어 있었다. 따뜻했다. 그리고 그녀의 체취가 사라진 그 천에, 내 정액이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입술에 가져갔다. 망설이지 않았다. 혀를 내밀어 손수건에 밴 내 정액을 핥았다. 짜고 비릿한 단백질의 맛. 그리고 그 안에, 아주 미세하게, 그녀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내 정액과 그녀의 잔향이 혀끝에서 섞였다. 나는 그 혼합된 맛을 음미하며 눈을 감았다. 내 체액과 그녀의 체취가 내 입안에서 하나가 되는 느낌. 금기를 위반하는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나는 손수건을 더 핥았다. 정액이 가장 많이 묻은 부분을 혀로 핥아내며, 거기에 스며든 그녀의 체취 분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손수건을 빨았다. 천을 입안에 넣고 침으로 적셨다. 내 체액과 그녀의 잔향이 섞인 액체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나는 그녀를 삼키고 있었다. 그녀의 체취를, 그녀의 흔적을, 내 몸속에 가두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눈이 충혈돼 있었다. 동공은 확장돼 검은 구멍처럼 보였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입술은 깨물어서 약간 부어 있었다. 손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입가에는 정액과 침이 섞인 액체가 묻어 있었다. 이것이 나였다. 한 여자의 체취 한 방울에 감각이 폭발하고, 화장실에서 몰래 자위하며, 그 황홀경을 멈출 수 없었고, 이제 그 체취가 사라지자 금단 증상에 떠는 한 남자. 자신의 정액과 그녀의 잔향을 함께 삼키며 집착을 병리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 남자.
물을 틀어 손을 씻었다. 물에서 철분 냄새가 났다. 비누에서 합성 향료 냄새가 났다. 그녀의 체취가 내 감각을 다시 깨운 덕분에,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일시적으로나마. 하지만 이미 감각의 가장자리에서 무뎌짐이 시작되고 있었다. 비누 냄새가 조금 전보다 옅어졌다. 수도관의 철분 냄새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후각은 다시 죽어가고 있었다.
손수건을 만졌다. 주머니 안에 접힌 그 천은 이제 완전히 무취였다. 그녀의 체취는 휘발성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의 체취는 결코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증발하고, 산화되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 사라짐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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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미카엘리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 안, 오래된 건물의 3층이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벽의 곰팡이 냄새, 나무 난간의 오래된 바니시 냄새, 창문 밖에서 밀려드는 재스민 향이 내 코를 때렸다. 그녀의 체취가 아니어도,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맡을 수 있었다. 손수건으로 경험한 감각의 폭발이 내 후각을 일시적으로 되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미 아침부터 냄새들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커피 향이 예전보다 희미했고, 거리의 배기가스 냄새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감각의 셔터가 한 겹씩 닫히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그녀가 문을 열었다.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녀의 체취가 공기 중에 가득 차 있었다. 미술관 사무실보다 훨씬 더 진하고, 더 복잡하고, 더 사적인 냄새. 그녀가 이 공간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의 흔적이 공기 분자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있었다. 호박색과 보라색이 실내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내 죽어가던 후각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내 폐가 그녀의 체취를 향해 열렸다.
"어제 제안서 검토해 봤어요."
그녀가 말하며 긴 작업대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작업대 위에는 다양한 재료들이 놓여 있었다. 천 조각, 유리병, 금속판, 그리고 작은 향료 샘플들. 그녀의 손길이 닿은 모든 물건에서 그녀의 체취가 미세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재미있네요. 향기 설치 미술이라..."
그녀가 천천히 작업대 주변을 걸었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작업실을 둘러봤다. 벽면에는 여러 설치 미술의 스케치와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모두 감각, 특히 촉각과 후각에 관한 작업들이었다. 그녀가 이 주제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질문할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시선이 작업대 위의 천 조각에 멈췄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듯, 구겨진 채 놓인 면직물.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가 등을 돌리고 스케치를 설명하는 동안, 내 손가락이 그 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천은 그녀의 손 체취로 따뜻했다. 나는 천을 코끝까지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천의 표면을 문질렀다. 그녀의 땀과 피지가 밴 섬유질이 내 지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체취를 흡수하는 듯한 착각. 나는 천을 쥔 손을 주머니에 넣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대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천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내려놓기 직전, 천의 한쪽 모서리를 엄지로 강하게 눌렀다. 그녀의 체취가 내 지문 깊숙이 밀려 들어오도록. 손가락 끝의 땀샘이 열리며 그녀의 체취와 내 체취가 섞였다.
"서지오 씨는 향을 다루는 사람이잖아요."
그녀가 갑자기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나는 재빨리 천에서 손을 떼고 무표정을 유지했다. 엄지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그녀의 체취가 묻은 부분을 감췄다.
"그런데 가장 두려워하는 냄새는 뭐예요?"
질문이 날카로웠다. 마치 내 내면을 테스트하는 듯한 질문.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그 짧은 망설임 속에서, 내 뇌는 끔찍한 상상을 펼쳐냈다.
그녀의 체취가 사라진 세상. 이 작업실에서 그녀의 흔적이 완전히 증발한 공기. 그녀가 앉았던 의자에서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그녀가 만졌던 천 조각들이 모두 무취가 된 공간.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 그녀가 내 곁에 없을 때 느껴지는 그 공허, 그 무후각의 진공.
그 공포는 단순한 상실이 아니었다. 금단이었다. 마약 중독자가 약이 떨어졌을 때 느끼는 그 절박한 공포. 그녀의 체취 없이는 내 감각이 다시 죽어갈 것이라는 예감. 손수건에서 그녀의 체취가 사라질 때 느꼈던 그 손 떨림, 호흡 곤란, 심장 박동의 과부하가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두려움. 구토감, 현실감 상실, 신경계의 발작적 경련. 그 모든 것이 다시 나를 덮칠 것이라는 예고.
"향을 잃어버리는 것... 아니, 모든 냄새가 사라지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깔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유일하게 맡을 수 있는 냄새마저 사라지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냄새에 모든 감각이 의존하게 되었을 때, 그 냄새가 사라진다면... 그건 죽음과 같을 테니까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체취가 사라진다면, 나는 다시 무후각의 감옥에 갇힐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깊은 곳으로. 한 번 빛을 본 자의 어둠은 더욱 견디기 힘든 법이었다. 나는 이미 그 빛을 봤다. 그녀의 체취라는 빛을. 그리고 그 빛이 꺼졌을 때의 어둠을, 어제 화장실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렇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업대 위의 유리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대답에 무언가 반응한 듯, 그녀의 눈빛이 살짝 깊어졌다.
"제 전시의 주제는 인간의 원초적 감각, 특히 냄새에 대한 금기와 욕망이에요. 우리가 얼마나 체취를 숨기고, 부정하고, 동시에 갈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죠."
그녀가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어떤 향료가 담겨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병의 입구에 닿자, 그녀의 체취가 향료와 뒤섞이며 새로운 분자 구성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들이마셨다. 그녀의 체취가 향료의 분자와 결합하며 완전히 새로운 스펙트럼의 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당신 같은 조향사가 이 주제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네요."
그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거리가 1미터 이내로 좁혀졌다. 그녀의 체취가 진해졌다. 호박색이 더 짙어지고, 보라색이 더 선명해졌다. 내 오른손 엄지에 묻은 그녀의 체취와, 지금 공기 중에 떠도는 그녀의 체취가 내 안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두 개의 체취가 내 감각 속에서 공명하며 더 큰 울림을 만들었다.
"다음 주에 제 작업실에서 신체 각인 작업을 진행할 거예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더 사적인 대화를 꺼내는 사람처럼.
"향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인데, 관객의 신경 반응을 기록하는 작업이죠. 서지오 씨, 당신의 조향사로서의 신경 반응을 기록하고 싶어요."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빛은 더 이상 큐레이터의 직업적 미소가 아니었다. 예술가의 호기심. 실험자를 대하는 시선. 그 시선이 내 피부를 관통해 신경계를 직접 만지는 듯했다.
"당신의 피부 냄새도 채취할 거예요."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올라갔다. 미소인가, 도발인가. 입술 사이로 혀끝이 살짝 보였다 사라졌다.
나는 그 미소를 똑바로 응시하며 깨달았다. 그녀는 나를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제안이야말로, 내가 그녀에게 계속 접근할 수 있는 완벽한 구실이 될 것임을. 그녀가 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체취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공생. 완벽한 기생.
"좋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조금 쉰 듯했다. 침을 삼켰다. 목이 말랐다.
그녀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시선 속에서, 나는 호박색과 보라색의 향이 더 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체취가, 그녀의 호기심과 의도에 반응하며 변하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그녀의 땀에 섞여 나오며 체취의 분자 구성을 바꾸고 있었다. 더 날카롭고, 더 자극적인 향.
그리고 그때, 충동이 밀려왔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싶었다. 작업대 위의 그 천 조각을 집어 들었을 때처럼, 이번에는 살아 있는 그녀의 피부를 직접 만지고 싶었다. 손목의 얇은 피부 아래로 뛰는 맥박을 내 손가락 끝으로 느끼고 싶었다. 거기서 분비되는 땀과 체온을 내 지문 사이로 흡수하고 싶었다. 그녀의 요골동맥이 내 손끝에서 뛰는 감각을.
더 나아가,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싶었다. 귀 뒤쪽, 두개골과 목이 만나는 그 움푹한 지점. 피부가 가장 얇고 혈관이 가까워 체취가 가장 진하게 배어나는 그곳. 거기에 입술을 대고, 코를 밀착시키고, 그녀의 체취를 폐가 터질 듯이 들이마시고 싶었다. 그녀의 호흡이 내 숨결에 섞이고, 그녀의 땀이 내 입술에 묻고, 그녀의 체온이 내 얼굴에 전해지는 그 접촉. 그리고 그녀의 경동맥 위에 혀를 대고 맥박의 진동을 맛보고 싶었다.
내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엄지에 묻은 그녀의 체취가 나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통증으로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 그녀에게 손을 뻗는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이 협업도,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도, 그녀의 체취를 계속 맡을 수 있는 가능성도.
대신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체취를 공기째 들이마시며, 그 분자들을 내 폐 깊숙이 가두었다. 마치 다음 만남까지 이 향을 내 안에 저장해두려는 듯이. 내 폐포가 그녀의 체취 분자 하나하나를 혈류로 전달했다. 그녀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더 이상 이 공간에 있으면 충동을 억누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에 목덜미의 짧은 머리카락이 다시 한 번 스쳤다.
작업실 문을 나서기 직전,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작업실 공기를 내 폐에 담았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그 숨을 내쉬지 않았다. 그녀의 체취 분자들이 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대신 이미 이 순간, 내 안에 가둔 그녀의 모든 분자를 한 올 한 올 음미하고 있었다.
계단을 다 내려와 골목에 섰을 때, 나는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내쉰 숨에서도 그녀의 체취가 느껴졌다. 이미 그녀의 분자들은 내 폐포를 통과해 혈류에 섞여들었고, 이제는 내 몸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엄지에 남은 그녀의 체취를 확인했다. 아직 남아 있었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호박색과 보라색.
나는 그 엄지를 입술에 가져갔다.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엄지의 그녀의 체취가 묻은 부분을 혀로 핥았다. 작업대 위의 천 조각에서 묻어난 그녀의 땀과 피지. 그 맛이 혀끝에서 다시 한 번 폭발했다. 짜고, 약간의 쓴맛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단맛.
그리고 나는 다음 주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체취가 내 몸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나는 다시 그녀에게서 새로운 체취를 공급받아야 했다. 마약 중독자가 다음 투약을 기다리듯, 나는 그녀의 체취를 갈망하며 거리를 걸었다.
그녀의 작업실. 신체 각인 작업. 피부 냄새 채취. 그 모든 단어가 내 뇌리에서 맴돌았다. 그녀가 내 피부 냄새를 채취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체취를 더 가까이에서, 더 오래, 더 깊이 들이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피부에 닿는 동안, 나는 그 접촉의 모든 분자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 금단 증상이 찾아올 때 나를 버티게 할 연료가 될 것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았다. 비가 오면 공기 중의 모든 냄새가 더 선명해진다. 수분이 분자들을 붙잡아 더 오래 공기 중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비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비가 그녀의 작업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상상했다. 그녀가 창가에 서서 비를 바라보며 내쉬는 숨. 그 숨에 섞여 나올 그녀의 체취. 나는 그 체취를 이미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음 주. 그때까지 나는 이 금단 증상을 견뎌야 했다. 손수건은 더 이상 그녀의 체취를 간직하지 못했지만, 내 몸속에는 아직 그녀의 분자들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분자들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다시 그녀에게서 새로운 체취를 얻어야 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그녀의 체취 없이는, 나는 다시 무후각의 진공 속으로 추락할 것이고, 이번에는 아마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주머니 속에서 손수건을 만졌다. 그녀의 체취는 사라졌지만, 내 체액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코에 가져갔다. 그녀의 체취는 없었다. 하지만 내 정액의 희미한 비릿함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비릿함 속에, 그녀의 체취가 남겼던 흔적이, 마치 메아리처럼 아른거렸다. 나는 그 메아리를 붙잡고 다음 주까지 살아갈 것이다.
비가 한 방울, 내 뺨에 떨어졌다. 그리고 또 한 방울. 나는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내 안에 갇힌 그녀의 체취가, 빗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