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의 응접실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로 가득했다.
벽난로의 장작이 타오르고 있었지만 그 열기는 베르문트 가문의 기사단 열다섯 명이 내뿜는 살기 앞에 무력했다. 검은 갑주로 무장한 그들은 응접실 양옆에 도열해, 내가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일제히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나는 팔에 안은 린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그녀는 여전히 의식이 혼미한 채, 찢긴 전투복 사이로 드러난 허벅지에 붉은 문양을 번득이고 있었다. 레이그 베르문트 공작은 응접실 중앙, 마호가니 책상 뒤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빛이 도는 금발, 깊게 패인 눈가의 주름, 그리고 베르문트 가문의 상징인 은빛 사자 문장이 수놓아진 망토. 10년 전 내가 알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단 하나 다른 점은, 그가 지금 나를 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뿐.
"대검 카인 아슈발트."
레이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긴장이 마른 갈라짐처럼 배어 있었다.
"내 딸을 돌려줘라. 지금 당장."
"돌려줄 수 없지."
나는 린을 응접실 소파에 조심스럽게 눕히며 대답했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당신 딸에게 새겨진 이 문양이 무엇인지, 공작께서 모르실 리 없잖습니까."
레이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검을 뽑으려 했지만, 그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모두 물러나라."
"공작님!"
"물러나라고 했다!"
기사들이 움찔하며 검자루에서 손을 떼었다. 레이그는 천천히 책상 뒤에서 걸어 나와 소파 앞에 무릎을 꿇었다. 떨리는 손으로 린의 목덜미를 감싸고 있던 옷깃을 젖혔다.
거기에는 두 개의 문양이 겹쳐져 있었다.
하나는 희미한 은색으로 새겨진 '속박의 낙인'. 노예 상인들이 고급 상품에 사용하는, 혈통을 구속하고 명령을 강제하는 고대의 마법 각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직 완전히 발현되지 않은 내 '정복의 각인'. 붉은 실금처럼 목덜미의 혈관을 타고 은색 문양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황실이군요."
나는 낮게 읊조렸다. 아이라에게서 캐낸 정보, 그리고 지금 이 노예 각인의 존재가 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졌다.
"황제 셀리나가 당신 가문의 혈통 자체를 인질로 잡았다. 린을 시켜 나를 배신하게 만든 것도, 이 각인을 빌미로 협박했기 때문이겠지."
레이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 스치는 고통과 수치가 모든 것을 증명했다. 나는 린을 다시 품에 안아 일으켰다.
"침실을 빌리겠습니다. 당신 딸에게 새겨진 황실의 개목걸이를, 내 손으로 뜯어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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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2층의 침실은 베르문트 가문의 검소한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참나무 가구, 벽에 걸린 낡은 검 한 자루,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설산의 풍경.
나는 린을 침대 위에 엎드리게 눕혔다. 그녀의 등은 아직도 내 체취와 정액으로 얼룩져 있었고, 찢긴 전투복 사이로 드러난 허벅지의 각인은 희미하게 맥박 치고 있었다.
"깨어나."
목덜미에 손을 대고 패왕검의 기운을 불어넣자, 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의식을 되찾았고, 이내 자신이 엎드린 자세로 침대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숨을 삼켰다.
"스… 스승님…."
"말하지 마."
나는 그녀의 등 위에 올라탔다. 내 체중이 실리자 침대가 삐걱였다. 린의 허벅지에 새겨진 첫 번째 각인이 반응하며 붉은 빛을 뿜어냈고, 그 빛은 마치 핏줄기를 타고 올라가듯 그녀의 척추를 따라 목덜미로 번져갔다.
"두 번째 각인을 새긴다. 아프겠지만…."
나는 손끝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쓸었다. 은색 노예 각인이 박힌 바로 그 부위. 피부 아래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황실의 마법이 살아있는 기생충처럼 그녀의 신경계에 뿌리박고 있었다.
"네가 참아온 고통보다는 가벼울 거다."
린의 어깨가 떨렸다. 그녀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고, 두 손으로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나는 검을 뽑지 않았다. 첫 번째 각인은 상처를 통해 새겼지만, 두 번째 각인은 이미 존재하는 문양의 확장으로 충분했다. 손끝에서 패왕검의 기운을 응축시켜, 마치 바늘처럼 날카롭게 만든다.
그리고 목덜미의 은색 문양 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읏…!"
린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 손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실금이 번져가며 은색을 집어삼켰다. 노예 각인이 저항하듯 푸른 빛을 뿜어냈지만, 정복의 각인은 그 빛마저 먹어치우며 더 짙은 적색으로 빛났다.
"가만히 있어."
나는 왼손으로 린의 허리를 눌러 고정시켰다. 오른손은 계속해서 목덜미에 문양을 새겼다. 붉은 실금은 이제 그녀의 척추 전체를 타고 흘러내려, 허벅지의 첫 번째 각인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두 개의 각인이 공명했다.
린의 전신이 갑자기 붉게 달아올랐다. 피부 아래 모세혈관들이 일제히 확장되며, 그녀의 등 전체가 마치 석양빛으로 물든 듯 붉게 변했다.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며, 나와 맞닿은 허벅지 안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왔다. 그녀의 피부는 마치 내장 속까지 들여다보일 듯 투명하게 빛났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 빛이 실시간으로 목덜미에서 골반까지 번져 내려갔다.
"아… 뜨거…!"
린이 몸부림쳤다. 그녀의 등에서 땀이 솟아났고, 찢긴 전투복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녀의 등 위에 체중을 실어 움직임을 억누르며, 마지막 문양을 목덜미 중앙에 찍어 넣었다.
그 순간, 은색 노예 각인이 산산조각났다.
마치 유리가 깨지듯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감각이 내 손끝에 전해졌다. 동시에 린의 목덜미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황실의 구속 마법이 소멸하는 증거였다. 연기에서는 쇠붙이가 녹슬어 부서지는 듯한 금속성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내 정복의 각인이 차지했다.
두 개의 붉은 문양, 허벅지와 목덜미가 하나로 연결되며 린의 전신에 걸친 거대한 문양 체계를 완성했다. 그 문양은 이제 그녀의 혈관을 따라 온몸에 퍼져 있었고,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녀의 심장 박동에 맞춰 희미하게 빛났다.
"됐다."
나는 숨을 내쉬며 손끝에서 기운을 거두었다.
하지만 각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복의 각인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라, 상대의 육체와 영혼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린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약한 경련이었지만, 점차 강해지더니 이내 그녀의 전신이 격렬하게 떨렸다. 허벅지의 각인과 목덜미의 각인이 동시에 붉은 빛을 뿜어내며, 그녀의 신경계 전체를 재편성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었다.
린의 기억 파편이 각인의 붉은 빛을 타고 내게 흘러들어왔다. 황실 지하 감옥의 차가운 돌바닥. 그녀의 목덜미에 처음 노예 각인이 새겨지던 순간. 셀리나 황제의 목소리. "베르문트의 딸아, 네 아버지와 가문의 목숨은 이제 네 손에 달렸다." 그리고 그 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열일곱 살 린의 눈물. 그 기억들이 붉은 문양에 잠식되며 하나둘 지워지고 있었다. 노예로서의 굴욕과 공포가 정복의 각인에 녹아들어, 주인을 향한 충성이라는 새로운 감각으로 재편되는 중이었다.
"스… 스승님… 아…."
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신음에 가까웠다. 그녀의 질에서 애액이 흘러내려 허벅지를 적시고 있었다. 첫 번째 각인 때와 마찬가지로, 각인이 진행되는 동안 고통은 쾌락으로 변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였다. 영혼의 재구성. 그녀의 충성심이 향하는 방향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찢긴 전투복을 완전히 벗겨냈다. 이제 린은 완전히 나체로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고, 등 전체에 걸쳐 붉은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그 문양은 그녀의 엉덩이 골을 따라 내려가 허벅지 안쪽까지 번져 있었고, 목덜미에서 시작된 굵은 선은 척추를 따라 꼬리뼈까지 이어져 있었다. 문양의 빛은 피부 표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마치 살 속 깊이 뿌리내린 나무뿌리처럼 근육과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돌아눕지 마. 그 자세 그대로."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벌렸다. 이미 질 입구는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붉게 충혈된 음순 사이로 핑크빛 질 내벽이 들여다보였다. 점액이 실처럼 늘어져 허벅지 안쪽까지 번들거렸다. 그녀의 음핵은 완두콩 크기로 부풀어 올라 있었고, 살짝만 스쳐도 전신이 경련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엄지로 그 돌기를 빙글 문질렀다. 끈적하고 미끄러운 감촉이 손가락에 감겼다.
"으읏…!"
린의 허리가 튕겨 올랐다. 그녀의 질구가 경련하듯 오므라들었다가 벌어지며, 투명한 애액이 한 방울 뚝 떨어져 시트에 얼룩을 남겼다.
내 성기는 이미 완전히 발기되어 있었다. 나는 린의 질 입구에 귀두를 갖다 댔다. 뜨거운 체액의 감촉과 함께, 그녀의 질구가 경련하듯 내 귀두를 조여왔다. 질 입구의 근육이 마치 따로 움직이는 생물처럼 귀두를 감싸고 빨아들였다.
"받아들여."
나는 한 번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아아앗!"
린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고통과 쾌락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성기가 그녀의 질벽을 비집고 들어가자, 목덜미의 각인이 격렬하게 빛났다. 붉은 빛이 그녀의 척추 전체로 퍼져나가며, 마치 내 성기를 질 안쪽으로 더 깊이 끌어당기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질 내부는 뜨거웠다. 단순히 체온이 높은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내장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는 열이 내 성기를 휘감았다. 질벽의 주름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듯 내 귀두와 음경 전체를 마사지했고, 벽면을 덮고 있는 점막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며 내 표면을 핥았다. 애액의 점성은 묽은 꿀처럼 끈적였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찰싹거리는 소리와 함께 질 내부의 온도가 더 뜨거워졌다.
나는 천천히 골반을 움직였다. 성기를 빼내려 하자 질벽이 흡입하듯 조여왔다. 질 내벽의 주름이 내 귀두 테두리에 걸리며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다시 밀어 넣자 그 압력이 아까보다 두 배로 강해졌다. 각인이 그녀의 질 내부 근육까지 변형시키고 있었다. 질벽이 내 성기 모양에 맞춰 재구성되는 듯한 섬뜩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주…."
린의 입에서 무언가 흘러나왔다. 나는 허리를 깊숙이 밀어 넣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대고 물었다. 이빨로 피부를 살짝 누르자, 그녀의 질 내부가 격렬하게 수축했다.
"뭐라고?"
"주인… 주인…."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그녀의 질벽이 격렬하게 수축했다. 마치 오르가즘에 도달한 것처럼 질 전체가 내 성기를 짓누르며, 동시에 그녀의 자궁 경부가 열리듯 귀두를 빨아들였다. 자궁 입구의 단단한 고리가 내 귀두를 감싸고 조여왔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회귀 전,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날 밤. 지하 감옥의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던 린의 목소리.
'죄송합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나는 허리를 멈췄다.
지금 내 성기는 그녀의 질 깊숙이 박혀 있었고, 그녀의 입에서는 '주인'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완벽한 복종.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린의 등에서 솟아오른 땀이 내 하복부에 닿아 식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체취, 정액과 애액이 뒤섞인 냄새, 그리고 목덜미에 새겨진 붉은 문양의 희미한 빛.
나는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망설임을 떨쳐내듯, 더 깊고 빠르게. 내 성기가 그녀의 질을 피스톤처럼 오가며, 찰진 물소리와 함께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질벽이 내 성기를 쥐어짜며, 빠져나갈 때마다 진공이 생겨 귀두를 다시 빨아들였다.
"내 검이다."
나는 목덜미의 문양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입술에 닿은 문양이 뜨겁게 맥박 쳤다.
"이제 너는 황실의 개가 아니라, 내 검이다."
그 말과 함께 나는 사정했다. 정액이 그녀의 자궁 깊숙이 쏟아져 들어가는 감각. 뜨거운 액체가 자궁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내부를 가득 채웠다. 동시에 목덜미의 문양이 최후의 섬광을 뿜어내며, 은색 노예 각인의 잔재를 완전히 불태워 없앴다. 푸른 연기가 마지막으로 피어오르며 사라졌다.
린의 전신이 대경련을 일으켰다. 그녀의 질벽이 내 성기를 쥐어짜듯 조여왔고, 그 압력에 나머지 정액까지 전부 빨려 들어갔다. 질 내부가 파도처럼 연속적으로 수축하며 내 성기를 마사지했고, 그녀의 자궁 경부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키듯 열렸다 닫혔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공포의 눈물이 아니었다. 눈물이 베개에 스며들며 남긴 자국은, 회귀 전 감옥에서 흘렸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습기였다.
나는 천천히 성기를 빼냈다. 질구에서 정액과 애액이 뒤섞인 액체가 흘러내렸다. 끈적한 흰 액체가 허벅지 안쪽을 타고 시트 위로 떨어졌다. 린은 여전히 엎드린 자세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의 목덜미에는 이제 오직 정복의 각인만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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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뒤, 나는 별장의 응접실로 돌아왔다.
레이그 공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적의가 없었다. 대신 깊은 피로감과, 어딘가 안도하는 듯한 복잡한 표정이 뒤섞여 있었다.
"린은?"
"잠들었습니다. 노예 각인은 완전히 제거했고, 이제 그녀를 구속하는 것은 오직 나와의 계약뿐입니다."
"계약…."
레이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것 또한 구속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적어도 황실의 개보다는 나을 겁니다."
나는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벽난로의 불빛이 응접실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말씀드리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린의 기억 속에서 확인한 바로는, 베르문트 가문만이 황실의 인질로 잡힌 게 아닙니다."
레이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방금 전 각인 과정에서 린의 기억 파편이 내게 흘러들어왔을 때, 그녀가 목격한 것들이 떠올랐다.
"린이 황실에 불려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대기실에서 크로이츠 가문의 재무관을 보았습니다. 손에 쥔 서류에는 '황실 직속 채권'이라는 문구가 선명했죠. 아르투스 크로이츠가 서명한 서류였습니다. 가문의 재정 전체를 황실에 담보로 잡힌 겁니다."
레이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라스카 가문은 더 심각합니다. 그들의 정보망을 관리하는 세 자매가 황실의 '손님'으로 황도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린은 그녀들이 황실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봤어요. 겉으로는 귀빈이었지만, 주변에 배치된 근위대의 숫자가 지나쳤죠."
"그리고 에스테반…."
레이그가 낮게 읊조렸다.
"에스테반 가문은 외교적 고립입니다. 황제가 직접 그들의 대사관을 폐쇄하고, 모든 외교 서신을 황실의 검열 아래 두었습니다. 린이 황실 문서고에서 우연히 본 서류에 그 내용이…."
나는 말을 멈추고 레이그의 반응을 살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린이 그런 걸 알 리가…."
"노예 각인을 새길 때, 황실은 린을 문서고 근처에서 대기시켰습니다. 그녀가 우연히 본 서류들. 평소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파편들이, 각인이 제거되는 과정에서 내게 전달됐습니다."
레이그는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래서… 4대 공작가 모두가…."
"황제 셀리나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공작. 내가 베르문트 가문을 황실로부터 해방시키겠습니다. 그 대가로, 당신의 충성 서약을 받겠습니다."
"충성 서약…."
"단순한 말의 서약이 아닙니다. 패왕검의 기운으로 맺어지는, 절대적인 계약입니다. 당신은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배신할 수 없고, 베르문트 가문의 군사력은 오직 나의 명령에만 따르게 됩니다."
레이그는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 계약이, 내 딸에게 새긴 그 문양과 같은 것인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린의 각인은 육체와 영혼에 직접 새겨진 것이지만, 당신과의 계약은 단순한 기운의 서약입니다. 나를 배신하는 순간,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뿐."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린은… 이제 나의 검이 될 겁니다. 당신 딸을 완전히 소유하는 대신, 나는 그녀에게 자유를 주겠습니다. 황실의 개도, 베르문트 가문의 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검을 휘두르는 존재로서."
레이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깊은 고뇌와 함께, 어쩌면 감사에 가까운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좋소."
그가 무릎을 꿇었다.
"레이그 베르문트, 베르문트 공작가의 당주로서, 대검 카인 아슈발트에게 충성을 서약합니다. 이 검과 가문의 모든 군사력을, 오직 당신의 명령에 바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에 패왕검을 올렸다. 검신에서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레이그의 전신을 휘감았고, 그의 가슴 중앙에 작은 문양 하나가 새겨졌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검을 거두며 나는 말했다.
"첫 번째 명령이다. 베르문트 가문의 모든 군사력을 재정비해, 3일 후 황도로 진격할 준비를 하라. 그리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설산의 하얀 봉우리들이 석양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크로이츠 가문의 동향을 감시해라. 특히 아르투스 크로이츠의 움직임을."
그 순간, 응접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베르문트 가문의 전령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왔다.
"공작님! 급한 전갈입니다!"
전령이 내민 전갈지에는 크로이츠 가문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어 펼쳤다.
그리고 읽었다.
세라의 필체였다. 평소에는 깔끔하고 계산적인 그녀의 글씨가, 지금은 마치 떨리는 손으로 쓴 듯 삐뚤어져 있었다.
'스승님, 아르투스 오라버니가 당신을 '처형 대상'으로 황실에 정식 청원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팔아넘기려 합니다.'
전갈지의 끝부분은 번져 있었다. 잉크가 물에 젖은 흔적. 나는 손끝으로 그 번진 부분을 쓸었다. 종이가 울퉁불퉁하게 일어나 있었고,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잉크가 손가락에 묻어났다. 코끝에 스민 것은 철분이 섞인 잉크 냄새와, 그보다 더 짙은 소금기. 눈물이 떨어져 번진 자국이었다. 그 촉감은 차갑고 끈적였으며, 세라가 이 편지를 쓰며 얼마나 오래 손을 떨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번진 잉크 너머로, 회귀 전의 기억이 스쳤다.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직전, 감옥 창살 너머로 들렸던 세라의 목소리. "스승님, 제발… 오라버니를 막아주세요…." 그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르투스가 그녀를 팔아넘기려 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얼마나 절박하게 나에게 매달렸는지를.
나는 전갈지를 접어 품에 넣었다. 레이그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예상보다 빨리 움직이는군."
나는 검을 차며 대답했다.
"크로이츠 가문의 도련님이, 내 목을 황실에 팔아넘기려 하고 있어. 거래 조건으로 내 제자를 얹어서."
벽난로의 장작이 타다 만 채로 무너졌다. 불꽃이 마지막으로 치솟았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린이 누워 있는 침실 쪽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이제 그녀의 목덜미에는 오직 나의 각인만이 빛나고 있었다. 황실의 개목걸이는 사라졌고, 그 대가로 그녀는 내 검이 되었다.
하지만 그 검이 진정으로 나를 위해 휘둘러질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응접실을 나서며 레이그에게 말했다.
"준비가 끝나면 황도로 와라.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말이지."
그리고 별장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설산의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하늘에는 벌써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고, 그 별빛 아래 황도로 이어지는 길은 어둡고 길었다.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베르문트 가문의 마부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마차에 오르며 마지막으로 별장을 돌아보았다. 2층 창문 너머로, 희미한 붉은 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린의 각인이었다.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도까지는 이틀 거리. 그 이틀 동안, 나는 세라를 팔아넘기려는 아르투스 크로이츠의 목을 칠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내가 회귀 전에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번 생에서는, 모든 게 달라져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