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무전기에서 하린의 목소리가 끊기고 방공호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미령은 내 왼팔을 붙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그녀의 검지가 내 손목 안쪽 맥박을 짚듯 눌렀다.

"클린존과 협상해야 한다. 지금 우리 전력으로 정화위원회와 맞붙는 건 자살이다."

유나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그녀의 맨발이 콘크리트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바늘처럼 날카로웠다.

"하린은 거짓말쟁이다."

유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았다. 그녀가 이런 톤을 쓸 때는 반드시 누군가 죽었다.

"7구역 연구실 책임자가 누군지 알아? 바로 하린의 아버지야. 내 가족을 생체 시료로 만든 인간."

미령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동작에는 살의가 실려 있었다. 왼팔 변이 부위에서 푸른 빛이 새어나왔다.

"네 가족 타령은 집어치워. 지금은 생존이 먼저다."

"클린존 놈들은 생존을 핑계로 우리 가족을 갈아 마셨어."

유나가 치마 주름 사이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낡은 라이터. 그녀의 엄지가 라이터 톱니바퀴를 긁었다. 불꽃이 튀었다.

"내가 왜 재 구역에서 안 죽고 버텼는지 알아? 이 순간을 위해서야."

유나가 라이터를 바닥에 던졌다. 불꽃이 미령 쪽으로 굴러갔다. 그녀의 등 뒤에는 미령이 쌓아둔 군수 물자 상자들이 있었다.

"네 무기고에는 방사능 탄두가 있지? 불 붙으면 이 방공호 통째로 날아가."

미령이 움직였다. 내 팔을 놓고 유나를 향해 돌진했다. 변이된 왼팔이 푸른 잔상을 그렸다. 유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입꼬리만 올린 웃음이었다.

나는 두 걸음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왼손으로 미령의 변이된 팔목을 잡아챘다. 방사능이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왔다. 뜨겁다. 오른손은 유나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기도가 손가락 사이에서 꿈틀거렸다.

미령의 방사능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유나의 목을 조였다. 두 여자의 숨소리가 겹쳐졌다. 하나는 분노로, 하나는 질식으로.

"둘 다 멈춰."

내 목소리는 예상보다 낮았다. 방사능 흡수가 시작되면 항상 그랬다. 몸이 달아오르고 뇌가 백열로 타들어갔다. 혈관 속을 방사능이 흐를 때마다 성적 충동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밖의 적보다 안의 분열이 먼저면 죽는다."

미령의 방사능을 완전히 빨아들였다. 그녀의 변이 부위가 잠시 수축했다. 그녀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그녀의 팔을 놓지 않았다.

유나의 목에서도 손을 풀지 않았다. 대신 엄지로 그녀의 경동맥을 눌렀다. 피가 뛰는 감각이 엄지에 전해졌다.

"너희 둘 다 내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똑똑히 가르쳐주마."

나는 두 사람을 동시에 바닥으로 밀쳤다.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 꿇리는 소리가 두 번 났다.

내 바지 앞섶을 풀었다. 성기는 이미 발기되어 있었다. 방사능 흡수 후의 금단 증상이었다. 귀두에서 투명한 선점액이 흘러내렸다.

유나와 미령의 얼굴이 내 성기 앞에 나란히 놓였다. 유나의 호흡이 거칠었다. 목이 졸린 탓에 숨소리에 쌕쌕거리는 잡음이 섞였다. 미령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직 살의가 남아 있었다.

"유나. 먼저."

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분노인지 굴욕인지 구분되지 않는 눈물이었다. 그녀가 입을 벌렸다. 혀가 먼저 나왔다. 귀두 밑부분을 혀끝으로 쓸었다. 따뜻했다. 그녀의 침이 내 성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더 깊게."

유나가 목을 앞으로 밀었다. 귀두가 그녀의 입천장에 닿았다. 그녀의 혀가 요도를 핥았다. 요도 점막이 따끔거리며 수축했고, 그 자극이 회음부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녀의 뒷머리를 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머리카락이 빠져나갔다. 더 밀어 넣었다. 성기가 그녀의 목구멍 깊숙이 들어갔다. 유나의 목이 경련했다. 구역질 반사가 그녀의 식도를 수축시켰고, 그 수축이 내 귀두를 조였다.

"미령. 너도."

미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나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그 눈빛은 복종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이 상황을 전투로 보고 있었다.

"거부하면 유나만 살리고 너는 버린다."

미령의 턱 근육이 움직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혀가 나왔다. 그녀의 혀는 유나보다 길고 두꺼웠다. 변이의 영향이었다. 미령의 혀가 내 고환을 핥았다. 그 감촉에 허벅지 안쪽 근육이 저절로 수축했다. 그녀의 혀가 음낭 전체를 천천히 쓸었다. 침이 고환 주름 사이로 스며들었다.

유나가 내 성기를 더 깊이 삼키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미령은 내 고환과 항문 사이 회음부를 혀로 압박했다. 두 여자의 혀 움직임이 교차했다. 유나의 입이 내 귀두를 빨아들이는 동안 미령의 혀는 내 항문 둘레를 핥았다. 항문 괄약근이 그녀의 혀끝에 반응해 열렸다 닫혔다.

"경쟁해라."

내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금단 증상이 뇌를 잠식하고 있었다.

"더 잘하는 쪽에게 더 많은 방사능을 정화해준다."

그 말에 유나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가 내 성기를 입에서 뺐다. 침이 그녀의 턱과 내 성기 사이에 실처럼 이어졌다. 그녀가 자세를 바꿨다. 무릎을 더 넓게 벌리고 상체를 숙였다. 그녀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속옷은 입지 않았다. 그녀의 음부가 드러났다. 음모는 방사능 탓에 군데군데 빠져 있었지만, 음핵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음핵을 문지르면서 다시 내 성기를 입에 넣었다. 유나는 내 성기를 빨면서도 허리를 낮추고 엉덩이를 들었다. 마치 암컷이 교미를 위해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그녀의 질 입구가 벌어지며 안쪽의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미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도 경쟁을 받아들였다는 신호였다. 그녀가 내 뒤로 돌아갔다. 그녀의 혀가 내 항문을 파고들었다. 길고 두꺼운 혀가 괄약근을 뚫고 직장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직장 점막이 그녀의 혀에 반응했다. 내 몸 안에서 방사능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안정화되면서 열이 발생했고, 그 열이 장벽을 통해 전립선을 가열했다. 전립선이 부풀어 오르며 요도를 압박했고, 그 압박이 귀두 끝까지 전달되었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한기와 열기가 동시에 척수를 강타했다.

유나가 내 성기를 목구멍까지 삼켰다. 그녀의 목이 내 성기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음핵을 더 빠르게 문질렀다. 그녀의 질에서 애액이 흘러내려 콘크리트 바닥에 얼룩을 만들었다.

미령의 혀가 내 직장 안에서 회전했다. 직장 벽을 혀로 긁는 감각에 전립선이 압박되었다. 나는 신음했다. 그 신음은 금단 증상 해소의 쾌락이기도 했고, 동시에 두 여자를 완전히 소유했다는 지배감이기도 했다.

"더."

내가 명령했다.

유나가 입을 뗐다. 그녀의 얼굴이 침과 선점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일어나 내 앞에 섰다. 그녀의 키가 작아 내 가슴께에 겨우 닿았다. 그녀가 자신의 윗도리를 벗었다. 방사능 탓에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이었다. 하지만 유두만은 짙은 갈색으로 단단하게 서 있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유두가 내 손바닥에 닿았다. 딱딱했다.

"주인님."

유나가 처음으로 그 말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굴욕과 흥분이 뒤섞인 떨림이었다.

"내 가족 시료를 지켜주신다면, 나는 주인님의 개가 되겠습니다."

내 손이 그녀의 유두를 비볐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 신음을 듣자 내 성기가 더 단단해졌다. 귀두가 보라색으로 변할 정도로 충혈되었다.

미령이 내 뒤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침이 내 항문에서 흘러내려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그녀가 내 등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그녀의 가슴이 내 등에 닿았다. 변이된 왼쪽 유두는 보통보다 두 배는 컸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분비물이 내 등에 묻었다. 방사능이 섞인 분비물이었다. 내 피부가 그것을 빨아들였다.

"나는 네 개가 아니다."

미령이 내 귀에 속삭였다. 그녀의 숨결이 뜨거웠다.

"하지만 네 아래에 있는 건 인정한다. 지금은."

그녀가 내 엉덩이 사이로 자신의 음부를 밀어 넣었다. 그녀의 음모가 내 엉덩이 살에 닿았다. 그녀도 흥분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액이 내 허벅지 뒤로 흘러내렸다. 그녀가 내 엉덩이를 붙잡고 자신의 음핵을 내 꼬리뼈 쪽으로 문질렀다.

나는 유나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가벼운 몸이 내 팔에 안겼다. 그녀의 다리가 내 허리를 감았다. 그녀의 질 입구가 내 귀두에 닿았다. 뜨거웠다. 그녀의 질은 이미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천천히 삽입했다.

유나의 질 안쪽은 좁았다. 방사능 탓에 질벽이 얇아져 있었지만, 그만큼 내 성기를 더 꽉 조였다. 귀두가 질벽을 밀어내며 들어갈 때마다 유나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질이 내 성기를 삼켰다. 질벽의 주름 하나하나가 내 성기 표면을 긁었다.

"주인님... 깊어요..."

유나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손톱이 내 등에 박혔다. 나는 그녀를 더 깊이 찔렀다. 성기가 자궁 입구에 닿았다. 그녀의 자궁이 수축했다. 그 수축이 귀두를 빨아들였다.

미령이 내 뒤에서 자신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질을 자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질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끈적한 소리였다. 그녀가 내 등에 이마를 기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나도... 나도 필요하다..."

미령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의 방사능 흡수 후 금단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그녀의 방사능을 흡수했으니, 이제 그녀도 체액을 원할 때였다.

나는 유나를 박으면서 오른손을 뒤로 뻗어 미령의 음부를 더듬었다. 손가락이 그녀의 음핵을 찾았다. 변이된 왼쪽 음핵은 크기가 엄지손가락만 했다. 내 손가락이 그것을 꼬집자 미령의 온몸이 경련했다.

"아...!"

그녀의 신음이 방공호에 울렸다.

나는 유나의 질을 박으면서 미령의 음핵을 비볐다. 두 여자의 신음이 겹쳐졌다. 유나의 질이 수축할 때마다 내 성기가 압박되었고, 미령의 음핵이 경련할 때마다 내 손가락이 애액으로 젖었다.

방사능 분해가 절정에 달했다. 내 체내에서 방사성 입자들이 중성자와 양성자를 재배열하며 안정 원소로 붕괴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동공이 확장되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시야에 노이즈가 끼었다. 금단 증상이 해소되는 쾌락과 동시에 사정 감각이 고환에서부터 올라왔다.

"받아라."

나는 유나의 질 깊숙이 사정했다. 정액이 자궁 입구에 분사될 때마다 유나의 질이 경련했다. 그녀의 질벽이 내 정액을 짜내듯 수축했다. 그녀의 눈이 뒤집혔다. 오르가즘에 도달한 것이다. 그녀의 목에서 말도 안 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미령의 음핵이 내 손가락 안에서 폭발하듯 수축했다. 그녀도 절정에 달했다. 그녀의 애액이 내 손바닥 전체를 적셨다. 그녀의 변이된 왼쪽 유두에서 분비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방사능이 섞인 분비물이 내 등에 쏟아졌고, 내 피부가 즉시 흡수했다.

나는 유나를 안은 채로 미령을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두 여자가 내 가슴 앞에서 나란히 무릎 꿇었다. 둘 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유나의 질에서는 내 정액이 흘러내렸고, 미령의 허벅지에는 자신의 애액이 번들거렸다.

"똑똑히 봐둬라."

나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쥐었다. 그들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너희 둘 다 내 것이다."

유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내 허벅지에 볼을 비비며 몸을 웅크렸다. 완전한 복종의 몸짓이었다.

미령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반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반항은 이제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은 방공호 천장 너머, 클린존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 꿇은 채로도 허리를 곧게 세우고 있었다.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듯이. 그녀의 척추는 굽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허벅지 안쪽 근육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고, 변이된 음핵은 수축을 멈추지 않았다. 오르가즘의 여운이 그녀의 질벽을 간헐적으로 조였고, 그때마다 애액 한 방울이 더 흘러내렸다. 복종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몸이 계속해서 나를 원하고 있었다.

"밖의 적보다 안의 분열이 먼저면 우리 모두 죽는다."

내가 말했다.

"그러니 분열은 내가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유나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이마가 콘크리트 바닥에 닿았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미령이 한참을 망설였다. 그녀의 턱 근육이 움직였다. 그녀의 자존심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침내 그녀도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이마는 바닥에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척추는 굽어졌다.

"일단은 네 말을 듣는다."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아직 가시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좋다."

나는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놓았다. 내 손가락 사이로 그들의 머리카락이 빠져나갔다.

"유나. 클린존 7구역의 지도를 그려라. 네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통로, 연구실 배치, 경비 초소, 방사능 차폐문 위치까지."

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빛났다. 복수의 빛이었다.

"명령대로."

"미령. 녹 구역 동부의 모든 전력을 재편성한다. 백골단 잔당은 숙청하거나 흡수하고, 민간인 중 전투 가능한 자는 징집해라. 사흘 안에 50명의 전투 병력을 확보한다."

미령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계산이 돌아왔다.

"무기는 충분하다. 하지만 방사능 중독으로 싸울 수 있는 놈들이 많지 않다."

"그건 내가 해결한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내 셔츠를 주워 입었다. 몸은 여전히 뜨거웠고, 방사능 분해의 여운이 혈관 속을 흐르고 있었다.

"이 방공호를 '구역 1'로 개칭한다. 오늘부터 여기가 내 영토다."

미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다리가 약간 휘청거렸다. 방사능 흡수와 오르가즘의 후유증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군인의 자세로 섰다.

"알겠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말해라."

"클린존과의 전쟁에서 이기면, 하린은 내가 죽인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는 거미를 향했던 것과 같은 복수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린의 아버지가 7구역 연구실을 운영했다면, 미령의 변이 또한 그곳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승낙한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하린의 목숨은 우리에게 쓸모가 다한 후에나 가져라. 그 전에는 정보원으로 쓴다."

미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차가운 표정이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녀가 돌아서서 무기고로 향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이미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기고 문 앞에서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그녀의 시선이 유나를 스쳤다. 그 짧은 눈길에는 여전히 경계가 서려 있었다. 유나도 고개를 들어 미령을 똑바로 마주 봤다. 둘 사이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령이 먼저 시선을 거두고 무기고 문을 열었다.

유나가 바닥에 남아 내 셔츠 자락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주인님... 정말 제 가족 시료를 지켜주실 거죠?"

"약속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의 손은 아직도 차가웠다.

"하지만 유나, 네 가족 시료가 있는 냉동고는 앞으로 내가 직접 관리한다. 그게 조건이다."

유나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인님이 지켜주신다면..."

그녀가 내 손을 놓고 지도를 그리러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혼자 남은 방공호 중앙에 섰다. 콘크리트 바닥에는 아직 유나의 애액과 미령의 분비물이 얼룩져 있었다. 공기 중에는 성적 분비물 새와 방사능 잔여물 새가 뒤섞여 있었다. 화약 새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거미의 시체에서 빼앗은 방사귀 통제 프로토콜 문셔를 펼쳤다. 종이는 방사능에 그을려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하지만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주파수 47.3Hz. 변이체 신경계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킴. 지속 시간 180초. 사용 후 변이체의 방사능 분출량이 300% 증가하므로 재접근 금지.'

47.3Hz. 이 주파수를 발생시킬 장비만 있다면 방사귀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180초 안에 방사능을 흡수하거나 도망칠 수 있다.

석호라면 이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노인은 클린존에서 의사로 일했고, 방사능 측정 장비도 직접 제작한 전력이 있었다.

나는 문셔를 접어 품에 넣었다. 방사능 분해의 열기가 아직 뇌를 떠나지 않았다. 전략을 세우는 와중에돋 손끝이 저릿거렸다. 유나와 미령의 체액만으로는 부족했다. 뇌 신경계를 타고 도는 금단 증상의 잔재가 내 사고를 잠식하고 있었고, 그 잔재는 또 다른 육수를 원하고 있었다.

그때 방공호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석호였다. 그는 내가 아까 거미와 싸울 때 벗어던진 붕대를 손에 고 있었다. 그 붕대는 내 피가 묻어 있었다. 방사능을 흡수한 후 내 체액에는 정화 효가 생긴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석호는 붕대를 들고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읽을 수 있었다.

"...방사능 수치가 0이다. 이건 불가능한 수치다."

그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 눈빛은 공포와 경외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태한. 자네 피에서 방사능이 완전히 사라졌어. 마치 핵전쟁 이전의 인간처럼."

석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20년 동안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이건..."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대신 붕대를 가슴에 품고 뒤로 물러섰다.

"석호."

내가 불렀다.

"그 붕대는 내놔라."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 노인의 눈에는 뭔가에 홀린 듯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안 돼. 이건 연구해야 해. 이걸 분서하면... 클린존도 해낼 수 없었던 걸 내가..."

그가 돌아서서 방공호 밖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지 않았다. 대신 그의 등 뒤로 말을 던졌다.

"석호.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

석호의 발걸음이 잠시 멈다.

"하린에게 가는 거지? 클린존에 이 정보를 팔 생각이냐?"

석호가 천천히 돌아다. 그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태한. 자네는 이해 못 해. 이건 기적이야. 나 같은 늙은 의사에게는... 이런 발검이 마지막 기회란 말이야."

"등 돌리면 적이다."

내가 말했다.

석호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내가 거미를 죽이는 걸 히 보았다. 미령과 유나를 동시에 굴복시키는 것도 보았다.

"선택해라. 나와 함께 이 폐허를 재건할 것인지, 클린존에 정보를 팔고 내 적이 될 것인지."

석호의 손이 떨렸다. 붕대가 그의 손에서 떨어질 듯 흔들렸다.

"태한... 나는..."

그가 한 걸음을 내디다.

방공호 밖을 향한 걸음이었다.

어둠이 그의 등을 삼켰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석호가 클린존으로 가면 하린은 내 능력의 진짜 위력을 알게 될 것이다. 방사능을 무력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제거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그게 공포가 될지, 더 큰 탐욕을 부를지.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기회였다.

나는 방공호 중앙에 서서 어둠이 석호를 삼키는 것을 지켜다. 내 손에는 방사귀 통제 프로토콜이, 내 발 아래에는 두 마리 암컷의 체액이, 내 피 속에서는 방사능이 완전히 사라진 혈액이 흐르고 있었다. 손끝은 여전히 저릿거렸고, 뇌 속에서는 금단 증상이 속삭였다. 더 많은 체액, 더 강한 육수를.

폐허에서도 살결은 뜨겁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미령의 무기고로 향했다.

석호의 발걸음 소리가 방공호 밖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뒤돌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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