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마지막 설계도

종로 뒷골목의 낡은 기와집. 이준호의 왼팔은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 끝부터 어깨까지, 투명한 공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는 매일 목격했다. 시간의 균열이 자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게 며칠인가."

중얼거림도 아닌 독백. 방의 한구석 화로 옆에 이준호가 서 있었다. 손에는 마지막 설계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인쇄기술, 철도 노선도, 신식 포의 개선안. 신비한 목소리가 제시한 마지막 다섯 장 중 마지막 것이었다. 이것을 전하면 조선의 운명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고, 그 목소리는 말했다.

*"한 번만 더.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준호는 설계도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종이는 손에서 무거웠다. 아니, 무거운 것은 종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책임이었다.

박영효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당신의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까, 아니면 지배입니까?"*

한강 나루터 전투가 끝난 지 사흘. 이준호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박영효가 본 것들을 들었다. 시신 더미 위에서 어머니를 찾는 아이의 울음소리. 화약 냄새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얼굴. 그들은 모두 조선 사람이었다. 적이 아니라 민간인이었다.

이준호가 만든 신식 포가 정확히 몇 명을 죽였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영효처럼.

밤하늘 같은 침묵 속에서, 이준호는 설계도를 다시 들었다. 화로 쪽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멈췄다.

*태울 것인가. 말 것인가.*

손가락이 떨렸다. 투명한 왼팔이 공기 중에서 반짝였다. 설계도의 가장자리가 그의 손 위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이 종이를 불에 넣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조선의 미래는 더 이상 자신의 손에 있지 않다. 김옥균도, 박영효도, 서광범도 그 기술에 의존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할 수 있을까?

이준호는 설계도를 화염 위로 가져갔다. 종이의 가장자리가 불빛에 닿았다. 한 순간, 그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검게 그을렸다. 말려 올라갔다. 불길이 종이를 집어삼켰다. 가장자리부터 중심으로 향하는 불. 그 속에서 글씨들이 사라졌다. 인쇄기술의 도면, 철도 노선의 계산식, 신식 포의 설계 원리. 모든 것이 검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마지막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회색 재가 화로 위에서 소용돌이쳤다. 바람이 불었는지 재의 일부가 창밖으로 흩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소멸.

이준호는 그것을 지켜봤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구원자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듯한 해방감. 동시에 두려움도 있었다. 그들이 정말 할 수 있을까? 자신 없이?

화로의 불이 잔잔해졌다.

***

해가 중천에 떴을 때, 그들이 모였다.

서촌 집결지—경복궁에서 2리 떨어진 낡은 창고. 김옥균의 부하들이 경비를 섰고, 박영효는 이미 와 있었다. 서광범도 왔다. 왼팔에 붕대를 감은 채로. 그의 옷깃에는 한강 나루터 전투의 화약 자국이 검게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옥균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각지고 단단했다. 전투의 승리에 취한 표정이 아니라, 뭔가 더 큰 것을 갈망하는 표정이었다.

"설계도를 가져왔다고 했습니까?"

김옥균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이준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투명한 왼팔이 공기 중에서 반짝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서광범의 눈이 커졌다.

"설계도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박영효가 눈을 감았다. 서광범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김옥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준호를 바라봤다.

"대신 당신들에게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명확했다. "지금까지 저는 스스로를 구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의 기술을 가진 자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그 기술로 당신들을 도와 조선을 구할 수 있다고."

"그런데?"

김옥균이 물었다. 그의 손이 검의 자루에 가까워졌다.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이준호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의 투명한 팔이 공중에서 서광범의 상처 난 옷깃을 가리켰다.

"한강 나루터에서 300명이 죽었습니다. 제 설계도로 만든 신식 포에."

"전쟁입니다. 죽음은 불가피합니다."

서광범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들은 적이 아닙니다. 조선 사람입니다. 민간인입니다."

이준호의 말이 방 안에 떨어졌다. "저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름을 모릅니다. 하지만 박영효 님은 그들을 봤습니다."

모두의 눈이 박영효에게 향했다. 박영효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전투 후 시신 더미 위에 섰습니다." 박영효의 목소리는 떨렸다. "어머니를 찾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박영효가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그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었다. 죽음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낸 사람의 눈물.

"그 아이가 울부짖을 때..." 박영효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저는 우리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적이 아닌 사람들을. 어머니를 찾는 아이를 남기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박영효가 눈을 들었다. 그 눈빛이 변했다. 슬픔에서 결연함으로. 죽음을 직시했을 때 생겨나는 그 특별한 빛.

"하지만 저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박영효의 목소리가 다시 단단해졌다. "죽음을 기억하면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제 기술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대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이준호가 계속했다. "하지만 그 길 위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김옥균이 앞으로 나왔다. "포기하자는 말입니까? 이 기회를 버리자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준호가 김옥균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을 때, 이준호의 입술이 움직였다.

"이 기술은 조선의 것입니다. 더 이상 저의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쓸지는 당신들이 결정하십시오."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의미는 간단합니다."

이준호가 화로 옆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타다 남은 재와 검게 그을린 종이 조각이 있었다.

"모든 설계도를 태웠습니다."

서광범이 비명처럼 외쳤다. "무엇을!"

"당신들이 스스로 만들 것입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저는 원리만 보여줬습니다. 증기기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신식 포가 왜 강한지, 통신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만드는 것은 당신들의 손입니다. 당신들의 지혜입니다."

"지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서광범이 소리쳤다. "당신 없이!"

"아닙니다."

박영효가 일어섰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죽음을 기억하면서도 계속 나아가기로 결심한 사람의 눈물이었다. 무거운 책임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눈물.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박영효가 이준호 옆에 섰다. "당신이 보여준 것은 가능성입니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의 노력, 우리의 창의, 우리의 선택입니다."

"정확합니다."

이준호가 박영효를 바라봤다. "당신들이 한강 나루터의 죽음들을 기억하면서도 계속 나아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제 기술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책임입니다. 당신들의 양심입니다."

"책임?"

김옥균이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야심으로 빛나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네. 책임입니다."

이준호가 화로의 불을 바라봤다. 설계도의 재가 하얀 가루처럼 날리고 있었다.

"저는 당신들에게 길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어떻게 걸을지는 당신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 걸을지, 누구를 해칠지, 언제 멈출지. 모든 것이 당신들의 결정입니다."

김옥균이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반복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준호가 그를 바라봤다. 김옥균의 얼굴에서 야심과 책임이 싸우고 있었다.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 싶은 욕망과, 그 과정에서 죽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무게.

"당신들이 스스로 배워야 합니다.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고, 또 다시 시도하면서. 그 과정에서 당신들은 깨달을 것입니다. 기술이 무엇인지, 책임이 무엇인지."

방 안의 공기가 떨렸다.

아니, 공기가 아니었다. 시간 자체가 떨리고 있었다.

이준호가 느꼈다. 자신 주변의 공간이 파문처럼 흔들리는 것을. 벽이 일렁이고,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박영효가 이준호의 투명한 팔을 집어 들었다.

"당신이..."

박영효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시간이 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에서 투명함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마지막 설계도를 거부했으니까요. 더 이상 역사를 바꾸려 하지 않으니까요."

***

신비한 목소리가 나타났다. 방 안 어디에도 없으면서 모든 곳에 있는 목소리.

*"당신이 마침내 깨달았군요."*

이준호가 눈을 감았다.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제 고통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종의 위로였다.

*"진정한 변화는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지식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자발적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을까요?"

이준호가 물었다.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을 바라봤다.

그들은 여전히 서 있었다.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뭔가 깨달아가는 표정으로.

"할 수 있습니다."

신비한 목소리가 말했다.

*"당신이 보여준 원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자신들의 책임 아래에서 실행할 때, 역사는 그 변화를 수용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개혁입니다."*

이준호의 가슴에서 뭔가 풀렸다. 무거운 짐이 내려가는 느낌. 구원자여야 한다는 강박, 역사를 바꿔야 한다는 의무감, 실패했을 때의 죄책감. 모든 것이 한 점으로 모여 스르르 흩어졌다.

"그렇다면 저는 떠나야 합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신비한 목소리가 말한 '시간의 법칙'이 무엇인지를. 자발적 선택만이 역사를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남아 있으면 그들의 선택은 더 이상 자발적이지 않다는 것.

"그렇습니다."

신비한 목소리가 확인했다. *"당신의 소멸이 그들의 시작입니다. 당신이 온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2024년으로."*

이준호는 자신의 팔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투명함이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손가락, 손목, 팔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육체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모든 책임을 내려놓는 순간의 평온함.

박영효가 이준호의 투명해진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당신의 용기에 감사합니다."

박영효의 목소리는 명확했다. 눈물은 이미 닦아내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방식으로, 우리의 책임 아래에서."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미소지었다. 그의 입술이 투명해지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명확했다.

김옥균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단단했지만, 눈은 다르게 빛나고 있었다. 야심의 빛이 아니라, 책임의 빛. 죽음을 기억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사람의 눈빛.

"당신을 잃을 수 없습니다."

김옥균이 말했다. "우리와 함께하십시오. 설계도가 없더라도, 당신의 지혜는 필요합니다."

"아닙니다."

이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남으면 당신들은 다시 제게 의존하게 됩니다. 제 조언을 구하고, 제 승인을 기다리고, 제 지식에 기댈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러면..."

"당신들이 스스로 실패하고,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선택할 때, 그것이 진정한 조선의 변화입니다."

이준호의 목이 이제 완전히 투명했다. 머리만 남아 있었다.

박영효의 손이 점점 투명한 것을 잡고 있었다. 마치 유령을 안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박영효는 놓지 않았다.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박영효가 말했다.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을. 그리고 당신이 우리에게 물려준 책임을."

방 밖에서 포성음이 울렸다. 먼 곳에서, 여전히 계속되는 전투의 소리.

이준호가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비명, 외침, 기도. 그리고 그 모든 것 아래에 있는, 살아가려는 필사적인 의지.

"조선을 믿으십시오."

신비한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당신들이 할 수 있습니다."*

***

시간의 균열이 극도로 커졌다.

방의 벽이 흔들렸다. 기와가 떨어졌다. 바닥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그들은 이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해져가는 그의 모습을.

"당신은?"

이준호가 박영효에게 물었다. 이제 그의 입도 투명해지고 있었다. 말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계속합니다."

박영효가 대답했다. "당신이 보여준 길을 따라, 하지만 우리의 방식으로. 한강 나루터의 죽음들을 기억하면서."

"김옥균은?"

김옥균이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어졌다. 이제 야심만 남은 남자가 책임의 무게를 느끼는 시간.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싸웁니다."

김옥균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더 이상 당신의 기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손과 뇌를 믿고, 우리의 책임 아래에서."

"서광범은?"

서광범이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어졌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파괴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려는 사람의 목소리.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뭔가를 만들겠습니다. 단순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준호가 미소지었다.

그의 몸이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박영효가 잡고 있는 손도 투명했고, 그 손도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준호가 속삭였다.

시간의 균열이 마지막으로 열렸다. 방 전체가 하얀 빛으로 채워졌다. 박영효의 손에서 이준호의 투명한 손이 미끄러져 나갔다.

"당신을 잃을 수 없습니다!"

박영효가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준호는 사라지고 있었다. 하얀 빛 속으로.

마지막 순간, 이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이 아니라 감정의 형태로. 감사, 미안함, 그리고 신뢰. 그리고 그 목소리 속에는 분명한 확인이 있었다.

*"2024년으로 돌아갑니다."*

***

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이 남아 있었다. 빈 공간을 바라보면서.

"그는 돌아갔을까?"

서광범이 물었다.

"네."

박영효가 말했다. "자신이 온 곳으로. 2024년으로."

박영효의 손이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마치 그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투명한 손을.

종로 밖에서 여전히 포성음이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제 다르게 들렸다. 파괴의 소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소리처럼.

김옥균이 검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괴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김옥균이 중얼거렸다. 이준호의 말을 되풀이하면서. 하지만 이제 그것은 의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박영효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눈물이 없었다. 대신 결연한 빛이 있었다. 책임의 빛. 죽음을 기억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사람의 눈빛.

화로의 불이 여전히 타고 있었다. 설계도의 재가 흰 가루처럼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재 위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조선의 사람들의 손에서.

그들의 선택에서.

그들의 책임 아래에서.

종로의 거리로 나온 박영효는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도 하얀 빛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의 균열이 천천히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박영효가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감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였다.

그 바로 다음 순간, 한강 나루터 쪽에서 엄청난 포성이 울렸다. 보수 세력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박영효가 달려 나갔다. 김옥균과 서광범을 찾기 위해. 그들이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설계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손과 지혜로만.

하지만 그들이 경복궁의 한 방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예상 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명성황후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검게 타버린 종이의 조각이었다. 타다 남은 것들 중 하나. 하지만 그 위에는 여전히 희미하게 글씨가 남아 있었다. 설계도의 일부.

명성황후는 그 종이를 오래전부터 손에 들고 있었다. 며칠 전 경복궁의 비밀 통로를 통해 이준호의 거처를 감시하던 부하가 가져온 것이었다. 이준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었던 그녀. 그 호기심이 이 조각을 건져냈다. 타다 남은 종이 조각.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명성황후가 물었다. 그녀의 눈은 차갑고 명확했다. 그리고 그 눈 뒤에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박영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준호의 설계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명성황후가 그것을 발견했다.

명성황후가 종이를 높이 들었다. 그 조각은 빛에 투명하게 비쳤다. 희미하지만 여전히 읽을 수 있는 글씨들.

"이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철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것을 우리의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당신들의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저입니다."

박영효의 손이 검의 자루에 갔다. 하지만 그것을 멈췄다. 왜냐하면 그는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시작이라는 것을.

설계도 없이, 오직 원리만 가지고 시작되는 조선의 미래가.

그리고 그 미래를 놓고 벌어질 진정한 싸움이, 지금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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