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한양 외곽의 훈련소 건물은 어둠 속에서 목재 냄새를 풍겼다. 이준호는 설계도 다섯 장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종이가 자꾸만 떨렸다. 손가락이 아니라 종이 자체가. 처음엔 자신의 손이 흔들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설계도의 모서리에서 희미한 빛이 맥박처럼 일렁거렸다.

이준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신비한 목소리의 경고가 떠올랐다. '한 번만.' 그 말의 무게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자신이 여기서 설계도를 건네는 순간, 역사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게 된다. 조선의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 모든 책임도 함께 넘어간다.

그런데 정말 그것뿐일까? 설계도를 내주면 자신은 무엇이 되는가. 관찰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깊이 빠져들 것일까.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조선에서 개혁파와 함께라면.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김옥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뒤로 다섯 명이 서 있었다. 모두 낡은 옷을 입은 장인들이었다. 대장장이, 목수, 그리고 두 명의 젊은 기술자.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이분이 그 특별한 기술자입니다."

김옥균의 소개는 간단했다. 이준호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손 위의 설계도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건물의 촛불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이준호는 종이를 펼쳐 놓았다.

첫 번째 설계도는 증기기관이었다. 복잡한 기어와 실린더, 연소실의 단면도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준호가 한 글자씩 설명을 시작했을 때, 대장장이가 앞으로 나왔다.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의 팔뚝에는 수십 년의 단련이 남아 있었다.

"이 부분이... 열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손가락이 설계도의 실린더를 가리켰다. 이준호는 실린더 안의 피스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했다. 증기의 압력, 왕복 운동,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회전 운동으로 변환되는지. 대장장이의 눈이 커졌다.

"그럼... 이렇게 되면..."

중얼거리던 대장장이가 멈추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수백 명의 일을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는 뜻이군요."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이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정확했다. 그 단순한 문장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조선의 기술자가 현대의 기술을 이해했다. 완벽하게.

대장장이는 더 이상 설계도를 보지 않고 이준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그렇다면 이것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까?"

이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이 예상 밖이었다.

김옥균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겠습니까?"

목수가 손을 들었다.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였다.

"도면을 보면, 나무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속 부품들은?"

이준호가 대답했다.

"대장장이가 만들 수 있습니다. 정확한 치수만 지키면."

대장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를 더 가까이 들고 각 부분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다른 기술자들도 모여들었다. 한 명이 통신 체계 설계도를 집어 들었다. 전선, 배터리, 신호 장치. 그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어떻게 신호를 보냅니까?"

이준호는 전자기 원리를 설명했다. 전류의 흐름, 자기장의 변화, 그리고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도 신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 한 명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럼 우리가 조정의 명령을 즉시 받을 수 있다는 뜻인가?"

"네. 거리 제한이 거의 없습니다."

김옥균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이 나오자 이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일본을 이기다니. 설계도는 기술의 원리일 뿐이었다.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쓸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준호는 입을 열려다 닫았다.

한 기술자가 세 번째 설계도를 펼쳤다. 포병 전술도였다. 포의 배치, 사격 각도, 그리고 신호 체계와의 연동 방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건... 전투 배치도군요."

젊은 기술자가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포의 위치를 따라 움직였다.

"이렇게 배치하면, 한 명의 지휘관이 여러 포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 체계로 연결되면, 그렇습니다."

대장장이가 포병 전술도 위로 몸을 굽혔다.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이 스쳤다.

"이건... 조선의 전술을 완전히 바꾼다는 뜻이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다른 기술자들도 침묵했다. 설계도의 의미가 이제 명확해졌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전쟁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박영효가 모서리에 서 있었다. 이준호는 그제야 그를 발견했다. 박영효는 처음부터 설계도를 보지 않고 있었다. 대신 이준호를 보고 있었다.

이준호가 다가갔다.

"설계도를 검토하지 않으십니까?"

박영효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미 충분히 봤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신의 설계도는 길을 보여줍니다."

박영효의 목소리는 낮았다. 다른 기술자들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은 우리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이준호가 대답하려는 순간, 건물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였다. 여러 마리. 그리고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

모든 사람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경복궁 근위대입니까?"

한 기술자가 속삭였다. 김옥균이 즉시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보수 세력의 척후대입니다. 우리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준호의 손이 다시 떨렸다. 이번엔 설계도 때문이 아니었다. 신비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희미하게. 마치 멀리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한 번만.'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확실히 이준호의 손 자체였다. 그리고 설계도의 모서리가 다시 빛났다. 더 밝게.

박영효가 옆에서 속삭였다.

"당신은 관찰자라고 생각했습니까?"

이준호가 돌아봤다.

"지금 당신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 속에 있습니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들어와! 개혁파의 밀실이 여기 있다고!"

경복궁 근위대의 목소리였다.

김옥균이 설계도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나갈 길을 준비하십시오."

그는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당신의 설계도는 이제 우리의 것입니다."

건물의 문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밖에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준호는 설계도를 놓지 않고 있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신비한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희미하게.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그 순간, 대장장이가 앞으로 나섰다. 설계도를 감싸 안듯이 자신의 몸으로 가렸다. 이준호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조선의 장인이 미래의 기술을 자신의 가슴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이 길을 우리가 걷겠습니다."

대장장이의 목소리는 낮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 말 속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느꼈다. 조선의 기술자가 자신의 운명을 선택했다는 것을.

건물의 문이 마침내 열렸다.

경복궁 근위대의 검이 먼저 들어왔다. 목재로 만든 문틀이 산산조각 났다. 무장한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열 명은 넘어 보였다. 아니, 열다섯 명. 이준호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설계도였다.

근위대 대장이 검을 들고 훈련소 내부로 들어섰다.

"모두 항복하라!"

그의 목소리가 훈련소를 가득 채웠다. 검의 끝이 이준호를 향했다. 그 순간 김옥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조선의 관리들입니다. 왕의 명으로 훈련 중이었을 뿐입니다."

거짓이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거짓. 이준호는 그것을 알았다. 왕의 명령 따위는 없었다.

근위대 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관리들이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서 밤샘 훈련을 하나? 그것도 설계도를 들고?"

그는 검을 들어 설계도를 가리켰다.

"그것이 뭐하는 건가?"

이준호의 손이 또 떨렸다. 설계도가 빛났다. 더 밝게. 신비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더 또렷했다. 거의 절명에 가까운 음성으로.

'당신의 선택이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박영효가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었다. 항복의 제스처였다. 다른 기술자들도 따라했다. 오직 대장장이만 설계도를 감싸 안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종이가 뭔지 모르시겠지만, 이건 조선의 미래입니다."

대장장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떨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을 지키겠습니다."

근위대 대장이 검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대장장이가 몸을 날렸다. 설계도를 가슴에 안은 채로. 동시에 김옥균이 움직였다. 빠르게. 너무나 빠르게.

"이 분은 내 친구입니다!"

김옥균의 목소리가 훈련소를 가득 채웠다. 그의 손이 대장장이의 팔을 잡았다. 동시에 창문이 부서졌다. 누군가 밖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창문 너머로 밤거리가 보였다. 지붕이 보였다. 도망칠 길이 있었다.

"잡아라!"

근위대 대장의 외침이 울렸다. 절반의 병사들이 창문을 향해 달렸다. 나머지는 김옥균을 에워쌌다. 비명과 발걸음 소리, 검의 울음소리, 깨진 목재의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박영효가 천천히 말했다.

"김옥균 선생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기묘한 권위가 있었다. 근위대 병사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박영효입니다. 고종 폐하의 측근이죠. 당신들이 나를 해치면, 그것은 왕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거짓이었다. 또 다른 거짓. 이준호는 그것을 명확히 알았다. 박영효가 고종의 측근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는 개혁파였다. 하지만 근위대 대장은 그 거짓을 믿었다. 조선의 관리들도 거짓을 말한다. 자신처럼. 역사를 조작한다. 자신처럼.

근위대 대장이 눈을 찡그렸다.

"박영효라고?"

"그렇습니다."

박영효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근위대 대장의 검 끝이 그의 가슴을 향했다.

"우리를 놓아주십시오. 그러면 이 일은 없었던 것이 됩니다."

근위대 대장의 얼굴이 흔들렸다. 그의 명령이 주는 권위와 박영효의 이름이 주는 권위 사이에서.

그 순간, 이준호가 움직였다. 자신이 움직인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설계도를 들고 있던 손이 내려갔다. 손가락이 설계도의 모서리를 집었다. 종이가 찢어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비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직입니다.'

이준호의 손이 멈추었다. 설계도는 그대로였다. 찢어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 순간, 설계도에서 손을 떼는 것을 느꼈다. 빛이 꺼졌다. 신비한 목소리가 멀어졌다. 마치 자신이 어떤 회로에서 분리되는 것처럼. 통제권이 사라졌다.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손가락 끝에서 빠져나갔다.

근위대 대장이 검을 내려놨다.

"박영효라는 게 사실인지 확인하겠습니다. 모두 밖으로!"

병사들이 움직였다. 훈련소 밖으로. 몇몇은 창문을 통해 도망친 기술자들을 쫓아갔다. 이준호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멀어지는 소리. 점점 멀어지는 소리.

김옥균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나가야 합니다."

"설계도는?"

이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장장이가 이미 들고 나갔습니다. 저 어딘가로. 우리는 모릅니다."

김옥균이 이준호를 끌어냈다. 훈련소의 뒷문을 통해. 밖은 밤이었다. 여전히 밤. 달이 보였다.

뒤를 따라 박영효가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가 있었다.

"우리는 살았습니다."

"하지만 설계도는?"

이준호가 물었다.

"조선의 장인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박영효가 멈춰 섰다. 이준호도 멈춰 섰다. 한양의 어두운 골목 속에서.

"당신이 설계도를 주었을 때, 당신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박영효의 눈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조선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입니다."

이준호가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박영효가 먼저 말했다.

"당신은 왕의 명령이라고 말했지만, 그런 명령은 없었습니다. 당신은 고종의 측근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개혁파입니다. 우리도 거짓을 말합니다. 당신처럼."

박영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우리의 거짓은 조선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거짓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박영효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 속에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죽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 말은 이준호의 온몸을 타고 내려갔다. 거부감이 먼저 밀려왔다. 자신은 여기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부감. 그 다음 인정이 왔다. 자신이 이미 이 역사 속에 깊이 관여했다는 인정. 그리고 두려움이 뒤따랐다.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 자신이 조선의 역사 속에 영원히 묶여 있다는 두려움. 가슴이 철렁했다.

김옥균이 다시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한양의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뒤로는 경복궁 근위대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아니, 점점 멀어지는 소리. 이준호는 분간할 수 없었다.

달빛 아래서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리고 설계도의 모서리가 다시 빛났다. 밝게. 마치 신호를 보내듯이.

신비한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당신은 선택을 했습니다. 설계도를 내주기로. 그 순간 당신은 무언가를 잃었습니다.'

이준호는 그 손실을 느꼈다. 설계도를 손에서 놓는 순간, 그 빛이 꺼졌을 때.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빠져나갔다. 조선을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이 사라졌다. 그 모든 것이 조선의 장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손실일까. 이준호는 걸으면서 생각했다. 대장장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설계도를 가슴에 안고 말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길을 우리가 걷겠습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조선의 기술자 자신이 내린 선택이었다.

한양의 밤거리에서 이준호는 달렸다. 김옥균의 손에 이끌려. 자신이 무엇을 놓고 있는지 알면서.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는지 느끼면서.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누군가로. 조선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누군가로.

경복궁 근위대의 말발굽 소리가 멀어졌다. 아니면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준호는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오직 달렸다. 한양의 밤 속으로.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