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눈이 떠졌을 때, 그는 48층 계단 위에 누워있었다.
정신이 돌아오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아니, 정신이 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정신들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여러 개의 정신이. 시온은 자신의 손을 들었다—아니, 누군가의 손을 들었다. 그 손은 검을 휘두르는 손이었고, 동시에 독약을 섞는 손이었으며, 또한 타인의 목을 조르는 손이었다.
누가 이 손의 주인인가.
시온이 일어서려 하자 몸이 저항했다. 근육들이 제각각 다른 기억을 따르고 있었다. 왼쪽 팔은 45층의 창술가처럼 움직이고 싶었고, 오른쪽 팔은 47층의 암살자처럼 움직이고 싶었다. 그는 두 팔을 제어하는 데 온전한 주의력을 써야 했다.
"이상하지 않나."
시온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성대를 통해 나오는 것인가. 43층의 사냥꾼은 낮고 굵은 목소리였고, 46층의 여인은 고음이었다. 시온의 목소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중간에. 그 사이사이에.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아니, 올라가야 했다. 50층은 위에 있었다. 항상 위에 있었다. 모든 것이 위에 있었다.
시온은 41층부터 49층까지 거쳐온 매 층마다의 얼굴들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얼굴이 아니라 기억들이 떴다. 누군가의 검술 기억. 누군가의 독살 기억. 누군가의 절망 기억. 그들이 모두 시온 안에 있었고, 시온은 그들 모두였다.
**41층. 복도.**
시온은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시온을 보자마자 도망쳤다. 시온이 손가락을 들었다. 손가락이 금빛으로 빛났다. 그것이 무엇인지 시온은 알고 있었다—아니, 누군가가 알고 있었다. 골든핑거. 기억을 빼앗는 능력.
시온이 남자의 목을 잡았을 때, 그 남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웃었다.
"이미 많이 빼앗겼군요."
남자의 기억이 시온의 손가락 끝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어떤 사냥꾼이 이미 이 남자에게서 기억을 빼앗아간 모양이었다. 남은 것은 편린뿐이었다. 시온은 그 편린을 빨아들였다. 검술 기억. 손가락 움직임. 근육 기억.
그 기억이 시온의 몸에 녹아들 때, 시온은 순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잠깐 잊었다.
**42층. 어둠.**
여기는 어두웠다. 시온은 누군가를 기다렸다. 누구를 기다리는가. 자신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기에 있었다. 그 누군가는 시온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아니, 시온이 빼앗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싸웠다. 손가락이 상대방의 가슴을 향했고,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흘러나왔다. 상대방의 기억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공주에 관한 기억이었다.
공주.
그 단어가 시온의 뇌에 박혔다. 왜 공주인가. 왜 자꾸만 공주가 떠오르는가.
**43층. 복도.**
여인은 시온을 보는 순간 알아챘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시온이 손가락을 들었을 때, 여인은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시온을 바라봤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시온의 손가락이 여인의 가슴에 닿는 순간, 기억이 폭발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파도였다. 슬픔의 파도.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 시온의 신체를 관통했다.
시온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 슬픔은 시온의 슬픔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시온 안에 녹아들 때, 시온은 자신이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했다.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시온의 손이 떨렸다. 근육이 거부했다. 손가락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시온의 몸이 여인을 해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하지만 시온은 이미 그녀의 기억을 빼앗았다.
**44층. 감옥.**
남자는 저항했다. 그는 시온의 손을 거부했고, 거부했고, 끝내 무릎을 꿇었다. 그의 기억은 무거웠다. 죄책감. 속죄.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를 지키려는 절박한 의지.
시온이 그 의지를 빼앗아갈 때,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마치 자신의 영혼이 뜯겨나가는 것처럼.
**45층. 검술관.**
창술가는 우아했다. 그의 움직임은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운 검술도 골든핑거 앞에서는 무력했다.
시온이 손가락을 들었을 때, 창술가의 눈이 변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웃었다.
"마지막 한 번만... 춤을 춰도 될까?"
창술가가 물었다.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술가는 자신의 검을 들었고, 마지막 춤을 춤을 추었다. 그의 기억이 시온에게 흘러들어올 때까지.
그 기억 속에는 영광이 있었다. 과거의 영광. 그리고 현재의 추락. 그 둘이 얽혀서 시온의 몸을 흔들었다.
**46층. 암살자의 방.**
암살자는 침묵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시온을 바라봤다. 마치 시온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하지만 그 말은 기억이 되어 시온에게 흘러들어갔다.
그 기억은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지키려는 절박한 의지. 암살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그것에 바쳤다. 그리고 그것도 실패했다.
시온이 그 기억을 빼앗아갈 때, 암살자의 입에서 마지막 말이 새어나왔다.
"...미안해..."
**47층. 전사의 방.**
전사는 울었다. 시온의 손가락이 그의 가슴에 닿는 순간,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기억은 절망이었다. 자신이 지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절망. 그것은 시온의 신체를 관통했다.
시온의 목에서 신음이 나왔다. 그것이 누구의 신음인지, 시온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반복. 계속되는 반복. 그 과정에서 시온이 누구인지는 점점 더 모호해졌다.
**48층의 계단.**
시온은 거울을 만났다. 거울 속의 얼굴은 시온의 얼굴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눈은 여러 개였다. 한 눈은 공포로 떨렸고, 다른 눈은 광기로 타올랐으며, 또 다른 눈은 절망으로 흐릿했다. 시온이 손을 들었을 때, 거울 속의 손은 따라오지 않았다.
누가 거울 속에 있는가.
시온의 오염도는 50%를 넘었다. 뇌가 마치 여러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처리하려는 듯 아팠다. 시온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손가락이 골든색으로 빛났다. 무엇이 손가락을 빛나게 하는가.
누가 이 손을 움직이는가.
**49층 복도.**
길었다. 시온은 누군가를 만났다. 일곱 번째인지, 열 번째인지, 백 번째인지 세는 것을 포기했다. 시간이 더 이상 선형적이지 않았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사라졌다.
"넌 누구야?"
시온이 상대방에게 물었다.
상대방이 웃었다. "그건 내가 물어야 할 질문 아닌가?"
시온은 그 웃음이 자신의 웃음처럼 들렸다. 아니, 자신의 웃음이 아니라 시온이 빼앗은 누군가의 웃음이.
그들은 싸웠다. 상대방의 몸이 시온의 몸과 다른 리듬으로 움직였다. 시온의 팔이 상대방의 팔을 밀어냈고, 손가락이 금빛으로 타올랐다. 상대방의 기억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또 다른 기억. 또 다른 정체성. 또 다른 삶의 조각. 그것이 시온 안에 녹아들 때, 시온은 순간 자신이 여러 명의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이 반복되었다. 계속.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48층 계단에 시온이 누워있었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정신이 한 번에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러 정체성이 동시에 의식을 차지하려다 충돌했고, 그 결과 시온은 쓰러졌다.
지금 시온은 일어나고 있었다.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는 명확했다. 위에 무언가가 있다. 50층. 그것이 중요하다. 왜 중요한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시온에게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준 것 같다. 그것이 누군가의 기억인지, 아니면 시온 자신의 기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온이 계단을 올라가려 할 때, 손이 시온의 팔을 잡았다.
"시온."
그 목소리는 명확했다. 모든 혼란 속에서도 그 목소리는 시온의 뇌에 직접 박혔다.
시온이 돌아봤다. 거기에는 에리스가 서 있었다. 시온의 기억에 있는 에리스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눈동자가 더 깊었다. 그녀의 얼굴을 볼 때, 시온의 뇌는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에리스이면서, 동시에 에리스가 아니었다. 마치 두 개의 얼굴이 겹쳐있는 것처럼.
"당신 안에 있는 내 기억들이 깨어나고 있어."
에리스가 말했다. 그녀의 손이 시온의 가슴을 터치했다.
"당신이 내 것들을 빼앗았거든."
시온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공주?"
에리스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직 아니야."
그 말의 의미를 시온이 이해하려 하는 순간, 시온의 뇌가 비틀렸다. 에리스의 형상이 왜곡되었다. 그녀의 얼굴이 흐릿해졌다가 선명해졌다가를 반복했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얼굴이 시온의 시야 위에서 겹쳐 떠오르는 것처럼. 한쪽은 에리스. 다른 한쪽은 누군가 다른 사람. 그 누군가는 웃고 있었다. 슬픈 웃음으로.
공주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슬펐다. 에리스는 공주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공주는 이미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누군가는 여전히 시온 안에 있었다. 시온의 기억 속에. 시온이 빼앗은 그 기억 속에.
에리스의 손이 시온의 손을 놓았을 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온의 인식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시온이 그녀를 붙잡으려 했을 때, 손에 잡힌 것은 공기뿐이었다.
"에리스!"
시온이 외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
카인이었다.
하지만 카인은 시온이 지난 20층에서 만난 카인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완전히 미쳐있었다. 두 눈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계속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의 몸이 자신의 의지를 따르지 않는 듯했다. 한쪽 팔은 경직되어 있었고, 다른 쪽 팔은 경련하고 있었다. 이것은 시온의 오염과는 달랐다. 카인은 이미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당신도... 곧 나처럼 될 거야."
카인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목소리가 겹쳐있었다.
"모두가... 그래. 모두가..."
카인이 시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도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시온의 손가락 빛과 달랐다. 그것은 더 어둡고, 더 흐릿하고, 더 절망적이었다. 마치 빛이 아니라 부패하는 것처럼.
"기억을 빼앗고... 빼앗고... 빼앗고..."
카인이 외쳤다.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야? 언제까지?"
시온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카인의 손이 시온의 어깨를 스쳤다. 그 순간, 시온은 카인의 정신 붕괴를 느낄 뻔했다. 그것은 마치 깊은 구덩이 같았다. 한 번 빨려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어둠. 시온은 그 어둠 속에서 카인이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같은 편으로 내려오라고. 함께 무너지자고.
시온이 반격을 준비했다. 손가락이 금빛으로 더 밝게 빛났다. 카인의 기억을 빼앗을 준비였다. 얼마나 많은 기억이 카인 안에 남아있는지, 그것을 모두 빼앗으면 시온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
하지만 시온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가 시온을 멈추게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시온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강했다. 모든 혼란 속에서도 그것은 명확한 명령을 내렸다.
지켜야 한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
카인이 아니다. 카인을 지키는 게 아니다. 카인은 이미 잃어버린 자다. 카인은 이미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아직 있다.
시온의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시온의 손을 강제로 붙잡고 있는 것처럼. 시온이 손가락을 펼치려 해도, 손가락은 오직 방어의 형태만 유지했다.
시온의 목에서 목소리가 나오려 했다. 카인을 공격하라는 명령. 하지만 그 목소리는 시온의 목을 통과하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시온의 성대를 막고 있는 것처럼.
시온이 몸을 날렸다. 카인을 공격하는 대신, 시온은 자신을 방어했다. 카인의 손이 시온의 팔을 할퀴었다. 통증이 흐른다. 하지만 시온은 카인의 기억을 빼앗지 않았다.
"왜?"
카인이 외쳤다. "왜 빼앗지 않아?"
"미안해."
시온이 답했다. 그 답이 누구의 답인지, 시온 자신도 모를 정도였다.
싸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카인의 몸이 자신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그의 팔이 갑자기 힘을 잃었고, 다리가 무너졌다. 결국 카인은 쓰러졌다. 자신의 정신 붕괴로 인해.
"...나도 누군가를 지켜야 했는데..."
카인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 순간, 루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48층과 49층 사이의 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떤 장치가 들려있었다. 작은 상자 같은 것. 그 상자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오염도 50% 도달. 격리 프로토콜 발동."
루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시온, 당신을 격리실로 옮기겠습니다.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습니다."
시온이 일어섰다. 그의 손이 떨렸다. 아니, 여러 손이 떨렸다. 여러 정체성이 동시에 루아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안 돼."
시온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위에... 위에 뭔가가 있어. 진실이 있어."
루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시온의 상태를 재진단하는 듯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치 시온의 뇌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50층 이상 진입 권한이 필요합니다."
루아가 말했다. "금지구간은 일반 사냥꾼에게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타워 관리국의 특별 허가가 있어야만 진입할 수 있습니다."
시온이 입을 열었다. 반박할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루아가 계속 말했다.
"다행히도... 당신은 이미 그 허가를 받았습니다."
시온의 뇌가 멈추었다.
받았다? 언제? 누구에게서?
루아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의 눈이 무언가를 질문하듯 시온을 바라봤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나요?"
루아의 목소리에 의외의 감정이 실려있었다. 마치 시온의 기억 상실을 확인하려는 듯.
"누가 당신을 보냈는지, 왜 당신이 50층에 가야 하는지... 정말 모르나요?"
그 질문이 시온의 뇌를 흔들었다. 루아의 목소리가 시온 안의 여러 정체성을 각각 건드렸다. 마치 그들을 하나씩 깨우는 것처럼.
시온의 뇌에서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루아를 믿으려 했고, 누군가는 루아를 의심했으며, 누군가는 루아에게 순종하려 했다. 그 목소리들이 시온 안에서 충돌했다.
"아, 맞다."
루아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있었다. "당신은 기억을 빼앗는 자니까. 당신 자신의 기억도 빼앗겼을 테지."
그 순간, 시온의 기억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기억보다 더 오래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시온이 타워에 진입하기도 전의 시간에서 왔다.
시온은 어딘가에 있었다. 밝은 곳. 왕궁 같은 곳. 그리고 누군가가 시온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약속해. 그곳까지 가."
누군가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리고 슬펐다.
"그곳까지 가서... 진실을 봐. 그리고 돌아와. 반드시."
그 누군가는 시온에게 무언가를 더 말하려 했다. 마치 중요한 것을 전달하려는 듯. 하지만 그 순간, 기억이 끊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그 기억의 끝을 강제로 자르는 것처럼.
시온의 눈이 뜨였다.
루아가 여전히 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호기심? 아니면 두려움?
"50층으로 가세요."
루아가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진실은 거기에 있을 겁니다."
시온이 계단을 올라갔다. 모든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는 명확했다.
위에 뭔가가 있다.
그것을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의 기억이든, 그것을 빼앗아야 한다.
50층의 문이 보이고 있었다. 그 문은 거대했고, 아름다웠고, 절대로 닫혀있어서는 안 되는 문처럼 보였다.
시온이 손을 뻗었을 때, 손가락이 다시 한 번 금빛으로 빛났다.
하지만 이번엔 그 빛이 다르게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시온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시온의 손을 통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손가락의 끝에서 금빛이 더욱 짙어졌고, 시온의 목에는 목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와 누군가 다른 목소리가 동시에.
마치 시온이 이미 그것을 하기로 약속한 것처럼.
문이 열렸다.
그 순간, 50층 내부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기억의 편린들. 그것들은 시온의 뇌를 스쳤고, 시온은 순간 누군가의 실루엣을 봤다. 라헬. 그녀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슬펐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목소리. 하지만 너무나 친숙한 목소리.
"드디어... 돌아왔구나."
시온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 목소리는 누구인가. 그 목소리는 시온 자신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시온이 빼앗은 누군가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시온이 문을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