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3층 입구의 관문

3층 입구의 관문은 시온의 손가락 끝에서 금빛으로 반응했다. 루아가 말한 대로였다. 기억을 빼앗을 때마다 올라가는 오염도가 진입 권한을 결정한다는 것. 28%면 충분했다.

문이 열리자 낮은 천장의 복도가 나타났다. 10~15층 구간. 루아가 부르던 '수련구간'을 벗어나 본격적인 사냥의 영역이었다. 이곳에선 초심 사냥꾼들이 더 강한 편린을 노렸다.

시온은 첫 번째 표적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갈색 머리의 남자가 시온을 보는 순간, 눈빛이 변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감지할 때의 본능적인 움츠러듦. 시온은 그 신호를 읽는 법을 이미 배웠다.

"당신... 오염도가 높네요."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망치려는 발걸음이 나왔다. 시온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물러섰다.

"기억을 팔고 싶습니다. 거래로."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멈췄다. 거래라는 단어가 약자의 희망처럼 들렸을 것이다.

"뭘 원하시는데요?"

"검술 기억. 당신이 가진 가장 강한 것."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것은 자신의 생존 기술이었다. 타워에서 검술 기억이 없으면 더 높은 층에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오염도 28%의 사냥꾼 앞에서는.

"좋아요. 대신... 뭘 주실 건데요?"

시온은 손을 내밀었다.

순간, 남자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근육 기억부터 시작됐다. 손목의 회전, 발의 위치, 호흡의 타이밍. 그것들이 시온의 신체 곳곳에 새겨졌다. 마치 몸 전체가 깨어나는 것처럼. 검을 휘둔 적 없던 팔이 갑자기 수십 년의 훈련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온의 뇌에서 무언가가 빨려 나갔다.

검붉은 색의 기억. 웃음소리. 공주의 웃음이었다.

시온은 그것을 잡으려 했다. 손가락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지만, 기억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물이 모래 위에 스며드는 것처럼. 가슴팍을 누군가 할퀴는 듯한 통증이 흘렀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통증.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동시에 다른 감각이 밀려왔다.

손가락 끝에서 검을 휘두르는 쾌감. 신체가 명령에 따르는 희열. 무언가가 완성되는 느낌. 그것은 중독이었다. 그것은 쾌락이었다. 그리고 그 쾌락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공포가 함께 솟아올랐다.

시온이 눈을 떴을 때, 남자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검술 기억이 사라진 빈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당신... 뭐하는 사람이에요?"

시온은 답하지 않았다. 이미 다음 표적을 찾고 있었다. 그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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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시온의 사냥은 체계적으로 변했다.

두 번째는 궁술 기억을 가진 여자였다. 시온이 손을 대자, 눈의 초점을 맞추는 방법이 신체로 흘러들어왔다. 화살이 날아갈 궤적을 계산하는 신경계의 미세한 진동. 그 감각이 시온을 채웠다.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정밀해졌다. 벽의 먼지까지 세어질 것 같은 선명함.

쾌감이 밀려왔다. 신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기쁨. 그것을 원하는 자신. 그런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공포.

동시에 또 다른 기억이 사라졌다.

왕궁의 복도. 누군가의 목소리. 시온은 그 기억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반 이상이 증발했다. 남은 것은 그것이 중요했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마저 희미해지고 있었다.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세 번째는 독약 기억을 가진 늙은 남자였다. 화학 물질의 냄새, 독소의 구조, 신체에 미치는 영향 계산법. 모든 것이 시온의 코와 뇌에 새겨졌다. 손가락 끝에서 독약을 구별할 수 있는 감각이 피어났다.

이번엔 통증이 있었다. 가슴팍을 누군가 할퀴는 듯한. 호흡이 가빠졌다. 뭔가 중요한 것이 반복해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을 지키려고 애쓸수록, 더 빠르게 증발했다. 마치 타워 자체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모래처럼 그것을 빨아들이는 듯이.

그런데 그 고통 속에서도 쾌감이 있었다. 새로운 능력을 얻는 희열. 신체가 강해지는 기쁨. 그것이 고통보다 컸다.

시온은 기억 추출의 속도를 높였다. 초심 사냥꾼들은 저항할 힘이 없었다. 검술, 궁술, 독약, 암살 기술, 독 해독법. 각각의 기억이 시온을 채웠다.

시온은 더 이상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지 않았다. 기억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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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에서 멈췄다.

시온의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벽 너머의 소리를 귀로 따라 움직이는 손. 공중에 그려지는 검의 자취. 독약의 냄새를 맡고 즉각 신체를 보호하는 근육. 그것들이 시온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타워의 다른 사냥꾼들이 시온을 피했다. 마치 그가 방사능이라도 흐르는 존재인 양.

오염도는 41%로 올라갔다.

루아가 나타난 것은 14층 진단실에서였다. 그 냉정한 관리자의 얼굴에는 뭔가 다른 표정이 떠 있었다. 마치 계획이 진행되는 것을 보는 듯한. 만족감 비슷한 것.

"오염도 41%군요."

루아의 손가락이 시온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금색 빛이 흐르고, 정보가 나타났다. 뇌의 회로도 같은 것.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정상 범위입니다. 계속하셔도 괜찮습니다."

루아의 시선이 시온과 맞았을 때, 무언가 반짝였다. 기대. 아니, 더 정확히는 확인. 마치 자신의 가설이 맞는지 검증하는 사람의 눈빛.

"당신은... 뭔가 특별합니다."

루아가 말했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다. 진단이었다.

"뭐가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기억 흡수 속도는 이상합니다. 보통 사냥꾼은 오염도 40%에서 벌써 혼란스러워해야 해요. 당신은 여전히 명확하네요."

루아가 손을 거두며 덧붙였다.

"당신은 예상보다 빠르네요."

그 말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시온이 정확히 루아의 계획 궤도 위에 있다는 확인.

"계속 올라가세요. 더 높은 층까지. 난 당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특별한 권한으로 시온의 진입을 제한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루아는 시온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것을 시온은 느꼈다. 하지만 자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기억을 더 모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찾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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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에서 에리스를 만났다.

그 여자는 여전히 낡은 복장을 입고 있었고, 여전히 시온을 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표정이 섞여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당신... 많이 모았네요."

에리스가 시온의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포식자를 보는 피식자처럼.

"당신의 기억 속에 내 것이 있다고 했죠?"

"네."

"이제 빼앗아갈까요?"

시온이 한 발 다가섰을 때, 에리스가 손을 들었다.

"아직이에요."

"뭐가 아직이라는 건데요?"

"당신이 충분히 모아야 해요."

에리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목소리. 그것도 매우 중요한 것을.

"지금은... 아직 반도 못 모은 거예요. 당신이 뭔가를 되찾으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해요. 더 많은 기억을 빼앗아야 하고."

에리스가 시온의 눈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확실한 것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누구였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그래야 당신이... 당신이 누구였는지..."

에리스가 말을 멈췄다. 시온이 다가가자,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 민첩함은 초심 사냥꾼의 것이 아니었다. 오염도가 높은 자의 움직임이었다.

"조심해요. 더 높은 층에는... 당신 같은 사냥꾼들이 있어요."

"당신 같은?"

"미쳐가는 사냥꾼들. 기억을 빼앗는 중독에 빠진... 사람들."

에리스가 사라졌고, 시온은 혼자 남겨졌다. 그 여자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확신만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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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층부터 20층까지는 더 강한 사냥꾼들이 포진해 있었다.

초반에는 균형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몸에 축적된 기억들이 깨어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검술 기억이 팔을 움직였다. 궁술 기억이 눈을 안내했다. 암살 기술이 발걸음을 조종했다.

시온은 더 이상 시온이 아니었다.

한 명의 검객 사냥꾼을 제압한 후, 시온은 그의 기억을 빼앗았다. 20년을 타워에서 살아온 강자의 기억. 그것이 시온을 채웠을 때, 신체는 다시 한 번 변했다.

동시에 뇌 깊숙이에서 뭔가가 비명을 질렀다.

공주의 웃음. 또 사라지고 있었다.

이번엔 시온이 저항했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그 기억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빠르게 증발했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모래처럼. 마치 타워 자체가 의도적으로 그것을 빨아들이는 듯이.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처음 느끼는 고통이었다.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정신적 상실의 고통. 뭔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것을 지키려고 애쓸수록 더 강해지는 공포.

그런데 그 고통 속에서도 쾌감이 있었다. 강자의 기억을 얻는 희열. 신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기쁨. 고통과 쾌감이 뒤섞여, 시온은 무엇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20층의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남자였다. 검은 옷을 입은, 눈이 썩어가는 듯한 남자. 오염도는 시온의 것을 훨씬 초과했을 것이었다. 그 눈동자는 제멋대로 떨렸다. 한쪽 눈은 왼쪽을 보고, 다른 한쪽은 오른쪽을 보려 했다. 마치 세 개의 눈이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려는 듯했다.

"당신도... 시작했군요."

남자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세 명의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겹쳐 있었다.

"기억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중독이 시작된 거야."

"당신은... 누구세요?"

"누구긴... 난 모르겠어요. 예전엔 카인이라고 불렸던 것 같은데..."

카인이라고 불렸던 남자가 웃었다. 그 웃음은 광기였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서도 세 겹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도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잊게 될 거야. 나처럼. 그리고 난 그 순간을 기다렸어. 같은 짐을 진 누군가."

카인이 손을 들었다. 그 동작은 느렸지만, 시온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검술 기억이 팔을 움직였고, 암살 기술이 발을 굴렸다.

하지만 카인의 공격은 그 모든 것을 뚫었다. 왜냐하면 카인도 같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오래, 더 많이.

싸움은 격렬했다. 시온은 카인을 이기려 했지만, 상대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다. 세 겹의 의식이 한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 팔이 한쪽으로 움직이는데 다리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마치 여러 명의 사냥꾼이 한 몸을 나눠 쓰는 것처럼.

시온은 한 번 카인의 손아귀에 잡혔다. 그 순간, 카인의 기억들이 흘러들어왔다. 수십 년의 타워 경험. 무수한 사냥.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의 정체. 시온은 그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팔을 비틀어 빠져나갔다.

"봤지? 당신도 이 길 끝에 날 보게 될 거야."

카인의 목소리가 뒤에서 따라왔다. 시온은 더 높은 층으로 도망쳤다.

"기억을 빼앗을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더 모르게 되지. 그게 타워의 진짜 법칙이야."

시온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도 처음엔 뭔가를 찾고 있었어. 뭔가 중요한 걸.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카인의 목소리가 왜곡되었다. 세 겹의 목소리가 더 이상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충돌했다.

"뭘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냥 계속 모으고만 있어. 기억을... 기억을..."

눈동자가 더 빠르게 떨렸다.

"당신이 날 이기려면... 당신도 미쳐야 해. 그리고 날 이기면... 당신은 내가 되는 거야. 내 기억을 모두 빼앗으니까."

카인은 사라졌다. 더 높은 층으로. 시온은 그를 쫓지 않았다. 그 광기가 자신을 집어삼킬까봐.

---

21층부터 30층까지, 시온은 체계적으로 사냥꾼들의 기억을 모았다. 루아의 조언에 따라 강한 것들만 선택했다. 각 기억마다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었다. 독약 해독법, 기억 감지, 위조 기술. 신체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명의 정체성이 섞여 있는 수집품이었다.

그리고 매번, 뭔가가 사라졌다.

공주의 웃음. 왕궁의 복도. 누군가의 목소리.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려줄 모든 것들이 타워에 빨려 들어갔다.

오염도는 54%로 올라갔다.

30층 진단실에서, 루아가 다시 나타났다.

"54%입니다. 이미 많은 사냥꾼들이 이 정도에서 포기하거나 추방됩니다."

루아의 표정이 여전히 다른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듯한.

"당신은?"

"계속합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더 높은 층도 괜찮습니다."

루아가 손을 거두며 한 가지를 더했다.

"조심하세요. 31층부터는 경쟁구간입니다. 여기서는 법칙이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데요?"

"약자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 말을 남기고 루아는 사라졌다. 그리고 시온은 느꼈다. 루아가 자신을 어디로 몰아가고 있는지.

---

30층 복도에서, 시온은 거울을 마주쳤다.

거울 속의 모습을 보며,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왕궁의 기사.

그 정체불명의 이미지가 또렷했다. 검은 갑옷을 입은 누군가. 왕궁의 복도를 거니는 발걸음. 그리고—

기억이 흐릿해졌다.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음성이 왜곡되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졌다. 그 목소리는 중요했다.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무엇을 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온의 눈동자가 제멋대로 떨렸다. 한쪽은 왼쪽을 보고, 다른 한쪽은 오른쪽을 보려 했다. 그 순간, 한쪽 팔이 자동으로 올라갔다. 시온의 명령 없이.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그 팔을 움직이는 것처럼.

그 순간, 깨달음이 왔다.

기억을 모으는 것이 정말 자신을 찾는 길인가?

카인의 말이 떠올랐다. 기억을 빼앗을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더 모르게 된다고. 그리고 그 깨달음은 공포였다. 타워의 법칙 자체가 자신을 지우려는 것 같았다.

루아는 자신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루아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 에리스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충분히 모아야 해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어떤 목적의 도구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더 높은 층이 있었다. 그곳에 자신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거울 속의 눈동자가 제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한쪽은 거울을 보고, 다른 한쪽은 거울 너머를 보려 했다.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인지, 누군가 다른 존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내가 누구였지?"

시온은 중얼거렸다.

그리고 31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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