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마지막 회귀

밤 11시 59분. 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침대 위에 누운 그의 손가락이 침대보를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손 끝까지 전해졌다. 마지막 회귀. 마지막 기회. 이 이후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절망이 손가락의 떨림으로 나타났다.

창밖은 캄캄했다. 서울 강남의 야경도, 병원 옆 편의점의 불도 모두 밤의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중환자실의 형광등만 하얀 빛을 흘리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민준 의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정확히 한 달 주기로 나타나는 뇌파 이상. 그 시점마다 누군가가 기록에서 사라지는 현상. 의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패턴. 준호는 의사의 말을 반복했다. 그렇다. 이상하다. 그것이 내 능력이다. 그것이 내 저주다.

11시 58분.

준호의 눈이 감겼다. 더 이상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마지막을 온전히 살아내기로 했다. 과거를 바꾸지 않겠다는 다짐도, 현재를 포기하겠다는 결심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그저 한 번만 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11시 59분 30초.

의식이 흔들렸다.

---

2010년 5월 15일, 오후 3시.

미술실의 창밖으로 초여름 햇빛이 쏟아졌다. 준호는 그 빛 속에 서 있었다. 다섯 번의 회귀를 통해 이 장면에 도달한 것이었다. 첫 번째, 지영을 설득했던 날. 두 번째, 솔이의 전시회를 축하했던 날. 세 번째, 재훈의 배신을 목격했던 날. 네 번째, 민준의 진실을 들었던 날. 다섯 번째, 솔이의 스케치북을 발견했던 날.

그리고 여섯 번째인 지금, 준호는 그 모든 경험을 가진 채 2010년 5월 15일에 서 있었다.

"아빠?"

솔이가 미술 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여전히 중학생이었다. 아직 엄마 아빠의 이혼을 모르고 있었다. 아직 아버지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렇지만 속으로는 반항심을 키우고 있던 그 나이였다.

준호는 딸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다섯 번의 미래가 담겨 있었다. 지영이 자신을 모르게 될 그 날. 재훈이 배신할 그 순간. 민준이 뇌파 이상을 지적할 그 밤. 솔이가 자신을 기다려온 모든 날들.

"미안해—"

준호의 입이 열렸다. 그것이 나왔어야 했던 말이었다. 다섯 번의 회귀 속에서 자신은 항상 "미안해"라고 말했다. 지영에게, 솔이에게, 자신에게. 죄책감으로 시작된 모든 말이 "미안해"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미안해가 아니라, 사랑해."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섯 번의 회귀를 통해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딸을 통제했던 것은 미움 때문이 아니라, 완벽함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자신이 과거를 바꾸려던 것은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절박함 자체가 딸을 짓눌렀다.

이제 알았다. 사랑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처를 지우는 것이 화해가 아니라는 것을. 불완전한 현재 속에서 함께 숨을 쉬는 것이 진정한 화해라는 것을.

"사랑해, 솔이. 아빠가 실수했어. 많이 했어. 하지만 그건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야."

준호가 딸을 안아올렸다. 중학생 딸의 몸이 아버지의 팔 위에서 경직되었다. 그 순간 솔이는 무언가를 느꼈다. 이 아버지는 자신이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통제하던 아버지도, 거리 두던 아버지도 아니었다.

솔이의 팔이 천천히 아버지의 등을 감싸 올렸다. 처음으로, 그녀는 아버지를 안았다. 그 작은 팔에는 거부도, 질문도 담겨 있지 않았다. 대신 있던 것은 받아들임이었다. 오래도록 기다려온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딸의 몸짓.

"완벽하려고 했기 때문이야. 그걸 아빠가 모르고 있었어. 진짜 미안해, 솔이."

준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아빠..."

솔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아버지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 그 박동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통제가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뛰는 심장.

"뭐가... 뭐가 달라진 거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아니야. 아빠가 이제야 깨달은 거야. 넌 이미 완벽했다는 걸."

준호가 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솔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약속할게. 아빠가 꼭 돌아올 거야. 이 마음을 가지고."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준호는 알고 있었다. 48시간 뒤, 준호는 2020년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이 하루는 초기화될 것이었다. 솔이는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깊은 곳에서, 딸의 손이 자신을 그려왔다. 매달 한 번씩 같은 날짜로 회귀하는 아버지를.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정말이야?"

솔이가 물었다.

"정말이야."

48시간이 흘렀다.

---

2020년 8월 23일, 오전 1시 47분.

준호의 눈이 떠졌다.

천장의 형광등이 흔들렸다. 아니, 흔들리지 않았다. 준호의 시야가 흔들렸다. 의식이 돌아오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손가락을 들었다. 그 손가락이 여전히 자신의 손가락이었다. 팔을 들었다. 그 팔이 여전히 자신의 팔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침대 옆 의자에 지영이 앉아 있었다.

준호는 한 번 더 확인했다. 지영의 얼굴, 지영의 손, 지영의 흰색 간호복.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이번엔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섯 번의 회귀를 통해 준호는 지영을 다섯 번 잃었다. 첫 번째 회귀에선 딸을 설득했다는 대가로 지영의 기억이 초기화되었다. 두 번째 회귀에선 지영을 다시 만났지만, 세 번째 회귀에선 그녀가 이 병원에서 떠났다. 네 번째 회귀에선 그녀는 단순한 간호사로만 남았다. 다섯 번째 회귀에선...

"깨어나셨네요."

지영이 눈을 떴다. 그녀는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여전히 낯섦이 있었다.

"어떠세요? 어디가 아프신 곳 있으세요?"

간호사로서의 지영. 그것이 준호가 마지막 회귀에서 얻은 것이었다. 지영의 모든 기억, 모든 애정, 모든 눈물이 사라졌다. 대신 그녀는 여기 있었다. 이 병실에,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있었다.

"괜찮습니다."

준호가 말했다. 목이 부었다. 다섯 번의 회귀를 거치면서 그의 목은 매번 울었다.

지영이 일어났다. 수액 줄을 확인하고, 혈압계를 들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전문적이고 부드러웠다. 준호는 그 손을 바라봤다. 이 손이 자신을 깨웠던 손. 이 손이 자신을 잃었던 손. 이 손이 현재에 남은 손.

"좋은 신호네요. 회복이 정말 빠르세요."

지영이 웃었다. 그 웃음에는 낯섦이 담겨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준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 밤 1시 47분이었다. 새벽은 멀었다. 그리고 정말로 새로운 하루가 올 것이었다. 이제 회귀하지 않을 새로운 하루.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의 눈이 떠졌다. 침대 옆 탁자 위의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미지의 번호. 아니, 미지는 아니었다. 심장이 그 번호를 알고 있었다.

"어? 지금 전화 받으셔도 괜찮으세요?"

지영이 물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을 눌렀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 깨어났다고 했어? 엄마한테서 들었는데."

솔이였다. 23살 솔이. 5년의 공백을 딛고 선 그 딸이었다.

"응. 지금 깨어났어."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음 주에 미술 전시회 또 열어. 와 줄래? 처음으로 아버지 없이 그린 작품들인데... 와 줄 수 있어?"

말투는 조심스러웠다. 5년간 끊겨 있던 관계를 다시 잇기 위한 딸의 조심스러운 제안이었다. 준호는 그것을 알았다. 다섯 번의 회귀 속에서 그는 이 딸의 모든 말과 표정을 배웠다.

"응. 꼭 갈게."

준호가 말했다.

"정말? 약속이야?"

"약속이야. 이번엔 꼭 지킬게."

통화가 끝났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렸다.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 형광등의 하얀 빛이 그의 눈 위에 흘렀다.

지영이 나갔다. 다음 환자를 돌보러 가는 것이었다. 준호는 그것을 알았다. 이 여자는 밤 2시가 되면 항상 복도로 나갔다. 5년간의 관찰과 다섯 번의 회귀를 통해 준호는 지영의 패턴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었다.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약한 다리가 바닥에 닿았다. 의료진의 도움 없이 처음으로 침대를 내려왔다. 거울로 향했다.

거울 속의 자신은 낯선 사람이었다. 5년을 누워만 있던 몸. 하지만 눈은 달라져 있었다. 다섯 번의 회귀와 다섯 번의 깨어남을 거친 눈. 그 눈은 더 이상 과거를 바꾸려는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대신 그 눈에는 현재가 담겨 있었다.

불완전한 현재. 지영이 자신을 모르는 현재. 솔이와의 관계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현재.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현재.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현재.

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창밖으로 나갔다.

새벽 2시의 서울. 강남의 야경이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밤의 도시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편의점의 불, 택시의 미등, 밤샘 버스의 창문. 모든 빛이 준호를 맞이했다.

준호는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그 손가락들이 모두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군."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 말은 자신을 위한 말이자, 솔이를 위한 말이자, 지영을 위한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모든 날들을 위한 말이었다.

침대로 돌아갔다. 시계를 봤다. 오전 2시 23분.

달력을 펼쳤다. 다음 주 토요일에 빨간 펜으로 원을 그렸다. 그 위에 작은 글씨로 적었다.

"솔이 전시회. 약속. 반드시."

휴대폰을 들었다. 솔이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다음 주 토요일 오후 6시, 강남 갤러리"였다. 준호는 그 아래 타이핑했다.

"아빠가 꼭 갈게. 솔이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보고 싶어. 기다려줄 수 있어?"

메시지를 전송했다.

3초 뒤, 답장이 왔다.

"응. 기다릴게. 아빠."

준호는 휴대폰을 가슴 위에 올렸다.

"응. 이번엔 정말로 간다."

새벽 4시 47분. 준호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침대 위에 앉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의 야경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밤이 물러나고 아침이 밀려오는 그 경계의 시간. 준호는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손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손가락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영이가 나갈 때부터 준호는 계속 같은 행동을 했다.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 혹시 모를 실수, 혹시 모를 대가를 확인하려는 듯이. 하지만 매번 같은 결과였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전 10시 15분. 박민준 의사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뇌파 검사 기계를 들고 있었다.

"재검사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요. 혹시 이상한 증상 없으세요? 두통이나 어지러움, 기억의 공백 같은 거요."

준호는 잠시 침묵했다. 민준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없습니다."

"정말요?"

"네. 정말입니다."

"그럼... 좋네요."

민준의 목소리에는 의외의 감정이 실려 있었다. 안도감. 아니, 그보다는 약간의 실망감인 듯했다.

검사는 30분이 걸렸다. 민준은 검사 동안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하다. 뭔가... 다르다. 어제와는 확실히 다르다.

검사가 끝나자 민준은 모니터를 들었다. 그리고 준호를 바라봤다.

"혹시... 어제 밤에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없는데요?"

"뇌파 패턴이 확연히 달라졌거든요. 어제까지의 이상 신호가 완전히 사라졌어요. 마치... 뭔가 해결된 것처럼."

민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혹시 당신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요?"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능력이라니요?"

"예를 들어... 시간을 거슬러가는 능력이라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능력이라든지. 뭔가... 초자연적인 것 말이에요."

민준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진심이 아니었다.

준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나는 그런 능력이 없어요."

"정말요?"

"네. 정말입니다."

민준은 모니터를 내렸다. 마치 수수께끼를 풀 기회를 놓친 사람처럼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뭘까요."

민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준호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알고 있었다. 민준의 의심이 언젠가 진실에 닿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후 2시 30분. 재훈의 전화가 왔다.

"준호? 근데 자네 지금 뭐 하고 있어? 좀 만날 수 있겠어?"

준호는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가능한데요."

"좋아. 그럼 오후 5시쯤 강남역 카페에서 만나자. 자네한테 좀 할 말이 있어."

통화가 끝났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렸다. 재훈. 그 이름만 들어도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회귀의 시간선에서 준호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서는 달랐다. 현재에서 재훈은 여전히 미지의 인물이었다.

오후 4시 50분. 준호는 병원을 나갔다.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앉아 병원 입구를 빠져나갔다. 야외는 생각보다 밝았다. 8월의 햇빛이 준호의 얼굴을 찰싹 내려쳤다. 5년 만에 느끼는 햇빛이었다.

택시를 탔다. 강남역 방향이었다.

차 안에서 준호는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거리는 5년 전과 달라져 있었다. 건물들도 다르고, 간판들도 다르고, 사람들도 다르다. 기술도 발전했고, 세상도 변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서울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빠름에 뒤처진 준호를 남겨두고.

강남역에서 내렸다. 카페로 가는 길. 준호는 휠체어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었다. 다리가 약했다. 하지만 걸을 수 있었다.

카페에 들어갔다. 재훈은 이미 앉아 있었다. 테이블 모서리에 양팔을 올려놓고 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자네 걸어 나왔네? 휠체어는?"

재훈이 일어나며 말했다.

"의료진이 좀 걸어보라고 했어요."

준호가 앉았다.

재훈은 커피를 마셨다. 그 동작 속에는 어색함이 가득 차 있었다. 옛날 친구를 만났을 때의 그 편안함이 없었다.

"자네... 정말 잘 깨어났네. 의사들도 놀랐대. 5년 만에 완벽하게 회복되다니."

"네."

"딸 솔이는 어때? 만났어?"

"아직 못 만났어요. 하지만 다음 주에 만날 거예요."

재훈이 커피를 내렸다.

"그거 잘 됐네. 그런데 자네...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한 거 있어? 왜 자꾸 어색한 기분이 드는 거야?"

준호는 재훈을 바라봤다. 5년의 공백 속에서 이 남자는 어떻게 변했을까. 회귀의 시간선에서 준호는 재훈의 배신을 목격했다. 하지만 현재에서는 어떻게 될까.

"재훈이."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그 동안 고마워. 내가 없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자넬 챙겨줘서 고마워."

재훈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뭐... 뭐가?"

"내가 병원에 있을 때도 문병 와줬고, 지금도 만나줬고. 고마워."

재훈은 커피잔을 들었다. 하지만 입에 가져가지 않았다.

"자네... 뭔가 이상해. 예전 같지 않아."

"그런가요?"

"응. 뭔가... 다른 사람 같아. 마치 5년 뒤에 다시 나타난 사람처럼."

그 말을 듣고 준호는 웃음을 흘렸다. 5년 뒤에 다시 나타난 사람. 그것이 정확히 자신이 아닌가.

"재훈이. 나 병원 퇴원하면 다시 일 시작할 생각이야. 천천히."

"그래? 어디 들어갈 생각이야?"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거야. 그리고..."

준호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솔이와 다시 관계를 맺을 거야. 완벽하게는 못해도, 천천히라도."

재훈은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뭔가 흔들리는 것이 있었다.

"자네... 정말 변했어."

재훈이 중얼거렸다.

"근데 말이야, 준호. 나한테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뭐요?"

"자네... 정말로 5년을 그냥 누워만 있었어?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준호는 재훈을 바라봤다. 그 질문 속에는 뭔가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왜 그렇게 물어봐요?"

"아, 그냥... 너무 이상해서. 의사들도 말하더라고. 뭔가 이상한 회복이라고. 그리고 넌..."

재훈이 말을 멈췄다.

"넌?"

"넌 뭔가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치 이미 다 겪어본 사람처럼."

준호는 재훈을 바라봤다. 회귀의 시간선에서 준호는 이 장면을 여러 번 겪었다. 하지만 매번 다른 결말이 있었다.

"재훈아."

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넌 내게 뭔가 하려던 거 있어?"

재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뭐가?"

"내가 깨어났을 때. 혹은 깨어나기 전에. 넌 뭔가 하려던 게 있었어."

침묵이 흘렀다. 카페의 배경음악이 유독 크게 들렸다. 재훈은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죄책감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자네... 어떻게 알았어?"

"알았으니까."

"근데 자네가 깨어났어. 그게 전부야. 자네가 깨어난 거.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재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준호는 이해했다. 회귀의 시간선에서 재훈이 자신에게 하려던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깊은 죄책감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래. 넌 날 깨웠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준호가 말했다.

"넌 날 깨웠고, 난 깨어났어. 이제 우린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 과거는 더 이상 바꿀 수 없으니까."

재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준호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오후 7시 15분. 준호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형광등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5년 전과 같은 형광등. 하지만 준호는 이제 그 형광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었다. 솔이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빠, 전시회 제목 결정했어. '아버지의 귀환, 그 후'. 어때?"

준호는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좋아. 정말 좋아. 솔아, 고마워. 내가 돌아올 수 있어서 고마워."

메시지를 전송하고 3초 뒤.

"응. 아빠도 고마워. 이제 천천히 시작하자. 우리."

그 메시지를 읽을 때, 준호는 처음으로 현재 속에서 완전히 편안해졌다. 회귀하지 않을 현재. 예측 불가능한 현재. 하지만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현재.

밤 11시 59분. 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자동으로 회귀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회귀 능력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회귀에서 자신이 능력을 포기했으니까.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준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2010년 미술실에서 솔이를 안고 울었을 때, 그 순간 자신은 선택했다. 완벽한 과거보다 불완전한 현재를 택하겠다고. 그 선택이 능력을 소멸시켰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감이 있었다.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팡이를 짚고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밤의 서울. 그 도시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밤새 움직이는 택시들, 편의점의 불, 누군가의 창문에 켜진 불들.

준호는 그 모든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회귀하지 않는 현재, 예측 불가능한 미래, 그리고 함께 걸어갈 사람들.

"이제 시작이다."

준호가 중얼거렸다.

"완벽하지 않은 현재 속에서, 솔이와 함께 천천히 시작하는 거다. 지영과 함께, 재훈과 함께. 모두가 함께."

그 말을 마친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지영이가 들어왔다.

"어? 뭐 하고 계세요? 밤샘은 안 하셔야죠."

지영이가 웃으며 말했다.

"네. 이제 자러 갈게요."

준호가 대답했다.

침대로 돌아갔다. 누웠다. 지영이가 담요를 덮어줬다. 그 손길은 여전히 전문적이었지만, 이제 준호는 그 손길 속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주무세요."

지영이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준호가 대답했다.

지영이가 나갔다. 그리고 준호는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5년 동안 자신이 돌리려던 시간은 과거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았다. 그것은 현재였다. 불완전한 현재. 상처가 남은 현재.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현재.

준호의 눈이 감겼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였다.

그리고 그 하루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정말로 새로운 하루였다.

솔이의 전시회까지 남은 날은 8일.

지영과의 관계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재훈의 비밀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으며, 민준의 의심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준호는 한 가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제 자신은 회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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