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오후 11시 59분 58초.

준호는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한 달 전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 똑같은 맥박이다. 목이 메인다. 이번엔 의도적인 것이다.

"이번엔... 제대로 할 거야."

혼잣말이 병실 안에 울려 퍼진다. 형광등의 미세한 윙윙거림만이 응답한다.

지난 한 달은 지옥이었다. 지영이가 사라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만 해도 정신이 멍했다.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녀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세상은 그런 사람이 존재했던 적이 없다는 듯 침묵했다. 의료진은 준호를 이상한 눈으로 봤고, 의사 민준은 신경정신과 진료를 권했다. 어머니 주영은 전화 너머에서 "그런 사람 못 봤어. 혼자 누군가를 만든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준호는 안다. 지영이는 있었다. 5년간 자신을 돌봤고, 깨어날 때 눈물을 흘렸던 그 손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 손이 이제 사라졌다는 것도.

오후 11시 59분 59초.

"미안해, 지영."

준호는 눈을 감는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신체가 무거워진다. 의식이 빨려들어간다. 침대 아래로, 병실 아래로, 지하로, 더 깊은 곳으로.

그리고.

눈을 뜬다.

창밖은 밝다. 햇빛이 투명한 유리를 통해 쏟아진다. 새소리가 들린다. 2010년 5월의 새소리다. 준호는 몸을 일으킨다. 팔이 가볍다. 다리가 움직인다. 5년의 마비가 풀렸다. 아니, 풀린 게 아니라 돌아온 것이다. 이 몸은 여전히 움직이고, 이 세상은 여전히 2010년이고, 솔이는 여전히 13살이다.

준호는 시계를 본다. 오후 3시 47분. 학원에서 나올 시간이다.

미술학원. 솔이가 몰래 다니던 그 학원.

---

강남역 근처의 작은 학원 건물. 준호는 입구 맞은편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신다. 손잡이를 꼭 쥔다. 팔이 떨린다. 한 달 동안 이 순간을 준비했다. 지영이가 사라진 대신 얻은 것은 명확한 목표였다.

이번엔 다르게 할 거야.

3시 58분. 학원 입구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준호는 일어난다. 커피를 버린다.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려 애쓴다. 마치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처럼.

그리고 보인다. 솔이.

까만 머리를 어깨에 흘린 13살 여자아이. 스케치북을 안고 있다. 옆에 친구가 있다. 둘이 웃으며 뭔가 말하고 있다. 솔이의 얼굴이 생생하다. 생생해서 준호의 숨이 얕아진다. 5년 만에 보는 딸의 살아 있는 얼굴.

"솔이."

목소리가 나온다. 자신의 목소리 같지 않다. 더 부드럽고, 더 낮고, 더 조심스럽다.

솔이가 돌아본다. 옆 친구도 함께 움직인다. 솔이의 표정이 즉시 경계로 굳어진다.

"아... 아빠?"

"응. 오래간만이야."

거짓말이다. 준호에게는 이제 막 한 달 전 일이지만, 솔이에게는 아침이 마지막이다. 아침에 학교에 가며 아버지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을 것이다. 준호는 그 아침을 기억한다. 솔이가 밥을 먹지 않고 나가려던 그 아침. 자신이 "밥이나 먹고 가"라고 쏘아붙였던 그 아침.

"뭐 하는 거예요?"

솔이의 목소리가 딱딱하다. 옆 친구는 어색함을 감지하고 발을 뒤로 뺀다.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사라진다. 둘 사이에는 이미 깊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너 미술학원 다니고 있구나."

준호가 말한다. 스케치북을 본다. 솔이가 그것을 재빨리 가슴에 안긴다.

"... 네."

"좋아하니? 미술."

질문이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어색하다. 솔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뭔가 다르다는 표정이다. 5년 후의 준호의 얼굴이 지금의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굳어지지 않았다. 아직 상처받지 않았다.

"... 네. 좋아합니다."

정중한 어투다. 이미 아버지 앞에서 본래의 자신을 감추는 법을 배운 13살의 솔이.

"그래? 그럼 카페 좀 갈까? 너 선호하는 카페 있으면 말해."

솔이의 눈이 커진다. 아버지가 자신의 선호도를 묻다니. 그것도 명령이 아닌 질문으로.

"... 저 근처에 작은 카페 있는데요. 그곳 괜찮으세요?"

"응. 가자."

---

카페는 학원 골목 안쪽에 있다. 유리 벽면에 초록색 식물이 매달려 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아니지만, 학원가 근처의 엄마들이 아이를 기다리며 앉는 곳이다. 준호는 솔이를 보고 있다. 딸이 메뉴를 고르는 방식을 본다. 서둘러 고른다.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 앞에서 오래 생각하는 것이 미안한 것처럼.

"뭐 마실래?"

"초콜릿 마시겠습니다."

또 정중한 어투다.

준호는 주문을 한다. 초콜릿 하나, 아메리카노 하나. 그들은 창가 자리에 앉는다. 햇빛이 테이블 위에 사각형을 그린다.

"미술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니?"

준호가 묻는다. 직접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명령은 아니다.

솔이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의 햇빛을 헤친다. 그 손가락이 떨린다.

"... 그냥. 표현하는 게 좋아요. 말로는 못하는 거를... 그림으로는 할 수 있어요."

목소리가 작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진실이 있다. 준호는 그것을 감지한다. 5년을 기다려서 들은 딸의 목소리다.

"그래. 그럼 넌... 미술로 뭘 하고 싶어?"

"... 아빠는 제가 미술하는 거 싫어하잖아요."

솔이가 말한다. 눈을 들지 않는다. 검은 눈동자가 테이블 위의 햇빛을 따라간다.

준호의 목이 메인다. 그 말이 맞다. 자신은 싫어했다. 2010년 5월 20일의 준호는, 딸의 미술 공부를 "낭비"라고 불렀다.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술은 취미지, 직업이 아니"라고 외쳤다.

"그럴 수도 있지."

준호가 말한다. 목소리가 떨린다. "하지만 너의 행복이 제일 중요해."

솔이가 얼굴을 든다. 눈이 촉촉하다. 13살 딸의 눈에서 눈물이 맺혀 있다.

"아빠... 정말? 미술해도 돼?"

목소리가 떨린다. 5년을 기다려온 목소리다. 아버지에게 한 번이라도 인정받고 싶었던 그 목소리.

"응. 너의 꿈을 응원할게. 정말."

준호가 손을 뻗는다. 테이블 위에서. 딸의 손을 잡으려고.

"아빠가 잘못했어. 미안해, 솔이."

그 말이 나오자 솔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한 줄기, 또 한 줄기. 13살 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버지의 손이 자신을 향해 뻗어지는 것을 보며 솔이는 소리 없이 운다. 5년을 기다린 아버지의 손길. 그것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정말 미안해. 아빠가 너를 이해 못 했어."

준호는 그 손을 잡는다. 따뜻한 손. 작은 손. 자신의 딸의 손.

"미술을 좋아하는 솔이가 좋아. 그 꿈을 응원할게."

카페의 햇빛 속에서 아버지와 딸이 손을 맞잡는다. 그것은 5년의 시간을 건너뛴 화해였다. 솔이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는다. 둘 다 이 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아빠... 정말이야?"

솔이가 다시 묻는다.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응. 정말이야, 솔이."

준호가 대답한다. 그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순간.

시간이 멈춘다.

아니, 멈추는 게 아니라 거꾸로 흐른다. 햇빛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게 아니라 거두어진다. 창밖의 풍경이 흔들린다. 카페의 사람들이 역재생처럼 움직인다.

"솔이—"

준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들려온다. 아니, 안 들려온다. 모든 소리가 거꾸로 흐른다. 음악이 역재생된다. 손이 무거워진다. 몸이 무거워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니, 그게 아니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온다. 의식이 위로 떠오른다. 아니, 떠오르는 게 아니라 산산이 부서진다.

---

눈을 뜬다.

천장이 보인다. 형광등이다. 2020년의 형광등.

시계는 오전 12시 1분을 가리킨다. 4월 23일.

준호는 일어난다. 숨을 고른다. 그것은 성공이었다. 48시간. 정확히 48시간. 2010년 5월 20일 오후 3시부터 2010년 5월 22일 자정까지. 그 안에서 자신은 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 수 있었다.

"미안해, 솔이. 다음엔... 다음엔 더 잘할게."

준호는 침대를 내려온다. 발이 바닥에 닿는다. 안정감이 있다. 이제 패턴을 알았다. 매달 한 번. 48시간씩. 자신은 반복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다.

병실 문이 열린다. 간호사가 들어온다. 준호는 그 간호사를 본다. 얼굴이 낯설다. 지영이가 아니다.

"어? 여기 누세요?"

간호사가 묻는다. 준호는 침대 번호를 다시 본다. 맞는 침대다. 맞는 병실이다.

"저... 여기 환자인데요."

"네? 이 병실엔 환자가 없는데요?"

간호사의 얼굴이 경계로 굳어진다.

준호는 서둘러 다시 침대에 누운다. 간호사는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간다. 아, 맞다. 깨어난 직후라 아직 의료진이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몇 분이면 의사들이 몰려올 것이다.

준호는 휴대폰을 집는다. 재훈의 번호를 누른다. 지난 한 달간 여러 번 통화했던 번호.

"여보세요?"

"재훈아. 나야, 준호야."

"... 어, 준호. 뭐 하는 거야? 이 시간에?"

목소리가 낮다. 새벽이다.

"그냥... 안부 전하고 싶어서."

침묵이 흐른다.

"... 준호. 뭐하는 거야? 지금 정신이 온전해?"

목소리가 이상하다. 물어보는 톤이 아니라 진짜 걱정하는 톤이다.

"어? 응 괜찮은데."

"넌 뭐가 문제냐고?! 준호, 나 누군데? 나 누군데 너한테서 연락을 받아?"

준호의 손이 떨린다.

"재훈아... 우리 예전에 같은 회사 다녔잖아."

"... 준호. 나 너 모르는데? 나 서울에서 태어나서 여기까지 살았는데 널 본 적 없어. 누군데 날 재훈이라고 부르는 거야?"

통화가 끝난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손이 떨린다. 다시 떨린다. 지영이의 경우와 같다. 정확히 같다.

회귀를 할 때마다.

누군가가.

사라진다.

병실의 형광등이 깜빡인다. 윙윙거림이 크다. 준호는 그 소리를 듣는다. 그 안에서 무언가 다른 리듬을 감지한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시간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 자신의 현재를 하나씩 지우고 있는 것처럼.

"누가... 이러는 거야?"

준호의 속삭임이 병실에 울려 퍼진다.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형광등만이 계속 깜빡인다.

---

오전 6시 42분. 의사 박민준이 들어온다.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손에는 의료 기록 파일이 들려 있었다.

"김 환자. 어제 밤 뇌파 기록을 다시 봤습니다."

준호는 고개를 든다.

"뭐가 문제인데요?"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적입니다."

민준은 침대 옆에 앉는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럽다.

"당신의 뇌파가 정확히 48시간 주기로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어요. 매달 한 번씩. 다른 의료 기록과 비교하면, 당신은 정확히 한 달에 한 번 뇌사 상태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옵니다."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의 신체는 정상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의식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었다가 돌아오는 겁니다. 48시간마다. 정확히."

민준의 눈이 준호를 뚫어지게 본다.

"혹시... 당신 꿈을 꾸나요? 아니면 다른 기억이?"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닫는다.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믿을까. 회귀? 시간 이동? 그런 게 있단 말인가.

"기록상 당신은 지난 한 달간 네 번이나 뇌사 직전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회복을 네 번이나 반복했다는 뜻이에요. 당신에게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민준이 파일을 내민다. 그 안에는 뇌파 그래프가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본다. 파동이 정확히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린 것처럼.

"당신은 뭔가 알고 있죠?"

민준의 질문이 날카롭다.

"의사인 나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체 수치, 당신의 회복 속도, 그리고 이 뇌파. 모두 정상 범위를 벗어났어요. 당신이 뭔가 말해줄 수 있다면, 내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

민준은 준호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 눈빛에는 호기심과 의학적 진실에 대한 갈증이 담겨 있다. 이 의사는 준호를 환자로 보지 않고 있었다.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있었다.

준호는 입을 열려다 다시 닫는다. 민준의 시선이 더욱 예리해진다. 의사는 침묵 속에서도 거짓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 저는 괜찮습니다."

준호가 마침내 말한다. 목소리는 작지만 단호했다.

"뭐가 괜찮은데요? 당신의 뇌파는 정상이 아닙니다."

"그냥... 괜찮습니다."

민준은 한참을 준호를 바라본다. 뭔가 더 캐묻고 싶은 표정이다. 하지만 그는 의사였다. 환자의 침묵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준은 파일을 덮는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민준이 나간다. 병실에는 다시 고요함이 돌아온다.

준호는 침대에 누운다. 천장을 본다. 형광등이 윙윙거린다.

재훈이 사라졌다. 지영이는 이미 사라졌었다. 그 다음은 누구일까. 엄마? 아니면 더 가까운 누군가?

준호는 휴대폰을 든다. 엄마의 번호를 누른다.

"여보세요, 아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목소리다.

"엄마... 나야."

"새벽에 뭐 하는 거니? 병원에서 잘 있어?"

"응, 괜찮아. 엄마, 나 한 달 뒤에 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뭐... 문제?"

"뭔가 자꾸 사라지는 거야. 사람들이."

"아들, 정신 차려. 의사 불러."

엄마의 목소리가 불안해진다.

"아니야, 엄마. 미안해. 그냥... 잘 자."

준호가 끊는다.

휴대폰 화면을 본다. 연락처 목록. 지영이의 번호는 없다. 재훈의 번호도 이제 누군가 다른 사람의 번호가 될 것이다. 아니면 아예 없는 번호가 될 것이다.

준호는 일어난다. 병실을 나간다. 복도를 걷는다. 의료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구도 준호를 막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1층으로 내려간다.

병원 로비는 이미 아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준호는 로비를 가로질러 나간다. 출입구의 자동문이 열린다.

밖은 4월의 서울이었다. 하늘이 회색이었다. 봄바람이 준호의 얼굴을 스친다. 그 바람 속에 뭔가 다른 리듬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는 것처럼.

준호는 거리를 걷는다. 카페를 본다. 지난 회귀에서 솔이와 앉았던 카페 같은 분위기의 카페였다.

그는 들어간다.

창가 테이블에 앉는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커피가 나온다.

그는 마신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다.

"준호야, 너 지금 병원 밖에 나가 있니?"

"응."

"의사가 찾고 있어. 빨리 돌아와."

"알았어. 지금 가."

준호가 끊는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창밖을 본다. 거리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자신의 현재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커피 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그 안에서 거울처럼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지워가고 있는 것처럼.

준호는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것이 대가라는 것을.

매번 과거를 바꿀 때마다, 현재에서 누군가가 사라진다.

그 누군가는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언젠가는 자신마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준호는 눈을 감는다.

그 순간, 카페의 불이 깜빡인다.

---

5월 21일 밤 11시 59분.

준호는 침대에 누워있다. 병원. 같은 병실. 같은 형광등.

다시 회귀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한 달간, 준호는 생각했다.

매번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것. 지영이, 재훈, 그 다음은 누구일까.

그리고 또 다른 생각.

만약 자신이 계속 회귀한다면?

언젠가는 솔이가 현재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아니면 자신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준호는 손을 쥔다.

벽시계의 초침이 움직인다.

11시 59분 55초.

11시 59분 56초.

11시 59분 57초.

준호의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11시 59분 58초.

11시 59분 59초.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준호의 눈이 크게 열린다.

병실 문 옆에 누군가 서 있다.

검은 머리의 여자. 23세의 한솔이.

"솔이?"

준호가 말한다.

"뭐... 뭐 하는 거야?"

솔이의 눈이 빨갛다. 울었던 흔적이 있다.

"엄마가... 엄마가 말했어. 아빠가 깨어났대."

솔이가 한 발 다가온다.

"지금 시간이..."

준호가 시계를 본다.

자정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시간이 역행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은 역행하지 않는다.

의식이 빨려들어가지 않는다.

준호는 솔이를 본다.

솔이는 준호를 본다.

그리고 그 순간.

형광등이 깜빡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꺼진다.

병실은 어둠에 싸인다.

준호의 손이 솔이를 향해 뻗어진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솔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미안해. 아빠... 미안해..."

그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준호는 외친다.

"솔이!"

하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형광등이 다시 켜진다.

병실은 비어있다.

시계는 오전 12시 1분을 가리킨다.

5월 22일.

준호의 손이 떨린다.

침대 옆 책상 위에 무언가 놓여 있다.

준호가 집는다.

스케치북이다.

표지 위에는 글이 써 있다.

'아빠가 돌아오는 날'

준호가 스케치북을 연다.

그 안에는 준호가 있다.

병실에 누워있는 준호.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이 있다.

손을 잡고 있는 자신.

그 다음 페이지.

준호와 솔이가 카페에 앉아 있다.

그 다음 페이지.

준호와 솔이가 웃고 있다.

그 다음 페이지.

준호가 혼자 서 있다.

솔이는 사라져 있다.

그 다음 페이지들은 모두 검은색이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준호는 손이 떨린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

거기에는 한 문장만 써 있다.

'아빠, 제발 멈춰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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