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전 12시 1분.

시계의 초침이 똑, 똑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정확히 1분이 지났다. 준호는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현실이었다. 이 모든 게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이번엔 자신의 의지대로였다. 팔을 들어올렸다. 다리를 굽혔다. 모두 자유로웠다. 5년 동안 꿈꿔왔던 이 순간—자신의 몸이 온전히 자신의 것인 이 느낌. 준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문이 열렸다. 간호사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 얼굴은 낯설었다. 30대 중반의 남자 간호사였다. 준호는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어? 이미 깨어나셨네요. 의사 선생님 부를게요."

남자 간호사는 모니터를 확인하고 다시 나갔다. 준호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움직임이 어색했다. 5년간 움직이지 않은 몸이라 그런지,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영이를 찾아야 했다.

준호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리가 떨렸다. 벽을 짚으며 문 쪽으로 나아갔다. 복도는 밤새 진정된 듯 한적했다. 간호사실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간호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의 남자 간호사와 또 다른 여자 간호사 두 명. 지영이는 없었다.

준호는 간호사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 환자분이?"

여자 간호사가 놀라며 일어났다.

"지영이—김지영 간호사는 어디 있나요?"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간호사들이 서로 눈을 맞췄다.

"김지영요?"

여자 간호사가 되물었다.

"네, 이 병원 간호사. 5년간 날 돌봤는데..."

"그런 간호사는 이 병원에 없었는데요?"

말이 끝나기 전에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상이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팔을 짚었다. 간호사들이 당황해 그를 붙잡으려 했다. 준호의 가슴팍이 철렁 내려앉으며 오한이 밀려왔다. 무릎이 흔들렸다.

"아니, 꼭 필요한 거면 사무실에 물어보세요. 직원 명부가 다 있으니까."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가 불안정했다. 간호사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따라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의료 사무실은 2층에 있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심장이 계속 고동치고 있었다. 꼭 무언가가 준호의 가슴팍을 짓누르는 듯했다. 분명히 지영이가 여기 있었다. 5년 동안 매일 밤 자신을 돌보던 사람이.

2층 의료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침 일찍이라 직원은 두세 명만 있었다. 40대 초반 여성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김지영 간호사를 찾고 있는데요."

준호가 물었다.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김지영요? 간호사?"

"네, 5년을..."

"글쎄, 저 근무한 지 10년인데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봅니다. 혹시 다른 병원?"

여성이 컴퓨터를 켰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났다. 여성의 눈이 화면을 따라 움직였다.

"현재 간호사 명부... 과거 3년... 5년... 10년 기록까지 다 있는데... 글쎄,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없네요."

준호는 침묵했다. 여성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확한 이름을 모르시면 찾기가..."

준호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혔다. 복도에 혼자 남겨졌다. 벽에 기댔다. 숨이 가쁜 것 같았다. 구토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5년간 자신을 돌봤던 사람이 병원 기록에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준호는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접수처 옆에 직원 명부판이 있었다. 프레임에 끼워진 종이들—의사, 간호사, 행정직원들의 이름과 사진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손가락이 사진 위를 미끄러듯 지나갔다.

지영이의 얼굴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웃음, 밤새 침대 옆에서 자신을 돌봐주던 손길, 깨어난 아침에 흘렸던 눈물. 모두가 명부에서 지워져 있었다.

"준호?"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가 돌아봤다. 재훈이었다. 50대 초반, 잘 정리된 수염과 고급 정장. 준호를 본 순간 재훈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기쁨도, 안도도 아닌 뭔가 다른 것.

"어? 벌써 나왔어?"

재훈이 다가왔다. 그의 손이 준호의 어깨에 닿았다.

"재훈아, 지영이—김지영 간호사 알아? 5년 동안 내 옆에..."

"지영이? 누구 말하는 거야?"

재훈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무섭게 느껴졌다.

"내가 회귀할 때마다, 내가 돌아올 때마다 내 곁에 있던 사람이야. 매일 밤..."

"준호, 자리 앉자. 뭔가 이상한 말을 하는데."

재훈이 팔을 잡아 벤치로 끌어 앉혔다. 준호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당신 깨어났으니 이제 앞으로 뭐 할 거야? 직장 복귀는 힘들 것 같은데. 의료비도 많이 들었을 거 아냐. 일단 안정적인 보상금부터..."

재훈이 말하고 있었지만, 준호는 듣지 못했다. 귀에 들어오는 것은 재훈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현재 시간선에서 지영이가 완전히 사라져 있다는 사실. 그것이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었다.

"재훈아."

준호가 끊었다.

"응?"

"지영이가 정말로 없어?"

재훈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차가웠다.

"너 누구 얘기하는 거야?"

준호는 재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의 눈에는 정말로 지영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없었다. 5년 동안 자신을 돌봤던 간호사. 매일 밤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사람. 그런 지영이가 이 남자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준호가 중얼거렸다.

5층 중환자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준호는 벽에 기댔다. 재훈은 옆에 서 있었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그의 신체 일부를 조종하는 것처럼.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췄다. 문이 열렸을 때, 민준 의사가 서 있었다.

"준호 씨, 깨어나셨군요."

민준은 준호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그의 시선에는 의료인의 관심이 아닌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의심. 호기심. 그리고 무언가를 놓친 사람의 초조함.

"어제 밤 당신 뇌파가 비정상적인 패턴을 보였습니다."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마치 어떤 자극을 받은 것처럼요. 혹은 어떤 신경 활동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처럼.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신가요?"

준호는 민준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일순간 회귀를 들킬까봐 공포가 밀려왔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없습니다."

"정말요?"

민준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그의 입술이 약간 벌어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가 멈춘 것처럼.

"당신은 5년을 의식 없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깨어나셨어요. 의학적으로는 기적이죠. 하지만 의학에서 기적은 없습니다. 항상 이유가 있어요. 원인이 있어요."

준호가 입을 열었다.

"의사님, 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준호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이 왜 움직이는지. 왜 시간이 반복되는지. 왜 과거로 돌아갔을 때 딸의 스케치북에 미래의 그림이 있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왜 현재로 돌아오니 지영이가 사라져 있는지.

민준은 준호를 몇 초간 더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완전히 회복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검사가 더 필요합니다."

"네."

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기억나는 것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아주 작은 것도요."

민준이 돌아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그는 정말로 뭔가를 알고 싶어 하고 있었다.

병실로 돌아온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형광등이 점점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준호는 생각에 잠겼다.

지영이는 어디로 갔는가.

5년간 자신을 간호했던 그 여자는 왜 사라졌는가. 다른 병원으로 옮겼을 수도 있다. 사직했을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시간선으로 튕겨나갔을 수도 있다.

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펼쳤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천천히 펼쳐졌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인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존재의 의지인가.

오후 2시경, 의료진이 준호의 활력 징후를 확인하러 들어왔다. 혈압, 맥박, 체온. 모든 수치는 완벽했다. 마치 5년을 누워만 있었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환자분, 어떠세요? 몸이 어디 불편하신가요?"

간호사가 물었다. 그의 이름은 강민혁이었다. 준호는 그 이름을 읽었다. 가슴팍의 이름표에서.

"아니, 괜찮습니다."

준호가 대답했다.

"혹시 김지영이라는 간호사 있나요? 이 병원에?"

강민혁이 고개를 기울였다.

"김지영요? 글쎄요, 제가 알기론 없는데요. 혹시 다른 병원에서요?"

"아니, 이 병원에서 5년 동안..."

"5년이면 저보다 훨씬 전이네요. 저는 1년 전부터 근무했거든요. 혹시 퇴사하신 분인가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민혁이 나간 후,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신체는 완벽하게 움직였다. 근력도 돌아와 있었다. 5년의 침상 생활이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처럼.

오후 3시 15분,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낡은 휴대폰이 있었다. 5년 전의 기종이었다. 화면에 표시된 것은 '엄마'였다.

준호는 전화를 받았다.

"준호?"

주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5년 만에 듣는 그 목소리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더 낮고, 더 피곤하고, 더 멀리 있는 것 같았다.

"네, 엄마."

준호가 대답했다.

"너 깨어났대? 병원에서 연락받았어. 솔이한테 연락했어?"

"아직 안 했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솔이는... 대학교 2학년이야. 너한테 연락 안 하고 있어. 아버지가 없던 5년 동안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넌 모를 거야. 엄마도 일하면서 챙겨주지 못했고. 지금은 거의 연락도 없어. 너 때문에..."

"엄마."

준호가 끊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뭐?"

"지영이라는 사람 있잖아. 나를 간호했던..."

"뭐? 누가?"

"간호사 김지영이. 5년 동안..."

"준호, 너 뭔 소리 하는 거야? 누가 5년을 너한테 붙어 있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다 돌아가면서 일하는 거지."

준호는 전화를 내려놓았다. 주영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병실로 돌아온 준호는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오후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해가 천천히 기울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준호는 깨달았다.

시간을 거슬러갈 때마다, 현재에서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것이 사람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고, 존재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준호의 손가락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떤 누군가가 사라질까. 다음 달이 오면, 다시 회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도 또 누군가를 잃게 될까.

병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누르는 것처럼. 준호의 눈이 천장으로 향했다. 형광등이 다시 밝혀졌다가 이내 깜빡였다. 그 리듬에는 의도가 있었다. 신호였다.

준호는 침대에 누운 채 모니터를 바라봤다. 맥박을 측정하는 화면이 떴다. 규칙적인 파형이 흐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것이 일그러졌다. 비정상적인 스파이크가 솟아올랐다. 마치 누군가 그 신호를 조종하는 것처럼.

벽에 붙은 시계를 바라봤다. 초침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역행했다. 1초, 2초. 거꾸로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준호의 손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손가락이 펼쳐졌다 오므려졌다를 반복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그의 신체를 조종하는 것처럼.

준호는 확신했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다른 존재가 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존재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형광등이 다시 밝혀졌다.

준호의 눈이 천천히 감겨가기 시작했다.

3월 22일 오후 5시 47분.

시간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준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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