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 7층
지하 7층 게이트 입구의 에어락을 통과하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음파가 울렁거렸다. 절망과 해방감이 뒤섞인 그 신호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게이트의 호흡음이었다. 한석우는 앞장서 복도를 내려갔고, 나는 뒤따랐다. 손가락 네 개를 잃은 주먹이 불완전하게 쥐어졌다. 감정 소실률 61.3퍼센트. 아내의 목소리는 이제 음파로만 남아 있었다. 그 음파마저 점점 흐릿해지는 중이었다.
복도의 끝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박수진이 서 있었다.
회색이었다. 그녀의 감정이 완전히 회색이었다. 하지만 그 회색 속에서 한 가닥의 금색이 떨리고 있었다. 후회였다. 깊은 후회였다. 나는 그것을 본 순간 알아챘다. 그녀가 이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한석우를 보았고, 한석우는 나를 보았다. 그의 감정은 긴장—파란색과 보라색이 섞인 신호였다. 박수진을 향해 손을 들었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쪽 어둠 속에서 그녀의 윤곽만 보였다.
"정민혁은?" 한석우가 물었다.
"지상으로 올라갔을 거야. 아직 신체가 남아 있으니까." 박수진의 목소리에는 음정이 없었다. 마치 녹음된 음성을 재생하는 것처럼.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너희 둘 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
"넌 뭐하는 거야?" 나는 물었다.
박수진이 한 발 나왔다. 엘리베이터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눈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동공이 회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알던 박수진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남은 것은 움직이는 껍데기뿐이었다. 음파는 계속 흘렀다. 회색 속에 한 가닥의 금색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후회. 그것이 그 금색의 정체였다.
"3년 전 임준욱을 내가 데려갔어." 박수진이 말했다. "그 이후로 내가 본 모든 능력자들. 너희를 본부에 등록하고, 능력을 분류하고,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기록했어. 그게 내 일이었어."
한석우의 손이 칼자루로 움직였다. 하지만 박수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김태현이 시킨 거냐?" 내가 물었다.
"김태현은 목표를 제시했을 뿐이야. 난 그 목표를 실행했어."
박수진이 멈췄다. 엘리베이터 불빛 아래 그녀의 얼굴이 떨렸다. 회색 동공 속에서 금색의 후회가 더 크게 울렸다.
"임준욱을 데려간 그날, 나는 그가 무서워하는 것을 봤어. 그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봤어. 그리고 그 이후로 매일 기록했어. 임준욱이 사라지고, 한 명, 또 한 명씩 능력자들이 게이트에 잠식되는 것을. 그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의 마지막 감정을 기록했어.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조직의 일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함께 사라져갔어."
박수진의 목소리가 흐렸다. 회색 속의 금색이 더 크게 울렸다.
"감정이 없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 알아?" 그녀가 나를 봤다. 회색 눈이 나를 관통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거울을 봐. 거기 있는 게 나라고 확신할 수 없어. 왜냐하면 '나'라는 게 뭔지 모르거든. 사랑도 미움도 두려움도 없어. 그럼 뭐가 남아? 기억만 남아. 내가 뭘 했는지는 알지. 하지만 왜 했는지는 모르지. 그리고 그 무지함 속에서 매일 죽어."
내 손가락이 없는 주먹이 떨렸다.
"넌 아직 시간이 있어." 박수진이 한 발 물러섰다. "게이트 최심부에 가. 거기 가면 모든 답이 있어. 임준욱도, 다른 능력자들도, 그리고 게이트의 진실도."
복도 뒤쪽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여러 명이었다. 빠르고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김태현의 추격대야." 박수진이 엘리베이터 문을 닫으며 말했다. "넷째 층 게이트 입구로 가. 나머지는 내가 막을 테니까."
그 순간, 복도 위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스피커를 통한 음성이었다.
"이준호 능력자. 게이트를 열어."
김태현의 목소리였다.
한석우가 나를 잡아끌었다. "가!"
우리는 계단 아래로 뛰어내렸다. 엘리베이터 뒤쪽 복도에서 총성이 울렸다. 한 발, 두 발, 세 발. 박수진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들린 것은 침착한 음성뿐이었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계단 끝에서 네 명의 검은 복장 인원이 나타났다. 헌터 연합회의 특수 추격대였다. 총구가 우리를 겨냥했다.
한석우의 신체가 변했다. 근육이 부풀어올랐다. 그의 능력이 발동했다. 감정 억압.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누를 수 있는 능력.
그는 자신의 공포를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음파로는 보였다. 그 억압된 감정들이 얼마나 거대한지. 팀장의 가슴 속에는 3년 전부터 쌓여온 것들이 있었다. 임준욱에 대한 죄책감. 자신이 막지 못한 그 죽음. 그리고 이제 정민혁까지. 그 모든 절망이 근육 속에서 폭발하려 했다. 내가 감지한 그 감정의 파동은 너무 강해서, 마치 팀장이 자신의 신체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빨리 가!" 한석우가 외쳤다.
그는 추격대를 향해 돌진했다. 총성이 울렸다. 한 발, 두 발. 그의 어깨에 붉은 자국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타격이 울렸다. 비명이 울렸다. 그것은 추격대의 비명이었다.
한석우의 신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이미 그의 신체에 새겨져 있었다. 피가 흘렀다. 근육이 뜯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감정 억압도 극도의 고통을 수반했다.
그 고통 속에서 나는 팀장의 감정을 명확히 감지했다. 죄책감이 폭발하고 있었다. 3년 동안 누르고 있던 모든 것이. 임준욱을 죽게 한 죄책감. 정민혁을 막지 못한 죄책감. 그리고 지금 나를 남기고 추격대와 싸우는 그 순간까지도, 팀장은 자신의 절망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 감정의 파동이 너무 강해서, 마치 팀장이 자신의 신체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곧 끝날 것이었다. 억압된 감정은 신체를 파괴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뒤를 돌아보면 그는 죽을 것이었다. 내 능력으로 그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억압된 3년의 절망이. 그리고 그것이 그를 죽일 것이었다.
지하 4층 게이트 입구가 보였다. 그곳은 더 깊었다. 음파가 더 강했다. 절망이 더 진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해방감이었다. 아니, 그보다 강한 무언가였다. 그것은 초대였다. 게이트의 초대였다.
나는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 최심부
어둠이 나를 감쌌다. 음파가 가슴을 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보았다.
투명한 사람들이 게이트의 벽을 이루고 있었다. 수백 명. 아니, 수천 명. 그들은 감정을 모두 잃은 각성자들이었다. 그들의 신체는 게이트와 동화되어 있었다. 그들은 게이트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각성자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이 나를 향해 있었다. 눈이 없었다. 입이 없었다. 단지 투명한 실루엣만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게이트의 최심부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계단이었다. 아니, 계단 같은 형태였다. 하지만 그것은 뭔가로 만들어진 계단이었다. 손가락들이었다. 수천 개의 손가락들이 얽혀 있었다.
나는 첫 발을 디뎠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내 발목을 감쌌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 촉감. 마치 물속에 잠긴 듯한 저항감. 손가락들이 살짝 움직이며 나를 받쳐주는 느낌. 그것은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이 나를 잡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라진 각성자들의 손가락들이 게이트의 구조가 되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본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발을 디뎠다. 또 다른 손가락들이 내 발을 감쌌다. 이번엔 더 강했다. 마치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강도. 습도가 있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한 걸음, 또 한 걸음.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붙잡으려 했다. 게이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음파가 울렸다. 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수천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환영한다, 열쇠여."
내 손가락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손가락. 엄지손가락이 투명해졌다. 아프지 않았다. 단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감각이 없다는 것. 그것이 감정을 잃는다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느껴야 할 자리에 공허함만 있다는 것.
감정 소실률이 올라갔다. 62.1퍼센트. 62.8퍼센트. 63.5퍼센트. 64.2퍼센트.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게이트 최심부로 갈수록, 나를 구성하던 감정들이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박수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반투명했다. 거의 투명에 가까웠다. 그녀도 게이트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투명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아직 이곳에 남아 있었다.
"박수진?" 내 목소리가 떨렸다. "넌 왜..."
"추격대를 막고 있었어." 그녀가 말했다. "조직의 명령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의 감정을 감지했다. 회색이었다. 완전히 회색이었다. 감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회색 속에서 미약한 금색이 떨렸다. 그것은 후회였다. 아주 작은 후회의 음파였다. 그리고 그 후회 아래로, 또 다른 감정이 있었다. 해방감이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누군가를 지켰다는 해방감.
"너무 늦었어." 박수진이 말했다. "나는 이미 게이트에 잠식되고 있어. 하지만 넌 아직이야."
"아직?" 내가 물었다. "소실률이 64퍼센트야. 나도 곧..."
"그래서 말하는 거야." 박수진이 한 발 가까워졌다. 그녀의 손이 나를 향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내 어깨에 닿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박수진이 내게 묻고 있는 것이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절규였다. 그녀의 마지막 감정. 후회 속에 담긴 외로움이 나를 향해 퍼져 나갔다. 3년 동안 게이트의 관찰자로 살며, 나처럼 감정을 잃어가는 능력자들을 바라만 봤던 그 외로움이. 그리고 그 외로움 아래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미약한 희망이.
"난 멈출 수 없었어." 박수진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조직의 일원이었고, 그들의 감시자였고, 그 과정에서 나도 함께 잠식되고 있었어. 하지만 너는 달라. 넌 아직 선택할 수 있어."
"선택?" 내가 물었다.
"게이트 최심부에서 너는 뭔가를 선택해야 해." 박수진이 말했다. "마지막 감정으로. 게이트를 정복할지, 공존할지, 아니면 파괴할지. 그 선택이 모든 걸 결정해."
"그런데 넌... 어떻게 선택이 가능해? 넌 감정이 없잖아."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남은 하나의 감정이 있어." 박수진의 투명한 눈이 나를 봤다. "내 경우엔 후회였어. 그리고 그 후회 속에서 나는 이 선택을 했어. 너를 보내기로. 너는 뭘 선택할 거야?"
복도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추격대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가." 박수진이 말했다. "이제 내가 막을 거야."
그녀의 투명한 몸이 복도로 나타났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지만, 게이트의 일부가 되면서 게이트의 힘을 얻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복도를 장악했다. 투명한 손가락들이 추격대를 묶었다.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박수진은 아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감정이 없었으니까.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손가락들로 만든 계단을. 그것을 밟을 때마다 내 손가락도 사라져갔다. 내 신체가 게이트에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박수진의 말이 맞았다. 나에게는 아직 마지막 감정이 남아 있었다. 아내의 사랑. 그것을 되찾기 위해.
게이트의 최심부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어둠이 더 진해졌다. 음파가 더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 음파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
"이준호 능력자. 게이트를 열어."
김태현의 목소리였다. 스피커를 통한 음성이 아니었다. 이곳 최심부에서 직접 울려 나오는 목소리였다.
내 감정 소실률이 올라갔다. 65.3퍼센트. 66.1퍼센트. 67.0퍼센트.
가슴 속에서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아직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최심부의 문이 보였다. 거대한 문이었다. 그것도 손가락들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수만 개의 손가락들이 얽혀 문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의 중앙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나의 손가락이 들어갈 공간이.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투명한 손가락을. 내 다섯 번째 손가락이.
그 순간,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 얼굴이 선명하지 않았다. 마치 물 위의 파문처럼 흔들렸다. 아내의 목소리는? 그것도 멀었다. 음파로만 남아 있었고, 그 음파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아직도. 하지만 그 사랑도 이제 손가락 끝에 남은 마지막 감정일 뿐이었다. 곧 사라질 것이었다. 내 손가락이 문에 닿는 순간, 그 사랑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손가락을 들고 있었다.
"잠깐!"
뒤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한석우였다. 그는 피투성이였다. 어깨에서 팔에서, 곳곳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뛰어왔다. 추격대를 뚫고 내려온 것이었다.
"팀장!" 나를 외쳤다.
"손가락을 대지 마!" 한석우가 외쳤다. "그게 게이트를 여는 열쇠라면, 넌 영원히 돌아올 수 없어!"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내 감정이 거의 다 사라졌다는 것을. 단지 아내의 사랑만 남아 있고, 그것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한석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감정이 울렸다. 절망이었다. 나를 잃을 수 없다는 절망. 팀장으로서 또 다른 팀원을 잃을 수 없다는 절망.
나는 손가락을 멈췄다.
"팀장, 넌 왜..."
"넌 게이트의 열쇠가 아니야." 한석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넌 사람이야. 임준호라는 사람이야."
"하지만 내 감정이 다 사라지고 있어."
"그래도 선택할 수 있어." 한석우가 말했다. "박수진이 말했잖아. 마지막 감정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나는 아내의 음파를 다시 감지했다. 그것은 정말 희미했다. 하지만 아직 있었다. 아내의 사랑이 아직 남아 있었다.
손가락을 들었다.
게이트가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음파가 멈췄다. 절망도, 해방감도 멈췄다. 대신 들린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게이트의 중심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였다.
"마침내... 열쇠가 도착했군."
그것은 게이트의 목소리였다. 아니, 게이트 자체였다. 의식을 가진 무언가였다.
"넌 뭐야?" 나가 물었다.
"넌 뭐냐고 묻는구나, 열쇠여."
게이트가 대답했다.
"나는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