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엘리베이터가 지하 3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자 한석우가 들어섰고, 그의 뒤를 정민혁이 따랐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검지손가락이 완전히 사라진 지 정확히 3시간 46분. 손목 시계의 감정 소실률은 51.2%를 가리키고 있었다.
"준호."
한석우가 입을 열었다. 그의 성음에는 뭔가 결정적인 것이 담겨 있었다.
"이제 말해야 할 시간이 됐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5층을 지나갔다.
"3년 전, 내가 사랑하던 후배가 있었다. 임준욱. 예비역 장교 출신이고, 게이트 출현 초기에 각성자가 됐다. 신체 강화 능력이었는데, 정민혁처럼 신체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타입이었다."
한석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감정 감지 능력이 반응했다. 그의 가슴에서 나오는 빨강과 파랑이 마치 태풍처럼 소용돌이쳤다.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하나의 색채를 이루지 못했다. 음파는 울렁거렸다. 거짓이 아니었다. 이것은 진실의 음파였다.
"임무 중에 죽었다고 들었지?"
내가 말했다.
"그게 아니다."
한석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놈은 게이트 정복 임무 중에 죽은 게 아니야. 김태현의 '감정 통제 실험'의 대상이었어. 게이트 내부에 개조된 능력자들, 너도 봤을 거야. 박수진이 보여줬다고 들었다. 그들 중 하나가 임준욱이었어."
정민혁이 하는 말을 놓쳤다. 아니, 아마 정민혁도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내 시야에서 그의 감정색이 변했다. 노란색 기쁨이 순식간에 검은색 공포로 변환되었다. 음파가 비명을 질렀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7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김태현은 게이트를 정복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려고 했어. 게이트 내부의 감정들—괴물들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실제로 억압된 감정의 화신이야. 그것들을 제어할 수 있다면, 인류의 감정 자체를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야. 준호, 너의 능력이 바로 그 열쇠야."
한석우가 내 어깨를 잡았다.
"너는 게이트의 정체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야. 우리가 함께 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내 후배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
그의 손이 내 손을 찾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박수진으로부터의 메시지였다.
**[긴급. 김태현이 너를 찾고 있다. 지금 당장 본부를 떠나. 그들이 너를 추적 중이다.]**
정민혁이 뒷걸음질했다.
"잠깐, 이게 무슨... 너희가 미리 계획했던 거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검은색 공포가 짙어졌다. 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 다른 색채가 섞여 있었다. 초록색. 의심. 배신감.
"아니다. 정민혁, 내 말을 들어."
한석우가 말했다.
"우리는 게이트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준호와 함께라면—"
"함께? 너희가 자기들 계획에 나도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잖아!"
정민혁이 외쳤다. 그의 신체 강화 능력이 발동되려는 순간, 내가 그의 감정을 읽었다. 초록색 의심 아래에 흐르는 것은 파랑색이었다. 슬픔이었다. 그는 우리를 믿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정민혁. 봐."
내 손가락이 이미 네 개 사라져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남았다.
"내가 이 정도면, 게이트 최심부에 가면 어떻게 될까? 나는 이미 도구가 되고 있어. 그런데 너한테 이 짓을 하게 할 수 없어. 그래서 한 팀장이 말하는 거야. 우리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거."
정민혁의 검은색 공포가 흐릿해졌다. 파랑색이 더 진해졌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하는 거야?"
"게이트 최심부로 간다," 한석우가 말했다. "준호와 함께. 김태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게이트의 진정한 정체를 마주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세상에 알린다."
정민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색채가 다시 변했다. 검은색 공포가 줄어들고, 그 자리를 노란색이 채웠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한 기쁨이 아니었다. 절박함과 희망이 섞인 노란색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본부를 떠나자. 지금 당장."
한석우가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지상층으로 향했다.
복도를 빠르게 내려갔다. 밤공기가 침투했다. 새벽 3시의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내 손가락이 또 하나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엄지손가락만 남았다. 손목 시계가 경고했다. 감정 소실률 53.8%. 동시에 아내의 목소리가 더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마치 물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저기."
정민혁이 가리켰다. 주차장 입구에서 검은색 SUV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세 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우리를 향해 진행 중이었다.
"뛰어!"
우리는 한석우의 차로 달렸다. 그가 시동을 거는 순간, 첫 번째 SUV가 우리를 향해 가속했다. 한석우가 핸들을 꺾었다. 차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정민혁이 비명을 질렀다.
"이쪽으로!"
한석우가 차를 몰아 주차장의 좁은 통로로 진입했다. 뒤에서 검은색 SUV들이 따라왔다. 하나, 둘, 셋. 모두 우리의 속도에 맞춰 가속했다.
내 감정 감지 능력이 반응했다. SUV 내부의 감정들이 읽혔다. 빨강. 분노.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검은색. 공포와 분노가 섞인 것. 그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명령받은 것이었다.
"김태현이 직접 보낸 거네," 내가 말했다.
"알아," 한석우가 답했다. "그놈은 계획이 틀어질까봐 너를 없애려는 거야."
차가 주차장을 벗어났다. 밤거리로 나갔다. 신호등이 모두 초록색이었다. 누군가 신호를 조작한 것 같았다. 한석우가 핸들을 꺾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정민혁이 물었다.
"지하 8층. 게이트 최심부로."
한석우가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대신 있던 것은 결단력이었다.
"거기서 이 모든 게 끝난다."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뒤에서 검은색 SUV들이 계속 따라왔다. 하나가 우리 차의 옆을 들이받았다. 정민혁이 창문을 깼다. 그의 신체 강화 능력이 발동되었다. 팔이 부어올랐다. 근육이 극한까지 팽창했다.
극심한 고통이 그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빨을 깨물 정도의 고통. 신체 강화 능력을 발동할 때마다 근육 섬유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 그는 비명을 참고 있었다.
"안 돼! 정민혁, 다시 풀어!"
내가 외쳤다.
"조금만 더..."
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가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그의 눈빛이 변했다. 공포에서 결의로. 마치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처럼.
그 순간, 내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박수진의 메시지가 떴다.
**[준호. 게이트가 너를 부르고 있다. 지하 8층 입구에 가.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차가 갑자기 멈췄다. 한석우가 핸들을 꺾은 것이었다. 우리는 한 번에 조직의 본부 지하 입구에 도착했다.
검은색 SUV들이 뒤따라왔다. 문이 열렸다.
"뛰어!"
한석우가 외쳤다.
우리는 지하 입구로 뛰어들었다. 뒤에서 발사음이 들렸다. 총알이 벽을 스쳤다. 정민혁이 신체 강화 능력으로 철제 문을 닫았다. 그것이 검은색 SUV들의 진입을 멈췄다.
"잠깐... 숨을..."
정민혁이 무릎을 꿇었다. 신체 강화 능력의 대가는 가혹했다. 극심한 피로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한석우가 그를 일으켰다.
"아직 멀지 않았다. 계단으로."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 1층, 2층, 3층...
내 손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엄지손가락도 투명해지고 있었다. 감정 소실률이 경고했다. 57.2%.
"얼마나 남았어?" 한석우가 물었다.
"모르겠어,"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게이트가 나를 부르고 있어."
지하 7층에 도착했다.
게이트의 입구가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나오는 감정의 음파가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절망. 해방감. 분노. 슬픔. 기쁨.
모든 감정이 한 번에.
"준호," 한석우가 내 어깨를 잡았다. "이건 돌아올 길이 없는 선택이야. 알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돌아올 수 없었어. 처음부터."
게이트의 입구로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게이트 내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영한다, 열쇠여."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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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7층 게이트 입구에서 나오는 음파가 내 온몸을 흔들었다. 절망과 해방감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그 모순적인 신호는 내가 지금까지 감지한 모든 감정과 달랐다. 색채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 음파의 진동만으로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느낌.
"준호!"
한석우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는 내 팔을 잡아 게이트 입구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게 했다.
"아직이야. 정민혁이 복구될 때까지 기다려."
정민혁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신체 강화 능력의 후유증으로 팔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근육 섬유가 극한까지 팽창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의 호흡은 불규칙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팀장... 가만. 아직 괜찮아," 정민혁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 준비되든 김태현은 기다려주지 않을 거야. 이미 우릴 쫓고 있잖아."
그의 말이 맞았다. 지하 계단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 무장한 인원들. 그들의 감정은 단순했다. 빨강. 분노만 가득 찬 것이 아니라, 공포도 섞여 있었다. 명령에 따르는 두려움.
한석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기선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게이트로 들어가야 해."
"그건 자살 행위야," 정민혁이 반박했다. "최심부는 감정 지옥이야. 너도 알잖아. 김정수 팀장이 거기서..."
"알아," 한석우가 끊었다. "그래서 가는 거야."
한석우는 정민혁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결정된 사람의 눈빛이었다.
"정민혁. 넌 여기서 나가. 저 계단 맞은편 비상구를 통해. 거기서 외부에 연락해. 우리가 뭘 찾았는지 전부. 언론에, SNS에,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팀장, 그러면 넌..."
"나는 준호와 함께 간다."
한석우가 내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팔에 깊게 박혔다. 분노. 결의.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절망. 한석우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준호. 넌 지금까지 뭘 느껴왔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대답했다. "게이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이상해. 절망인데 해방감이야. 비명인데 웃음소리 같고."
"그게 맞아."
한석우가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뭔가 깨달음이 섞여 있었다.
"3년 전, 내 후배 임준욱이가 있었어. 우리 팀의 최고 능력자였어. 그놈은 게이트 정복 임무에 투입된다고 했어. 그런데 돌아오지 않았어. 처음엔 사고라고 했어. 괴물에게 당했다고. 하지만..."
한석우가 계단 위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게이트 입구로 한 발을 옮겼다.
"박수진이 내게 몰래 파일을 건넸어. 김태현의 내부 기록과 사진, 음성 기록까지. 준욱이는 정복 임무가 아니었어. 게이트 감정 통제 실험의 대상이었어. 살아있는 능력자를 게이트 최심부에 투입해서 감정을 조종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거였어. 그리고 준욱이는 그 실험에서 죽지 않았어. 게이트의 일부가 되어버렸어."
정민혁이 일어섰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게이트 안의 투명한 능력자들은...?"
"실험 대상들이야. 죽지 않은 채로 게이트에 갇혀 있는 거지. 준욱이를 포함해서."
한석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 감정 감지 능력에 그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빨강과 파랑이 뒤섞인 색. 분노와 절망.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복수심.
하지만 그 복수심은 정당했다.
"준호. 게이트가 널 부르는 이유가 뭘까?"
"모르겠어."
"게이트는 억압된 감정이야. 인류가 억눌러온 모든 감정의 집합체. 그리고 넌 그 감정들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게이트의 의도를 드러낼 수 있는 열쇠."
한석우가 내 투명한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살아있는 온기.
"우리가 함께 들어가자. 최심부까지. 그리고 게이트의 진실을 세상에 알려. 임준욱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우리 모두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한석우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비통함이 섞여 있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박수진의 긴급 메시지가 떴다.
**[조심해. 이건 함정이야. 지하 8층으로 가려고 하지 마.]**
그 다음 메시지가 왔다.
**[준호. 만약 이 메시지를 봤다면, 기억해. 게이트가 널 원하는 게 아니야. 게이트는 널 죽이려고 해. 넌 이미 게이트의 일부가 되고 있어.]**
마지막 메시지.
**[미안해. 난 너를 지켜주지 못했어. 이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감정을 잃어갔어. 그리고 지금 나는... 게이트의 일부야. 넌 그 길을 가고 있어.]**
내 손가락이 또 하나 투명해졌다. 동시에 아내의 목소리가 더욱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웃음이 마치 먼 수심 아래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감정 소실률: 61.3%.
"뭐라고 나와?" 한석우가 물었다.
"함정이래," 내가 대답했다. "지하 8층은... 게이트가 날 죽이려고 한대. 그리고 박수진도..."
"박수진도 뭐?"
"게이트에 들어갔던 거 같아. 감정을 잃어가면서. 지금 박수진은... 게이트의 일부라고."
한석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또 다른 동료의 죽음. 또 다른 희생. 그리고 그 희생이 이미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깨달음.
그 순간, 지하 계단에서 총성이 울렸다.
김태현이 보낸 인원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들의 감정이 한 번에 폭발했다. 빨강. 검은색. 혼돈.
"늦었어," 한석우가 중얼거렸다.
그는 내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 게이트 입구로 뛰어들었다.
"따라와!"
정민혁도 게이트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한 발자국에 무릎이 구부러졌다.
"정민혁!" 내가 외쳤다.
"가! 내가 여기서 막을게!"
정민혁이 팔을 올렸다. 신체 강화 능력이 다시 발동되었다. 근육이 극한까지 팽창했다. 극심한 고통이 그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고통은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것이었다. 신체 강화 능력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때마다 세포 손상이 누적되는 것. 그는 알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미안해, 팀장."
정민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맑았다.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의 눈빛.
"넌 가. 우린 다시 만날 거야."
그 말은 거짓이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짓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정민혁의 노란색 기쁨이 검은색 공포로 변했다. 그 변환은 순간이었다. 마치 빛이 꺼지는 것처럼. 그의 몸이 총알을 받았다. 한 발, 두 발, 셋.
그는 웃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팀장과 준호를 위한 미소였다. 팔로 계단을 짚으며 넘어지는 그 순간에도, 그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신체 강화 능력으로 버티던 것이 한계에 달했고,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는 음성이 들렸다. 하지만 그 음성 위에는 여전히 웃음이 있었다.
한석우가 나를 게이트 깊숙이로 끌어당겼다.
게이트의 입구가 닫혔다.
뒤에서 정민혁의 비명이 들렸다.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같았다. 신체 강화 능력으로 버티던 것이 한계에 달한 순간.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는 음성.
우리는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절망과 해방감의 음파가 전신을 덮었다. 그것은 음파가 아니었다. 감정 자체였다. 게이트 내부의 모든 억압된 감정들이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아내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의 웃음소리. 그녀가 나를 보던 눈빛. 모성애. 그 모든 것이 게이트의 감정 음파에 흔들렸다. 내 남은 감정들이 반응했다. 그것들이 게이트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더욱 희미해졌다. 마치 내가 그녀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처럼. 아니, 정확히는 내 안에서 그녀의 흔적이 지워져 가는 것처럼.
"준호!"
한석우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게이트의 내부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환영한다. 열쇠여. 드디어 왔군."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게이트 자체의 목소리였다. 아니면 게이트 안에 갇혀 있는 모든 감정들의 합창이었다. 그 안에는 임준욱의 목소리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