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반, 준호는 거울 앞에 섰다.
1층 거실의 거울이 먼저였다. 손을 뻗어 차갑고 매끈한 표면을 만졌다. 유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기억이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얼굴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눈썹이 더 진하고, 입가가 더 처져 있었다. 광대뼈가 더 높았다. 준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거울 속 형상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준호의 움직임보다 0.3초 늦게.
'피로다. 단지 피로일 뿐이야.'
2층으로 올라갔다. 침실의 거울 앞에 섰다. 이번엔 손을 대지 않고 그냥 봤다. 거울 속의 얼굴이 달랐다. 더 어렸다. 열 살 정도? 아니, 열다섯? 얼굴이 계속 변했다. 마치 여러 시대의 사진을 빠르게 넘기는 것처럼. 준호의 심장이 가속했다.
"이게 뭐야."
목소리가 떨렸다. 그 목소리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더 낮고, 더 거칠고, 더 오래된 것처럼.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의 큰 거울 앞에서 멈췄다. 밤의 불빛 속에서 그 표면은 검은색에 가까웠다. 마치 깊이 있는 구멍처럼 보였다. 준호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유리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거울이 반응했다.
그 안에서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엔 흐릿했다. 준호 자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동자가 움직였다. 준호의 눈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거울 속의 눈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절망이 실려 있었다.
'이경호.'
그 이름이 어디서 나왔는지 준호는 알 수 없었다. 입에서? 거울에서? 거울 속의 형상이 무너지듯 흐려졌다. 그 자리에 어린 얼굴이 떠올랐다. 다섯 살 정도의 아이. 눈이 크고, 입술이 파래 있었다. 아이의 입술이 움직였다.
"오빠."
준호가 비명을 지르려 했다. 거울 속의 아이도 동시에 "오빠"라고 말했다. 두 목소리가 겹쳤다. 준호의 목소리와 거울 속 아이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었다.
준호의 손이 거울에 닿았다.
순간, 모든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택 전체가 준호의 몸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1층 거실의 그 자살. 2층 침실의 그 울음. 지하실의 그 절규. 100년 전 방 구석에서 일어난 죽음. 1950년대 식탁 위의 독약. 1970년대 목재 더미 사이의 질식. 1990년대 욕실의 수면제. 2000년대 침대 아래의 유서.
팔이 거울을 통과했다. 손가락부터, 그 다음 손목, 팔뚝. 투명해졌다. 하지만 그 투명함 너머로 다른 누군가의 손이 겹쳐 보였다. 더 작은 손. 더 창백한 손. 수십 개의 손이 중첩된 손.
준호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아니야!"
거울 속에서 같은 비명이 울려 나왔다. 그것도 여러 개였다.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아이의 목소리. 모두 다른 시대에서 나온 절규들.
준호가 팔을 빼내려고 힘을 주었다. 하지만 거울은 팔을 놓지 않았다. 어깨까지 빨려들어갔다. 팔 전체가 거울 속으로 침잠했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투명함이 팔뚝을 타고 올라왔다. 피부가 스르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래로는 뼈만 남고, 위로는 다른 누군가의 팔이 겹쳐 보였다. 통증이 아니라 이질감. 자신의 팔이 자신이 아닌 것으로 변해가는 감각.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준호인가? 아니면 이경호인가?'
거울 속의 형상이 웃음을 흘렸다. 수십 개의 입이 동시에 웃었다.
'나는 박미라다.'
'나는 이구호다.'
목소리들이 쌓였다. 겹쳐졌다. 준호는 그 목소리들을 구분하려 했다. 이것이 이경호의 목소리인지, 저것이 박미라의 목소리인지. 하지만 구분이 불가능했다. 모두 준호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모두 거울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준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고 있었다.
가슴이 거울 표면에 닿았다. 찬 유리가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준호가 저항을 멈췄을 때, 비로소 움직임이 느려졌다. 팔이 더 이상 빨려들어가지 않았다.
준호는 천천히 눈을 떠 거울 속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는 여러 개의 얼굴이 겹쳐져 있었다.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거울 속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준호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경호의 얼굴. 약병을 들고 있던 손. 욕실 거울 앞에서 마지막 결정을 내리던 순간의 얼굴.
그 얼굴이 흐려졌다. 어린 아이의 얼굴이 되었다. 여섯 살 정도의 아이. 눈이 충혈되어 있고, 입가에 침이 흐르고 있었다. 곰인형을 안고 있던 아이.
"오빠. 오빠가 맞지?"
아이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도 여러 겹으로. 아이의 목소리 아래 다른 목소리들이 깔려 있었다. 더 낮은 음역대. 더 오래된 시간의 울음. 준호는 그것들을 구분하려 했지만, 모두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준호가 거울에서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팔은 여전히 거울 속에 박혀 있었다. 손목까지 거울을 통과했다. 준호가 팔을 빼내려고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손톱이 거울 테두리에 박혔다. 먼지와 때가 손톱 사이로 들어갔다. 그 먼지 속에도 기억이 있었다. 100년 전의 기억. 누군가의 손이 이 거울을 닦던 날의 기억. 그 기억도 준호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꺼내줄 거야?"
거울 속의 형상이 물었다. 이제 그것은 어떤 개별적인 얼굴도 아니었다. 얼굴들이 계속 겹쳐지고 있었다. 이경호. 어린 아이. 그리고 다른 누군가들. 모두가 하나의 존재처럼 움직였다.
"나를 꺼내줄 거야? 아니면... 들어올 거야?"
준호가 입을 열려고 했다. 거울 속의 형상에 저항하려고. 하지만 입이 닫혔다. 자신도 모르게. 거울 속의 형상도 동시에 입을 닫았다.
준호는 거울 안과 밖에 동시에 있었다. 거울 안에서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고, 거울 밖에서 거울 속의 손을 보고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 준호인지 알 수 없었다. 거울 안의 준호는 거울 밖의 준호를 침입자처럼 바라봤다. 거울 밖의 준호는 자신의 팔이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두 준호 모두 자신이 원래의 준호라고 확신했고, 동시에 자신이 이미 누군가 다른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가 준호를 꺼내줄 거야."
거울 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복수형이었다. 우리. 그들. 저택 자체가 하나의 의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죽은 자들의 집단 의식. 그 목소리는 준호의 입에서도 동시에 나왔다.
준호가 비명을 질렀다. 진짜로. 목에서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가 거울 속에서 먼저 울려 나왔다. 거울 안의 준호가 먼저 비명을 질렀다.
현관에서 노크 음이 들렸다.
가볍고 조심스러운 노크였다. 그 다음 목소리.
"이준호? 이준호?"
박수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박수현의 목소리인지, 저택이 박수현의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지난주부터 다시 연락이 없어서... 들어가도 돼?"
박수현과 준호는 마지막으로 통화한 지 열흘이 지났다. 그때 준호는 "좀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박수현은 "그래, 필요하면 연락해"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아무 연락도 없었다. 박수현은 불안했다. 준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침묵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 것이다.
발 소리가 들렸다. 부츠가 현관 바닥을 밟는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준호는 거울 속에서 보고 있었다. 거울 밖에서도 보고 있었다. 두 곳에서 동시에. 박수현이 1층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박수현이 멈췄다.
거울에는 수십 개의 얼굴이 보였다. 그 중에 준호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거울 속의 얼굴들이 모두 박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수현이 거울을 바라봤다.
"넌... 누구야?"
거울 속의 형상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박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우리가 될 거야."
박수현의 손이 거울을 향해 올라갔다. 자신도 모르게. 마치 누군가 그 손을 잡아 끌고 있는 것처럼.
"아니야. 아니야!"
박수현이 소리쳤지만, 손은 거울을 향해 계속 움직였다. 준호는 거울 밖에서 박수현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손가락이 박수현의 소매에 닿았다. 하지만 박수현을 끌어낼 수 없었다. 준호 자신의 팔도 거울에 박혀 있었다. 두 팔이 반대 방향으로 당겨지고 있었다.
"박수현! 손을 빼!"
준호가 소리쳤다. 하지만 박수현의 손가락이 이미 거울 표면에 닿고 있었다.
박수현의 손가락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손목으로 퍼져나가는 투명함. 그 안에 다른 누군가의 뼈가 보였다. 박수현이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제발!"
준호가 박수현의 팔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손목까지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간 박수현의 팔이 조금 나왔다. 하지만 거울 속의 손들이 박수현을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준호의 힘과 거울의 힘이 박수현을 양쪽에서 찢어내려고 했다.
"준호!"
박수현이 준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준호는 박수현의 눈을 봤다. 그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형상이었다. 거울 속의 수십 개의 얼굴이 박수현의 눈 속에 비쳐 있었다.
"준호... 날 봐. 나야. 박수현이야."
박수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 아래로 다른 목소리들이 깔려 있었다. 더 낮은 음역대. 더 오래된 시간의 울음.
준호가 박수현을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어깨까지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간 박수현의 몸이 조금씩 나왔다. 하지만 거울은 박수현을 놓지 않으려 했다. 박수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통으로.
"제발... 놓지 마..."
박수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준호의 손에서 박수현의 팔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손목. 손가락.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박수현이 거울 속으로 완전히 빨려들어갔다.
거울 속에서 박수현의 비명이 울려 나왔다. 그것도 여러 겹으로. 박수현의 목소리 아래 다른 목소리들이 겹쳐졌다. 이경호의 목소리. 어린 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들.
거울 속의 형상들이 박수현을 바라봤다. 박수현의 몸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손가락부터 시작된 투명함이 팔뚝을 타고 올라갔다. 어깨. 목. 그리고 얼굴.
박수현의 눈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투명함 너머로 다른 누군가의 눈이 보였다. 더 오래된 시간의 눈. 죽음의 눈.
박수현의 입이 움직였다. 말을 하려고.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은 박수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감사해."
거울 속의 모든 얼굴이 동시에 말했다. 박수현의 입으로. 이경호의 입으로. 어린 아이의 입으로.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이제 우리가 하나가 됐어."
박수현의 눈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그 안에 비친 것은 박수현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모든 죽은 자들이었다. 그들이 하나의 형상으로 겹쳐져 있었다. 이경호. 어린 아이.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누군가들.
거울 속에서 박수현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저택 자체가 남았다. 벽돌. 목재. 창문.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얼굴처럼 움직였다.
1층 거실의 거울 속에는 이제 박수현이 없었다. 대신 거울 속에는 준호가 있었다. 거울 안의 준호와 거울 밖의 준호가 동시에 바라봤다. 그들이 누가 원본이고 누가 복사본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현관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밤이 내려온 것처럼.
거울 속에서 또 다른 노크 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