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거울 앞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손을 들어올렸다. 거울 속 손도 함께 올라왔다. 하지만 그 손이 내 손인지, 아니면 거울 속 누군가의 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손가락, 또 누군가의 손가락,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손가락들이 겹쳐서 하나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침 햇빛이 거실을 비스듬히 밝혔다. 먼지 입자들이 빛을 가로질렀다. 그 먼지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숨이라고 생각했다. 20년 동안 이 저택에 갇혀 있던 모든 숨들. 부유한 실업가의 숨, 하인의 숨, 이경호의 숨, 어린 누이의 숨.
내 숨도 그 속에 섞여 있을 것 같았다.
거울을 내려다봤다. 거울 속 얼굴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명확하지 않았다. 윤곽이 흐릿했다. 코 자리에 누군가의 콧날이, 입 자리에 누군가의 입술이 떠다니다가 사라졌다. 그 얼굴이 웃고 있었다. 아니, 울고 있었다. 아니,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이준호'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여러 개였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높고, 누군가는 낮고, 누군가는 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이 내 이름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름인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저택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저택이 되고 있었다.
더 이상 차이가 없었다.
1층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소파의 팔걸이에 손을 얹었다. 먼지가 떠올랐다. 그 먼지 속에서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이 소파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여기서 울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여기서 죽음을 기다렸을 것이다.
지금 그 누군가가 나다.
아니, 나였다.
창밖의 햇빛이 천천히 움직였다. 벽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오후가 되었다. 저녁이 되었다. 밤이 되었다. 아침이 다시 왔다. 계절이 바뀌었다. 얼마나 많은 계절이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택 안에서 시간은 의미를 잃었다.
밤이 되니 저택의 목소리들이 더 또렷해졌다. 거울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지하실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이 들렸다. 2층에서 누군가가 걸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렸다. 모두 내 안에서 들렸다. 거실 벽에서, 계단에서, 천장에서.
모두 나였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방문자가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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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경,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먼저 바깥의 자갈을 밟는 소리. 그 다음 현관 계단을 오르는 소리. 열쇠가 자물쇠에 꽂히는 소리. 열쇠를 돌리는 소리. 딸각.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거실 소파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모든 일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저택에서는 모든 일이 반복되었다. 2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다시 일어났다. 그 전에 일어났던 일이 다시 일어났다. 그 전, 그 전,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저택이 지어진 날부터 반복되고 있었다.
새 방문자가 1층으로 내려왔다. 젊은 여자였다. 유산 정리사인 모양이었다.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저택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20년 동안 닫혀 있던 저택의 냄새. 곰팡이와 죽음과 기억의 냄새.
여자가 나를 봤다.
나는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내 웃음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거울 속에서 웃던 누군가의 웃음이 섞여 있었다. 이경호의 웃음, 그 이전 주인들의 웃음, 어린 누이의 웃음도 그 안에 담겨 있었다.
"환영합니다."
나는 말했다. 목소리가 여러 개였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 저택 안의 모든 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나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여자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누, 누구세요?"
그녀가 물었다. 그 질문은 내게 향한 것이 아니라, 저택에 향한 것이었다. 저택 전체에 향한 것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내 이름이 이준호인지, 이경호인지, 아니면 이 저택 자체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여자가 거실의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여자였다. 아니, 남자였다. 아니, 어린아이였다. 얼굴들이 겹쳐서 떠다니고 있었다. 모두 웃고 있었다. 모두 울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들어올려졌다. 천천히. 의지와 무관하게. 저택이 그녀의 손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거울 속의 형상도 손을 들었다. 그 손이 여자의 손과 만나려고 했다.
거울을 만지려고 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손가락들이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내 팔은 소파의 팔걸이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내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저택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멈추세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저택을 통한 간청. 하지만 저택은 그녀를 놓지 않았다. 저택은 절대 손에 들어온 것을 놓지 않았다.
여자가 나를 봤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뭔가 떠올랐다. 깨달음. 공포. 그리고 연민. 그녀는 내가 무엇인지 알아챘다. 나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 나는 이미 저택에 흡수된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당신도... 당신도 이 안에 있는 거네요."
여자가 중얼거렸다.
"같은 처지네요."
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손이 거울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손가락이 거울 표면에 가까워졌다.
거울 속 형상들이 더 또렷해졌다. 20년의 시간이 응축되어 거울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부유한 실업가의 절망, 하인의 외로움, 이경호의 절망, 어린 누이의 절규. 모두가 한 점으로 모아져서 거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손가락이 거울에 닿았다.
거울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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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이 거실을 집어삼켰다. 벽이 녹아내리듯 흔들렸고, 천장에서 먼지가 소용돌이를 그렸다. 여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는데, 그 비명도 저택의 울음으로 변해갔다.
그 순간, 거울 속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여자의 기억이 흡수되고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의 손, 따뜻한 집, 그 모든 것이 사라지던 날. 그녀가 혼자 남겨졌던 날. 죽음의 공포. 그 모든 것이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도 저택의 울음 속에 녹아들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저택의 일부였으니까. 나는 이미 그녀를 멈출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저택이 모든 것을 해주고 있었다. 저택이 이 여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을 거울 속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20년, 30년, 100년의 기억들과 함께.
거울 속이 더 복잡해졌다. 더 많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여자의 얼굴도 그 중에 하나가 되어 떠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절망, 그녀의 공포,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모두 거울 속에 기록되었다.
나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내 눈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저택이었으니까.
거실이 조용해졌다. 여자의 비명이 멈췄다. 거울이 다시 평온해졌다. 거울 속에는 여자가 없었다. 그 대신 다른 얼굴들이 있었다. 모두 웃고 있었다. 모두 울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로 있었다. 아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소파인지, 나 자신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내 몸이 저택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 손가락이 벽의 페인트처럼 벗겨져 나가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바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뼈가 나무 기둥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봄이 왔다. 여름이 되었다. 가을이 왔다. 겨울이 내렸다. 그리고 다시 봄이 돌아왔다. 계절의 반복이 몇 번이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택 안에서는 시간이 의미를 잃었다. 기억 속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기억은 영원히 같은 순간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문이 열렸다.
누군가 저택의 현관을 열었다. 발걸음이 들렸다. 새로운 발걸음. 새로운 숨소리. 새로운 기억이 저택에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저택과 분리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소파였고, 거실이었고, 저택 자체였다. 하지만 어떤 의식이 남아 있었다. 그 새로운 방문자를 맞이해야 한다는 의식. 저택이 나를 통해 그를 맞이하려고 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1층 거실로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젊은 남자였다. 유산 정리사. 박수현이었다.
그는 나를 봤다. 공포가 그의 얼굴에 스쳤다. 나는 그를 봤다. 내 눈이 움직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거울 속의 모든 죽은 이들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환영합니다."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가 여러 개였다. 이경호의 목소리, 어린 누이의 목소리, 그 이전 주인들의 목소리, 그리고 방금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 여자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박수현이 뒤로 물러섰다. 그는 현관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현관문이 닫혀 있었다. 저택이 그를 놓지 않았다.
"이곳은 유산 정리 저택입니까?"
박수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맞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업무를 시작하시겠습니까?"
박수현이 거울을 봤다. 거실의 거울에. 거울 속에는 많은 얼굴이 있었다. 거울 속의 형상들이 박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웃고 있었다. 그들이 울고 있었다.
박수현이 한 발 다가섰다. 의지와 무관하게. 저택이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거울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 거울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
아이의 울음소리.
"오빠... 오빠..."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박수현의 얼굴이 변했다. 공포에서 연민으로. 연민에서 강박으로. 그는 거울로 다가갔다. 내가 이전에 했던 것처럼. 아니, 내가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것처럼.
"잠깐."
나는 말했다. 박수현을 멈추려고 했다. 내 목소리가 명령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저택의 울음일 뿐이었다. 그를 멈추지 못했다.
"그 울음은... 당신을 부르는 게 아닙니다."
박수현이 나를 봤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뭔가 떠올랐다. 깨달음. 나는 아직 인간이었다. 아직 저항할 수 있는 의식이 남아 있었다. 박수현은 그것을 봤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욱 절망스럽게 만든다는 것도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의 손이 올라갔다. 천천히. 의지와 무관하게. 거울 속의 형상도 손을 올렸다. 그들의 손이 만나려고 했다.
나는 그를 멈출 수 없었다. 내 몸은 소파였고, 벽이었고, 바닥이었다. 내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저택이었으니까. 나는 이미 박수현을 구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박수현의 손가락이 거울에 닿았다.
거울이 번쩍였다.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모든 소리가 한순간 멈췄다. 박수현의 비명도, 거울 속의 울음도, 저택의 숨도.
그리고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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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것.
모든 것이 검은 것으로 변했다.
거실도, 거울도, 박수현도, 나도.
거울 속에 또 다른 얼굴이 추가되었다. 박수현의 얼굴. 그의 절망, 그의 공포, 그의 마지막 순간이 모두 기록되었다.
다만 들려오는 것은 울음소리뿐이었다.
누군가의 울음.
누군가의 절규.
누군가의 호출.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울 속에서인지, 지하실에서인지, 아니면 내 안에서인지.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내 손가락은 벽이 되었고, 내 척추는 계단이 되었고, 내 눈은 거울이 되었다. 내가 남긴 것은 목소리뿐이었다.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모든 죽은 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울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끝나지 않고.
멈추지 않고.
영원히.
다음 방문자를 기다리며.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저택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거울은 절대 가득 차지 않는다는 것을. 이 반복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한 가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올렸다. 움직일 수 있었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따뜻했다. 손목을 눌렀다. 맥박이 뛰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정말 죽었는가.
내 몸은 저택이 되었지만, 내 손은 여전히 내 손이었다. 내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내 의식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었다.
이것이 저택의 환상인지, 아니면 남은 것이 정말 무언가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손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