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본문

박수현이 도착했을 때 나는 거실에 있었다. 그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이미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내가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저택이 알려준 건가.

문을 열자 박수현의 얼굴이 창백했다. 손에는 여행 가방이 들려 있었다.

"준호야. 우리 나가자."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본다. 모든 것을 본다. 그가 차에서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손톱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몇 번이나 돌아갈까봐 생각했는지. 그것은 박수현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저택이 보여주는 것이다.

"들어와."

나는 그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팔이 내 손에서 떨렸다. 뜨거웠다. 아니, 내가 차가웠던 것일 수도 있다.

박수현이 거실 주변을 둘러봤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빛이 먼지를 비춰냈다. 그 먼지 입자들 사이로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렸다.

"넌 여기 며칠을 있었어? 얼굴이..."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나를 제대로 보는 순간 입이 다물어졌다. 내 얼굴이 그렇게 낯선가? 거울에서 본 내 모습은 아직도 '나'였는데. 아니, 어제는 어떤 얼굴이었더라?

"태성이 말했어. 너 어제 상태 이상하다고. 목소리도 이상하고, 말투도 틀렸다고. 그래서 내가 왔어."

박수현이 한 발 물러섰다.

"우리 지금 나가. 차가 밖에 있어."

"싫어."

"뭐?"

내 목소리가 얼마나 낮았는지 몰랐다. 마치 두 사람이 한 목구멍에서 말하는 것처럼.

박수현이 내 팔을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그의 체온이 내 팔에 닿자, 나는 그의 심박수를 느꼈다. 맥박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가 전달되었다.

"넌 정신이 없어. 이 집에서 너무 오래 있었어. 나가면 괜찮아질 거야. 의사한테 가고—"

"나 안 나가."

나는 그의 손을 뿌쳤다. 팔이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의 팔이 아니라 내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내 팔이 내 것이 아니었다.

박수현이 뒷걸음질쳤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동공이 벌어졌다.

"이건 넌 아니야."

그 말이 나를 멈추게 했다. 혹은 저택이 나를 멈추게 했다.

"뭐라고?"

박수현이 다시 팔을 뻗었다. 이번엔 잡으려는 게 아니라 밀어내려는 듯했다. 내 가슴을 밀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손이 내 몸을 통과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통과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은 내 가슴에서 멈췄다. 그리고 떨렸다.

"넌 너무 차가워. 너... 정말 준호야?"

내가 대답하기 전에, 박수현이 내 눈을 들여다봤다. 깊이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무엇인가? 거울 속처럼 여러 겹의 얼굴들?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어둠?

"제발... 준호야. 제발."

박수현이 울먹였다.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마치 울음이 그를 저택으로 끌어당길까봐 두려운 것처럼.

나는 그의 얼굴을 봤다. 그의 입술을 봤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저택이 아는 것이었다. 저택은 사람들을 오래 봐왔다. 수십 년을 봐왔다. 어떤 사람이 포기하는 순간을 알고 있었다.

내 입이 열렸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저택이 내 목을 누르고 있었다. 아니, 저택이 내 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박수현을 구하고 싶었다. 그의 손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은 이미 내 손이 아니었다.

내 입이 움직였다. 내 목소리가 아닌 다른 것이 나왔다.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저택이 원하는 말이 나왔다. 두 개의 의지가 한 몸에서 충돌했다. 하나는 박수현을 구하려는 것. 하나는 그를 붙잡으려는 것. 그 사이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박수현, 나가."

겨우 그 말만 나왔다. 목이 부러질 듯한 목소리로. 나는 그를 나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를 붙잡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찢어지고 있었다. 둘 다 내 것이 아니었다. 하나는 내 것이고, 하나는 저택의 것이었다.

"뭐?"

"나가. 제발. 돌아오지 마."

박수현이 내 얼굴을 봤다. 그의 눈에 뭔가가 흔들렸다. 깨달음인가, 아니면 절망인가.

"준호..."

"난 여기 있어. 나갈 수 없어."

내가 말했다. 아니, 나를 통해 누군가가 말했다. 저택이 말했다.

박수현이 손을 내렸다. 천천히. 마치 내가 위험한 동물이라도 되는 양.

"내가 다시 올게. 넌... 여기서 나가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뒷걸음질쳤다. 거실을 빠져나가 현관으로 향했다. 나는 따라갔다. 내 발이 마루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한 명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명이 함께 걷는 소리였다. 박수현이 그것을 들었을까? 그의 목덜미가 곤두섰다.

현관에 도달했을 때, 나는 그를 잡고 싶었다. 팔을 뻗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저택이 나를 멈추게 했다. 아니, 나 자신이 멈추게 했다. 그를 잡으면 그도 나처럼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관 문이 닫혔다. 문 너머로 박수현의 발소리가 들렸다. 차 열리는 소리. 시동 거는 소리. 나는 손잡이를 잡았다. 잠겨 있었다. 손잡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박수현!"

나는 문을 두드렸다. 손이 내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도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밖에서는 차가 떠나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문에 기대섰다. 손잡이를 더 세게 눌렀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현관 테이블을 봤다.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혹은 내가 그것을 열쇠로 인식할 수 없었다. 내 기억이 그것을 열쇠라고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니었다. 아니, 내 얼굴인데 내 얼굴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다른 것들이 있었다. 목에 밧줄 자국이 있는 목. 입가에 거품이 묻은 입. 눈이 튀어나올 듯한 눈.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움직였다.

거울 속의 입이 움직였다. 내 입과 다른 방향으로. 거울 속의 눈이 내 눈과 다르게 깜빡였다. 거울 속의 목이 내 목과 다르게 경련했다. 나는 거울 속 형상과 마주쳤다. 그것은 나였지만 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흉내 내고 있었지만, 나와는 완전히 다른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계단으로 향했다.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저택이 나를 올려보냈다.

2층 복도는 어두웠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창문들이 모두 닫혀 있었고, 커튼도 처져 있었다. 침실 문이 닫혀 있었다. 어린이 방 문도 닫혀 있었다. 내가 여러 번 문을 열었는데, 지금은 모두 닫혀 있었다.

나는 침실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아니, 누워 있지 않았다. 침대는 비어 있었다. 다만 그 위에 누군가의 형상이 보일 뿐이었다. 약병이 떨어져 있는 침대. 약의 냄새. 그리고 그 냄새 아래로 죽음의 냄새.

나는 침실을 나왔다. 서재로 향했다.

서재의 책들이 모두 떨어져 있었다. 책장이 비어 있었다. 아니, 책들이 책장에 있었는데 내가 보지 못하는 건가?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낡은 책이었다. 누군가의 일기장이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글씨를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 기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시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려고 했다. 여전히 잠겨 있었다. 손잡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현관 테이블 위? 아니. 선반 위? 아니. 내가 어디에 두었는가? 내가... 열쇠를 가지고 있었는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박수현의 차가 떠나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나는 현관 벽에 손을 얹었다. 벽에서 기억이 흘러나왔다. 이 벽을 지나가던 사람들. 몇십 년을 지나가던 사람들. 그들의 발걸음. 그들의 한숨. 그들의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현관을 떠났다. 복도를 지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의 낡은 나무문. 그 아래로 계단이 내려가는 문. 그 문이 열려 있었다.

지하실로 내려가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혹은 저택이 나를 아래로 부르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생각했다. 박수현이 나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저택 안에 있었다. 아니, 이미 저택이었다.

계단의 각 단계를 밟을 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느꼈다. 1987년의 발자국. 1990년대의 발자국. 그리고 내 발자국. 하지만 내 발자국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하실의 어둠이 나를 맞이했다.

손전등을 켰다. 불빛이 벽을 핥으며 지나갔다. 손자국들이 나타났다. 수십 개, 수백 개의 손자국. 작은 손. 큰 손. 절망한 손. 그 모든 손이 이 벽에 남겨져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만졌다.

기억이 밀려왔다.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가 차갑다. 아이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울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로. 그 엄마의 목소리로. 1960년대의 목소리로. 내 딸. 내 딸이 왜 이러는 거야. 누나가 왜 이러는 거야.

손을 뗐다. 다른 손자국을 만졌다.

이번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자살 약을 마시고 있었다. 입안이 쓰다. 죽음이 천천히 온다. 이것이 나약함인가? 아니면 해방인가? 1970년대의 목소리. 딸아. 아버지가 못해줄 게 많아서 미안해. 나는 그 절망을 내 것처럼 느꼈다.

손을 뗐다.

또 다른 손자국.

누군가의 아이가 되어, 밧줄이 목을 조인다. 숨을 쉴 수 없다. 왜? 왜 나를 여기에 두었을까? 엄마, 아빠. 누나. 1980년대의 목소리. 누나, 아파. 누나 제발.

손을 뗐다.

각각의 기억이 다르게 나를 갉아먹었다. 첫 번째는 애절함이었고, 두 번째는 자책이었고, 세 번째는 분노였다. 그들의 감정이 모두 다르게 나를 침식했다. 나는 그들 중 누구도 아니었지만, 모두였다.

손전등의 불빛이 흔들렸다.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내 손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 여러 누군가의 손. 지하실에서 죽어간 모든 손들이 지금 이 손을 통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내려놓았다. 어둠이 다시 왔다.

"누나?"

목소리였다. 지하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린 목소리. 아주 작은,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

"여기 있어?"

나는 목소리 쪽으로 향했다. 손을 앞으로 뻗었다. 벽을 만졌다. 벽이 따뜻했다. 아니, 벽이 맥박을 치고 있었다. 저택이 살아 있었다. 저택이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누나, 제발."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제발 나가지 마."

나는 멈췄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생각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각하는 대신, 나는 그 목소리에 응답했다.

"난 안 나가."

내 목소리였다. 아니,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누구의 목소리인가? 이준호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저택의 목소리인가? 그 경계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난 이미 나갈 수 없어."

나는 중얼거렸다. 혹은 저택이 나를 통해 중얼거렸다.

손전등을 다시 켰다. 불빛이 지하실을 비추었다. 지하실의 구석 저쪽에 상자가 있었다. 낡은 목재 상자. 그 위에 천이 덮여 있었다. 천 아래로 뭔가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상자로 향했다. 천을 걷어냈다.

뼈였다.

작은 뼈들. 아이의 뼈들. 얼마나 오래 여기 있었을까? 몇십 년? 몇백 년? 시간이 의미가 없었다. 시간은 저택 안에서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저택 안에서 응결된다.

나는 뼈를 만졌다.

1987년 8월 15일. 그날이 나타났다.

---

어린 아이다. 나는 어린 아이다. 아니, 아이의 누나다. 하지만 누나의 몸으로 이 장면을 보고 있다. 아이가 손을 잡고 있다.

"누나, 아파."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의 손이 차갑다. 아이의 호흡이 약해진다. 나는 아이를 안으려고 한다. 하지만 안을 수 없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팔이 움직여도 아이를 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죽어 있기 때문이다.

"누나, 제발."

아이가 울부짖는다. 하지만 나는 응답할 수 없다. 목소리가 없다. 내가 죽은 누나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봤던 것. 누군가를 도와주지 못했던 그것.

아이의 손이 차가워진다. 더 차가워진다. 아이의 울음이 약해진다. 더 약해진다.

그리고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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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을 뗐다.

지하실의 어둠이 다시 왔다. 손전등이 여전히 켜져 있었다. 뼈들이 불빛 아래로 보였다. 그리고 뼈들 옆에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종이. 낡은 종이. 편지.

나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봉투였다. 봉투의 표면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준호에게'

내 이름이었다. 아니,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 편지를 나를 위해 남겨두었다.

나는 봉투를 열려고 했다. 손가락이 봉투의 모서리를 찾았다. 하지만 열 수 없었다. 손이 떨렸다. 봉투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다시 집어 들었다. 이번엔 더 세게 잡았다.

뭐가 적혀 있을까?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편지를 열면 뭔가 바뀔까? 나를 구할 수 있을까?

손가락이 봉투를 찢으려 했다. 그 순간, 내 팔이 멈췄다. 저택이 나를 멈추게 했다. 아니, 나 자신이 멈추게 했다. 둘의 경계가 사라졌으니, 그것도 상관없었다.

나는 봉투를 내려다봤다. 봉투 위에 내 피가 떨어져 있었다. 봉투의 글씨가 번졌다. '이준호에게'라는 글씨가 흐려졌다.

이준호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봉투를 떨어뜨렸다. 봉투가 뼈 위에 떨어졌다. 나는 손을 들었다. 손전등이 손을 비추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부어 있었다. 피부가 회색이었다. 손가락 끝이 차갑다. 그것은 더 이상 내 손이 아니었다.

나는 손을 봤다. 다른 손을 봤다. 그 손도 다른 손이었다. 여러 개의 손. 여러 명의 손. 모두 지하실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손.

나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명의 목소리가 한 번에 나왔다.

지하실이 울고 있었다. 저택이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울음의 일부였다.

---

나는 현관에 있었다.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지하실에서 계단을 올라온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이 없었다. 그냥 여기에 있었다. 현관의 문 앞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오며 정체성이 더 흐릿해졌다. 누가 올라오고 있는 건지. 내가 올라오는 건지. 아니면 저택이 나를 끌어올린 건지. 그 경계가 사라졌다.

나는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얼굴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입이 벌어졌다. 내 입과 다른 각도로. 눈이 깜빡였다. 내 눈과 다른 리듬으로. 거울 속 형상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짓지 않은 미소.

나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문을 열고 싶었다. 손잡이를 잡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잠겨 있었다.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주변을 봤다. 현관 테이블 위에 열쇠가 있을 것 같은 모양의 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열쇠는 없었다. 혹은 내가 그것을 열쇠로 인식할 수 없었다. 내 기억이 그것을 열쇠라고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거울을 다시 봤다.

거울 속의 얼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저택의 웃음이었다. 저택이 나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리는 웃음.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웃음에 응답했다.

내 목소리가 아닌 여러 목소리로.

현관의 문이 완전히 닫혔다.

열쇠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열쇠를 찾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쇠는 필요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저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지하실에서 다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발의 발소리. 아니, 한 명의 발이 여러 번 내려찍는 소리.

그리고 현관 문이 두드려졌다.

똑. 똑. 똑.

박수현이 처음 도착했을 때와 같은 차분한 리듬이었다. 하지만 리듬이 점점 변했다. 속도가 빨라졌다. 더 빨라졌다. 마치 누군가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그리고 그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 나 왔어."

박수현의 목소리였다.

아니, 박수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박수현을 흉내 낸 무언가의 목소리였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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