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이경호의 기억

지하실에서 깨어났을 때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1층 복도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거실을 칠했다. 시계를 봤다. 오전 9시 47분. 어제 밤 12시 43분에 계단을 내려갔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흘렀다. 아니면 안 흘렀다. 구분이 안 됐다.

서재 책장 옆에 낡은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오래전에 집어던진 것처럼, 책장 밑바닥에 구겨진 채로 누워 있었다. 봉투였다. 흰 봉투의 표면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경호에게'

손가락이 또다시 떨렸다. 경호. 저택의 이전 주인. 20년 전에 이곳을 떠난 사람. 공식 기록에는 자살로 기록되어 있던 사람.

내 손이 봉투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움직였다.

봉투를 만지는 순간, 세계가 뒤집혔다.

---

**검은색. 벽의 색이 검은색이다.**

아니, 벽이 검은색이 아니라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밤이다. 깊은 밤이다. 손이 차갑다. 손가락 끝이 마비되었다. 며칠을 먹지 않았나. 아니다. 며칠을 자지 않았다.

탁자 위에 약병이 있다. 약병의 라벨이 흐릿하다. 손을 뻗어 약병을 집어 든다. 알약이 한 움큼 남아 있다. 한 움큼이면 충분하다. 충분하다.

물잔이 필요하다. 주방에 가야 한다. 주방은 1층이다. 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계단이 보인다. 계단이 무섭다. 계단을 내려가면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

손가락이 약병을 집어 쥔다. 약병이 따뜻해진다. 손의 온기가 약병으로 옮겨진다. 따뜻함이 사라진다. 손이 다시 차가워진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 "누나?"

목소리다. 어린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약이 필요 없어진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게 필요 없어진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여기에 없다. 여기에 없는데 들린다.

"누나, 여기 있어?"

다시 들린다. 목소리가 더 가까워진다.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목소리가 내 목에서 나온다. 목소리가 내 마음에서 나온다.

약병이 손에서 떨어진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알약이 굴러간다. 하나, 둘, 셋. 알약을 다시 줍는 것은 너무 힘들다.

"누나!"

목소리가 비명이 된다. 비명이 절규가 된다. 절규 속에 무언가 있다. 절규 속에 이름이 있다. 절규 속에 경호가 구하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

손이 벽을 짚는다. 벽이 차갑다. 벽이 움직인다. 벽이 숨을 쉰다. 벽이 나를 부른다.

"이제 끝이야."

목소리가 내 목에서 나온다. 내 입에서 나온다. 내 심장에서 나온다.

---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손가락 끝의 차가움이 남았다.

봉투는 여전히 내 손에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떨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마비된 것처럼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 신경이 끊어진 것처럼.

나는 봉투를 책장 아래 다시 집어넣었다. 손을 떨어뜨렸다. 손이 내 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경호의 기억이 내 몸에 남아 있었다. 경호의 절망이 내 가슴에 앉아 있었다. 경호의 약병이 내 손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들린 목소리가—"누나?"—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누구를 구하지 못했나. 경호는 누가 되어야 했나. 경호의 누나는 누구였나. 경호의 동생은 왜 절규했나.

---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음식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어제 준비한 음식이었나. 언제 준비한 음식이었나. 며칠 전인가. 1주일 전인가.

음식을 집어 들고 씹었다. 맛이 없었다. 맛이 경호의 맛이었다. 삼키기가 힘들었다. 경호의 목구멍으로 음식이 내려갔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수현이었다. 화면에 이름이 떠 있었다. 박수현. 현실의 사람. 저택 밖의 사람. 아직 내가 준호인지 확인해주는 사람.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을 수가 없었다. 받으면 무언가 깨질 것 같았다. 받으면 현실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가면 경호가 남겨진다. 경호가 계속 부른다. 경호가 나를 끌어당긴다.

전화가 울다가 끝났다. 문자가 왔다.

"준호, 제발 응답해. 너 괜찮아?"

나는 거울을 피했다. 거울 속에 누가 있을지 몰랐다.

거실로 나갔다. 햇빛이 따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거실의 거울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거울을 돌려 놓았다.

문자를 보냈다. 손가락이 화면을 치면서 경호의 손가락이 되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되었다 누군가 모르는 손가락이 되었다.

"괜찮아. 내일 나간다."

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화면 속 내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 속의 얼굴이 내 얼굴이 맞나. 사진이 언제 찍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저택 밖에 있었다.

내일 나간다. 거짓말이었다. 나갈 수 없었다. 저택이 놓지 않았다. 경호가 놓지 않았다. 내 안의 누군가가 놓지 않았다.

"나는 준호다."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준호다."

다시 말했다. 이번엔 더 크게.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준호라는 이름이 자꾸 멀어졌다. 준호라는 이름이 내 손가락 끝에서 떨어져 나갔다.

---

밤이 되었다. 창문 밖의 하늘이 검어졌다. 저택 안의 어둠이 더 진해졌다. 불을 켰다. 거실의 불이 켜졌다. 2층의 불이 켜졌다. 지하실의 불이 켜졌다. 모든 불이 동시에 켜졌다. 하지만 여전히 어두웠다. 불이 어둠을 밀어내지 못했다. 어둠이 불을 삼켰다.

거실로 나갔다. 거울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거울 속의 얼굴을 봤다. 이경호의 얼굴이었다. 뺨이 쑥 들어가 있었다. 눈이 초점을 잃고 있었다. 입이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눈을 깜박였다. 거울 속의 얼굴이 변했다. 이준호의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것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일 수 있었다. 거울은 거짓말을 한다. 아니면 거울이 진실을 말한다. 거울 앞에 선 내가 거짓말을 한다.

"누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이번엔 어디서 나는 목소리였나. 거실에서인가. 2층에서인가. 지하실에서인가. 거울 속에서인가. 내 목에서인가.

"누나, 여기 있어?"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목소리가 내 귀에 붙는다. 목소리가 내 뇌에 스며든다. 목소리가 내 심장에 박힌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2층 복도를 걸었다. 어린이 방의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안에는 곰인형이 있었다. 곰인형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곰인형의 눈이 경호의 눈이었다.

"누나!"

목소리가 지하실에서 들렸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1층 복도를 걸었다. 주방 옆 나무문이 열려 있었다. 지하실 계단이 보였다. 어둠이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서재로 들어갔다.

1923년 일기장이 책장에 있었다. 초대 주인 이경서의 일기장이었다. 내 손이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또다시 떨렸다. 손가락이 차가워졌다.

"나는 누구인가."

내 입에서 이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 말은 내 말이 아니었다. 이 말은 경호의 말이었다. 이 말은 이경서의 말이었다. 이 말은 저택의 말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 목소리가 여러 개였다.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서랍을 열었다. 편지가 있었다.

편지 위에 글씨가 있었다. "이경호"라고 적혀 있었다. 글씨가 흔들렸다. 글씨가 누군가의 손가락 떨림을 기록하고 있었다. 글씨가 누군가의 절망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편지에 닿는 순간, 세상이 검어졌다.

---

나는 거울 앞에 서 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다. 빼쨍한 얼굴이다. 눈이 초점을 잃었다. 입이 일직선이다. 손가락이 떨린다.

이것은 내 손가락이 아니다. 이것은 경호의 손가락이다. 이것은 경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이것은 경호의 손가락이 거울 앞에서 떨리고 있다.

거울 속에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거울 속의 거울 속의 얼굴이다. 그 얼굴이 웃고 있다. 그 얼굴이 내 얼굴이다. 아니다. 그 얼굴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이다. 그 얼굴이 어린 아이의 얼굴이다.

"누나?"

목소리가 거울 속에서 나온다. 거울이 내 목소리를 되돌려준다. 아니다. 거울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되돌려준다. 거울이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되돌려준다. 경호의 동생의 목소리를 되돌려준다.

나는 거울을 돌려본다. 거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벽만 있다. 벽이 검다. 벽이 오래되었다. 벽이 누군가의 눈물을 머금고 있다. 벽이 누군가의 절망을 기억하고 있다.

"누나, 여기 있어?"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이번엔 거울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번엔 내 뒤에서 나온다. 나는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서재가 비어 있다. 책장이 비어 있다. 공간이 비어 있다. 공간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서재에서 나간다. 복도로 나간다. 계단을 본다. 계단이 아래로 내려간다. 계단이 지하실로 내려간다. 계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계단이 무한히 내려간다. 계단 아래에 누군가가 있다. 계단 아래에 어린 아이가 있다.

"누나!"

비명이 나온다. 비명이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 비명이 나의 귀에 박힌다. 비명이 나의 뇌에 스며든다. 비명이 나의 심장에 박힌다.

나는 계단을 내려간다. 발이 계단을 밟는다. 발가락이 차갑다. 다리가 떨린다. 무릎이 구부러진다. 나는 계단을 내려간다.

"누나, 빨리!"

아이의 목소리가 더 크다. 아이의 목소리가 절박하다. 아이의 목소리가 죽어가고 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간다. 더 빨리 내려간다. 발이 미끄러진다. 손가락이 난간을 잡는다. 손가락이 떨린다.

계단이 끝난다. 지하실의 바닥에 발이 닿는다. 어둠이 나를 감싼다. 손전등을 켜려 한다. 손전등이 없다. 손전등을 어디에 뒀나. 나는 손전등을 본 적이 없다. 경호도 손전등을 본 적이 없다. 어두운 지하실에서 경호는 무엇을 봤나.

"누나?"

목소리가 더 약해진다.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목소리가 죽어가고 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손을 뻗는다. 손이 누군가를 잡으려 한다. 손이 공기를 잡는다. 손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잡는다.

"여기 있어... 제발..."

목소리가 마지막이다. 목소리가 끝난다. 목소리가 죽는다. 목소리가 저택의 기억이 된다. 경호의 동생이 저택의 기억이 된다.

나는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는다. 손이 바닥에 닿는다. 바닥이 차갑다. 바닥이 축축하다. 바닥이 누군가의 눈물인가. 누군가의 피인가. 누군가의 죽음인가.

"죄송합니다."

내 입에서 이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경호의 말이다. 경호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다. 경호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경호가 저택에 하는 말이다. 경호가 자신의 죽음에 하는 말이다.

"구하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말이 나온다. 이것도 경호의 말이다. 경호가 누군가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경호가 누군가를 구하지 못했다. 경호가 어린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 경호가 누나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경호가 누군가의 누나였다.

기억이 흐릿해진다. 기억이 끝난다. 어둠이 걷혀간다. 불이 나타난다.

---

나는 서재 바닥에 누워 있다. 편지가 손에 쥐어져 있다. 편지가 구겨져 있다. 편지가 누군가의 손가락 자국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편지를 놓는다. 편지가 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일어난다. 무릎이 구부러진다. 손이 바닥을 짚는다. 손이 떨린다. 손가락이 경호의 손가락이 되어 있다. 손가락이 경호의 절망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거울을 찾아 나간다. 거울이 어디 있나. 1층 거실이다. 나는 계단을 내려간다. 발이 계단을 내려간다. 발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발이 되고 있다.

거실에 도착했다. 거울이 있었다. 거울 속에 형상이 있었다. 형상의 얼굴이 경호의 얼굴이었다. 형상의 눈이 내 눈이 아니었다. 형상의 입이 내 입이 아니었다. 형상이 웃고 있었다. 형상이 울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 어린 아이의 얼굴이다.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절규하고 있다. 아이가 경호를 부르고 있다.

"경호... 넌 뭐였어?"

내 목에서 이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내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의 질문이다. 어린 아이가 경호에게 묻고 있다. 어린 아이가 경호를 찾고 있다. 어린 아이가 자신을 버린 누나를 찾고 있다.

"누가 너였어? 누가 날 남겨뒀어?"

또 다른 목소리가 거울 속에서 나온다. 거울 속에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 얼굴이 어린 아이의 얼굴이다.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절규하고 있다. 아이가 죽어가고 있다.

"미안해... 미안해..."

경호의 목소리가 나온다. 거울 속에서 경호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 경호가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경호가 자신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죽이고 있다. 경호가 동생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죽이고 있다.

"왜? 왜 날 놔뒀어?"

"미안해... 난 할 수 없었어... 난 할 수 없었어..."

"누나! 누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목소리들이 겹친다. 목소리들이 섞인다. 목소리들이 하나가 된다. 거울 속의 얼굴들이 겹친다. 얼굴들이 하나가 된다. 얼굴이 더 이상 누군가의 얼굴이 아니다. 얼굴이 저택의 얼굴이 된다.

나는 거울에 손을 뻗는다. 손가락이 거울에 닿는다. 거울이 움직인다. 거울이 손을 잡는다. 거울 속의 손이 나의 손을 당긴다. 거울이 나를 빨아당긴다.

"이제 끝이야."

누가 말하는가. 나인가. 거울인가. 경호인가. 어린 아이인가. 저택인가.

손이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팔이 따라간다. 가슴이 거울에 닿는다. 거울이 나를 삼킨다. 나는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밤이 깊어진다. 거실의 불이 꺼진다. 거울 속에서 손이 나온다. 손이 내 침대의 옆에 닿는다. 손가락이 내 얼굴에 닿는다. 손가락이 내 눈을 감긴다.

"이제 끝이야."

내 입에서 이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내 말이 아니다. 이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말이다. 이것은 경호의 말이다. 이것은 어린 아이의 말이다. 이것은 저택의 말이다.

나는 잠든다.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나는 거울이 된다. 거울 속에서 누군가를 본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 누군가가 나를 만진다.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새벽 5시 12분. 내 눈이 뜬다. 천장을 본다. 천장에 금이 있다. 금 사이로 누군가가 내려다본다. 얼굴이 경호인가. 얼굴이 어린 아이인가. 얼굴이 나인가.

손을 뻗는다. 손가락이 천장을 만지려 한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손가락이 더 이상 내 손가락이 아니다. 손가락이 경호의 손가락이 된다. 손가락이 경호의 동생의 손가락이 된다.

---

바깥에서 소리가 난다. 자동차 소리다. 자동차가 저택 앞에 멈춘다. 엔진이 꺼진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발걸음이 들린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이다. 누군가가 현관 앞에 서 있다.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이 열린다.

발걸음이 거실로 들어온다. 한 발, 또 한 발. 발걸음이 멈춘다. 누군가가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나타나는 형상을 본다. 그 사람의 호흡이 빨라진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침대에 고정되어 있다. 침대가 나를 놓지 않는다. 저택이 나를 놓지 않는다.

아래층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의 목소리다. 낯선 목소리다. 새로운 손님의 목소리다.

"여기... 뭔가 이상한데."

그 목소리가 말한다. 그 목소리가 무언가를 느낀다. 그 목소리가 저택의 기억을 감지한다.

나는 천장을 통해 그 사람을 볼 수 있다. 그 사람이 거울을 본다. 그 사람이 거울 속의 형상을 본다. 그 사람의 손이 거울을 만지려고 천천히 뻗어진다. 손가락이 거울 표면에 닿는다.

그 순간, 내 눈이 감긴다.

다시 열린다.

내 눈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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