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에서 올라오는 길, 계단의 손잡이가 차갑다. 손끝이 떨린다. 어제는 몇 번을 올라왔는가. 몇 번을 내려갔는가. 기억이 섞여 있다. 저 아래서 울던 목소리와 위층에서 들린 울음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1층 거실에 도착했을 때 창밖은 여전히 어둡다. 아침이어야 할 시간인데 밤처럼 검다. 손목시계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숫자가 읽힌다. 그렇다면 아침이 맞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입 안에서 무언가가 맴돈다. 소리를 낸다.
"이준호. 이준호."
중얼거린다. 음절을 띄어서, 마치 처음 배우는 단어처럼. 혀가 낯설다. 이 이름이 정말 내 것인가.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불렀던 기억이 있는가. 어머니의 목소리, 학교 선생님의 목소리, 친구의 목소리. 모두 멀다. 모두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것 같다.
"이준호."
한 번 더. 이번엔 의문문처럼 들린다.
화장실의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이 있다. 눈, 코, 입. 모두 제자리에 있다. 하지만 어제의 얼굴과 다르다. 피로 때문일 것이다. 밤을 샤다. 며칠을 샤다. 저택에 온 후로 언제 제대로 잤는가. 눈이 푹 꺼져 있다. 광대뼈가 더 튀어나왔다. 살이 빠진 건가. 아니다. 그냥 피로다.
거울에 손을 댄다. 접촉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기억이 흐르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미 흐르고 있다. 누군가의 절망이 유리 너머에서 나를 본다.
손을 떼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김태성'이라고 떴다. 유산 정리 담당자. 얼굴을 보고 싶지 않지만 받아야 한다. 버튼을 눌렀다.
"네."
음성이 먼저 들렸다. 차갑고 건조했다.
"준호.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
"목록을 작성 중입니다."
거짓이다. 나는 목록을 작성하지 않았다. 기억을 먹고 있었다.
"며칠째냐?"
"사흘째입니다."
"사흘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3층까지 다 돌아봤나?"
"네, 다 봤습니다."
또 거짓이다. 3층 다락방은 아직 본 적 없다.
"그럼 내일까지 완료 보고를 받아야겠다."
준호의 목이 말라왔다.
"죄송하지만 좀 더 시간이..."
"더 시간이?" 태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3일 안에 기본 정리를 완료한다는 게 계약이었다. 이미 1일이 더 지났고, 앞으로 정확히 2일만 남았다. 그 안에 작업을 끝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보낼 것이다. 그러면 너한테 페널티가 생긴다."
"알겠습니다."
"정말 알겠냐? 이건 단순한 업무지 놀러 가는 게 아니다. 너 기숙사비도 받고 있고, 이 일이 진로 기록에 남는다."
"예. 이해합니다."
"그래. 그럼 내일 저녁 6시까지 1차 보고를 받는다. 물품 목록, 폐기 물품, 판매 물품으로 분류해서 사진과 함께 보낸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좋아. 화이팅."
전화가 끊어졌다.
손에 흙이 묻어 있는 것 같다.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었다. 물이 차갑다. 비누 거품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물로 헹구면서 생각했다.
3일. 정확히 3일이면 충분하다.
이 생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하다. 3일 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끝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인가를 구해야 한다.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
아침을 먹지 않았다. 먹을 수 없었다. 배가 고프지 않다. 어제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제가 언제인지도 애매하다.
3층으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계단의 나무가 삐걱거린다. 2층을 지나갈 때 어린이 방의 문이 조금 열려 있다. 곰인형이 보인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본다는 것을 느낀다.
3층은 다락방이다. 천장이 낮고, 햇빛이 창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온다. 먼지가 공중에 떠 있다. 그 속에서 먼지 입자들이 춤을 춘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오래된 짐들이 쌓여 있다. 상자, 가구, 헝겊. 그리고 사진.
사진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누군가가 일부러 여기 놓았을 것 같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사진을 집어 들었다.
흑백 사진이다. 1920년대 것으로 보인다. 가족이 보인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모두 웃고 있다. 정원에 앉아 있고, 햇빛이 그들을 비춘다. 행복해 보인다.
기억이 흐른다.
나는 그 아버지가 된다. 손에는 딸의 손이 있고, 아내는 옆에 있다. 태양이 따뜻하고, 세상이 완전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모든 것이 옳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이 순간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기억 속에는 빈틈이 있다.
사진 속 가족은 다섯 명이어야 하는데, 네 명만 있다. 누군가 빠져 있다. 그 빈 공간을 보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행복 속에 구멍이 뚫려 있다.
기억이 끝났다.
손에 사진이 들려 있다. 다시 봐도 다섯 명이 아니라 네 명이다. 원래 그런 사진인가. 아니면 내가 본 것이 다른 현실이었나.
다른 사진을 집어 들었다.
이번엔 1950년대다. 다른 가족이다. 역시 정원에서 찍은 것 같다. 역시 웃고 있다. 역시 뭔가 빠져 있다. 이번엔 아이다. 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모든 사진이 그렇다.
행복한 순간들. 하지만 모두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의 사진. 저택은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저택에서는 모든 행복이 불완전하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거실의 거울 앞을 지나갔다. 반사가 있다. 내 모습이 보인다.
움직임을 멈췄다.
아침의 내 얼굴과 지금의 내 얼굴이 다르다. 윤곽이 흐릿하다. 마치 물속의 형상처럼 떠있는 것처럼. 눈이 더 깊어 보인다. 입가가 더 처져 보인다.
아니다. 이건 피로다. 조명 때문이다. 거울의 나이 때문이다.
눈을 비비고 고개를 젓다.
하지만 거울 속의 형상은 계속 나를 본다. 그것이 정말 나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수현이었다.
"여보세요?"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가 내 것인지 확인하려고.
"준호? 너 목소리가... 뭔가 이상한데.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정말? 자고 있었어? 아침에 전화했는데 안 받더니."
"죄송합니다."
"아니, 뭐가 미안해. 그냥 넌 지금 뭐 하고 있어?"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야, 얘기 좀 해줄래? 뭐가 그렇게 바빠?"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형상도 휴대폰을 들고 있다.
"준호?"
"네."
"뭐야, 답변이 그게 다야?"
"죄송합니다. 시간이..."
"아, 알겠어. 너 저택이 뭔가 이상해? 정말로."
"이상한 게 없습니다."
거짓이다.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이것을 박수현에게 설명할 수 없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알겠어. 그럼 내일 너 만나자. 저택 밖에서."
"일정이 촉박해서..."
"촉박하고 뭐고, 넌 나가야 해. 정말로. 너 목소리 들으니까 뭔가 이상해. 제대로 쉬고 있어?"
"네."
"거짓말 치지 말고."
침묵이 흘렀다.
"내일 오후 3시. 저택 앞. 나올 수 있지?"
준호는 생각했다. 내가 저택을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저택을 떠날 수 있을까.
"네."
"정말? 약속해."
"약속합니다."
"좋아. 그럼 내일 봐."
전화가 끊어졌다.
준호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형상도 휴대폰을 내렸다. 두 눈이 마주쳤다.
내가 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 거울 속의 형상이 조금 웃음을 띠는 것 같았다.
지하실에서 울음이 들렸다.
더 깊고, 더 절박한 울음.
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계단을 내려갔다. 어둠 속으로.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내일 박수현을 만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나를 부르고 있다.
# 3일의 경고
아침 햇빛이 1층 거실을 가로지를 때, 준호는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준호. 이준호."
목소리를 낸다. 그 음절이 자신의 것인지 확인하려고. 입술을 움직이고, 혀를 굴리고, 성대를 울린다. 이준호. 이준호. 이준호.
반복할수록 단어의 의미가 흐릿해진다. 그냥 음성이 된다. 신호가 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름처럼 들린다.
준호는 손을 멈췄다.
어제 밤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하실의 어둠. 사진들. 그리고 거울. 특히 거울 속의 형상. 그것이 자신이었는지, 누군가 다른 사람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어제 아침의 거울과 어제 저녁의 거울이 다른 얼굴을 비췄다. 혹은 같은 얼굴이 시간에 따라 변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김태성'이라고 떠 있다.
준호는 한 번 깊게 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다.
"네, 태성님."
"준호.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나?"
목소리에 온기가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랬다. 태성은 준호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일을 처리하는 도구로 본다. 효율성을 측정하는 기계로 본다.
"물품 목록화가 진행 중입니다. 아직..."
"진행 중이 아니라 완료가 되어야 한다."
"예?"
"너는 3일 전에 들어갔다. 오늘이 3일째다."
준호는 달력을 확인했다. 맞다. 오늘이 3일째다.
"이제 정확히 24시간이 남았다. 24시간 안에 목록을 작성하고 폐기 물품을 분류해야 한다. 그다음엔 처분업체를 불러서 운반하는 것까지 완료해야 한다."
"3일은 너무 짧습니다. 저택이 크고..."
"짧든 길든 계약상 3일이다. 너는 계약을 읽지 않았나?"
준호는 계약서를 생각했다. 계약서를 읽었다. 3일이라는 기한이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것이 단순한 유산 정리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물품 목록화. 분류. 처분.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땐 저택이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24시간이 남아 있다. 만약 이 시간 안에 작업을 완료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
"다른 사람을..."
"너는 이 일에서 빠진다. 급료는 절반만 지급되고,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일할 기회는 없다. 알겠나?"
침묵이 흘렀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24시간 후에 연락을 기다리겠다. 완료 보고."
전화가 끊어졌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린다. 아니, 손이 떨리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떨린다. 가슴이 떨린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저택 자체가 떨린다. 벽이 떨린다. 천장이 떨린다. 모든 것이 진동한다.
혹은 그렇게 느껴진다.
준호는 일어섰다. 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책장을 본다. 소파를 본다. 카펫을 본다. 모든 것이 기억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다.
3일이면 충분하다.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 준호는 자신이 뭔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24시간 안에 작업을 완료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준호가 저택을 떠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저택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
준호는 3층으로 올라갔다.
다락방의 문을 열었다. 먼지가 날린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그 빛 속에서 먼지 입자들이 춤을 춘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의 영혼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오래된 상자들이 쌓여 있다. 사진첩. 편지. 일기장. 옷가지. 모든 것이 시간 속에 갇혀 있다.
준호는 상자를 열었다. 사진들이 나온다.
1920년대다. 저택의 초대 주인이라고 추정되는 남자와 여자. 그들 옆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다. 모두 웃고 있다. 정원 배경. 햇빛. 행복.
그런데 뭔가 빠져 있다.
사진을 더 자세히 본다. 다섯 명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네 명이 있다. 한 명의 아이가 사진에서 사라져 있다. 혹은 원래 없었다. 혹은 사진이 손상되었다.
준호의 손이 떨린다.
다른 사진을 집어 든다. 1950년대다. 다른 가족이다. 역시 정원에서 찍은 것 같다. 역시 웃고 있다. 역시 뭔가 빠져 있다. 이번엔 아이다. 아이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자리를 지우려고 한 것처럼.
모든 사진이 그렇다.
행복한 순간들. 하지만 모두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의 사진. 저택은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저택에서는 모든 행복이 불완전하다. 모든 웃음이 거짓처럼 들린다. 모든 순간이 마지막 순간처럼 느껴진다.
준호는 사진들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이 사진의 가장자리를 스쳤을 때, 기억이 흐른다.
정원이다. 햇빛이다. 다섯 명의 가족이 카메라를 보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세 명의 아이. 모두 웃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 여섯 번째 사람이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
그 사람의 관점에서 본 세상. 그 사람의 손에 들린 카메라. 그 사람의 눈으로 본 가족.
기억이 끝난다.
준호는 1층으로 내려왔다. 거실을 통과한다. 식당을 통과한다. 거울 앞을 지난다.
움직임을 멈춘다.
반사가 있다. 내 모습이 보인다.
아침의 내 얼굴과 지금의 내 얼굴이 다르다. 윤곽이 흐릿하다. 마치 물속의 형상처럼 떠 있는 것처럼. 눈이 더 깊어 보인다. 입가가 더 처져 보인다. 광대뼈가 더 뚜렷해 보인다.
아니다. 이건 피로다. 조명 때문이다. 거울의 나이 때문이다.
눈을 비비고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거울 속의 형상은 계속 나를 본다. 그것이 정말 나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수현이었다.
"여보세요?"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가 내 것인지 확인하려고. 어제와 같은 목소리인지. 지난주와 같은 목소리인지.
"준호? 너 목소리가... 뭔가 이상한데.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정말? 자고 있었어? 아침에 전화했는데 안 받더니."
"죄송합니다."
"아니, 뭐가 미안해. 그냥 넌 지금 뭐 하고 있어?"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야, 얘기 좀 해줄래? 뭐가 그렇게 바빠? 며칠 안 봤는데 목소리가 진짜 이상해."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형상도 휴대폰을 들고 있다.
"준호?"
"네."
"뭐야, 답변이 그게 다야? 저택이 뭔가 이상해? 정말로."
"이상한 게 없습니다."
거짓이다.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이것을 박수현에게 설명할 수 없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저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언어 밖에 있다. 현실 밖에 있다.
"알겠어. 그럼 내일 너 만나자. 저택 밖에서."
"일정이 촉박해서..."
"촉박하고 뭐고, 넌 나가야 해. 정말로. 너 목소리 들으니까 뭔가 이상해. 제대로 쉬고 있어?"
"네."
"거짓말 치지 말고."
침묵이 흘렀다. 거울 속의 형상도 침묵하고 있다.
"내일 오후 3시. 저택 앞. 나올 수 있지?"
준호는 생각했다. 내가 저택을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저택을 떠날 수 있을까. 내가 저택을 떠나고 싶을까.
"네."
"정말? 약속해."
"약속합니다."
"좋아. 그럼 내일 봐."
전화가 끊어졌다.
준호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형상도 휴대폰을 내렸다. 두 눈이 마주쳤다.
내가 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 거울 속의 형상이 조금 웃음을 띠는 것 같았다.
아니다. 착각이다.
지하실에서 울음이 들렸다.
더 깊고, 더 절박한 울음. 어제와는 다른 울음. 더 많은 목소리들이 겹쳐 있다. 한 명의 아이만이 아니라, 여러 아이들. 여러 사람들. 모두 도움을 청하고 있다.
혹은 모두 나를 부르고 있다.
준호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계단으로 향했다.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어둠 속으로.
박수현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내일 오후 3시. 저택 앖. 24시간 후. 그렇다면 24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24시간이면 충분하다.
누군가를 구하기에는. 누군가를 기억하기에는. 누군가가 되기에는.
계단 아래는 완전한 어둠이다. 손을 뻗어도 보이지 않는다. 발을 내려도 바닥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마치 가라앉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울음이 들린다. 계속 울음이 들린다.
준호는 어둠 속으로 한 발 더 내딛는다.
그리고 또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자신이 그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제의 준호와 오늘의 준호가 다르다. 오늘의 준호와 내일의 준호도 다를 것이다.
언제쯤 준호가 아닌 누군가 다른 것이 될까.
혹은 이미 되어 있는 걸까.
지하실의 어둠이 준호를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