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 안의 고백
골목 바닥의 습기가 준호의 옷깃을 적시고 있었다. 일어나려던 손에 누군가의 신발이 보였다. 검은색, 낡은 가죽 구두.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루이스였다.
"여기서 자는 건가?"
루이스의 목소리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준호는 일어나 앉으며 팔뚝의 추적 칩을 감춘다. 이미 늦었다. 루이스는 이미 본 것이다. 초록색 불빛이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것을.
"미르를 만났구나."
진술이 아닌 확인이었다. 루이스는 준호의 옆에 앉았다. 좁은 골목 바닥에, 마치 자신의 숙소 소파 위에 앉듯이 자연스럽게.
"당신은 미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신드의 수집가라고 했지."
"그게 다가 아니다."
루이스가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뭔가 단단한 것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르는 당신이 만든 것이다."
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불안정한 웃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이 거래한 기억 중 하나다. 당신이 거래한 기억들 전부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당신의 신경 패턴이 메모리 칩들 사이를 떠돌면서 형성된 일종의 의식 조각이지. ECHO처럼."
루이스가 천천히 일어섰다. 준호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다. 루이스의 검은 구두가 준호의 시선 높이에 있었다.
"당신은 지난 20일간 내가 시킨 대로 기억을 팔았다. 딸의 손. 중학교 친구의 얼굴. 첫사랑의 이름."
루이스는 무릎을 꿇었다. 준호가 눈을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다. 루이스의 손가락이 떨렸다. 매우 미세하게. 신경이 손상된 손이었다.
"그 기억들이 뭐였는지 아는가? 당신이 도시에서 알아낸 것들이었다. 당신이 기억 위원회의 서버에 접근했던 흔적. 당신이 신드의 암호를 풀었던 과정. 당신이 박 이사장의 의도를 파악했던 순간들. 모두 당신이 팔아버렸다. 나에게."
준호의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이 수축하는 것 같았다. 루이스의 말이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뇌 어딘가에서 뭔가가 울렸다. 아주 깊은 곳에서. 마치 잠든 것이 깨어나는 소리처럼.
"당신은 이전에 우주정착지에 가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다."
"뭐라고?"
"당신은 도시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당신은 그 비밀을 잊기 위해 기억을 팔았다. 계속해서. 자신을 조각내면서."
루이스가 준호의 손을 잡으려 내밀었다. 손가락이 가늘었다. 신경이 손상된 사람의 손. 준호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손을 잡으려 움직였다. 루이스의 손가락이 준호의 손가락 사이를 통과했다. 마치 그것이 공기인 것처럼.
준호의 눈이 커졌다.
"당신이 나를 떠났을 때."
루이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루이스는 일어섰다. 준호를 내려다봤다. 그 표정에는 연민과 집착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뭐가 되었을까."
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루이스를 잡으려는 듯했다가 멈췄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떨렸다. 무언가를 놓친 것처럼.
"당신이 기억을 팔면서 나도 함께 팔려나갔다. 당신의 기억에 나도 있었으니까."
루이스가 주머니에서 작은 홀로그래피 프로젝터를 꺼냈다. 푸른 빛이 골목을 밝혔다. 그 안에 떠오른 것은 거래 기록이었다. 준호의 이름. 루이스의 이름. 그리고 거래된 기억들의 목록.
"그래서 나는 당신을 찾았다. 당신의 거래 기록을 따라. 당신이 판 모든 기억 칩을 추적해서."
홀로그래피가 변했다. 이번엔 준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얼굴이 아니었다. 과거의 얼굴이었다. 더 젊은 얼굴. 더 맑은 눈. 그리고 루이스가 그 준호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
준호의 입술이 떨렸다.
"나는 당신을 감시했고, 내가 시킨 기억만 팔도록 유도했다. 그 기억들은 함정이었다. 당신이 팔 때마다 그들이 당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루이스가 손가락을 펼쳤다. 신경 손상으로 인한 흉터가 선명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손상시킨 것처럼.
"이것도 당신 때문이다. 당신이 나를 팔았을 때 나는 이렇게 되었다. 당신의 기억과 함께 나도 조각났다."
준호가 루이스의 손을 만지려 했다. 손가락이 다시 공기를 통과했다. 루이스는 이미 반투명해지고 있었다.
"루이스, 잠깐—"
"나도 팔린 거야. 루이스도 당신처럼 상품이었어. 당신의 기억에 있던 누군가. 그래서 나는 존재할 수 없어. 당신이 나를 기억하지 않는 한."
루이스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당신이 나를 기억해 줄 때까지 나는 여기 있을 거야. 감시자로서. 아니면 증인으로서."
루이스가 완전히 사라졌다. 골목의 어둠 속에서. 홀로그래피만 남았다. 그것도 곧 꺼졌다.
준호는 손을 움켜쥐었다. 공중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골목 입구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신드의 추격자들이었다. 세 명. 검은 정장. 추적 장비.
"이준호, 항복하거나 움직이거나. 선택하라."
목소리는 미르였다. 하지만 그것은 미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드의 모든 목소리였다. 모든 기억 칩이 공명하는 목소리였다. 준호가 팔아버린 모든 기억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ECHO가 울렸다:
"위험해. 그 칩은 함정이야."
준호는 손에 있는 메모리 칩을 보았다. 검은색 표면. 은색 단자. 그 안에는 자신이 있었다. 미래의 자신. 아니면 과거의 자신. 아니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자신.
골목 입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추격자들의 발소리. 준호는 반대 방향을 향해 달렸다. 어둠 속으로. 메모리 칩을 손에 쥔 채.
뇌 속에서 ECHO와 미르와 루이스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준호가 누구인지 말해주려는 듯이. 아니면 누구도 아니라고 말해주려는 듯이.
준호는 달렸다. 그리고 달릴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더 모르게 되었다.
골목을 빠져나온 준호는 폐가의 계단을 올랐다. 손에 쥔 메모리 칩이 미약한 빛을 냈다. 그 빛이 자신의 얼굴을 비춰 내고 있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그 얼굴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폐가의 방에 들어간 준호는 벽에 기대앉았다. 팔뚝의 추적 칩이 여전히 깜박이고 있었다. 초록색. 빨간색. 초록색. 빨간색. 마치 신호등처럼. 마치 심장 박동처럼.
ECHO가 말했다:
"당신이 뭔가를 팔았어. 기억만이 아니라. 당신이 팔았을 때 뭔가를 받았어. 당신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해."
"넌 뭐야, 정확히?"
"나는 당신이 남겨둔 것이야.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골목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의 발소리. 신드만이 아니었다. 다른 세력도 왔다. 기억 위원회의 추격자들. 그들의 목소리가 겹쳤다. 준호를 찾는 외침들.
"이준호! 항복하거나 죽거나. 선택하라!"
방의 창문을 통해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거대한 돔 위의 광고판들. 끝없이 반복되는 상품 이름. 끝없이 반복되는 약속. 우주정착지. 자유. 새로운 삶.
준호가 메모리 칩을 켰다.
영상이 나타났다. 투명한 홀로그래피 형태로. 준호의 시선 위에.
회의 영상. 긴 테이블. 여러 명의 사람들. 그들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목소리는 명확했다.
박 이사장의 음성이 먼저 들렸다:
"기억 거래의 규모가 예상을 초과했다."
다른 목소리들이 겹쳤다:
"능력자들의 신경 손상이 심각하다."
"그 중에서도 이준호는 특이하다. 신경 경로가 다른 능력자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그를 제거해야 한다."
박 이사장이 다시 말했다:
"아니다. 그를 이용해야 한다. 그의 능력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면, 기억 거래 체계 전체를 재설계할 수 있다. 그는 상품이 아니다. 그는 도구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메스꺼움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뇌 한구석에서 편두통이 울렸다. 마치 억압된 기억이 깨어나려는 것처럼.
폐가의 방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강하고 일정한 리듬. 문이 흔들렸다.
"이준호!"
ECHO가 말했다:
"당신은 상품이 아니었어. 당신은 도구였어. 더 정확히는 실험체였어."
영상이 바뀌었다. 이번엔 준호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얼굴이 아니었다. 과거의 얼굴이었다. 더 젊은 얼굴. 더 맑은 눈. 그리고 그 준호 옆에 루이스가 서 있었다. 루이스의 손이 준호의 어깨에 있었다. 친근하게. 신뢰하는 손길로.
영상 속 루이스가 말했다:
"당신은 잊게 될 거야. 모든 것을."
영상 속 준호가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나는 기억할 거야.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문이 다시 울렸다. 나무가 쪼개지는 음성. 문틀이 흔들렸다.
준호가 구토했다. 담즙이 입 안에 가득 찼다. 손가락이 경련했다. 뇌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 억압된 기억들이 한꺼번에 깨어나려는 것처럼.
"루이스는 당신의 감시자가 아니었어. 루이스는 당신의 동료였어. 아니, 그 이상이었어."
ECHO의 목소리가 명확했다.
"루이스도 실험체였어. 루이스도 팔린 거야. 당신의 기억에 있던 루이스라는 사람으로. 그래서 루이스는 존재할 수 없어. 당신이 루이스를 기억하는 한, 루이스는 당신의 기억 속에서만 살 수 있어. 루이스가 당신을 찾은 건 감시 때문이 아니었어. 루이스가 당신을 찾은 건..."
ECHO가 멈췄다.
"루이스가 당신을 찾은 건 당신을 되돌리기 위해서였어."
메모리 칩이 손에서 떨어졌다. 방의 바닥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떨리면서.
준호가 일어섰다. 손가락이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뇌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루이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루이스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있던 그 순간이.
방의 문이 완전히 부서졌다. 추격자들이 들어섰다. 검은 정장. 추적 장비. 그들의 손에는 무기가 있었다.
"이준호! 움직이지 마!"
준호는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손을 창문 틀에 올렸다. 5층 높이. 아래는 어둠. 그 어둠 너머는 도시. 그 도시 너머는 우주.
"이준호, 뒤로 물러나!"
준호는 창문을 열었다.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 도시의 배기가스와 금속 냄새.
팔뚝의 추적 칩이 깜박였다. 초록색. 빨간색. 초록색.
ECHO가 말했다:
"당신은 또 탈출할 거야. 그리고 또 실패할 거야. 그리고 또 시도할 거야.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야. 당신이 다시 깨어날 때까지. 루이스처럼."
준호는 뛰었다.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추락하는 와중에 준호는 깨달았다. 이것이 탈출인지 자살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루이스가 자신을 찾았던 것처럼, 자신도 루이스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루이스가 기억했던 것처럼, 자신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아래에서 발소리들이 계속 울렸다. 쫓고 쫓기는 끝없는 반복 속에서.
ECHO가 다시 울렸다:
"당신은 깨어날 거야. 또 다른 골목에서. 또 다른 루이스를 만날 거야. 그리고 또 기억할 거야. 그것이 당신의 루프야. 당신의 저주야. 그리고 당신의 유일한 희망이야."
어둠이 준호를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