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폐병원의 저주

중년 남성의 손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당신이 준희를 밀어버렸을 때부터..."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뽑아냈다. 팔을 비트며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뭘 본 거야?"

목소리가 차갑게 나왔다. 나 자신도 놀랐다. 이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계단에서 그 여자를 불 속으로..."

"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변하지 않았다.

내 손목에서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다. 왼쪽 손목의 흉터가 화끈거렸다. 손가락 자국 같은 그 자국. 마치 누군가가 나를 붙잡으려 했던 흔적처럼. 아니면 나를 밀어냈던 흔적처럼.

기억이 끊겼다.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통증이 이마로 퍼져나갔다. 마치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누르며 중얼거렸다.

"이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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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테이블 위의 커피잔이 흔들렸다.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한수현이 내 얼굴을 바라봤다.

"괜찮습니까?"

"기억이... 자꾸 끊겨."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뇌의 어딘가에서 뭔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펜으로 글자를 지우듯이. 한 줄씩. 누군가가 내게서 뭔가를 빼앗아가고 있었다.

"약을 드시겠습니까?"

"아니야. 괜찮아."

거짓말이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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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현이 건넨 파일 폴더를 펼쳤을 때, 손가락이 떨렸다.

화면에 떠오른 공식 기록은 명확했다. 2014년 3월 15일, 구원병원 대형 화재. 사망자 8명. 실종자 없음. 폐쇄 결정.

"8명이 아니라 9명 같은데요."

한수현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기록이."

내가 화면을 더 넘겼다. 의료진 명단, 환자 리스트, 화재 당시 근무자 현황. 모든 문서가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너무 깔끔했다.

"의료진 7명. 환자 1명. 맞게 8명입니다."

"그럼 왜 기록에 불일치가 있어?"

한수현이 화면 속 한 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2014년 3월 1일자 의료진 근무표. 거기에는 이름 하나가 흐릿하게 적혀 있었다. 마치 나중에 지워진 것처럼.

"누군가 의도적으로 한 사람을 숨겼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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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병원 부지에 발을 디딘 것은 오후 3시 37분이었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마지막 시간이 그것이었다. 신호가 사라지기 직전.

담장은 녹슬어 있었다. 철제 담장 곳곳에서 산화철의 붉은색이 드러나 있었고, 그 사이로 담쟁이덩굴이 엉켜 있었다. 정문 앞의 경비 초소는 여전히 견고했다. 누군가 최근에 수리한 흔적이 있었다.

정문은 체인으로 감싸여 있었고, '무단 침입 금지'라는 팻말이 세 개나 붙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위험'이라는 글자가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다.

옆길로 돌았다. 담장을 따라 걷다 보니 다른 진입로들이 보였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쇠사슬, 콘크리트 블록, 철판.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모든 길을 막아놨다.

담장에서 약 3미터 떨어진 곳에 섰을 때, 공기가 달라졌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저주가 산다. 마치 생물처럼. 마치 사람처럼.

나는 저주를 느낄 수 있다. 극도의 원한이 물리적 에너지로 변환된 것. 그 에너지가 한 곳에 응축되면 나는 그것을 감지한다.

폐병원에서는 무게가 느껴졌다.

담장을 넘기로 했다. 손을 뻗어 철제 담장을 잡고 올라갔다. 녹슨 철이 손가락 사이에서 부스러지는 느낌이 생생했다.

담장 위에 올라탔을 때, 세상이 흔들렸다.

아니, 내 시야가 흔들렸다. 마치 누군가 내 머리를 양옆으로 잡아 흔드는 것처럼.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아니, 들렸다기보다는 뇌 안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내 두개골을 악기처럼 두드리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가슴이 갑자기 조여왔다. 입을 벌렸지만 폐에 들어오는 공기가 없었다. 마치 공기 자체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담장 아래 부지에서 올라오는 무언가가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피부가 따끔거렸다.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동시에 찔리는 것처럼.

"아..."

소리가 목구멍에서 끊겼다. 나는 담장에서 떨어졌다.

땅에 내려앉으며 손가락이 담장에 긁혔다. 통증이 손끝에서 팔로 퍼져나갔지만,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가슴 속의 무게감이 모든 감각을 집어삼켰다.

"이건... 누군가 밀어내는 거야."

휴대폰이 울렸다. 신호가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화면에는 유리의 이름이 떠 있었다.

"형... 저 알았어요."

"뭘?"

"제 저주가... 뭐였는지."

내 귀가 곤두섰다.

"부모님이... 거기서 죽었을 거예요. 10년 전에."

침묵이 흘렀다. 전파를 타고 전달되는 침묵. 동시에 내 뇌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시야가 흔들렸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 내 신체를 조종하는 것처럼.

"유리... 확실해?"

"네. 제 저주가 갑자기 선명해졌어요. 엄마랑 아빠 목소리가. 불 속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내 손이 떨렸다. 아니, 떨린 게 아니라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형이... 형이 도와줄 수 있어요?"

그 순간,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할 수 없으면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

폐병원 정문 앞으로 돌아갔을 때, 누군가가 거기 서 있었다.

중년 남성이었다. 깔끔한 회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신문 스크랩이 들려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당신..."

그가 내 얼굴을 바라봤다. 눈동자가 확장되고 수축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본 것처럼.

"혹시 10년 전에..."

말이 끝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힘이 강했다. 마치 익사하는 사람이 구명줄을 붙잡듯이.

"당신이... 당신이 준희를 밀어버렸을 때부터..."

"뭐라고?"

내가 물었지만, 그의 입은 이미 다음 말을 뱉고 있었다.

"기록에 없는 의료진이 한 명 더 있었어요. 간호사. 이준희. 10년 전 화재 당일에 실종된 의료진."

신문 기사를 펼쳤다. 1면에는 커다란 제목이 있었다. '구원병원 화재, 실종자 추적 중 - 간호사 이준희 아직도 소재불명'.

"그런데... 당신을 봤거든요."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뽑아냈다. 팔을 비트며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뭘 본 거야?"

목소리가 차갑게 나왔다. 나 자신도 놀랐다. 이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계단에서 그 여자를 불 속으로..."

"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변하지 않았다.

내 손목에서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다. 왼쪽 손목의 흉터가 화끈거렸다. 손가락 자국 같은 그 자국. 마치 누군가가 나를 붙잡으려 했던 흔적처럼. 아니면 나를 밀어냈던 흔적처럼.

불빛이 떠올랐다. 주황색의 불빛이 어둠을 집어삼키는 모습. 그 안에서 누군가의 손가락이 내 팔을 잡으려 했다.

"시준... 도와줘..."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부러진 도자기처럼 갈라진 목소리. 내 머리가 무거워졌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내가 중얼거렸다.

"그게 내가 한 게 아니라는 뜻인가?"

중년 남성이 한 발 물러섰다. 내 얼굴을 보는 그의 눈빛에 뭔가 섞여 있었다. 공포와 연민. 그리고 또 다른 감정.

"당신... 기억 못 하세요?"

"뭘?"

"10년 전 화재. 그날 당신이 한 일."

그가 신문을 내밀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신문의 끝 부분에는 작은 기사가 있었다. '화재 당일 행방불명 의료진 - 의사 박시준, 아직 수사 중'.

의사.

나는 의사였나?

내 눈이 그 이름을 따라갔다. 박시준. 마치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읽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인데도 낯설었다. 내 머릿속에는 의료 지식이나 병원에서의 기억이 아무것도 없었다. 흐릿한 그림자만 있을 뿐이었다.

기억이 끊겨 있었다. 마치 누군가 칼로 자른 것처럼.

"당신이... 10년을 이렇게?"

중년 남성이 물었다.

"기억을 못 한 채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문을 더 자세히 봤다. 기사의 마지막 문단.

'화재의 원인은 지하 의료 폐기물 처리실의 자동 점화로 추정되며, 당시 진료 중이던 환자 8명과 의료진 2명이 사망했다. 행방불명인 의료진 박시준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며, 경찰은 그가 화재의 증인이거나 사건과 관련된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내가 거기 있었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

내가 누군가를 밀었을 수도 있다.

그 여자. 이준희.

가슴이 철렁했다. 마치 내 몸이 나보다 먼저 기억하는 것처럼.

"당신이 그때... 뭘 했는지 기억나세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마치 수중에서 들리는 목소리처럼.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담장 안에서 무언가 울음을 터뜨렸다. 길고 처절한 울음.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인지 의심스러운 그런 울음.

중년 남성이 움직였다. 담장을 향해 달려가려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막아섰다. 손으로 그의 팔을 잡고.

"그곳으로 가면 안 돼요."

내가 말했다. 나도 모르는 목소리로.

"그곳은..."

담장 너머에서 그 울음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더 높아졌다.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그곳은 저주가 살아있는 곳입니다."

중년 남성이 내 얼굴을 봤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으로.

"당신이... 왜 그걸 알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폐병원의 정문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 창문들이 눈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안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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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은 이미 떠난 뒤였다. 내 손에 신문 스크랩만 남아 있었다.

폐병원 정문 앞에 서 있던 나는 담장의 철문이 열려 있음을 깨달았다. 누가 열어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

폐병원 내부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복도의 벽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화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의료 기록이 흩어져 있었고, 침대 프레임이 뒤틀려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유물들이 시간을 멈춘 채로 놓여 있었다.

나는 계단을 찾아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기억의 편각들이 떠올랐다. 불빛이 어둠을 집어삼키는 모습. 그 안에서 누군가의 손가락이 내 팔을 잡으려 했다. 차갑고 절박한 손가락.

"시준... 도와줘..."

여성의 목소리가 계단 벽에 부딪혀 울렸다. 부러진 도자기처럼 갈라진 목소리. 내 손목의 흉터가 화끈거렸다.

"제발..."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계단 중간에서. 손가락이 벽을 짚었다. 벽은 따뜻했다. 마치 누군가의 체온처럼.

"이준희?"

내가 중얼거렸다.

계단 아래에서 무언가 울음을 터뜨렸다. 길고 처절한 울음.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나는 계속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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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인.

내가 처음 저주를 흡수할 때 본 그 여인.

"안녕, 시준."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부러진 도자기처럼 갈라져 있었다.

"10년 만이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봤다. 낯설었다. 하지만 동시에 친숙했다. 마치 내 뇌의 다른 부분에 그녀가 저장되어 있는 것처럼.

"당신이 이준희?"

"이준희는 나다. 하지만 동시에 나만이 아니다."

그녀가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불이 타고 있었다.

10년 전과 똑같은 불이.

"모든 게 여기서 시작됐어. 그리고 여기서 끝나야 한다."

이준희가 말했다.

"당신이 밀어낸 모든 것들이... 이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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