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병원 지하에서 나온 지 이틀째였다.
강남역의 지하 통로는 저녁 시간대 인파로 뒤덮여 있었다. 시준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걸었다. 머리는 여전히 무거웠다. 어제 일이 명확하지 않았다. 유리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전 기억은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뇌에서 부분을 도려낸 것처럼.
손목의 흉터를 무심코 만졌다. 손가락 자국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언제 생긴 흉터인지 알 수 없었다. 기억에 없었다. 아니, 기억에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무언가가 자신의 뇌에서 지워져 나갔다는 증거가 있어야 '없다'고 알 텐데, 그 증거 자체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시준."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시준은 고개를 들었다.
남자였다. 나이는 서른 초반쯤 보였다.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얼굴은 무표정했다. 눈빛만 예리했다. 시준은 이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확신했다.
"누구세요?"
"한수현. 저주 추적자다."
남자는 시준의 옆에 자연스럽게 선 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시준은 본능적으로 경계했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느꼈다. 저주 추적자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을 저주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저주. 당신에게 걸린 저주 말입니다."
시준은 발걸음을 멈추려 했지만, 한수현이 그의 팔을 살짝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의 한쪽 구석으로 옮겨갔다.
"당신은 지난 이틀 동안 누군가의 저주를 흡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을 잃었지요. 어제를 기억하십니까?"
시준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 남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말이 맞았다.
"당신이 흡수한 저주는 작은 것입니다. 어린 여자아이의 저주였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을 진짜로 저주한 것은 다릅니다."
한수현이 포켓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그 안에는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폐허가 된 건물. 시준은 그것을 본 것 같았다. 아니, 본 적이 없는데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준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손목의 흉터가 따끔거렸다. 무언가를 거부하는 신체의 반응이었다.
"구원병원. 10년 전 화재로 폐쇄되었습니다. 공식 기록상 사망자는 8명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습니다. 통계가 남아있지 않거든요."
사진을 보는 순간 시준의 목이 졸렸다.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침을 삼켰다.
"그곳에서 비롯된 저주들이 도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저주도 그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준의 심장이 빨라졌다. 뭔가 중요한 정보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것이 자신을 더 깊은 혼란으로 밀어낼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가락을 주머니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당신의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저주를 흡수할 수 있는 사람. 매우 드문 능력입니다."
한수현이 사진을 다시 수첩에 집어넣었다.
"당신을 저주한 존재는 매우 강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당신 자신의 과거와. 당신이 이미 잊어버린 과거와."
이 말이 끝나자 시준의 머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두개골을 짚누르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당신의 기억 소실은 무작위가 아닙니다. 당신의 뇌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죄를 감추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주를 흡수할 때마다, 그것과 관련된 당신의 기억이 우선적으로 사라집니다. 이것은 뇌의 자기방어 메커니즘입니다."
시준은 벽에 기대섰다. 숨이 차올랐다.
"당신은 누군가의 원한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래서 당신은 계속 저주를 받아들입니다. 자신을 벌하기 위해."
한수현은 시준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연민도 없었고 비난도 없었다. 단지 관찰하는 시선일 뿐이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 정체를 찾는 것입니다. 당신을 저주한 존재를 찾아서 왜 그런지 묻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당신을 진짜로 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찾죠?"
"당신이 흡수한 저주의 기억 조각들을 따라가면 됩니다. 폐병원에 가세요. 그곳이 모든 것의 시작점입니다."
한수현이 수첩 한 장을 뜯어 시준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폐병원의 사진과 함께 붉은 펜으로 표시된 지점이 있었다.
"지하 입구입니다. 동쪽 담장 뒤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지하 통로가 있을 겁니다. 그 안에 답이 있습니다."
"당신은?"
"저는 관찰자일 뿐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한수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구원회에 속한 건지, 아니면 다른 세력인지도. 그것이 중요합니다."
시준이 고개를 들었다. "구원회?"
하지만 한수현은 이미 군중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시준은 그 자리에 남겨져 있었다. 손에는 폐병원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머리는 여전히 아팠다. 가슴에는 알 수 없는 무게가 자리 잡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자신의 뇌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이름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유리를 만난 것은 저녁 여섯 시쯤이었다.
시준은 강남역 근처의 카페에 앉아 있었다.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한수현과의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저주. 기억. 폐병원. 이 단어들이 자신의 뇌에서 뭔가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준 오빠."
유리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제의 유리와는 달랐다. 저주에 시달리던 그 아이는 없었다. 대신 눈빛이 살아 있는 아이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다른 감정도 섞여 있었다. 불안감. 미안함. 혼란.
"어제 고마워요."
유리가 시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저를... 도와줘서."
"괜찮아. 괜찮으니까."
시준이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얼마나 거짓인지 알고 있었다.
"저한테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유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저주가 사라졌잖아요. 그런데... 대신에 기억들이 돌아오고 있어요."
"기억?"
"네. 엄마가 저를 안아주던 느낌. 엄마 목소리로 자장가를 부르는 느낌. 아빠가 저를 안으면서 뭔가 중얼거리던 목소리도요."
유리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너무 슬려요. 왜 그럴까요?"
유리가 손을 내밀었다. 시준의 손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시준은 그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살아 있는 온기였다.
순간, 유리의 목소리가 변했다. 더 깊어졌다.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있는 것처럼.
"당신은... 누구세요?"
시준의 눈에 유리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다른 얼굴. 더 커 있는 누군가의 얼굴. 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억의 조각처럼,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였다. 마치 안개 속을 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얼굴이 무언가에 잠식되고 있었다. 검은 것. 무거운 것.
"나는..."
시준이 입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시준아. 기억해 줄래?"
시준의 온 몸이 경직되었다. 그 목소리. 낯설지만 슬픈 목소리.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시준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카페의 입구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시준은 그 여인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어디서? 언제? 기억이 안 났다. 하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깊은 구멍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커피잔을 들었던 손이 떨렸다. 잔이 소리를 냈다. 커피가 흔들렸다.
그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슬픈 미소였다.
"오래간만이야."
시준의 눈빛이 흔들렸다. 테이블 위의 커피가 잔물결을 일으켰다. 유리가 시준의 팔을 잡으며 몸을 날렸다.
"오빠?"
하얀 가운의 여인은 천천히 카페 안쪽으로 걸어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시준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카페 안의 손님들이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한 여자 손님이 눈을 깜빡였다. 마치 뭔가 이상한 것을 봤을 때처럼. 또 다른 손님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마치 그 여인이 걸어올 때마다 주변의 무게가 증가하는 것처럼. 천장의 조명이 한 순간 깜빡였다. 아니, 조명이 깜빡인 게 아니었다. 시준의 시야가 흔들린 것이었다.
"넌 나를 모르겠지?"
여인이 시준의 테이블 앞에 멈춰 섰다. 시준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목이 굳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신은 계속 잊으니까."
여인이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비통했다. 마치 수십 년을 울다가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처럼.
"나는 이준희야. 예전에... 당신이 아는 사람이었어."
시준의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이준희. 그 이름. 뭔가 있었다. 뭔가 중요한 게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물속에서 무언가를 잡으려 할 때처럼, 손가락 사이로만 미끄러져 내려갔다.
"10년 전에. 구원병원에서."
이준희가 앉았다. 시준의 맞은편에. 마치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녀가 앉자 카페의 조명이 한 순간 깜빡였다. 시준의 눈빛이 일렁였다. 손가락 끝이 저렸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유리가 물었다. 아이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아이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이 여인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유리의 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
유리가 손을 내렸다. 손가락에 붉은 자국이 있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아가."
이준희가 유리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마치 깊은 물 속을 보는 것처럼 어두웠다.
"너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해."
"뭐... 뭔 소리예요?"
유리가 시준의 팔을 더 강하게 잡았다. 아이의 손가락이 떨렸다.
"시준 오빠, 이 사람 누구예요? 왜..."
"유리를 건드리지 마."
시준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험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음성이 나왔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목을 통해 말하는 것처럼.
이준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당신답네. 아직도 다른 사람을 보호하려고 해. 자신이 뭘 잃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시준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이준희의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또 다른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기억이 아니었다. 이미지. 단편. 마치 누군가의 꿈을 본 것처럼.
하얀 복도. 불. 비명소리.
그리고 한 여인의 얼굴이 불타는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것.
"아."
시준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통이 돌아왔다. 더 심했다. 마치 자신의 두개골이 안에서 깨지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테이블 모서리를 움켜잡았다.
"당신을 저주한 게 나야, 시준."
이준희가 말했다. 아무도 듣지 말아야 할 크기의 목소리로.
"10년이 걸렸어. 당신을 이 정도로 망가뜨리는 데. 당신의 기억을 하나씩 빼앗는 데. 그런데도 당신은 자꾸 누군가를 도우려고 해. 정말 재미있어."
"왜... 왜 그러는 거예요?"
유리가 물었다. 아이의 목소리에 이상한 울림이 있었다. 두 개의 목소리가 겹쳐 있는 것처럼. 마치 유리 자신도 무언가에 공명하고 있는 것처럼.
"왜냐면 당신이 나한테 빚졌으니까."
이준희가 손을 내밀었다. 시준의 손을 향해. 시준은 본능적으로 손을 물렸다. 하지만 이준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의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당신의 저주를 흡수하려고 하면?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러지 마."
시준이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너... 너는 저주받은 사람이 아니야. 너는..."
"나는 저주 자체야."
이준희가 웃음을 흘렸다.
"당신이 만든 저주. 당신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죄의식이 만든 저주. 그게 나야. 나는 당신을 놓지 않을 거야. 당신이 모든 걸 기억할 때까지."
카페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아니, 차가워진 게 아니었다. 시준의 온 몸이 얼어붙은 것이었다. 손가락 끝부터 얼음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카페 손님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처럼. 다른 손님들도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좋은 장소가 아니네."
이준희가 일어났다.
"당신을 데려가야겠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그곳에서 당신은 모든 걸 알게 될 거야."
"어디로?"
시준이 물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이미 그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이라는 것을.
폐병원으로. 10년 전 화재가 일어났던 그곳으로.
유리가 시준의 팔을 놓지 않았다.
"오빠, 가지 말아요. 이 사람이랑..."
"유리야."
시준이 아이의 손을 풀었다. 부드럽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듯이.
"넌 여기 있어.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고. 그리고..."
시준이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따뜻한 손으로. 마지막으로.
"나를 찾으려고 하지 마."
"왜... 왜 그래요?"
유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당신은 누구예요? 왜 자꾸..."
시준은 일어났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치 누군가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도 그를 잡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다리는 움직였다. 이준희 쪽으로.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되도록 정해졌던 것처럼.
시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라는 것을. 자신이 이 손을 잡는 순간, 모든 게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카페 밖으로 나왔을 때, 거리는 이미 어둠에 잠식되고 있었다. 야간 조명이 깜박거렸다. 마치 신호등처럼. 마치 경고처럼.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
이준희가 시준의 옆에서 말했다. 둘이 거리를 걸었다. 마치 옛날 친구처럼.
"그래서 더 슬펐어. 넌 날 도와주려고 했는데... 결국 날 밀어버렸잖아. 그 불 속으로."
시준의 발이 멈췄다.
"뭐... 뭐라고?"
"당신은 기억 못 해도 괜찮아. 난 충분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우리 둘 다."
이준희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오래된 사진이었다. 시준은 그 사진을 볼 수 없었다.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치 그것을 보는 순간 자신이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
"폐병원으로 가자. 거기서 모든 게 끝나게 해주지."
이준희가 말했다.
"당신도 원하잖아. 누구인지 알고 싶잖아. 왜 당신을 저주했는지."
시준은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누군가 자신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조종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동의였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결말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에서.
시준이 받았다.
"시준 씨."
한수현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습니다. 당신을 저주한 존재가 당신을 끌어당기고 있어요. 그것을 따라가면... 당신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시준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한수현의 말이 자신의 몸 깊숙한 곳에서 뭔가를 건드렸다. 돌아올 수 없다. 그 말이 자신을 구하는 말일까, 아니면 자신을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내는 말일까.
"그럼 어떻게..."
"폐병원에 있는 누군가를 찾으세요. 김태훈이라는 사람을. 그리고 민지영도. 그들도 당신처럼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함께라면 혼자가 아닐 겁니다."
이준희가 시준의 손을 잡으려 했다. 시준은 그것을 피했다. 처음으로. 아주 작은 저항이었지만, 명확한 거부였다.
"당신은... 누구세요? 왜 저한테..."
"그것은 나중에. 지금은 그들을 찾으세요. 김태훈과 민지영을. 그들을 찾는 것이 당신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통화가 끊겼다.
시준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이준희를 바라봤다. 여인의 얼굴이 흔들렸다. 마치 물 위의 그림자처럼.
"누가 전화했어?"
"모르는 사람이야."
시준이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자신도 한수현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그리고 그 남자가 자신의 편인지 적인지도. 또한 김태훈과 민지영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상관없어. 어디서 전화했든."
이준희가 손을 다시 내밀었다.
"이제 우리 함께 가자. 당신의 저주가 시작된 곳으로."
시준은 그 손을 보았다. 하얀 가운 소매 사이로 보이는 팔. 그 팔에는 흉터가 있었다. 화상 흉터. 검고 구부러진. 마치 누군가가 불 속에서 몸부림치다 남긴 자국처럼.
그것을 본 순간, 시준의 기억이 또 한 조각 떨어져 나갔다.
무언가 중요한 것. 누군가의 이름. 누군가의 얼굴. 그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그 사람과의 약속.
모두 사라졌다.
시준은 손을 들었다. 이준희의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한수현의 말. 김태훈. 민지영. 그들을 찾으라는 말.
시준의 손이 멈췄다. 반쯤 들린 채로.
이준희의 손과 한수현의 말. 두 개의 힘이 자신을 양쪽으로 당기고 있었다. 하나는 자신을 깊은 곳으로 끌어내리는 저주. 하나는 자신을 다시 세우려는 외침.
시준은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의 무게를 견디려고.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 느끼려고. 이준희의 손과 한수현의 말 사이에서.
시준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나는... 가지 않을 거야."
이준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뭐라고?"
"나는 김태훈과 민지영을 찾을 거야. 폐병원에서. 혼자가 아니라."
시준은 뒤로 물러섰다. 한 발, 또 한 발. 이준희의 손이 허공을 헤맸다.
"당신은 나를 놓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럼 날 따라와. 폐병원으로. 하지만 나는 혼자 가지 않을 거야."
"시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이 누구인지. 내가 뭘 했는지. 하지만 나는 알아. 지금 이 순간,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시준은 돌아섰다. 거리 반대편으로. 폐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김태훈과 민지영을 찾기 위해.
이준희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당신은 도망칠 수 없어! 당신의 저주는 이미 당신 안에 있어!"
시준은 계속 걸었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들리는 이준희의 목소리도. 자신의 뇌에서 떨어져 나가는 기억들도. 모든 것을 뒤로하고.
거리의 야간 조명이 그의 길을 밝혔다. 마치 신호등처럼. 마치 방향을 제시하듯.
시준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로 이준희의 손을 놓을 수 있을지. 자신이 정말로 김태훈과 민지영을 찾을 수 있을지. 폐병원 지하에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순간, 자신은 선택했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 것이든, 자신은 더 이상 저주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
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하지만 시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