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저주를 먹는 자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승강장. 오후 여섯 시.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것을 분명히 느꼈다. 내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추적하고 있다는 것. 저주의 냄새가 공기를 절인 배추처럼 시큼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강렬한 원한이 응축된 그것은 내 목 뒤를 타고 내려왔다.

사람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누군가가 나를 피했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울음이 들렸다.

울음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폐를 짜내는 소리 같은 것. 나는 고개를 들었다. 승강장 반대편, 벤치 위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매우 작은 몸집의 여자아이.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안고 있었고, 그 자리에는 아무도 앉으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피해 다녔다.

나는 왜 피하는지 알았다. 저주는 냄새가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냄새를 '불편함'으로 느끼고,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다. 하지만 내가 감지한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 그 아이의 저주는 극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끌어당겼다.

내 발이 움직였다. 추적자를 무시하고 그 아이에게 가까워졌다. 사람들이 나를 피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안녕."

여자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검게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저주에 시달리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누구세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명확했다. 그녀는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야. 그런데 넌 많이 아파 보인다."

"상관없어요."

그녀가 다시 무릎을 안고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녀 옆에 앉아 있었다. 가깝다. 너무 가깝다. 저주의 냄새가 더 강해진다. 나는 코를 찡그렸다.

"정말 많이 아프네."

"떠나가세요."

"싫어."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순간, 세상이 뒤바뀌었다.

검은색. 모든 것이 검은색이었다. 그 다음은 불빛. 붉은 불빛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몸 안에 있었다. 누군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폐와 심장을 짜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극심한 고통. 죽음보다 못한 고통.

그리고 얼굴.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인의 얼굴이 내 시야를 스쳤다.

그 얼굴은 매우 슬퍼 보였다.

"엄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 여자아이의 목소리.

"엄마, 왜..."

검은색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검은색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나는 벤치에서 넘어져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마치 누군가가 내 두개골을 드릴로 뚫고 있는 것 같은 고통.

"아... 아악..."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다. 몇몇은 휴대폰을 꺼내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가 나를 흔들었다.

"아저씨? 아저씨! 깨어나세요!"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지하철역의 형광등. 내 눈이 초점을 맞추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괜찮아요?"

그 아이가 나를 일으키는 것을 도왔다. 나는 앉은 자세로 돌아왔다. 내 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내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몸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내 내부에서 뭔가 흐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의 감정이 내 혈관을 통해 흐르는 것처럼.

극도의 절망. 극도의 분노. 극도의 슬픔.

그것이 지금 내 것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 머리를 잡았다. 내 피부가 타는 듯했다. 손등에 검붉은 자국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내 살을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내 목 옆으로 뭔가 차가운 것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 피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인가 빠져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물이 새는 그릇처럼, 내 뇌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잃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내가 무엇을 잃었는가?

나는 집중했다. 내 기억을 더듬어 봤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다. 샤워를 했다. 커피를 마셨다. 지하철을 탔다. 여기까지는 기억난다. 하지만 뭔가 있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내가 어제 무엇을 했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제는?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와 통화했나?

누군가와 통화한 기억이 있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무엇인가를 약속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아저씨?"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여자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충혈되어 있었지만,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그 눈의 색을 조금 밝게 해준 것처럼.

"너는... 괜찮아?"

"네. 덕분에요."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작은 미소였지만, 그것은 분명한 감사였다. 그 미소 속에는 뭔가가 있었다. 극도의 저주에 시달리던 누군가가, 이제 그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나에 대한 감사.

나는 그 감사를 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존재한다. 이 순간,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저는... 뭔가요?"

내가 물었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음?"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나는 그 아이의 손을 놓았다. 나는 일어섰다. 내 다리가 불안정했지만, 나는 버티었다.

"넌 지금부터 좋아질 거야. 그 무거운 것들은 이제 너를 짓누르지 않을 거야."

"정말이에요?"

"응. 정말이야."

나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그 부드러움이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존재다.

그 아이가 나에게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 그 눈빛 안에는 감사와 함께 다른 것도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는 그런 표정. 나는 그 표정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나에게 주는 무게를 느꼈다.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지하철을 나갔다. 승강장의 계단을 올라가며, 나는 내 손목에 눈을 돌렸다. 왼쪽 손목의 안쪽. 거기에 흉터가 있었다.

흉터?

나는 그것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아니, 분명히 이전에도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언제 생긴 흉터인가? 어떻게 생긴 흉터인가?

나는 기억할 수 없었다.

흉터는 오래되어 보였다. 적어도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어떻게 얻었는지 모른다. 내 손목이 누군가에게 잡혔던가? 아니면 무언가에 긁혔던가?

나는 흉터를 만져봤다. 그것은 차갑고 딱딱했다. 마치 누군가의 손가락 자국 같았다. 손가락이 누군가의 손목을 얼마나 강하게 잡았을 때 생기는 자국.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잡았던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잡았던가?

나는 모른다.

나는 지하철역의 지상 출구로 나갔다. 저녁 공기가 나를 감쌌다. 서울의 6월 저녁은 습하고 따뜻했다. 사람들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저녁 시간의 강남역 주변은 여전히 바빴다.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서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분명히 여기 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분명히 느꼈다. 내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는 대략 십 미터 정도. 충분히 멀지만, 충분히 가깝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적대적이었다. 저주를 흡수했을 때 느꼈던 그 극도의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압력이었다. 이것은 계산된 것이었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강남역을 향해. 사람들 속으로.

내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나는 그것을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는 결국 받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음성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자동 음성이 아니라, 누군가가 직접 녹음한 목소리였다. 차갑고, 정확하고, 계산적인 목소리.

"당신을 저주한 자를 찾고 싶다면..."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

"...내일 강남역에 와라."

그리고 끝.

나는 그 음성 메시지를 다시 들어보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삭제되어 있었다. 자동 삭제 메시지였던 것 같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려 했다. 정확히 뭐라고 했나?

'당신을 저주한 자를...'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누군가가 나를 저주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있다는 것.

누가 나를 저주했는가?

그 여자아이의 기억 속에서 본 하얀 가운의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가 나를 저주했는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나는 폰을 내렸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택시를 탔다.

"어디로 가시겠어요?"

기사가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 폐병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10년 전에 화재로 폐쇄된 그곳. 하지만 나는 왜 그곳을 알고 있는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가?

기억이 없다. 하지만 몸이 알고 있었다.

"강남 외곽으로 가주세요."

나는 말했다. 정확한 주소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몸이 이끌고 있었다.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가 움직였다.

강남역의 불빛이 점점 작아졌다. 도시의 외곽으로 향하면서, 건물들이 점점 낮아졌다. 사람들이 점점 적어졌다.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내 손목을 다시 바라봤다. 흉터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오래된 흉터. 누군가의 손가락 자국 같은 흉터. 나는 그것을 언제 얻었는가? 누구로부터 얻었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만이 분명했다. 내가 뭔가를 잃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

택시는 계속 움직였다. 도시의 가장자리로. 빛이 점점 희미해지는 곳으로.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밤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었다.

---

택시가 강남 외곽의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내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지하철에서 그 아이의 저주를 흡수한 이후로 계속되던 통증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뇌가 뭔가를 지우려고 저항하는 듯한 느낌. 마치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것 같았다.

"여기가 맞나요?"

기사가 물었다. 골목은 더 이상 도로라고 부르기 어려운 좁은 길이었다. 양옆으로는 버려진 건물들이 서 있었다. 간판도 없고, 창문도 깨져 있었다. 이곳은 도시의 폐허였다.

"네, 여기가 맞습니다."

내가 말했지만, 사실 확신이 없었다. 그저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내 입에서 그 말을 꺼내고 있는 것처럼.

택시 요금을 치르고 내렸다. 기사의 눈빛에서 불안감이 읽혔다. 이런 곳에 내려가는 손님을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택시는 빠르게 떠났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골목 안의 침묵은 소리가 있는 침묵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고속도로의 윙윙거림, 그리고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뭔가의 울음소리. 개? 아니면 다른 것? 분간이 안 됐다.

내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나는 그것을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 11시. 강남역 지하 2층. 혼자 와라.]**

메시지를 읽는 순간, 내 목 뒤가 철렁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강남역에서 느꼈던 그것보다 더 강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골목 끝에 건물이 보였다. 더 정확히는, 건물의 자리가 보였다.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부수려다 만 건물. 벽의 일부가 뜯겨나가 있었고, 창문은 모두 검은색 합판으로 덮여 있었다. 그 위에는 노란 경고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위험]**

내가 걸음을 옮기자, 그 건물이 점점 커졌다. 아니, 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왜 이 건물 앞에 와 있는가?

기억이 없다.

하지만 내 몸은 알고 있었다. 이 건물의 입구 근처에서 멈췄을 때, 내 심장이 그 아이의 저주를 흡수했을 때만큼 빠르게 뛰었다. 이것도 저주인가? 이 건물 자체가 저주인가?

나는 손을 들었다. 벽에 손을 대려고.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잡았다.

"어디를 가는 거야?"

목소리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젊은 목소리. 하지만 놀랍도록 침착한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를 잡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은 죽어있었다. 하지만 내 팔을 잡은 손가락에는 힘이 있었다.

"당신이... 누구야?"

내가 물었다.

"제 이름은 유리예요."

그 아이가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마치 이미 정해진 일을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내 팔을 강하게 잡아 건물에서 반대 방향으로 끌었다.

"당신이 이 건물에 가면 안 돼요."

"왜... 그런 거야?"

내가 저항했지만, 유리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녀의 팔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보였지만, 철강처럼 단단했다.

"들어봐요, 저 차들이?"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렸다. 여러 대의 차. 엔진음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들이 당신을 찾고 있어요. 구원회. 당신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

유리가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 순간, 내 손목의 흉터가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금 당신은 그들을 피해야 해요. 당신이 저들에게 잡히면, 당신은 사라져요. 완전히."

"뭔... 뭔 소리야?"

내가 물었지만, 유리는 이미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다. 건물의 합판이 벗겨진 곳으로. 어둠 속으로.

"여기."

유리가 나를 건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냄새가 있었다. 타버린 나무의 냄새. 곰팡이의 냄새. 그리고 더 이상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낡은 냄새.

나는 유리의 손을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내 눈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폐허된 병원의 복도. 흰 페인트가 벗겨진 벽. 바닥에는 낙엽처럼 흩어진 종이들. 그리고 의료 기구들의 부서진 잔해.

차들이 멈췄다. 건물 밖에서.

"조용히."

유리가 속삭였다.

나는 숨을 참았다. 내 심장이 너무 크게 뛰고 있었다. 이것이 들릴까봐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들릴까봐.

문이 열리는 소리.

"이 지역을 수색하라. 저주의 신호가 이 근처에서 나가고 있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이가 든 목소리. 권위 있는 목소리.

"그리고 시준을 찾으면,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보고하라. 저 아이는 위험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준. 그것이 나의 이름인가?

내가 깨달았다. 내가 시준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깨달음은 너무 가볍고, 너무 외로웠다. 마치 누군가 내게 이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방금 누군가의 입에서 떨어진 이름을 줍는 것처럼.

하지만 그 이름 속에서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무엇을 했는가?

"구원회에서 온 거 같아요."

유리가 속삭였다.

"구원회?"

내가 물었다.

"당신을 찾는 사람들이에요. 당신의 능력 때문에."

유리의 손이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작지만, 차갑지 않은 손. 따뜻한 손. 하지만 그 손 안에는 무언가 떨림이 있었다.

"왜 당신이... 나를 돕는 거야?"

내가 속삭였다.

유리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그 순간, 내 손목의 흉터가 다시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그 손가락의 형태가 유리의 손과 정확히 같았다.

"우리... 어디로 가야 해요?"

내가 물었다.

"안쪽으로. 지하로. 여기는 위험해요."

유리가 나를 어둠 속으로 이끌었다.

나는 따라갔다. 다른 선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나는 이미 선택을 했다. 나는 계속 저주를 받아들이기로. 왜냐하면 그것만이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복도의 끝에서 계단이 보였다. 내려가는 계단.

나는 멈췄다.

기억의 조각이 떠올랐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인. 계단. 불. 그리고 누군가의 비명 소리. 하지만 그것이 내 기억인지, 아니면 유리로부터 받은 저주의 기억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누군가의 기억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가요."

유리가 나를 밀었다.

나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어둠으로. 그리고 그 순간, 내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 나는 전화를 받았다.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차갑고 정확한 목소리.

"당신을 저주한 자를 찾고 싶다면..."

목소리가 멈췄다.

"...당신은 이미 그 자를 알고 있다."

그리고 끝.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속 내려갔다. 유리의 손을 잡고. 어둠 속으로. 과거로. 그리고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 누가 나를 저주했는지, 그리고 왜 내 손목에 유리의 손가락 자국이 있는지 알게 될 장소로.

내 손목의 흉터가 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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