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 연구소로의 여정
폐선 터널의 역무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준호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강도현의 목을 조르려던 손. 그 손이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떨렸다.
"#7-B. 정은태를 제거하고 귀환할 것."
박충준의 음성이 두개골 안에서 울렸다. 마치 임플란트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것처럼. 준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들이 멈추지 않고 떨렸다.
유하은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준호. 준호야."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강도현인가? 유하은인가? 아니면 자신의 기억 속에 조작되어 심어진 또 다른 음성인가?
"정신 차려. 지금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강도현이었다. 그의 음성에는 항상 가성음이 섞여 있었다. 목을 다친 흔적. 그것만이 현재의 강도현을 증명했다.
준호는 눈을 들었다. 역무실의 천장이 회전하고 있었다. 아니다. 천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눈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았다.
"백두 연구소. 위치를 파악했나?"
강도현의 질문이 들렸고, 준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자신이 답하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자신의 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도시 외곽. 포천 방향. 국립 신경과학 연구소로 위장된 시설. 지하 5층까지 공식 기록이 있고, 지하 6층은 없다."
정보가 흘러나왔다. 어디서 온 것인가? 자신의 기억에서? 아니면 이미 심어져 있던 지식에서? 준호는 자신이 누가 되어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강도현이 노트북을 펼쳤다. 화면에 위성 사진이 떠올랐다. 포천의 산림 지역. 그 안에 묻혀 있는 건물.
"이거다."
유하은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렸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준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떨림이 두려움인지, 조작된 신경계의 경련인지는 여전히 구분할 수 없었다.
"몇 개월 전 위성 사진에는 여기가 나타나지 않았어. 건설이 완료된 건 최근이야. 정은태의 지시로."
강도현이 화면을 확대했다. 건물의 입구. 정문과 비상구. 그리고—
"지하로 가는 통로. 여기."
준호의 눈이 그 지점에 고정되었다.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경고음처럼. 마치 임플란트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가기 전에... 한 명 더 있어."
준호가 말했다. 자신이 말한 것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멈출 수 없었다.
"기억 거래소의 직원. 김석준. 그는 백두 연구소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 권한이 있어. 내부 구조, 보안 체계, 모든 정보를..."
"준호. 너는 여기 있어. 내가 가져올게."
강도현이 일어섰다. 하지만 준호의 손이 그의 팔을 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내가 가야 해. 기억으로 직접 접근해야 정보가 정확해."
그 말이 자신의 것인지, 박충준의 명령인지 준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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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 3호선 종로3가 역의 폐선 구간.
기억 거래소의 뒷방에서 김석준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여러 개의 모니터에 떠 있는 데이터. 능력자들의 기억 추출 기록. 거래 내역. 그리고—
준호가 들어섰을 때, 김석준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왔군."
"백두 연구소의 데이터. 모든 것."
준호의 음성이 낮고 거칠었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음성.
"그건 불가능해. 그 정보는 네트워크에서 격리되어 있어. 접근할 수 없—"
준호가 김석준의 목을 잡았다.
접촉. 순간, 세계가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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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의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의 시각으로 보는 백두 연구소. 지하 1층에서 지하 5층까지의 통로. 보안 카드. 생체 인식 시스템. 그리고 더 깊이. 더 깊이.
지하 6층.
준호는 그곳에서 파일들을 봤다. 폴더로 정렬된 이름들. 아니, 번호들.
#7-A: 이준호 (활동 상태) #12-C: ????? (폐기 상태) #8-F: ????? (폐기 상태) #15-D: ????? (폐기 상태)
파일을 열었다.
#12-C의 기억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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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실. 하얀 불빛. 그 아래서 한 남자가 깨어나고 있다. 준호가 그 남자의 눈으로 본다. 그의 손으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의 공포로 심장이 뛴다.
"깨어났군. 좋아."
박충준의 목소리. 하지만 그것은 준호가 아는 박충준이 아니다. 이 기억 속의 박충준은 더 젊고, 더 냉정하고, 더 무섭다.
"이번엔 #12-C. 기억 재편성 실험 5단계. 넌 누구니?"
"나... 나는..."
#12-C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준호가 그 혼란을 느낀다. 마치 자신의 혼란처럼.
"완벽해. 정체성 붕괴가 진행 중이야."
박충준이 주사기를 들었다. 투명한 액체. #12-C의 팔에 바늘이 꽂혔다.
고통. 뇌가 타는 듯한 고통. 마치 누군가 두개골 안에서 전기를 흘리는 것처럼.
"이제부터 넌 #12-C야. 다른 정체성은 모두 지워진다. 이해하니?"
#12-C가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울음이 아닌 것 같다. 마치 누군가 그의 목을 움직여서 울음을 내게 하는 것처럼.
"통제 불가능 판정. 폐기 예정일 3주."
박충준이 클립보드에 뭔가를 적었다.
그 순간, #12-C는 알았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아니,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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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손을 놨다.
김석준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은 공허했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손인지 #7-B의 손인지 알 수 없었다.
"#12-C... #8-F... #15-D..."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 번호들. 자신처럼 만들어지고, 자신처럼 조작되고, 자신처럼 폐기된 존재들. 그들이 죽을 때 느꼈을 공포가 준호의 신경계를 타고 흘렀다. 마치 그 공포가 자신의 것인 양.
뒤이어 또 다른 감각이 밀려들었다. 시각이 왜곡되었다. 주변의 벽이 숨을 쉬는 것처럼 팽창했다 수축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빠르게 흘러갔다.
"넌 누구야?"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은 오지 않았다. 오직 두 개의 목소리만 울렸다.
*정은태를 제거하고 귀환할 것.*
*우리가 너를 지킬 거야.*
둘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둘 다 거짓인가? 아니면 자신이 이미 그 구분을 할 수 없는 상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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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 역으로 돌아왔을 때, 유하은과 강도현은 준호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은 준호의 얼굴이 아니었다.
눈은 검은색이었고, 코에서 피가 흘렀다. 입가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기억을 얻었어?"
강도현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좌표였다. 정확한 좌표. 백두 연구소의 정확한 위치. 내부 구조. 보안 체계. 모든 것.
그리고 그 정보가 흘러나올 때, 준호의 목소리는 여러 겹으로 들렸다. 자신의 목소리와 박충준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유하은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가 그 차가움에 손을 놨다. 마치 시체의 손을 만진 것처럼.
"준호? 정말 넌가?"
그 질문에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몸이 움직였다. 노트북을 켜고, 종이 지도를 펼쳤다. 손가락이 화면과 종이 위를 오갔다. 마치 누군가 그의 손을 조종하는 것처럼.
"침입 계획을 세워야 해."
강도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지만, 그 아래로는 불안이 흐르고 있었다.
강도현은 침묵 속에서 준호를 관찰했다. 그의 변화는 명백했다. 기억 거래소에서 돌아온 후, 준호는 더 이상 준호가 아니었다. 그리고 강도현은 자신이 그 변화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을 졸라 죽이려던 준호. 그 순간의 공포가 여전히 목에 남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준호가 다시 자신을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도현의 등을 식혔다.
"정문은 경비가 24시간 배치되어 있어. 카드 키 인식 + 생체 인식."
유하은이 종이 위에 지도를 펼쳤다. 포천 산림 지역. 그곳에 하나의 점을 그렸다.
"지하 통로를 통해 들어가는 게 낫겠어. 지하 1층 창고에는 보안 카메라가 없어."
"정문 진입은 불가능. 지하 통로 경로는 두 가지. 동쪽과 서쪽."
준호가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정확히 두 지점을 표시했다.
"동쪽은 경비 초소가 있어. 서쪽은 비상 통로. 감시 카메라는 없지만, 통로가 좁아. 한 명씩만 진입 가능해."
"그럼 역할 분담을 해야 해."
강도현이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 건물의 3D 구조가 떠올랐다.
"나는 외부 통신 차단을 담당할게. 정확한 시간이 필요해."
"04시 47분. 정확히 3분 30초간. 그 시간에 경비 교대가 일어나. 카메라 점검 시간과 겹쳐."
준호가 말했다. 그 정확함은 인간적이지 않았다.
"유하은은?"
강도현이 물었다.
"지하 2층 의료 시설에 접근. 정은태의 생체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어. 그걸 삭제해야 추적이 불가능해져."
"그럼 넌?"
"지하 3층 데이터 센터. 5분 안에 도달해야 해. 그 이상 머물면 알람이 울려."
준호가 지도 위의 경로를 그렸다. 서쪽 비상 통로에서 지하 1층으로 진입. 지하 2층 엘리베이터. 지하 3층 데이터 센터. 각 지점 사이의 거리와 소요 시간이 표시되었다.
"데이터 센터에서 뭘 찾아?"
유하은이 물었다.
"백두의 모든 기록. 프로젝트 제니시스의 초기 설계도. 그리고..."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주 미세하게.
"나의 원본 기억."
침묵이 흘렀다.
강도현이 노트북 화면을 정리했다. 침입 경로, 역할 분담, 탈출 루트, 통신 차단 시간표. 모든 것이 설정되었다. 하지만 강도현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준호의 손이 자신의 목을 졸랐던 그 감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내일 새벽 5시. 포천 산림 지역의 지하 통로 입구에서 만나자."
강도현이 말했다.
유하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이 남자가 정말 준호인가? 아니면 이미 또 다른 누군가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너를 지킬 거야. 이 모든 게 끝나면—"
"끝나지 않아."
강도현이 말을 끊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이미 우리는 돌아올 수 없어. 백두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제니시스의 추적 대상이 돼. 정은태는 우리를 죽일 거야. 박충준도. 그리고..."
그는 준호를 바라봤다.
"서민준도."
유하은이 강도현을 봤다.
"그럼 우리는 뭐 하는 거야?"
"진실을 알아내는 거지.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강도현이 노트북 화면을 종이에 맞췄다. 백두 연구소의 구조가 그려졌다. 지하 1층에서 지하 6층까지. 각 층의 기능이 표시되었다.
지하 1층: 창고 (보안 카메라 없음) 지하 2층: 의료 시설 지하 3층: 데이터 센터 지하 4층: 기억 추출 실험실 지하 5층: 행정 구역 지하 6층: ???
"6층은?"
유하은이 물었다.
"준호의 기억에도 정보가 없어. 아마도 박충준의 개인 연구실일 거야. 가장 기밀이 높은 곳."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나는 거기 가본 적 있어."
"언제?"
"기억이 없어. 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준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귀에서도. 입가에서도.
유하은이 그의 얼굴을 잡았다.
"준호!"
"기억 붕괴가 진행되고 있어."
준호가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는 의사처럼.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준호의 것이 아니었다.
"뇌신경계가 과부하 상태야. 시간 감각이 와해되고 있어."
그의 눈이 한순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준호의 눈이 유하은과 강도현을 바라봤다. 자신의 눈. 진짜 준호의 눈.
"미안해."
그 말이 끝나고 다시 눈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강도현이 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강도현의 목을 향해.
"준호!"
유하은이 소리쳤다.
준호의 손이 멈췄다. 아니,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강도현의 목에 닿기 전에 준호 자신의 다른 손이 그 손을 잡았다.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두 개의 의지가 한 몸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나는... 나는..."
준호가 비명을 질렀다.
정은태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구? 아니지. 넌 그 이상이야. 넌 우리의 연장이야. 우리의 손과 발이야. 우리의 칼이야."
"거짓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모두 거짓이야."
그리고 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박충준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박충준이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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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30분.
포천 산림 지역의 진입로.
준호, 강도현, 유하은은 차에서 내렸다. 한적한 산길.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어둠과 소나무뿐.
강도현이 지도를 펼쳤다. 지하 통로의 입구는 약 200미터 앞. 낡은 환기구 근처.
그들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준호가 멈췄다.
"뭐야?"
유하은이 물었다.
"발소리. 두 개."
준호가 중얼거렸다.
강도현과 유하은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준호의 귀는 더 민감했다. 기억을 추출하는 능력자의 뇌는 타인의 신경파를 감지할 수 있었다.
준호의 시야가 흔들렸다. 주변의 소나무들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마치 물 속에 잠긴 것처럼 느려졌다가 갑자기 빨라졌다. 그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고, 목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 오고 있어."
그 순간, 산림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첫 번째는 정은태였다. 검은 양복을 입은 깔끔한 남자.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두 번째는—
준호의 숨이 멎었다.
박충준이었다.
자신의 아버지. 기억 속에서만 보던 그 남자가 현실 속에 서 있었다.
박충준은 준호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그 목소리. 준호는 그 목소리를 알았다. 기억 속에서 몇 번이고 들었던 목소리. 명령하는 목소리. 지배하는 목소리.
하지만 동시에 수십 개의 다른 목소리가 준호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정은태를 제거하고 귀환할 것.*
*우리가 너를 지킬 거야.*
*넌 누구야?*
*넌 누구야?*
*넌 누구야?*
준호의 눈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귀에서도. 입가에서도.
기억 붕괴 증후군이 말기에 접어들었다.
강도현이 준호의 변화를 봤다. 그의 몸이 경직되었다. 마치 누군가 전기를 흘리는 것처럼.
유하은이 준호의 이름을 불렀다.
"준호!"
하지만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준호의 웃음이 아니었다. 여러 명의 목소리가 섞인 웃음. 마치 한 몸에 여러 명이 살고 있는 것처럼.
박충준이 한 걸음 다가섰다.
"이제 넌 완성됐다. #7-A. 완벽한 도구."
"아니야."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준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겹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나는 이준호야."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반복했다. 마치 자신을 설득하는 것처럼.
"나는 누군가의 도구가 아니야."
강도현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자신도 모르게. 강도현의 목을 향해.
"준호!"
유하은이 소리쳤다.
준호의 손이 멈췄다. 아니,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강도현의 목에 닿기 전에 준호 자신의 다른 손이 그 손을 잡았다.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두 개의 의지가 한 몸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나는... 나는..."
준호가 비명을 질렀다.
정은태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구? 아니지. 넌 그 이상이야. 넌 우리의 연장이야. 우리의 손과 발이야. 우리의 칼이야."
"거짓이야."
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모두 거짓이야."
그리고 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박충준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박충준이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만큼 오래전부터.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든 행동도 조종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