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거울 앞에서 준호는 몸을 굴렸다.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어제는 그렇지 않았는데. 아니,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제가 언제였는지부터 헷갈린다. 시간이 연속되지 않는다. 5시간이 사라졌다. 그 5시간 동안 자신은 어디에 있었나. 무엇을 했나.
누군가를 죽였나.
거울 속 입술이 움직였다. 그의 신호 없이. 떨리는 입술이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모양을 바꿨다.
그것이 자신의 움직임인지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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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의 벤치. 오전 6시 10분. 유하은이 옆에 앉아 있고, 손에는 노트북이 있다. 강도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거 봐." 유하은이 화면을 기울였다.
준호의 눈이 문서 위에서 멈췄다.
**피험체 #7-A: 이준호** **피험체 #7-B: 이준호**
같은 이름. 다른 번호.
"뭐야. 이게." 준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기록이 있다는 건..." 유하은이 말을 멈췄다. 말할 필요가 없다. 둘 다 안다. 기록이 있다는 건 실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준호가 스크롤을 내렸다. 첫 번째 파일 이름은 **#7-A 신경 발달 기록**. 두 번째는 **#7-B 능력 개발 프로토콜**.
"열어."
첫 번째 파일. 텍스트와 뇌파 그래프들.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자신. 그 옆 메모.
**안정적인 신경 발달. 정상 범위 내 기억력. 경찰 지망 표현 관찰됨.**
준호의 손이 떨렸다. "다음."
두 번째 파일. 다른 준호였다. 같은 얼굴인데 눈이 달랐다. 눈빛이 죽어 있다. 병원 침대 위에서 센서를 붙인 채 주사를 맞고 있다.
**강화 신경 자극 적용. 기억 추출 능력 개발 진행 중. 분리 증상 관찰 시작.**
"분리 증상?" 준호가 중얼거렸다.
"신체와 정신이 분리되는 느낌. 해리 증상." 유하은이 설명했지만, 준호는 듣지 않았다. 화면을 더 내렸다. 의료 기록들이 쌓여 있다. 주사의 종류, 용량, 시간. 뇌파 변화 그래프. 마지막 항목.
**심리 평가: 피험체 #7-A와 #7-B의 기억 공유율 68%. 의도적 분리 훈련 계속 필요. 완전한 독립 정체성 형성 목표.**
준호가 노트북을 밀어냈다.
"내가... 둘이라는 거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하은이 말하지 않았다.
준호가 일어섰다. 지하철 역사 안을 걸었다. 사람들이 그를 피했다. 그는 벤치 뒤 어두운 코너로 가서 쪼그렸다. 머리를 안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가.
그 생각이 맴돈다. 반복한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가.
유하은이 그를 쫓아왔다. 그녀의 손이 그의 어깨에 닿았고, 준호는 몸을 떨었다. "건드리지 마."
"이준호—"
"내가 누구냐고!" 그가 소리쳤다. 지하철역의 천장이 울렸다.
유하은이 물러섰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나도 같아."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나도 두 명이야." 유하은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한 명은 너를 도와야 하는 나. 다른 한 명은 너를 감시해야 하는 나. 저항군이 만든 나, 제니시스가 만든 나.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모르겠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흘리지는 않았다.
"날마다 생각해. 내가 누구인가. 그 생각만 한다. 그리고 매번 다른 답이 나와. 이게 진짜 내 생각인지, 아니면 누군가 심어놓은 생각인지. 구분이 안 돼."
준호가 일어섰다. 유하은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자신을 본다. 같은 절망. 같은 두려움.
"그럼 우리는..." 준호가 말을 잇지 못했다.
"유령이야. 우리는 유령이야."
침묵이 내려앉았다. 준호는 그 말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하은의 손이 자신의 손을 찾았다. 손가락이 얽혔다. 따뜻했다. 적어도 이것은 진짜였다.
강도현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그가 걸어왔다. 얼굴이 창백했다. 손에는 또 다른 문서가 들려 있었다. "백두 연구소의 전체 프로토콜 기록을 얻었다."
강도현이 문서를 펼쳤다. 제목이 써 있었다.
**프로젝트 제니시스 - 국가 완전 통제 시스템**
"그들의 목표는 모든 국민의 기억을 조작해서 하나의 통일된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강도현이 읽었다. "그 전에 먼저 능력자들로 실험한다. 너희 같은 사람들을."
"그래서 우리를 두 명으로 만든 거?" 준호가 물었다.
"너희를 여러 개의 정체성으로 만드는 거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자신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너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조작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결국 너희는 움직이지 않는다."
준호가 그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해는 오지 않았다. 대신 더 깊은 공포가 밀려왔다.
"너는 프로토타입이야, 준호." 강도현이 계속했다. "첫 번째 성공한 사례. 너의 실험이 성공했으니까, 이제 그들은 국민 전체에게 적용하려고 한다."
강도현이 또 다른 문서를 펼쳤다. 그 안에 준호의 신상이 적혀 있었다.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그 아래 붉은 글씨로.
**살인 혐의. 미해결 사건 12건. 용의자 특정 불가.**
"어제 밤, 강남역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어." 강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피해자는 제니시스 요원이었어. 그리고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이 너를 가리키고 있어."
준호의 몸이 굳었다. "내가... 그걸 했다고?"
"#7-B가 했어." 유하은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그 기억이 #7-A인 너에게 남겨졌어."
준호가 자신의 손을 봤다. 손금이 보였다. 평범한 손. 하지만 그 손이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가장 끔찍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의 휴대폰. 화면에 알 수 없는 번호가 떠 있다. 손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움직임으로.
음성 메시지였다.
**"이준호. 너는 이제 준비가 됐다. 돌아와라. 백두로.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너는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그 답은 여기에만 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박충준.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음성 메시지가 끝났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폰을 떨어뜨렸다.
"함정이야." 강도현이 말했다. "절대 가면 안 된다."
하지만 준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걸음을 옮겼다.
"준호!" 유하은이 그의 팔을 잡았다. "따라와.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들은 폐선 터널의 어두운 복도를 달렸다. 강도현이 작은 사무실 같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옛날 역무실인 듯했다. 먼지가 자욱했다. 그들은 문을 잠갔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그들을 찾고 있었다.
유하은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백두 연구소의 내부 지도가 떠 있었다.
"여기가 기록 보관소야." 유하은이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지하 7층. 여기에 모든 피험체의 기록이 있어."
"우리가 들어갈 수 없다." 강도현이 말했다. "보안이 너무 심해."
"아니, 우리는 들어갈 수 있어." 유하은이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가. 너의 생체 정보가 등록되어 있어. 피험체 #7-A로. 너는 그 시스템의 일부야."
"그건 함정이야." 강도현이 다시 말했다.
그때 밖에서 총성이 울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강도현이 몸을 날렸다. 총알이 그의 옷자락을 스쳤다.
"나가야 해!" 유하은이 외쳤다.
강도현이 뒷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몸이 멈췄다. 눈이 커졌다. 목에 총이 겨누어져 있었다. 정은태였다. 박충준의 오른팔. 그의 표정은 냉정했다.
"강도현. 넌 제니시스의 감시 대상이야. 오래전부터." 정은태가 말했다. "박충준이 너를 살려준 건 너의 가치 때문이야. 하지만 이제 넌 쓸모없어."
강도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유하은이 비명을 질렀다.
"잠깐!" 준호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다. 더 깊고, 더 낮고, 더 차갑고.
정은태가 총을 돌렸다. 준호를 겨누었다. "피험체 #7-B. 드디어 깨어났군."
준호의 눈이 초점을 잃었다. 한 순간, 정은태는 그 눈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봤다. 무언가 차갑고, 비어 있고, 살인적인 것.
그 순간은 짧았다. 1초도 채 안 됐다.
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너무 빨라서 정은태가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손가락이 정은태의 손목에 닿았다. 총이 떨어졌다.
정은태가 비명을 질렀다. 팔이 부러졌다.
강도현이 총을 집었다. 정은태를 겨누었다. "움직이지 마."
하지만 준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정은태의 목을 향해.
"준호!" 유하은이 그의 팔을 잡았다. "멈춰!"
준호의 손이 멈췄다. 정은태의 목에 닿은 채로.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누르는 힘이 증가했다. 정은태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입에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제... 제니시스... 박충준... 그를... 멈춰..."
그 순간, 준호의 눈이 초점을 맞췄다. 그 안에는 다시 두려움이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손을 떨어뜨렸다.
정은태가 무릎을 꿇고 기침했다. 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미안해." 준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렸다. "미안해. 내가... 내가 뭐 하는 거야?"
그의 눈이 다시 초점을 잃었다. 그리고 이번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도현이 움직였다. 정은태를 묶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은태의 입에서 웃음이 나왔다.
"넌 모르지, 강도현." 정은태가 말했다. 목이 쉬었지만 말은 계속됐다. "박충준은 이미 다른 사람들을 보냈어. 기억 거래소의 사람들. 너희를 없애기 위해."
"거래소?" 유하은이 물었다.
"제니시스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야." 정은태가 말했다. "기억을 사고팔고, 정체성을 조작하는 사람들. 박충준과 거래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어. 너희는 둘 다에게 위협이니까."
강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밖에서 새로운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가야 해!" 유하은이 외쳤다.
그들은 뒷문으로 나갔다. 터널 깊숙한 곳으로. 발소리가 뒤따랐다. 총성이 울렸다. 벽에 구멍이 생겼다.
"여기!" 강도현이 옆의 작은 통로로 들어갔다. 그들은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발소리가 지나갔다. 하지만 곧 멈췄다. 누군가가 그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유하은이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백두 연구소의 내부 지도가 여전히 떠 있었다.
"여기가 기록 보관소야." 유하은이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지하 7층. 여기에 모든 피험체의 기록이 있어."
"우리가 들어갈 수 없다." 강도현이 말했다. "보안이 너무 심해."
"아니, 우리는 들어갈 수 있어." 유하은이 준호를 바라봤다. "준호가. 너의 생체 정보가 등록되어 있어. 피험체 #7-A로. 너는 그 시스템의 일부야."
"그건 함정이야." 강도현이 말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알았어. 가자."
준호가 일어섰다. 그의 눈이 다시 초점을 잃기 시작했다. 뇌파 신호가 울렸다. 박충준의 원격 신호. 그것이 #7-B를 깨우고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뇌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다. 뭔가가 깨어나고 있다.
"준호?" 유하은이 물었다.
"가야 한다."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백두로. 아버지를 봐야 한다."
"그건 함정이야." 강도현이 다시 말했다.
"알아." 준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가야 한다."
그들은 지하 터널을 통해 백두 연구소로 향했다. 뒤에서는 계속 발소리가 들렸다. 거래소의 사람들. 제니시스의 요원들. 모두가 그들을 찾고 있었다.
준호는 걸으면서 자신의 손을 봤다. 손금이 보였다. 평범한 손. 하지만 그 손이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가장 끔찍했다.
그리고 그 손이 다시 움직이고 싶어 하고 있었다.
준호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음성 메시지. 박충준의 목소리.
**"이준호. 정은태가 실패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어. 너는 이미 깨어나고 있다. 거래소의 사람들도 너를 쫓고 있지. 그들은 너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넌 그들보다 빠를 거야. 그들을 멈춰. 그들을 죽여. 그것이 너의 목적이다. 돌아와라. 아버지가 명령한다."**
준호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