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 거래소의 소동
강도현의 차는 도시 외곽의 낡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엔진음이 멈추고 남은 것은 습기 찬 공기와 천천히 떨어지는 물소리였다.
"여기가?"
준호가 물었다. 강도현은 대답 대신 핸들을 꽉 쥐었다.
"거래소. 정보가 필요해."
"서민준?"
"그 놈도 뭘 알겠지."
차 문이 닫혔다. 두 사람은 지하 깊숙이로 내려갔다. 계단은 끝이 없었다. 콘크리트 벽에 녹이 슬어 있었고, 손잡이는 차갑기를 넘어 얼었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기억 때문이 아니라 추위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지하 5층. 폐선 터널이 보였다.
거래소는 예상과 달랐다. 명백한 불법 시설이었지만, 그곳은 마치 오래된 지하철역처럼 질서 있었다. 형광등이 천장 가득히 붙어 있었고,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준호의 눈이 천장을 훑었다. 적어도 열두 개. 벽에도. 기둥에도. 거래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십 명의 능력자들이 모두 그 카메라 아래에 있었다. 거래 중인 자들, 대기 중인 자들, 신경 모니터를 차고 있는 자들. 그들의 이마와 관자놀이에 부착된 작은 기계 장치들이 깜빡거렸다. 신경 신호 추적 칩. 준호의 머리가 무거워졌다. 모두가 감시당하고 있다. 모두가 통제당하고 있다.
"서민준을 찾아."
강도현이 속삭였다.
거래소 중앙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유리벽 너머로 검은 정장의 남자가 보였다. 서민준. 그의 얼굴은 마스크처럼 평탄했다. 준호와 강도현을 보는 순간, 그것이 깨졌다. 눈이 커졌다. 입이 벌어졌다. 놀람이 아니라 공포였다.
서민준이 일어섰다.
"너 왜 여기 왔어?"
그가 준호에게 외쳤다. 거리는 10미터.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가까웠다.
강도현이 앞으로 나갔다. 준호는 그의 뒤를 따랐다.
"정은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냐."
강도현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위험해. 지금 당장 나가."
서민준의 손이 책상 아래로 내려갔다. 준호가 봤다. 빨간 버튼. 경보 버튼이었다. 손가락이 닿으려던 순간—
"정은태가 넘겨준 그 기억. 피해자가 나라고 했어. 이준호라고."
강도현이 한 발 더 다가갔다.
"근데 넌 정은태와 어떤 관계야? 거래소를 통해 뭘 주고받는 거야?"
서민준의 입이 움직였다.
"너희 둘 다 죽는다."
손가락이 버튼을 눌렀다.
거래소의 불이 꺼졌다. 사이렌이 울렸다.
순간 혼란이 몰려왔다. 능력자들이 일어섰고, 추적 칩 위의 붉은 불이 깜빡였다. 강도현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나가!"
"어디로?"
"지금 생각해!"
거래소 입구로 향하는 사람들의 흐름이 거꾸로 변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경찰이다. 계단 위에서 경찰복을 입은 자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제니시스 추적팀. 준호는 직관적으로 알았다. 그들의 움직임이 일반 경찰이 아니었다. 너무 정확했다. 너무 빨랐다.
강도현이 다른 방향으로 끌었다. 거래소 뒤쪽. 비상구. 준호가 따라가며 뒤를 봤다. 추적팀이 거래소에 들어왔다. 능력자들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서민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문을 잠갔다.
"이쪽!"
누군가가 외쳤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거래소의 왼쪽 끝, 창고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강도현이 멈췄다. 준호도.
여자가 나타났다. 흰 셔츠, 검은 바지. 나이는 스물다섯 정도. 준호의 나이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훨씬 늙어 보였다. 마치 몇십 년을 산 사람처럼.
"빨리!"
그녀가 손을 뻗었다. 준호가 다가갔다.
"너는?"
강도현이 물었다.
"나중에. 지금 도망쳐."
그녀가 이끌었다. 창고 뒤의 좁은 통로. 옛날 환풍구 같은 것. 그들이 들어가자 그녀가 뒤를 닫았다. 추적팀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통로는 거래소 아래의 또 다른 터널로 이어졌다. 버려진 선로가 있었다. 손전등의 빛 아래 녹슨 레일이 보였다.
"여기서 잠깐만."
그녀가 멈췄다. 준호와 강도현도 멈췄다. 추적팀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5분. 아니, 더 긴 것 같았다. 시간이 느려졌다.
"이제 괜찮아."
그녀가 말했다.
"너 누구야?"
준호가 물었다.
"유하은."
"거래소에서 뭐 하던 거야?"
유하은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의심과 뭔가 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너처럼 기억이 이상해. 어떤 날은 너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어떤 날은 너를 감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뭔 말이야?"
"나도 모르겠어. 근데 너를 봤을 때, 그 생각이 멈췄어."
강도현이 움직였다. 손을 허리로 가져갔다. 무기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저 추적팀들. 넌 뭐하는 거야?"
"기억 저항군이야."
유하은이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긴장이 감돌았다.
"제니시스 피해자들을 모으는 조직. 우리는 조작된 기억을 되돌리려고 해."
강도현의 손이 더 깊숙이 들어갔다. 유하은이 그것을 본 듯 한 발 물러섰다.
"근데 너를 봤을 때..."
그녀가 준호에게 다시 눈을 맞췄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너는 뭔가 다르다. 보통 능력자들은 기억 속에서 다른 사람의 신호만 있는데, 넌... 넌 자신의 신호가 여러 개야."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뭔 소리야?"
"너는 한 명이 아니라는 거야."
유하은이 손을 펼쳤다. 그녀의 손가락에 작은 장치가 붙어 있었다. 기억 스캐너. 의료용이 아닌, 거래소식 불법 장비였다.
"이걸로 너를 스캔해봤어. 너한테서 나오는 신경파가 비정상이야. 마치 같은 뇌에서 여러 개의 신원이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강도현의 눈이 좁혀졌다.
"그럼 넌 뭐야? 저항군이면서 왜 거래소에 있었어?"
"정보 수집. 그리고..."
유하은이 말을 끝내지 않았다.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추적팀이 터널을 향해 오고 있었다.
"도망쳐. 저쪽."
유하은이 선로 너머로 가리켰다. 어둠 속으로. 준호와 강도현이 따라갔다. 유하은도. 발소리는 점점 커졌다. 손전등의 빛이 터널 벽에 비쳤다.
그때 준호의 손이 떨렸다. 기억 능력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추적팀 중 한 명이 가까워졌다. 거리 5미터. 준호는 그 경찰관을 봤다. 얼굴이 선명했다. 눈이 마주쳤다.
준호의 손이 올라갔다. 접촉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기억 능력의 고급 형태. 뇌파에 직접 침투. 경찰관의 신경계를 흔들었다.
경찰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손전등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그는 옆 벽에 몸을 부딪쳤다. 뒤의 동료들에게 손을 들었다.
"이쪽 아니야. 저쪽이야."
그들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준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능력의 대가. 그는 코를 누르고 계속 뛰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세상의 초점이 흐릿해졌다. 마치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발밑의 선로가 한 번에 두 개로 보였다가 다시 하나로 수렴했다. 시각이 흔들렸다.
"여기!"
유하은이 외쳤다. 버려진 열차. 1970년대 지하철 차량. 문이 열려 있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추적팀의 발소리가 열차 옆을 지나갔다. 10초. 20초. 1분.
침묵이 돌아왔다.
준호가 숨을 고르려고 했다. 하지만 심장이 계속 뛰었다. 그리고 그의 눈이 흔들렸다. 열차 창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거울처럼. 준호가 자신을 봤다.
얼굴이 다르다.
미세하게. 극히 미세하게. 하지만 명확하게. 왼쪽 눈이 예전보다 작아 보였다. 광대뼈의 각도가 달랐다. 입술의 두께가 변했다.
"뭐 해?"
유하은이 물었다.
"거울 봐."
준호가 가리켰다. 유하은이 창문으로 갔다. 자신을 봤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렸다.
"내 얼굴도 이상해."
"뭐가?"
"모르겠어. 그냥... 낯설어."
강도현이 시계를 봤다. 밤 10시 47분. 그리고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 강도현의 화면에 메시지가 뜬 것을 준호가 봤다.
강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뭐야?"
"아버지의 이름을 알아냈다. 박충준. 그는 아직 살아있다."
준호의 세계가 기울었다. 열차 바닥이 솟아올랐다. 아니, 자신의 중심이 옮겨진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몸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준호?"
유하은이 손을 내밀었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기억이 흘러내렸다. 한 장면. 낡은 실험실. 흰 코트를 입은 남자. 자신의 얼굴. 그 남자가 자신을 보며 웃고 있었다.
"넌 누구인가?"
그 목소리는 준호 자신의 목소리였다.
열차 안의 공기가 얼어붕었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뇌 속에서 뭔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마치 물에 잠긴 거울이 깨지는 소리처럼, 자신의 기억 속에서만 울려 퍼지는 음파.
"준호. 호흡을 해. 천천히."
유하은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렸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이 누구의 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손가락이 다섯 개. 맞다. 그런데 왜 낯설지?
"강도현. 저 남자 괜찮아?"
"기억 붕괴 초기 증상 같은데..."
강도현이 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손의 감각이 들어왔다. 손가락이 자신의 승모근을 누르고 있었다.
준호의 눈이 떨렸다.
"박충준이... 살아있다고?"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음성대역이 한 옥타브 낮아진 느낌. 아니면 높아진 느낌. 자신이 진짜로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2년 전 경찰 사건. 그날 뭐가 있었어?"
강도현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그 기억의 자리가 공허했다. 마치 누군가 그 부분을 도려낸 것처럼. 깔끔하게. 수술처럼.
"모르겠어. 기억이..."
"없지. 그게 문제야."
강도현이 휴대폰을 켜 들었다. 화면에 뭔가 띄웠다. 사진. 준호를 봤다.
"이건 너고, 이것도 너인데..."
두 사진이 다르다. 같은 얼굴이지만, 눈빛이 다르다. 하나는 공포로 가득했다. 다른 하나는 무감정했다.
"저 사진들이 뭐야?"
유하은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제니시스 데이터베이스에서 긁어온 거. 같은 사람인데 다른 시간에 찍혔어. 신원이 겹친다."
강도현이 또 다른 사진을 띄웠다. 세 번째 사진. 준호는 그것을 보고 뒤로 물러섰다.
"그건... 내가 아니야."
"그럼 뭐야?"
"모르겠어."
세 번째 사진 속 남자는 확실히 준호와 비슷했지만, 뭔가 본질적으로 달랐다. 눈의 위치. 광대뼈. 턱선. 그것들이 모두 1밀리미터씩 다르게 배열되어 있었다. 마치 같은 얼굴의 인형을 여러 개 만들되, 각각을 조금씩 다르게 손질한 것처럼.
"이게 뭔 말이야. 복제?"
준호의 목소리에 광기가 섞여 들었다.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정신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러 곳을 흘러다니고 있다는 것을. 마치 강물처럼.
"최악의 경우, 그래."
강도현이 말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열차 밖에서 소리가 났다. 파이프 음. 추적팀이 열차를 두드리는 소리.
"여기야! 이 열차!"
목소리들이 겹쳤다. 손전등 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준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이상했다. 마치 자신이 자신의 신체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것처럼.
"저 쪽 문으로!"
유하은이 외쳤다. 열차의 반대편 문. 그들이 달렸다. 준호는 뛰면서도 자신의 다리가 정상인지 확인하려 했다. 왼쪽 다리가 약간 더 길었나? 오른쪽 발목이 더 약했나? 기억이 없었다.
문이 열렸다. 유하은이 먼저 뛰어내렸다. 강도현도. 준호가 마지막이었다. 그가 선로에 내릴 때, 그의 발이 실수로 레일에 걸렸다.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손을 잡았다.
유하은이었다.
"나도... 내 몸이 이상해."
유하은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계속 가!"
강도현이 외쳤다. 그들이 터널을 따라 달렸다. 어둠 속으로. 준호는 자신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자신의 발소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발소리가 자신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터널이 끝났다. 지상으로 나갔다. 도시의 야간 불빛. 네온사인.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모든 것이 번쩍거렸다. 준호의 눈이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눈이 아니라 뇌가 적응하지 못했다. 청각도 이중화되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가 두 개처럼 들렸다. 공간감각이 흔들렸다.
"여긴 안전해. 일단 멈춰."
강도현이 한 건물의 뒤쪽으로 그들을 밀어냈다. 골목. 쓰레기 냄새. 벽의 낙서. 모든 것이 준호에게는 낯선 세상이었다.
준호가 손을 올렸다.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광대뼈. 턱. 코. 입술. 손가락이 얼굴을 따라 움직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멈췄다.
흉터. 작은 흉터. 왼쪽 관자놀이 위에.
"이게 뭐야?"
준호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눌렀다. 통증이 없었다. 하지만 뭔가 안에서 울렸다. 마치 금속 탐지기가 금속을 감지했을 때처럼.
"뭐 봤어?"
유하은이 물었다. 준호는 그녀를 봤다. 그녀의 얼굴도 앞에서 봤을 때보다 달라 보였다. 오른쪽 관자놀이에도 같은 흉터가 있었다.
"기억이 계속 빠져나가. 그리고 내 몸이..."
준호가 말을 멈췄다.
"나도 그래. 어쩌면..."
유하은이 말을 끝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준호를 봤다. 그 눈빛 속에 두려움과 연민이 섞여 있었다.
"어쩌면 뭐?"
"우리가 이미 죽어있는 건 아닐까?"
그 말이 끝나는 순간, 강도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 화면에 알 수 없는 번호가 떠 있었다. 강도현이 받았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누구세요?"
응답이 있었나보다. 강도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준호는 강도현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
"잠깐... 그게... 뭐라고요?"
강도현이 다시 말했다. 그의 손이 떨렸다. 휴대폰을 준호에게 내밀었다.
"너 받아. 이 사람이 너를 찾는다고."
준호가 휴대폰을 받았다. 차가운 금속. 통화 중.
"여보세요?"
준호가 물었다.
응답이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 나이 60대쯤. 그 목소리를 준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들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안녕, 준호. 오랜만이야."
"누세요?"
"넌 내 목소리를 잊었구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당신이 누구세요?"
"난 너의 아버지 박충준이야."
준호의 손이 얼어붕었다.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거짓말이야."
"그럴 수 있지. 너는 지금 많은 거짓말 속에 살고 있으니까."
박충준의 목소리에 냉정한 웃음이 섞여 있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니?"
"당신이 뭐 했는지 알고 싶어요."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분노였다. 아니면 공포였다. 혹은 둘 다.
"널 만들었지. 너와 또 다른 너들을. 넌 첫 번째 성공작이야."
침묵이 흘렀다. 준호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유하은과 강도현이 그를 봤다.
"넌 날 죽였어, 준호."
박충준의 말이 준호의 뇌에 박혔다. 자신이 살인자라는 의미.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의미. 그런데 왜 그 기억이 없는가? 그 공백이 무엇인가?
"하지만 실제로는..."
박충준이 말을 끝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준호가 휴대폰을 내렸다. 손이 계속 떨렸다. 자신의 손이 맞는가? 그 손이 정말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가? 아니, 이미 죽였는가?
"뭐라고 했어?"
강도현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쥐었다 펼쳤다. 반복했다.
"준호?"
유하은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인 거야?"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준호, 진정해. 그건..."
"내가 누군가를 죽인 거야?"
준호가 다시 물었다. 이번엔 더 크게. 그의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골목 어딘가에서 개가 짖기 시작했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올렸다. 주먹을 쥐었다. 벽을 향해. 콘크리트 벽에 부딪혔다. 손가락이 부러질 듯 아팠다. 다시. 또 다시. 먼지가 떨어졌다. 신음이 나왔다.
"준호!"
강도현이 그를 잡았다.
"내가 누구야..."
준호가 중얼거렸다. 반복했다. 마치 주문처럼.
유하은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손이 따뜻했다. 하지만 준호는 그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의 신경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 모두 누군가의 실험 속에 있는 거야."
강도현이 말했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우린 무기야."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피가 흘렀다. 벽과의 충돌로 인한 상처. 하지만 그것도 누구의 피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박충준이 뭐라고 했어?"
강도현이 다시 물었다.
준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그를 죽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준호가 말을 멈췄다. 전화가 끊겼다. 그 말 끝에 뭐가 있었을까? 그 '실제로는'의 다음에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을 알아야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묵이 흘렀다. 골목은 여전히 어두웠다. 위에서 도시의 불빛이 희미하게 내려왔다.
"우리 나가자."
유하은이 말했다.
"어디로?"
강도현이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 있으면 안 돼."
유하은이 준호를 봤다.
"너도 위험해. 너 자신이."
그들이 골목을 빠져나갔다. 밤의 도시로. 도시의 불빛 아래로.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추적팀. 또 다른 위험.
"빨리!"
유하은이 외쳤다.
준호는 뛰었다. 자신의 다리로.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다리로.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자신 안에 몇 명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었다.
아니면 그들 모두가 죽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