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에서
목에 감긴 끈이 조여든다. 숨이 막힌다. 손가락이 들어갈 틈도 없다. 피부가 타는 듯 아프다. 의식이 흐릿해진다.
그 순간, 눈이 떠진다.
천장이 보인다. 물얼룩.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목을 만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피부는 여전히 조여드는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체 모를 여자의 얼굴. 서민준의 냉담한 눈빛. 그리고 그 말.
'너는 실패한 원본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세요?"
"나다. 강도현이다."
목소리는 거칠었고, 어딘가 다급했다.
"지금 어디 있냐?"
"집에 있는데—"
"나가. 지금 바로.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뒷골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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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 섰을 때, 준호는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정상이었다. 당연하지. 그 여자는 자신의 복제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정상일 리가 없다.
거울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유리가 깨졌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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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은 한적했다. 회색의 벽들이 하늘을 가린 곳이었다. 강도현의 차는 이미 와 있었다. 준호가 탔을 때, 강도현은 즉시 차를 돌렸다.
"어떻게 찾았어?"
"찾은 게 아니라 너를 지켜봤다. 넌 그걸 모르겠지만."
강도현의 손은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였다. 준호가 마지막으로 경찰서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뭐가 일어났어?"
"정확히는 뭐가 일어난 건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그런데 일어난 건 분명하다."
강도현은 신호등 앞에서 멈췄다. 빨간 불이었다.
"너, 2년 전에 뭐 했는지 기억나?"
"경찰관이었지."
"그 다음은?"
준호는 잠시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으려 했지만, 그곳은 마치 안개로 덮인 것처럼 뿌옇다가 갑자기 명확해졌다가를 반복했다.
"사건이 있었어. 그 다음에... 퇴직했어."
"그 사건이 뭔데?"
"기억이 안 난다."
강도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동정이 아닌 다른 감정이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그게 문제야."
차가 다시 움직였다. 강도현은 도심 외곽으로 향했다. 준호는 창밖을 봤다. 건물들이 점점 커졌다. 회색의 건물이 보였다.
"저기 경찰청 특수 수사부야."
강도현이 말했다. 차는 건물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주차장에 멈췄다.
"저기가?"
"능력자들을 관리하는 곳이다. 프로젝트 제니시스라고 불리는 세력. 정부 산하의 비밀 기구야."
강도현은 담배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그들이 뭐를 하는데?"
"기억을 조작한다."
준호는 건물을 바라봤다. 한 창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꺼졌다.
"내 기억도?"
"특히 너의 기억을."
강도현이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차 안에 가득 찼다.
"너, 아버지 기억 있어?"
"있지."
"그 기억들이 일관성 있어?"
준호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모습이 여러 개 떠올랐다. 자신을 안아주는 따뜻한 손. 웃음소리. 동시에 자신을 노려보는 차갑고 흐릿한 눈. 주사기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
두 개의 아버지가 겹쳤다.
"일관성이... 없네."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의 손이 주먹으로 쥐어졌다.
"너를 도와주고 싶어."
강도현이 말했다.
"너의 기억 구멍들을 찾고, 누가 그걸 만들었는지 알아내고 싶어. 근데 그러려면 넌 각오를 해야 해."
"각오?"
"진실을 마주할 준비."
준호는 강도현의 얼굴을 봤다. 주름이 깊었다. 턱이 움직였다. 씹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강도현의 눈이 어딘가를 바라봤다. 경계 모드로 전환된 것처럼 보였다.
"움직이지 마."
"뭐—"
"뒤에. 세 명."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만 천천히 돌렸다. 어두운 골목 입구에서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인물이 나타나고 있었다. 움직임이 빨랐다. 목표가 있는 움직임이었다.
"차에 타. 지금."
강도현이 준호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들은 재빨리 차 쪽으로 향했다. 세 명의 인물들도 속도를 높였다. 달리기 시작했다.
강도현이 엔진을 켰다. 차가 요동쳤다. 백미러에는 세 명의 인물들이 점점 작아졌다.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우리는 감시받고 있어. 계속."
강도현이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문자 알림이었다.
그는 화면을 켰다.
'너를 찾았다.'
발신자는 알 수 없었다.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뭐야?"
강도현이 물었다.
"누군가... 우리가 뭘 하는지 알고 있어."
창밖의 도시는 점점 빠르게 지나갔다. 강도현이 차선을 바꿨다. 급회전이었다. 준호의 몸이 흔들렸다. 그의 손이 대시보드를 잡았다.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저 차들이 뭐야?"
준호가 물었다. 뒤를 봤다. 두 대의 검은 승용차가 따라오고 있었다.
"제니시스 추적팀이거나 거래소의 사람들이거나. 둘 다 나쁜 쪽이야."
강도현의 얼굴에는 주름이 더 깊어졌다. 신호등이 빨간색이었다. 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맞은편 차들이 클랙션을 울렸다. 한 대가 옆으로 스치며 지나갔다.
"당신도 그들한테 쫓기는 거야?"
"오래전부터."
강도현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휴대폰을 꺼냈다. 한 손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눈은 여전히 도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뭐하는 거야?"
"위치 신호 끄는 중. 넌 휴대폰 배터리 빼."
"지금?"
"지금이야."
준호는 휴대폰 뒷부분을 누르고 배터리를 빼냈다. 화면이 검어졌다. 그 순간, 뒤의 검은 승용차가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다른 차로 방향을 바꿨다. 속도가 떨어졌다.
"놨어?"
"응."
"좋아. 이제 저 차들은 우릴 놓칠 거야. GPS 신호가 없으니까."
강도현이 시속을 낮췄다. 차분한 호흡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앞을 봤다. 백미러를 자주 확인했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안전한 곳."
강도현이 차를 골목으로 꺾었다. 좁은 도로. 낡은 건물들. 이곳은 도시의 버려진 부분이었다. 강도현이 한 건물 뒤에 차를 숨겼다. 라디에이터에서 수증기가 올라왔다.
"여기서 좀 있어."
강도현이 시동을 껐다. 엔진음이 사라졌다. 차 밖에서는 빗소리만 들렸다. 준호는 숨을 쉬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강도현."
준호가 말했다.
"응?"
"당신은... 어떻게 이런 걸 알아?"
강도현이 창밖을 봤다. 비가 유리창을 흐리게 만들었다.
"내가 경찰에 있을 때, 몇 건의 사건이 이상했어. 증거가 일관성이 없었고, 목격자들의 증언이 자꾸 바뀌었어."
"제니시스가?"
"그들이 맞아. 처음엔 믿기 힘들었어. 하지만 내가 직접 본 거야."
강도현이 준호를 봤다. 눈빛이 달랐다.
"한 용의자가 경찰서에 들어왔는데, 취조 중에 갑자기 자기 기억이 바뀐다고 울부짖었어. 어제까지는 없던 기억이 생겼다고. 그리고 몇 달 뒤에 그 용의자는 정신병원에서 죽었어."
침묵이 흘렀다. 빗소리만 들렸다.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어."
"뭐?"
"기억이 조작되다 보면, 결국 자아가 붕괴돼. 넌 누구인지 모르게 돼. 그게 제니시스의 목표야."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내 기억들이... 얼마나 조작된 거야?"
"모르지. 근데 너 아버지 기억만 해도 여러 개가 있다고 했잖아. 그럼 다른 기억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준호는 옆 창을 봤다. 빗방울이 떨어졌다가 모여 흐르고 있었다.
강도현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메모리 카드였다. 작은 은색 카드. 그것을 준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너를 경찰에서 떠나게 했던 사건의 기억. 넌 그 기억이 없어. 완전히 삭제됐어. 근데 내가 그때 너의 기억을 따로 보관했어."
준호가 카드를 받았다. 손에 들려오니 무게가 있었다. 마치 그 안에 무거운 비밀이 담겨 있는 것처럼. 카드를 만지는 순간, 거부감이 밀려왔다.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이 작은 물체 안에 자신의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생각이 공포스러웠다. 준호는 카드를 집어던졌다.
"이걸 보면... 내 기억이 돌아와?"
"모르지. 기억이 조작된 경우 원본을 봐도 뇌가 거부할 수 있어. 너는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거야."
준호는 카드를 다시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카드의 가장자리가 손에 파고들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이 안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부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진실이 여기 있었다.
"너는... 왜 날 도와주는 거야?"
강도현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경찰을 그만둔 이유가 뭔지 알아?"
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너 때문이야. 정확히는 너 같은 피해자들 때문이야."
"뭐?"
"2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내가 제니시스를 추적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들이 나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경찰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나왔지. 근데 넌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깨워야겠다고 생각했어."
강도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는 피해자야. 그들의 실험 대상. 그런데 넌 그것도 모르고 살고 있었어."
준호는 강도현을 봤다. 그의 얼굴에는 복수의 흔적이 있었다. 눈빛이 차가웠다.
"당신도... 누군가를 잃었어?"
강도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핸들을 세게 쥐었다.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그 침묵 자체가 대답이었다.
"이 카드를 어디서 봐야 돼?"
준호가 물었다.
"기억 거래소. 서민준한테 가. 그놈은 너를 죽일 생각이 없어. 왜냐하면 넌 돈이 되니까. 거래소는 상대적으로 안전해."
"그곳에 가면... 뭐 어떻게 되는데?"
"카드를 인터페이스에 연결해. 그럼 기억이 재생될 거야. 너는 그 기억을 봐야 해. 그게 진실이야."
준호가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떨렸다.
"강도현은? 당신은?"
"나는... 따로 움직여야 해."
강도현이 차 밖을 봤다. 빗이 더 강해지고 있었다.
"뭘?"
"제니시스의 본부를 찾아야 해. 그리고 거기 들어가야 해."
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본부를 찾으면... 뭐 할 거야?"
강도현이 준호를 봤다. 눈빛이 다르게 변했다. 차갑고 결정적인 눈빛이었다.
"그 안에 너의 진짜 기억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내가 찾던 것도."
강도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핸들을 잡고 시동을 켰다.
"가자."
차가 골목을 나왔다. 도시의 불빛이 다시 나타났다. 빗이 앞유리를 때렸다. 와이퍼가 작동했다.
"거래소까지 내가 데려다줄 거야. 그 이후로는... 넌 혼자야."
준호가 창밖을 봤다. 도시가 흐릿했다. 거리가 지나갔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모두가 자신의 기억이 조작되지 않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강도현의 차가 한 골목 모퉁이를 돌았을 때, 준호는 뒤를 봤다.
검은 승용차가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거리는 멀었지만, 확실히 따라오고 있었다. 속도가 일정했다. 추적하는 속도였다.
"또 왔어?"
준호가 말했다.
"GPS를 껐는데도?"
강도현이 백미러를 봤다. 얼굴이 굳었다. 턱이 움직였다. 이를 깨물고 있었다.
"저 차들은 GPS를 안 써. 육안으로 따라오고 있어."
"뭐?"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거야. 어디선가."
준호는 주변을 살폈다. 다른 차들, 건물, 창문.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 등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 순간, 강도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본 후 얼굴이 변했다. 턱이 움직였다. 이를 깨물고 있었다.
"뭐야?"
"메시지가... 왔어."
강도현이 화면을 준호에게 보였다.
'이준호를 내려놔. 그렇지 않으면 넌 죽을 거야.'
발신자는 '박충준'이었다.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숨이 막혔다.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화면이 흔들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박충준... 그게..."
"너의 아버지 이름이야?"
강도현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기억이 조작되었다면, 그 이름도 진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메시지는 실제였다. 지금, 이 순간에. 휴대폰 화면에 떠 있었다.
메시지 속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기억과 현실이 충돌했다. 준호의 뇌가 거부 신호를 보냈다. 시야가 흔들렸다.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느낌.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느낌. 모든 게 거짓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어. 그리고 지금... 우릴 찾고 있어."
강도현이 핸들을 꺾었다. 차가 급회전했다. 준호의 몸이 흔들렸다. 머리가 창에 부딪힐 뻔했다.
검은 승용차는 여전히 뒤에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