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측기가 세 번 삑삑거렸다. 지오는 헬멧 안쪽에 뜬 좌표 방출 그래프를 읽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주기 붕괴. 40억 년째 정확했던 신호가 지금 흔들려."
"수치로 말해." 마르가의 목소리가 통신에 끊어져 들어왔다. 그녀는 심연 회랑 입구에서 열두 명의 위치를 하나하나 점검하는 중이었다. "감상 말고."
지오는 신호원을 올려다봤다. 지하 20킬로미터, 인간의 시추 기술이 닿을 수 없는 깊이에서 결정 코어가 맥동했다. 벽면은 자기 복원 세라믹으로 젖은 것처럼 번들거렸고, 그 위로 발광 문양이 서서히 밝아졌다 사그라들었다. 카이가 코어 아래 3미터 지점에서 지질 샘플러를 박아 넣고 있었다.

"방출 간격이 118초에서 44초로 압축됐습니다." 지오가 말했다. "이건 계측 오차가 아니라—"

천장이 울었다.

낮고 긴 진동이 회랑 전체를 훑었다. 유기금속 합금 벽면에서 가루가 떨어졌다. 지오의 발밑 지반이 반 박자 늦게 흔들렸다.

"카이, 나와!" 도한이 소리쳤다. 보안 담당인 그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샘플러 버려, 지금—"
카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 위로 코어실 천장의 세라믹 판이 균열을 그렸다. 지오는 낙하 궤적을 계산하려 했다. 판의 질량, 낙하 각도, 카이와의 거리. 머릿속에서 숫자가 조립되기도 전에, 판이 떨어졌다.

소리는 거의 없었다. 그게 더 끔찍했다. 3톤짜리 세라믹이 카이의 상반신 위로 내려앉았고, 그의 손끝만 판 아래로 삐져나와 두 번 경련했다. 그리고 멈췄다.

"생체 신호 확인." 유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의료 담당인 그가 원격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심박… 없어. 없어요. 혈중 산소 급락, 뇌 활동—"

지오의 헬멧에 붉은 카운트가 떴다. 사망 확정 프로토콜. 숫자가 3, 2, 1로 내려갔다.

0.
그 순간 지오의 뒤통수 안쪽에서 무언가가 켜졌다. 눈이 아니라 뇌 뒤편에 직접 좌표가 박히는 감각. 흰빛이 시야를 삼켰다.

"—주기 붕괴. 40억 년째 정확했던 신호가 지금 흔들려."

지오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방금 그 문장을 이미 말했다. 카운트가 0을 찍었고, 카이의 손끝이 두 번 경련했고, 그다음—여기였다. 계측기가 세 번 삑삑거리기 직전. 그는 헬멧 시계를 봤다. 붕괴 4분 전.

"수치로 말해." 마르가의 목소리.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감상 말고."
지오는 손이 떨리는 걸 봤다. 장갑 안에서 손가락이 저 혼자 접혔다 펴졌다. 되돌아왔다. 미친 소리지만 되돌아왔다. 그는 신호원을 올려다봤다. 결정 코어가 아까와 똑같이 맥동했다. 방출 간격이 다시 118초에서 시작될 것이다. 44초까지 압축될 것이다. 그리고 천장이 울 것이다.

118초. 계산할 시간.
"지오." 마르가가 다시 불렀다. "보고."

"방출 간격 압축 확인." 지오는 목소리를 짜냈다. "곧 44초까지 떨어집니다. 그때 코어실 천장 북동 4사분면 세라믹 판이 붕괴합니다."
"근거는."

근거는 없었다. 근거는 그가 그 장면을 이미 봤다는 것뿐이었다. 지오는 카이를 봤다. 카이는 코어 아래 3미터 지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샘플러를 어깨에 메고, 아직 살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이, 거기 서." 지오가 말했다.

"어? 지질 스캔 아직—"
"거기 서라고." 지오는 이미 뛰고 있었다. 헬멧 안에서 숫자가 굴렀다. 벽면 문양이 밝아지는 주기를 셌다. 세 번째 밝아짐이 곧 44초 지점이다. 그때 균열이 시작되고, 판이 떨어지고, 낙하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1.4초. 카이를 판 궤도 바깥으로 밀어내려면 그 1.4초 안에 최소 2미터를 이동시켜야 한다.

문양이 두 번째로 밝아졌다.
"지오, 뭐 하는 거야." 도한이 그의 뒤를 쫓았다. "명령 없이 코어실 진입 금지—"

"셋 셀게." 지오는 카이의 어깨 뒤에 손을 붙였다. 카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돌아봤다. "하나."
천장이 울었다. 낮고 긴 진동. 아까와 똑같이. 벽에서 가루가 떨어졌다.

"둘."
균열이 그어졌다. 북동 4사분면. 계산대로.

"셋."
지오는 온몸의 체중을 실어 카이를 밀었다. 카이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며 옆으로 굴렀다. 그 자리에 세라믹 판이 내려앉았다. 소리는 거의 없었다. 3톤이 카이가 서 있던 자리를, 정확히 그 자리를 뭉갰다. 판 모서리가 지오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적.
"카이 생체 신호." 유리의 목소리. "심박… 정상. 정상이에요. 살아 있어."
카이가 판을 보고, 자기 손을 보고, 지오를 봤다. 헬멧 너머로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기… 방금 나 저기 있었는데."
"봤어." 도한이 판 위에 손을 얹었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음 낮았다. "봤다."

지오는 오른손을 봤다. 판 모서리가 스친 새끼손가락 끝이 뜨거웠다. 화상도 아니고 타박상도 아닌, 뼈 안쪽에서 올라오는 이상한 통증. 그는 장갑을 벗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손끝이 저릿하게 마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헬멧 바이저 안쪽, 자기 눈썹 근처에서 무언가가 시야에 걸렸다.
머리카락 한 올. 흰색.

지오의 머리는 검다. 서른한 살, 흰머리 한 가닥 없다. 그런데 지금 바이저 안쪽에 붙은 그 한 올은 명백히 희었다. 뿌리까지. 그는 그것을 손으로 떼어내려 했지만 장갑이 미끄러졌다.
"전원 후퇴." 마르가의 명령이 떨어졌다. "코어실 봉쇄. 지금 당장."
대원들이 회랑 위쪽으로 물러났다. 카이는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지오는 맨 뒤에 처졌다. 걸을 때마다 오른쪽 무릎이 낯설게 삐걱거렸다. 아침에는 이러지 않았다. 그는 걸음마다 자기 몸에서 뭔가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형이 떠올랐다.
D+310. 준오의 마지막 교신. 심층 진입조에 먼저 들어갔던 형은 통신 두절 직전 단 두 마디를 남겼다. "봤다." 그리고 손동작. 지오가 통신 영상에서 백 번도 넘게 돌려 본 그 손짓. 손가락 세 개를 펴서 안쪽으로 접는, 아무 매뉴얼에도 없는 수신호. 그때 지오는 형이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착란이라고. IMEC 사고 보고서에도 그렇게 적혔다.

형은 뭘 봤을까.
지오는 자기가 방금 겪은 것을 떠올렸다. 사망 확정 카운트가 0을 찍은 순간, 4분 전으로 돌아온 것. 낙석 궤도를 이미 아는 채로 카이를 밀어낸 것. 형도 이걸 봤나. 형도 되돌렸나. 형도 이 흰머리와 손끝의 통증을 알았나.

"멈춰야 할 때를 알아야 해."
준오가 지구를 떠나기 전, 훈련 마지막 날 밤에 했던 말. 그때는 그냥 형다운 잔소리였다. 지금은 다르게 들렸다.
"서지오."

마르가가 회랑 중간 안정 구역에서 그를 붙잡았다. 다른 대원들은 앞서 모듈로 향했다. 그녀는 헬멧 바이저를 지오의 얼굴 가까이 들이댔다.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계측기 같았다. 감정을 재는 게 아니라 이상치를 잡아내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

"천장이 무너졌습니다." 지오가 말했다. "카이가 밀려나서 살았고."
"그거 말고." 마르가는 물러서지 않았다. "너, 판 떨어지기 전에 정확히 어디로 떨어질지 알았어. 사분면까지 짚었지. 카운트다운도 없이 카이를 그 위치에서 정확히 빼냈고. 우연이 아니야."
"방출 주기를 계측했으니까—"

"주기로는 낙하 지점을 못 짚어." 마르가가 잘랐다. "질량 분포도 없이. 나는 지질 계산 15년 했어. 너 방금 예언한 거야, 계산한 게 아니라. 뭘 본 거지?"
지오의 심장이 뛰었다. 손끝의 통증이 다시 올라왔다. 흰머리 한 올이 아직 바이저 안쪽에 붙어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시간을 되돌렸다고. 카이가 한 번 죽었고, 내가 그걸 물렀다고. 그녀가 그 말을 믿을 리 없었다. 믿는다 해도—냉철한 마르가라면 이 능력을 어떻게 판단할까. 무기로? 위험으로? 제거 대상으로?
말하면 안 된다. 아직은.

"운이 좋았습니다." 지오가 말했다. "궤적이 눈에 보였어요. 순간적으로. 설명은 못 하겠습니다."
마르가는 그를 오래 봤다. 3초. 5초. 그녀는 거짓말을 재고 있었다.

"운." 그녀가 되뇌었다. "카이는 네 운 덕분에 살았어. 좋아. 그런데 서지오, 나는 운을 신뢰하지 않아. 다음에 또 '운이 보이면' 즉시 나한테 보고해. 명령이야."
"알겠습니다."
마르가가 몸을 돌렸다. 두 걸음 걷다가 멈췄다.

"그리고." 그녀가 뒤돌지 않고 말했다. "네 머리. 왼쪽 관자놀이. 흰머리 났어. 아까는 없었는데."
그녀가 사라졌다.
지오는 혼자 남은 회랑에서 장갑을 벗었다. 오른손 새끼손가락 끝의 살갗이 얇아져 있었다. 늙은이의 손끝처럼. 그는 손목의 의료 밴드를 켰다. 골밀도 측정값이 아침 수치보다 낮았다. 미세하게. 하지만 낮았다.







모듈로 돌아온 지오는 개인 콘솔 앞에 앉았다. 대원들이 카이를 회복실로 옮기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렸다. 그는 형의 마지막 교신 로그를 열었다. D+310. 파일 이름 준오_final_transmission.

영상이 재생됐다. 형의 얼굴. 헬멧 안에서 침착한, 죽음을 앞두고도 흐트러지지 않은 눈. "봤다."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안쪽으로 접는 손동작. 여기까지가 지오가 백 번 본 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되감기를 겪은 오늘, 화면 하단에 처음 보는 표시가 떴다. 복원 가능한 손상 데이터. 붉은 아이콘. 지오는 그것을 눌렀다.
로그가 다시 로딩됐다. "봤다." 손동작. 그리고 그 뒤로—전에는 잡음으로만 흐르던 구간에서, 잘려 나간 문장의 파편이 깜빡였다. 음성이 아니라 텍스트 자막의 조각. 준오가 통신 끝에 입력하다 만 마지막 문장.
지오는 그것을 오래도록 자신이 믿어 왔다. 형이 남기려던 말은 "멈추지 마라"였다고. 진실을 끝까지 쫓으라는 뜻이라고.
화면에 뜬 파편은 두 글자였다. 깜빡였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멈춰라.
"멈추지 마라"가 아니었다.

지오의 손끝이, 살갗이 얇아진 그 손끝이, 콘솔 위에서 얼어붙었다.
멈춰라.
지오는 그 두 글자를 다시 눌러 재생했다. 파편이 깜빡였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손상된 데이터라 앞뒤가 잘려 나갔지만, 확실히 "멈추지"가 아니었다. 형이 입력하다 만 문장은 "멈춰"로 시작했다. 뒤에 무엇이 붙는지는 잡음에 삼켜졌다.
그는 로그 타임스탬프를 확인했다. 준오의 손동작이 나온 순간과 자막 입력이 시작된 순간 사이에 3.2초의 공백이 있었다. 형은 "봤다"고 말한 뒤, 손가락 세 개를 접은 뒤, 3.2초 동안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이 문장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이 코앞인데. 산소가 떨어지고 있는데. 형은 마지막 3.2초를 이 두 글자에 썼다.
무엇을 멈추라는 것이었을까.
지오의 머릿속에서 형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훈련 마지막 날 밤의 잔소리. "멈춰야 할 때를 알아야 해." 그때 형은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자막에는 웃음이 없었다. 명령이었다.
지오는 로그의 손상 구간을 확대했다. 자막 텍스트의 픽셀을 하나하나 복원 알고리즘에 넣었다. 시간이 걸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콘솔을 두드리는 동안, 오른손 새끼손가락 끝의 얇아진 살갗이 자판 위에서 낯설게 미끄러졌다. 감각이 둔했다. 서른한 살의 손끝이 아니었다.
복원바가 47퍼센트에서 멈췄다. 그 이상은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지오는 화면을 노려봤다. 두 글자 뒤에 흐릿한 획 하나가 더 있었다. "멈춰라" 다음의 한 글자. 자음의 윤곽만 간신히. ㄴ인지 ㄷ인지 분간이 안 됐다.

"뭘 보고 있어?"
지오는 반사적으로 로그 창을 접었다. 레나가 그의 뒤에 서 있었다. 통신 담당인 그녀는 손에 배급 태블릿을 들고 있었고, 표정이 굳어 있었다.
"카이는." 지오가 물었다.
"살아 있어. 갈비뼈 두 대 금 갔고, 왼쪽 어깨 탈구. 그게 다야." 레나는 그의 옆 콘솔에 걸터앉았다. "3톤 판 아래 깔릴 뻔한 사람치고는 기적이지."
"기적."
"지오." 레나가 목소리를 낮췄다. "너 아까 회랑에서 뒤처졌잖아. 걸음이 이상했어. 그리고 지금 네 손." 그녀가 그의 오른손을 봤다. 지오가 장갑을 벗어둔 손. 새끼손가락 끝이 유독 창백했다. "왜 손끝이 저래?"
"판 모서리에 스쳤어."
"스친 자국이 아니야. 그건 살이 얇아진 거야." 레나는 공학 담당이었지만 응급 처치 자격도 있었다. 그녀의 눈이 그의 관자놀이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르가 말이 맞았네. 흰머리."

지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레나가 든 태블릿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건 뭐야."
레나의 손이 태블릿을 살짝 뒤로 뺐다. 잠깐이었지만 지오는 그것을 봤다.
"배급 보고서." 그녀가 말했다. "정오 점검 수치."
"수치가 왜 그래?"
레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고는 태블릿을 그에게 돌려 보였다. 화면에 산소 재생기의 잔여 산소량과 배급 로그가 떠 있었다. 붉은 줄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오늘 아침 08시 산소 잔량이 설계치 대비 정상이었어. 그런데 방금 12시 40분 점검에서—" 레나가 손가락으로 붉은 줄을 짚었다. "4.2일 치가 사라졌어."
"사라져?"

"소비량으로 설명이 안 돼. 열두 명이 4시간 동안 4.2일 치를 마실 수는 없어. 누출도 없고, 재생기 오류도 없어. 나는 세 번 검산했어." 레나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섞였다. "그냥 없어졌어. 코어실에서 사고가 난 그 시각에."
지오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코어실에서 사고가 난 시각. 카이가 죽은 시각. 그가 되감은 시각.
그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시간선을 맞췄다. 사망 확정 카운트가 0을 찍은 순간이 12시 몇 분이었는지. 되감기가 발생한 그 순간과, 산소가 증발한 그 순간이 맞물리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손끝의 통증이, 흰머리 한 올이, 얇아진 살갗이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되감기의 대가는 그의 몸만이 아니었다.
"마르가한테 보고했어?" 지오가 물었다.
"아직. 원인을 못 찾았으니까. 원인 없이 보고하면 대장이 뭐라 하겠어. '수치로 말해'." 레나가 마르가의 말투를 흉내 냈지만 웃지 못했다. "지오, 나 무서워. 산소가 이유 없이 사라지면 우리는 480일 설계를 못 채워. 잔량이 이 속도로 줄면—" 그녀는 계산을 멈췄다. "다시 검산해 볼게. 계측 오류일 수도 있어."
계측 오류가 아니었다. 지오는 그것을 알았다. 알아서 더 말할 수 없었다.
레나가 콘솔에서 내려섰다. 나가려다 돌아봤다.

"카이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회복실에서 자꾸 같은 말을 해. 진통제 맞고 헛소리 하는 건데."
"무슨 말."
"'나 이미 죽었어. 아까 판이 나를 뭉갰어. 그 느낌을 봤어.'" 레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충격이 컸나 봐. 안 깔렸는데 깔린 기억을 말해. 유리는 외상성 착란이라던데."
지오의 심장이 한 박자 걸렸다. 카이는 깔리지 않았다. 지오가 밀어냈으니까. 밀어내기 전, 되감기 이전의 회차에서만 카이는 판에 깔렸다. 그 기억은 사라졌어야 했다. 지오만 기억해야 했다.
그런데 카이가 그 느낌을 봤다.
레나가 모듈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지오는 다시 형의 로그를 열었다. 47퍼센트에서 멈춘 복원바를 노려봤다. "봤다." 형도 봤다. 카이도 봤다. 무엇을. 죽음을? 되감기를? 지워졌어야 할 기억을?
그는 손상 구간의 마지막 흐릿한 자음을 다시 확대했다. ㄴ인지 ㄷ인지. 복원 알고리즘을 한 번 더 돌렸다. 이번에는 픽셀 하나가 더 채워졌다.
"멈춰라. 되—"

두 글자 뒤에 이어지던 단어의 첫 음절이 깜빡였다. "되". 지오의 손끝이 얼어붙었다. 되감기. 되돌리기. 되풀이. 형이 마지막 3.2초에 치려던 문장은—
콘솔의 로그 창이 갑자기 붉게 점멸했다. 복원 데이터가 초기화되기 시작했다. 47퍼센트가 43, 38, 30퍼센트로 빠르게 무너졌다. 지오가 정지 명령을 눌렀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화면 상단에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떴다. 준오의 파일 시스템이 아니었다. 유적의 신호 구조가 그의 콘솔에 직접 개입한 흔적이었다.
기록 대상 확인. 관측 계속.
지오는 자기 뒤통수 안쪽에서 그 감각이 다시 켜지는 것을 느꼈다. 좌표가 박히던 그 자리. 흰빛이 아니라 냉기가. 무언가가 그를 보고 있었다. 형의 마지막 문장을 그가 읽지 못하도록, 정확히 지금 이 순간, 개입해서 지우고 있었다.
복원바가 0으로 떨어졌다.
화면에 남은 것은 형의 얼굴,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안쪽으로 접는 그 손동작뿐이었다. 지오는 그것을 처음으로 다르게 읽었다. 세 손가락. 안쪽으로. 접기. 그것은 헛것을 본 사람의 착란이 아니었다. 명령이었고, 신호였고, 무언가를 향한 입력이었다.
형은 무엇을 봤고, 무엇을 멈추라 했고, 왜 유적은 지금 그 답을 그의 눈앞에서 지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