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소 앞 흙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내가 붉은 방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생존자 수색령. 낙검곡의 잔당을 잡아오는 자에게 은자 천 냥.'

그 방문 아래에 하연서가 서 있었다. 손목에는 마포 조각이 두 겹으로 감겨 있었다. 그 아래 감춘 것은 흉터가 아니라 흉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섯 해 전, 어둠 속에서 그의 목을 노렸던 학살자의 왼손목에는 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하연서의 손목은 깨끗했다. 그래서 오히려 감춰야 했다. 흉터 없는 손목을 내밀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자들이 이 산에서 가장 먼저 목이 잘리고 있었으니까.
"다음."
등록관이 붓을 들었다. 나이 든 사내였고, 왼쪽 눈꺼풀이 축 처져 있었다.

하연서는 등을 굽히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깨를 안쪽으로 말고, 시선을 세 자 앞 땅에 떨어뜨렸다. 굶주려 반쯤 감긴 눈, 마른 목, 떨리는 손. 그 전부가 연기였다. 검을 쥐면 사형들의 검혼이 손끝에서 살아나는 자의 몸이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만큼.
"이름."
"하…… 연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버려진 아이라."
등록관의 처진 눈꺼풀이 살짝 들렸다. 하연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늙은 자는 버려진 고아를 동정하지 않는다. 다만 값을 매길 뿐이다. 데려다 부려먹기 좋은지, 어디 팔아넘길 만한지.

"출신 마을은."
"동주 아래 갈현입니다. 삼 년 전 홍수에 다 떠내려갔지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갈현은 실제로 떠내려갔고, 하연서는 그 마을 호적 하나를 은자 넉 냥에 사두었다. 죽은 자의 이름은 값이 싸다. 그가 배운 첫 번째 진리였다.

등록관이 붓을 놀렸다. 종이 위에 '하연, 무성, 갈현 출신'이라는 여섯 글자가 얹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천하가 뒤집어놓고 찾는 패검문의 마지막 후계자는, 여섯 글자의 고아가 되어 정파 최대 문파의 문턱을 넘었다.
"저 방문은—"
"방은 신경 쓸 것 없다. 사파 잔당 놈들이야 우리 같은 놈이 볼 일 없지. 어서 저쪽 숙사로 가."

하연서는 고개를 조아리고 물러났다. 등을 돌리는 순간에야, 굽혔던 어깨를 반 치쯤 폈다.
'하나.'
속으로 셈했다. 태산검문의 얼굴 하나를 통과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얼굴을 이렇게 지나쳐야 저 산 위 장로원까지, 그 위 무림맹 꼭대기까지 닿을 수 있을까.
숙사는 흙벽으로 지은 긴 막사였다. 이백 명 남짓한 외당 신입들이 나무 침상에 뒤엉켜 있었다. 사내들은 저마다 검을 자랑하고 문파의 무공을 흠모하며 협객이 될 꿈을 떠들었다. 하연서는 구석 침상에 앉아 그 소음을 물끄러미 들었다.

'전부 도구다.'
그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적, 아군, 그리고 도구. 이 방 안에는 적도 아군도 없었다. 언젠가 장로원의 문을 열 때 밟고 올라갈 계단이 이백 개 있을 뿐이었다.
배 속이 뒤틀렸다. 이틀을 굶었다. 산을 넘으며 수색령을 피하느라 마을에 들를 수 없었다. 하연서는 배고픔을 견디는 법을 알았다. 통증을 잊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관찰하는 것. 지금 아픈 것은 위장이고, 나는 위장이 아니다.
"이거."

투박한 그릇 하나가 눈앞에 불쑥 들어왔다.
기장밥에 짠지 몇 조각. 김이 오르고 있었다.
"먹어. 너 아까 등록소부터 얼굴이 사색이더라. 이틀은 굶은 얼굴인데."
하연서는 고개를 들었다. 또래로 보이는 사내가 침상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볕에 그은 얼굴, 뭉툭한 손. 농사꾼의 손이었다. 그런데 그 손으로 검을 쥐어보겠다고 이 산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됐다."
하연서가 짧게 잘랐다.
"됐긴 뭐가 돼. 배에서 소리 나는 거 나도 들었어. 밥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사내가 그릇을 하연서의 무릎 위에 억지로 얹었다.
"난 진유하. 서주 아래 낙촌 사람. 넌?"

"……하연."
"하연. 성은?"
"없다."
진유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연서는 그 침묵이 동정으로 이어지리라 예상했다. 고아를 향한 값싼 연민. 그런데 진유하는 씩 웃었다.

"잘됐네. 나도 성이 있으나 마나야. 낙촌 진가 성 붙여봤자 아무도 안 알아줘. 우리 여기서 이름값 좀 만들어보자고."
밥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짜고 뜨겁고 거칠었다. 하연서의 손이 저도 모르게 빨라졌다. 진유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제 봇짐을 뒤졌다.
"이거 하나 더 줄게."
낡은 목검이었다. 손잡이가 닳아 반들거리고, 검신 중간에 작은 흠이 파여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깎아준 거야. 진짜 검은 아직 못 사서 이걸로 연습해. 나 두 개 있어. 하나는 네가 써."

"필요 없다."
"받아둬. 나중에 갚으면 되잖아. 대신—"
진유하가 목검을 하연서의 손에 쥐여주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진짜 친구 하자. 여기 다 경쟁자라고 눈에 불 켠 놈들뿐인데, 나는 그런 거 싫어. 밥 나눠 먹은 사이면 친구지."

하연서의 손안에서 목검이 미지근했다. 진유하의 손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도구다.'
그는 스스로에게 못을 박았다. 순진한 자는 다루기 쉽다. 이용 가치가 높다. 진유하라는 이름을 머릿속 계단 위에 하나 더 얹었다. 순수한 자, 의심이 없는 자, 필요할 때 방패로 세울 수 있는 자.
그런데 목검을 놓지는 못했다.
"먹었으니 됐지?"

하연서가 그릇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진유하가 뭐라 더 말하려는데, 막사 입구가 왁자지껄해졌다.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어섰다. 옷차림부터 달랐다. 신입 외당 제자면서도 비단으로 지은 무복을 입고, 허리에 진품 보검을 찼다. 선두의 사내는 눈매가 날카롭고 턱을 치켜든 채였다.
"여기가 신입 숙사인가. 냄새 한번 지독하군."
진유하가 벌떡 일어섰다.

"방금 뭐라고—"
"진유하. 관둬."
하연서가 낮게 말렸다. 진유하가 놀라 그를 보았다. 하연서가 저를 아군처럼 부른 첫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연서의 계산은 달랐다. 지금 소란은 이롭지 않다. 눈에 띄면 안 된다.
선두의 사내가 성큼 다가왔다.

"너. 아까 등록소에서 봤다. 어깨 움츠리고 벌벌 떨던 놈. 이름이 뭐였더라."
"하연입니다."
하연서는 눈을 내리깔고 답했다.
"나는 모용성이다. 장로 모용진 어른의 조카다. 이름 정도는 외워둬라. 앞으로 네가 우러러볼 이름이니까."

하연서는 침묵했다. 침묵이 굴욕이라면, 굴욕을 삼켰다.
모용성이 그 침묵을 얕봄으로 읽었다. 그는 허리에서 보검을 뽑았다. 검신이 등불을 받아 푸르게 빛났다.
"검 쥘 줄은 아나? 검 한번 나눠보자. 정파의 검이 어떤 것인지, 갈현 촌구석 고아에게 가르쳐줄 테니."
막사 안 시선이 전부 쏠렸다. 진유하가 앞을 막아서려 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신입 첫날부터—"
"넌 빠져. 밥그릇이나 나눠 먹는 거지 새끼들끼리 뭉치는 꼴, 아주 정겹구만."
하연서가 진유하의 어깨를 눌러 물러세웠다. 그리고 앞으로 나섰다. 손에는 진유하가 준 낡은 목검이 들려 있었다.
모용성이 코웃음을 쳤다.
"목검? 진심이냐."

"소인은 진검이 없습니다."
"좋다. 봐줄 이유도 없지만, 봐주지."

모용성의 검이 움직였다. 정종 검법이었다. 태산검문 기초 검로, 광풍십이식의 첫 초식. 자세는 흠잡을 데 없었고 검기도 실렸다. 이류 초입은 되는 실력이었다.
하연서는 그 검을 보았다.
느렸다.

지독하게 느렸다. 다섯 해 전 낙검곡에서 사형들이 학살자들과 맞섰을 때, 그들이 뿜던 검속은 이보다 열 배는 빨랐다. 그날 밤을 살아 넘긴 눈에는 모용성의 검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굼떴다.
한 번에 목을 딸 수 있었다. 검혼을 부르지 않아도, 목검만으로 손목을 부러뜨리고 명치를 찌를 수 있었다.
하지 않았다.

하연서는 반 걸음 물러섰다. 모용성의 검이 어깨를 스칠 자리에서, 상체를 아주 살짝 비틀었다. 검끝이 옷깃을 지나 허공을 갈랐다. 서투른 회피처럼 보였다. 겨우겨우 피한 것처럼. 사실은 검끝의 궤적을 반 치 단위로 읽고 그 반 치를 비켜선 것이었다.
"제법 눈은 있군."

모용성의 검이 다시 떨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벽력식. 하연서는 목검을 들어 막았다. 정면으로 받지 않고, 목검의 면을 눕혀 검기를 흘렸다. 목검이 견딜 수 없는 검기를, 각도를 틀어 땅으로 흘려보냈다. 나무가 갈라지는 대신 파앙, 흙바닥이 패였다.
지켜보던 신입들 눈에는 그저 운 좋게 막은 것으로 보였다.
모용성만은 이마를 좁혔다. 세 합. 네 합. 다섯 합. 자신의 검이 단 한 번도 저 촌뜨기의 몸에 닿지 못했다. 옷깃 한 올 베지 못했다. 그런데 상대는 반격 한 번 하지 않았다. 그저 물러서고, 흘리고, 비켜설 뿐이었다.

'뭐지, 이건.'
모용성이 검에 힘을 실었다. 검기가 짙어졌다. 이류의 끝, 일류 문턱의 일격이 하연서의 정수리를 노렸다.
하연서는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목검을 비스듬히 세워 검기의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그것뿐이었다. 모용성의 필살 일격이 궤도를 잃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검이 저 혼자 허공을 가르며 모용성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는 비틀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운이 좋군."

모용성이 검을 거뒀다. 낯빛이 붉었다. 이류 제자가 목검 든 촌뜨기 하나에게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그것을 인정하는 대신 그는 '운'이라는 단어를 붙잡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다음엔 운이 따르지 않을 거다."
모용성은 무리를 이끌고 나갔다. 등이 뻣뻣했다.

진유하가 달려왔다.
"너 대단하다! 모용성 저 자식, 얼굴 봤어? 완전히—"
"운이 좋았을 뿐이다."

하연서가 목검을 내렸다. 손끝이 저릿했다. 검기를 흘리느라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목검은 안쪽까지 금이 가 있었다. 조금만 더 세게 받았어도 갈라졌을 것이다.
'모용성. 장로 모용진의 조카.'

머릿속 계단에 이름을 하나 더 얹었다. 이자는 도구가 아니었다. 이자는 위험이었다. 실력을 감춘 자를 알아보는 눈. 오늘 그 눈에 반 치의 의심이 심어졌다. 없애야 할지, 이용해야 할지는 나중에 정할 일이었다.
그때, 막사 입구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낡은 무사복에 술 냄새를 풍기는 중년 사내였다. 잡역을 맡은 하급 무사인 듯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하연서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하연서는 그 눈길을 등록소에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인파 사이에서, 이 사내는 처음부터 하연서만 보았다.
사내가 비틀비틀 다가왔다. 술기운에 발음이 뭉개졌다.
"이봐, 애송이."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너 말이야."

사내가 하연서의 얼굴을 코앞까지 들여다보았다. 술 냄새 아래, 다른 것이 있었다. 두려움 같은 것. 오래 눌러 삭힌 무언가.
"이상하단 말이지. 너를…… 어디서 본 것 같아. 분명히 어디서……."

사내의 시선이 하연서의 눈에서 손목의 마포로 내려갔다. 하연서의 심장이 한 박자 멎었다.
"모르는 분입니다. 소인은 오늘 처음 이 산에 올랐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럴 리가 없지. 그놈들은 다…… 다 죽었으니까."
사내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휘청거리며 돌아섰다. 나가기 직전, 걸음을 멈추고 어깨 너머로 던졌다.

"애송아. 그 검…… 목검 쥐는 손 말이야. 어깨 힘 빼고 새끼손가락에 걸어라. 그래야 오래 산다."
그러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연서는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 그 손잡이 잡는 법은, 패검문 검법의 첫 구결이었다. 정파의 하급 잡역 무사가 알 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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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하연서는 숙사를 빠져나와 뒷산 공터로 올라갔다. 산 자들이 잠든 시간, 그는 홀로 목검을 들었다. 낮에는 촌뜨기의 서툰 회피를 연기해야 했다. 밤에만, 오직 밤에만 그는 자신의 검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어깨의 힘을 빼고, 새끼손가락에 검을 걸었다. 검로가 살아났다. 죽은 대사형이 즐겨 쓰던 절기. 손끝이 저릿하고, 시야 가장자리가 잠시 은빛으로 번졌다. 검혼이 깨어나려 했다. 하연서는 이를 악물고 그것을 눌렀다. 지금은 부를 때가 아니다. 수명은 함부로 태우는 것이 아니다.

한 식경을 그렇게 홀로 검을 놀렸다. 땀이 등을 적셨다.
그때, 등 뒤 어둠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낮게, 술기운 하나 없이 또렷하게.

"패검문의 검법이더군."

하연서의 검이 허공에서 멎었다.

돌아보니, 낮의 그 취객 무사가 나무 그늘 아래 서 있었다. 이번에는 비틀거리지 않았다. 눈도 충혈되지 않았다. 술기운을 가장했던 사내의 등이, 곧게 펴져 있었다.
"오 년 전, 그날 밤. 나는 낙검곡에 있었다."

사내의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살아남은 게 너 하나가 아니었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