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의 손가락이 소매를 잡은 감촉이 지운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럼 여기서는—나도, 그냥 손님인가?"
지운은 그 물음을 한 번 더 곱씹었다. 벽에 붙은 나무판을 흘긋 봤다. 문을 넘는 순간 계급과 진영을 문 밖에 두어라. 여자는 이미 검을 두고 왔다. 규칙을 어긴 게 아니라 규칙에 기댄 얼굴이었다. 명령을 내리러 온 자가 아니라, 명령에서 도망쳐 온 자.
"손님이 되고 싶어서 검을 두고 오신 거잖아요."
지운이 말했다. 목소리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담담했다.
"그럼 손님이죠. 여기 앉으세요."
여자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래 아무도 자기에게 그렇게 쉽게 말해준 적이 없는 사람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한 발 더 들어왔다. 갑옷이 스치는 쇳소리가 낡은 마룻바닥에 무겁게 얹혔다. 창가 자리, 능선이 보이는 그 구석에 앉았다. 어제 밤새 카페를 바라봤던 바로 그 방향이었다.
"루나." 지운이 낮게 불렀다. "물 끓여줄래?"
"응." 루나가 소매를 놓았다. 그러나 놓기 직전, 한 번 더 꾹 쥐었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한 잔만이라는 신호였다. 아이의 눈이 카운터 위 노트를 향했다. 오늘의 감당량, 둘. 어제 회복한 뒤 다시 채워진 숫자.
몰랐다. 하지만 이름을 몰라도 어깨는 읽을 수 있었다. 여자가 앉은 자세는 흠잡을 데 없이 곧았는데, 그 곧음이 바로 문제였다. 사람은 편할 때 그렇게 앉지 않는다. 부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때 그렇게 앉는다.
지운은 원두를 갈던 손을 멈췄다. 세리아의 시선이 그 검은 가루에 가 닿아 있었다.
"그게 뭐지."
"원두요." 지운이 분쇄기를 마저 돌렸다. "볶은 열매를 간 거예요."
"열매." 세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손이 무릎 위에서 아주 살짝 굳었다. "검은 열매인가."
"…아세요?"
"안다."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남방 밀림에서 나는 독초. 병사들이 굶주려 아무거나 삼키다 그걸 먹고 스물이 죽은 적이 있다. 사흘을 게워내다 죽었어. 나는 그 명단에 이름을 적은 사람이다."
카페 안 공기가 한 뼘쯤 얼어붙었다. 루나가 물을 붓던 손을 멈추고 지운을 봤다. 세리아의 오른손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무기를 찾는 손짓이었다. 문 밖에 검을 두고 왔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손가락이 허공에서 갈 곳을 잃었다.
지운은 그 손을 봤다. 그리고 도망치지 않았다.
"그 열매를 그냥 씹으면 독이 맞아요." 지운은 갈아둔 가루를 드리퍼에 담으며 천천히 말했다. 손을 멈추지 않는 건 의도적이었다. 겁먹지 않았다는 걸 몸으로 보이는 게 말보다 빨랐다. "설익은 걸 날로 먹으면 사람 잡습니다. 근데 잘 익혀서, 볶아서, 뜨거운 물로 우려낸 것만 마시면—독이 아니라 다른 게 돼요."
"다른 것."
"드셔보면 압니다." 지운이 그녀를 봤다. "억지로는 아니고요. 규칙이 그래요. 손님이 스스로 마셔야 하는 거."
세리아의 눈동자가 그 검은 물을 응시했다. 김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여자는 스물의 이름을 적은 손으로 잔을 밀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밀어내지 않았다. 그 대신 물었다.
"왜 여기다 가게를 열었지. 이런 골짜기 한복판에. 검을 든 자들만 오가는 곳에."
"제가 연 건 아니에요." 지운이 드리퍼에 물을 부었다. 원두가 부풀어 오르며 짙은 향이 피어났다. 세리아의 코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자기도 모르게 향을 맡고 있었다. "물려받았어요. 여기서 죽은 사람한테서."
"죽었다고."
"손님을 너무 많이 받다가요." 지운은 잔을 받침에 올렸다. "저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지쳐서 오는 사람만 문을 넘거든요. 안 지친 사람은 이런 데를 안 찾아와요."
세리아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지운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명치에 벌써 무게가 고여왔다—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이 여자는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흘리고 있었다. 오래 참은 자에게서 새어 나오는 것.
"여기, 나왔어요."
지운이 잔을 세리아 앞에 내려놓았다. 검은 수면 위로 옅은 금빛 테가 돌았다.
세리아는 잔을 오래 바라봤다. 갑옷을 입은 채로, 손가락 마디가 하얘지도록 무릎을 짚은 채로. 그러다—두 손으로 잔을 감쌌다. 검을 쥐던 손이었다. 잔이 그 손 안에서 유난히 작아 보였다.
첫 모금을 넘겼다.
지운의 혀끝에서 맛이 터졌다.
쓴맛이 아니었다. 그건 재의 맛이었다. 다 타버린 뒤에도 계속 타야 하는 것의 맛. 이겨도 이겨도 줄지 않는 명단, 승리할 때마다 늘어나는 빈 자리, 아무리 걸어도 끝에 닿지 않는 길. 목구멍이 조여왔다. 지운은 카운터 모서리를 짚었다. 세리아의 탈진이 그의 몸으로 그대로 밀려들었다. 무겁고, 마르고, 끝이 없는—
"지운." 루나의 목소리가 낮게 날아왔다. 하나.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운은 숨을 골랐다. 이 맛을 감싸려면. 재의 맛을 덮으려면, 태우지 않고 데우는 게 필요했다. 지운은 대답 없이 손을 움직였다. 이미 내린 잔에, 데운 우유 한 줄기를 아주 얇게 흘려 넣었다. 표면의 검은빛이 옅게 풀리며 부드러운 갈색으로 번졌다. 설탕 단지에서 반 스푼. 정확히 반 스푼. 재를 덮되, 재를 부정하지는 않을 만큼.
"한 모금 더 드셔보세요." 지운이 말했다. "처음 거랑 다를 거예요."
세리아가 다시 잔을 들었다. 이번엔 손이 아까보다 덜 떨렸다.
한 모금.
여자의 곧던 어깨가—무너졌다. 부러지는 게 아니라, 오래 세워뒀던 것을 마침내 내려놓는 방식으로. 세리아는 잔을 든 채 고개를 숙였다. 금발이 얼굴을 가렸다. 어깨가 한 번, 두 번 들썩였다. 소리는 없었다. 우는 법을 아예 잊은 사람의 울음이었다.
지운은 잔을 물리지 않았다.
세리아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카운터에 두 손을 얹은 채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명치가 계속 무겁게 눌렸다. 재의 맛은 삼켜도 삼켜도 목구멍에 눌어붙어, 지운은 얕게 숨을 쉬며 그것을 견뎠다. 이건 이 사람이 하루도 못 쉬고 등에 짊어져 온 것이다. 나눠 지는 것쯤은.
세리아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그러다 잔 옆, 카운터에 놓인 검은 열매 몇 알에 시선이 닿았다. 남방에서 볶기 전 그대로 둔 원두였다. 여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방금까지 무너지던 사람이 아니라, 전장에서 위험을 먼저 알아채던 자의 눈으로.
"그건." 세리아의 목소리가 낮게 굳었다. 손이 반사적으로 옆구리를 더듬었다—문 밖에 세워둔 검을 찾는 손짓이었다. 허리가 비어 있자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그건 검은 열매가 아닌가."
"맞아요." 지운은 담담히 말했다.
"독초다." 세리아가 잔을 든 손을 멈췄다. "남방 밀림의. 그걸 먹으면 헛것을 보다 죽는다고, 척후병들이 늘 경고했다. 병사들이 굶다 그걸 씹고 죽어 나간 적도……." 그녀는 자기 손안의 잔과 검은 열매를 번갈아 봤다. 방금 두 모금을 삼킨 그 잔을.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너는, 이걸로 이 물을……."
루나가 앞으로 반걸음 나섰다. 지운의 소매를 놓지 않은 채였다.
"안 죽어요." 아이가 또렷하게 말했다. "저도 마셨고, 오스카 아저씨도 매일 마셔요. 마스터가 볶으면, 그건 독이 아니라……." 루나는 말을 고르다, 자기 가슴께를 손으로 짚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아까 손님이 됐던 거."
세리아는 대답 대신 잔을 다시 들여다봤다. 손이 살짝 떨렸다. 조금 전 자신을 무너뜨린 그 따뜻함과, 병사들을 죽였다는 그 검은 열매가 같은 것에서 나왔다는 사실. 여자는 오래 그 잔을 바라보다가, 결국—다시 한 모금 삼켰다. 이번엔 눈을 감고.
"……독이라면," 세리아가 눈을 뜨며 낮게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이렇게 오래 살아 있고 싶게 만드는 독은 없지."
지운은 그제야 카운터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명치는 여전히 무거웠고, 마신 사람은 이제 하나뿐인데도 이미 오늘의 감당량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 그때 카페 문이 삐걱, 다시 열렸다.
"나는 화해를 말할 수 없는 자다." 세리아가 잔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따뜻하군." 젖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게, 이런 게 몸에 들어오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카운터에 기대선 채, 자기 명치를 누르며 그녀가 다 게워낼 때까지 기다렸다. 이 무게는 그의 것이 될 터였다. 오늘 밤 그의 잠자리에 함께 누울 재의 맛. 그래도 그는 잔을 물리지 않았다. 물릴 수가 없었다.
세리아가 얼굴을 들었다. 눈가가 붉었지만 눈빛은 아까보다 맑았다.
"나는 화해를 말할 수 없는 자다." 여자가 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용사가 그만두자고 하면, 그건 용기가 아니라 배신이 돼. 부하들이 죽은 게 헛일이 되니까. 그래서 나는 이기고, 또 이기고, 이길수록 명단이 길어지는 걸 보면서도—멈추자는 말을 못 해."
"여기선 안 해도 돼요."
지운이 조용히 말했다. 세리아가 그를 봤다.
"여기선 용사도 아니고 배신자도 아니에요." 지운은 그녀의 잔을 가리켰다. "그냥, 커피 식기 전에 다 마시는 사람이면 됩니다. 그게 여기 손님이 하는 일 전부예요."
세리아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그러다 아주 옅게, 정말로 오랜만인 듯 서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는 잔을 다시 들어 천천히 비웠다. 식기 전에. 마지막 한 모금까지.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찬 골짜기 바람과 함께, 지친 얼굴의 사내 하나가 문지방을 넘었다. 어깨에 낡은 활을 멘 사냥꾼 차림. 눈 밑이 검게 꺼져 있었다. 또 한 명의 지친 손님. 또 한 잔을 원하는 얼굴.
지운의 손이 반사적으로 분쇄기로 향했다.
"지운."
루나가 그 손목을 붙잡았다. 아이의 손은 작았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둘째 잔은 내가 내려." 루나가 노트를 톡톡 두드렸다. 오늘의 감당량, 둘. 그중 하나는 이미 세리아에게 다 썼다는 걸, 아이는 셈하고 있었다. "너 아까 세리아 씨 읽을 때 카운터 짚었어. 다 봤어."
"괜찮아. 한 잔쯤은—"
"'조금만 더'." 루나가 그 말을 딱 잘랐다. 눈이 젖어 있었다. "그 말 하다 여기 주인이 죽었다며. 네 입으로 방금 말했잖아."
지운의 손이 분쇄기 앞에서 멈췄다. 세리아가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린 견습이 세계 최강의 용사가 앉은 자리에서, 자기 마스터의 손목을 붙잡고 놓지 않는 그 광경을.
지운은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였다. 한 잔.
여자는 갑옷 장갑을 벗어 무릎에 올려두고, 손가락으로 탁자의 나뭇결을 문질렀다. 굳은살 박인 손이었다. 검을 쥐던 자리가 그대로 손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이름은." 지운이 원두를 갈며 물었다. "안 물어봐도 되나요?"
"세리아." 짧게 대답했다. 그러다 잠시 뒤 덧붙였다. "…라인하르트."
그 성을 듣고 루나가 물 주전자를 놓칠 뻔했다. 아이도 이름은 안다는 얼굴이었다. 광휘연맹의 용사.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검. 지운은 이 세계에 온 지 나흘밖에 안 된 이방인이라 그 무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