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매끈한 발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가, 자갈을 밟으며 되돌아 멀어졌다.

지운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팔 하나 들 수 없었다. 아이의—루나의 작은 손이 여전히 그의 손등을 붙들고 있었다. 열에 들뜬 눈으로 그는 문 쪽을 보려 애썼지만, 시야가 물속처럼 일렁였다.

"저……." 목이 갈라졌다. "밖에, 누가……."

"신경 쓰지 마." 루나가 지운의 어깨를 눌러 다시 눕혔다. 열두 살짜리치고는 손아귀 힘이 매웠다. "밤마다 저러고 다니는 사람 있어. 문은 못 열어. 빗장 걸었잖아. 마스터가 지금 걱정할 건 밖이 아니라, 자기 몸이거든."

지운은 반박하려다 기침을 쏟았다. 명치에 고인 것들이—노인의 짠 미안함, 여자의 뾰족한 쇠맛—목구멍까지 치밀었다가 가라앉았다. 루나는 물그릇을 그의 입가로 가져왔다. 지운은 몇 모금을 겨우 삼켰다.

"자. 이제 자."

그리고 그는 잠들었다. 형광등 대신, 어깨에 둘러진 담요의 무게를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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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창으로 회색빛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열은 내려 있었다. 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무거웠지만, 어젯밤처럼 혈관이 끓지는 않았다. 지운은 간이침대에 누운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부엌 쪽에서 냄비 긁는 소리, 도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고소한 냄새. 지운은 몸을 일으켰다.

"어, 일어났네."

루나가 나무 국자를 든 채 부엌 문틀에 기대 있었다. 어젯밤 잠옷 대신 소매를 걷어 올린 회색 앞치마 차림이었다. 그 앞치마는 지운에게도 낯이 익었다. 카운터 밑, 노트 곁에 개켜져 있던 것.

"그거, 내……."

"전 마스터 거." 루나가 국자로 자기 가슴을 툭 쳤다. "그리고 이제 내 거. 마스터 건 저기 큰 거 걸어놨어. 팔 소매가 마스터한테는 짧을걸."

지운은 입을 다물었다. 아이는 그가 뭘 물어보기도 전에 다 대답해 놓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김이 오르는 그릇을 들고 나왔다. 뭉근하게 끓인 곡물죽에 잘게 썬 뿌리채소가 섞여 있었다. 숟가락이 꽂혀 있었다.

"먹어. 뜨거울 때."

"……."

"아파서 하루 굶고 하루 뻗었으면, 위장부터 살려야지. 커피는 그다음이고." 루나는 그릇을 지운의 무릎에 척 얹었다. "전 마스터도 이거 먹고 살아났었어. 딱 이렇게 뻗은 다음에."

지운은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죽은 싱거웠지만—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소금이 귀한 세계라 그럴 것이다—따뜻했다. 명치의 무게 아래, 오래 잊고 있던 감각이 올라왔다. 누가 차려준 밥. 전생에선 편의점 삼각김밥을 서서 삼키던 새벽뿐이었다.

한 숟가락 넘기자 목이 뜨거워졌다. 죽 때문만은 아니었다.

"넌," 지운이 겨우 물었다. "이름이."

"루나." 아이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 무릎을 안았다. "루나. 전 마스터가 지어줬어. 나 원래 이름도 없었거든. 골짜기 아래 마을 불타고 여기까지 걸어왔을 때, 그 할아버지가 문 열어주면서 그랬어. 이름 없으면 하나 줄게. 달이 좋으니까 루나라고 하자고."

지운의 숟가락이 멈췄다.

"할아버지는 갔어." 루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담담한 척, 이라고 지운은 고쳤다. 아이의 손가락이 앞치마 자락을 말고 있었다. "카운터 뒤에서. 손님을 너무 받았어. 마스터처럼."

"…미안."

"왜 마스터가 미안해." 루나가 눈을 들었다. "그냥, 알아두라고 하는 말이야. 이 집은 손님이 죽이는 집이 아니라, 마스터가 자기를 죽이는 집이라고. 그래서 내가 세는 거야. 손님 수. 어제 내가 안 셌으면—" 아이는 말을 삼키고, 대신 지운의 빈 그릇을 낚아챘다. "한 그릇 더 줄까."

지운은 이 아이가 방금 무슨 말을 삼켰는지 정확히 알았다. 얼굴을 읽는 건 그의 특기였다. 하지만 굳이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줘."

루나의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이 번졌다.

---

죽을 두 그릇 비운 뒤, 지운은 카페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혼자였던 어제와 달랐다. 루나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참견했다.

"거기 원두 항아리 뚜껑 그렇게 헐겁게 닫으면 습기 먹어. 나무 마개 이렇게 돌려서 눌러야지." 아이가 뚜껑을 야무지게 돌렸다. "전 마스터가 백 번은 잔소리했어."

"…그래."

"그리고 물, 그거 우물물 그냥 쓰지 마. 한 번 끓여서 식힌 거 저 항아리에 있어. 마스터 어제 그냥 길어다 썼지? 손님들 배탈 안 난 게 다행이야."

지운은 카운터에 손을 짚고 아이를 내려다봤다. 십 년 바리스타 경력이 열두 살짜리한테 물 관리를 지적당하고 있었다. 반박하려다, 어제 우물물을 그냥 부어 끓인 걸 떠올렸다. 입을 다물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루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맞는 말이라."

"어른이 순순히 인정하네." 루나가 킥킥 웃더니, 벽으로 다가갔다. 전대 마스터가 못으로 박아둔 나무 판. 세 줄의 규칙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는 그중 셋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마스터의 한계를 존중하라. 오늘의 손님 수는 마스터가 정한다." 루나가 지운을 돌아봤다. 아주 진지한 얼굴로. "이 규칙 말이야."

"…어."

"이 집에서 이거 제일 못 지키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지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스터야." 아이가 손가락으로 그를 콕 가리켰다. "마스터가 정하래놓고, 자기가 그걸 못 지켜. 어제 봤어. 그 노인 할아버지 앞에서 손 못 떼는 거. 노트가 빨갛게 경고하는데도."

"…그건."

"거절이 그렇게 어려워?" 루나가 팔짱을 꼈다. 앞치마가 너무 커서 팔이 소매에 파묻혔다. "그럼 앞으로 나한테 물어봐. '루나, 한 잔 더 내려도 돼?' 하고.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지운은 웃음이 나왔다. 명치가 무거운데도. 이 아이는—손을 놓치면 사라질까 봐 그의 손등을 붙들던 아이는—이제 그의 한계를 대신 붙들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어젯밤 잠결에 들었던 말이 진심이었다.

"알겠어." 지운이 말했다. "선생님."

"선생 아니고 루나." 아이가 홱 돌아섰지만, 귀가 빨개진 게 보였다.

---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 건 정오 무렵이었다.

루나가 먼저 달려가 빗장을 풀었다. 문이 열리자, 등에 짐꾸러미를 진 중년 남자가 들어섰다. 남루한 여행복에 흙 묻은 장화. 상인 같았다. 그는 문턱에서 허리에 찬 단검을 풀어, 벽 옆 무기 걸이에 걸었다. 규칙을 아는 자였다.

"소문 듣고 왔소. 이상한 검은 물을 판다는……." 남자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한 잔 얼마요."

"앉으세요." 지운이 카운터 안쪽에서 말했다. "값은 마신 다음에."

남자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지운은 손을 씻고,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사람."

루나가 지운의 옆에 바짝 붙어 소곤거렸다. 시선은 상인에게 고정돼 있었다.

"저 사람, 물건을 판 게 아니라 뺏긴 얼굴인데요."

지운의 손이 멎었다.

"뭐?"

"봐봐." 루나가 턱짓했다. "저 짐, 반은 비었어. 등이 헐렁하잖아. 근데 새 물건 사러 가는 사람은 짐이 비어도 발걸음이 가벼운데, 저 사람은 어깨가 축 처졌어. 그리고 아까 단검 걸 때, 손잡이 한 번 쓰다듬었어. 놓기 싫은 것처럼. 뺏긴 사람은 남은 걸 붙들거든."

지운은 아이를 빤히 내려다봤다.

그건 그가 능력으로 읽어내야 할 것들이었다. 표정, 호흡, 손의 미세한 움직임. 그런데 이 열두 살짜리는 커피 한 방울 없이, 눈으로만 그걸 짚어냈다. 명치가 서늘해졌다. 감정 잔류 때문이 아니었다.

"…너, 그런 거 어떻게 알아."

"몰라. 그냥 보여." 루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골짜기 오래 걸으면서 별별 사람 다 봤거든. 웃으면서 다가와서 등 치는 사람도 봤고. 얼굴 봐야 살아남으니까."

지운은 원두를 마저 갈았다. 물을 올리며, 상인의 자리를 다시 봤다. 루나 말이 맞았다. 어깨선, 짐의 무게중심, 단검을 건 뒤에도 벽 쪽을 한 번 돌아본 눈빛.

그는 드립을 시작했다. 뜨거운 물이 원두를 적시자 부풀어 올랐다. 향이 퍼졌다.

상인이 코를 들었다. "……이게 무슨."

지운은 잔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명치의 무게를 헤아리며. 루나가 옆에서 손가락 하나를 펴 보였다. 오늘 첫 손님. 한 명.

상인이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맛이 왔다. 지운은 눈을 감았다. 쓴맛 아래, 오래 삭힌 쇠 냄새—분노가 아니라, 분노를 삼킨 자의 무력함. 그리고 그 밑바닥에 축축한 흙내. 잃어버린 것이 여전히 손에 만져질 듯 가까운 자의 그리움.

'빼앗겼다.'

루나 말이 맞았다.

지운은 카운터로 돌아가, 설탕 단지에서 아껴둔 결정 몇 알을 꺼냈다. 두 번째 잔을 준비했다. 이번엔 더 진하게, 그러나 끝맛에 단맛을 살짝 얹어서. 무력함을 덮는 게 아니라, 무력한 자에게도 남은 것이 있다고 말해주는 잔.

"한 잔 더 드리는 겁니다." 지운이 새 잔을 내밀었다. "값은 첫 잔만."

상인이 두 번째 잔을 마셨다. 잠시 후,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소리 없이. 짐이 비어 헐렁한 그 등이.

"……딸년 시집 밑천이었소." 남자가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골짜기 초입에서, 통행세라고. 다 뺏겼소. 광휘연맹 순찰대라고 했는데, 갑옷은 진짜 같았는데……." 그가 잔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따질 데도 없어. 여긴 아무 진영도 아니라며. 그래서 왔소. 아무 데도 아닌 곳에."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잔이 비지 않게 두었다.

상인은 오래 앉아 있다가, 나갈 때 무기 걸이에서 단검을 다시 찼다. 문턱에서 잠시 멈추더니,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검은 물, 나쁘지 않구려. 소문이 사실이면……." 그가 낮게 웃었다. "곧 사람들이 몰려들 거요. 마스터, 조심하시오. 이런 데가 좋다는 사람만 오는 건 아니니까."

문이 닫혔다.

---

지운은 빈 잔을 닦으며 생각에 잠겼다. 명치에 상인의 무력함이 축축하게 고여 있었다. 오늘의 첫 무게. 루나가 옆에서 접시를 정리하며 그 얼굴을 살폈다.

"또 뭐가 얹혔지?" 아이가 물었다.

"어."

"그거 무거워?"

"…무거워."

지운은 젖은 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이를 봤다. 물건을 판 게 아니라 뺏긴 얼굴이라고, 능력도 없이 짚어낸 아이를.

"루나." 그가 말했다. "커피 내리는 법, 배워볼래?"

루나가 눈을 깜빡였다. "내가?"

"어. 원두 가는 거, 물 온도 맞추는 거, 물줄기 붓는 거. 손이 하는 일 전부." 지운은 드립 도구들을 카운터에 늘어놓았다. 손때 묻은 것들. 전생부터 그를 따라온 것들. "내가 손님 마음 읽는 건, 이 손이 먼저 제대로 커피를 내릴 줄 알아야 의미가 있거든. 읽기만 하고 손이 서툴면, 알맹이 없는 위로야."

그건 지운이 방금 처음 깨달은 말이기도 했다. 명치에 무게가 쌓일 때마다 그는 능력에 기댔다. 하지만 능력은 대가를 요구했고, 상한은 이미 둘로 깎여 있었다. 언젠가 능력이 바닥나도—그가 쓰러져도—누군가는 이 손을 놀려 뜨거운 한 잔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손이 하는 일은 대가를 받지 않으니까.

"가르쳐 줄게." 지운이 말했다. "천천히."

루나는 도구를 하나하나 바라봤다. 그러곤 앞치마 끈을 다시 꽉 묶었다.

"물줄기부터." 아이가 말했다. "아까 마스터, 손목 이렇게 돌리던데. 나선으로."

"…봤어?"

"당연하지.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손도 봐." 루나가 씩 웃었다. "내가 눈치가 좀 빠르거든."

지운은 아이의 손에 드립포트를 쥐여줬다. 아이의 손목은 작았고, 포트는 무거웠다. 그래도 아이는 진지하게 물줄기를 그렸다. 삐뚤빼뚤한 나선. 물이 원두 밖으로 넘쳤다.

"다시." 지운이 웃으며 아이의 손목을 받쳤다. "이렇게."

그 순간, 지운은 오래 잊고 있던 걸 느꼈다. 명치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그 무게가 처음으로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옆에 작은 손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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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세 번째 나선을 그릴 무렵, 창밖에서 루나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마스터."

"응?"

"저기." 아이가 창밖 능선을 가리켰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져 있었다.

지운도 고개를 돌렸다. 회색 골짜기 위, 능선 끝에.

은빛 갑옷의 기수 하나가 서 있었다. 말 위에 미동도 없이. 얼굴은 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갑옷이 흐린 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광휘연맹의 문장이 어깨에 새겨져 있는 듯했지만—확실치 않았다.

기수는 카페를 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

"밤마다 문 앞에 오는 사람은," 루나가 소곤거렸다. "매끈한 신발이었어. 발소리로 알아. 근데 저건, 저건 처음 봐."

지운은 젖은 천을 쥔 채 그 실루엣을 마주 봤다. 상인의 말이 떠올랐다. 이런 데가 좋다는 사람만 오는 건 아니니까. 통행세라며 딸의 밑천을 뺏은 것도, 갑옷 입은 자들이라 했다.

기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고삐를 당겼다. 말이 천천히 돌아섰다. 은빛 등이 능선 너머로 사라졌다.

"갔어." 루나가 숨을 내쉬었다.

"…갔네."

지운은 다시 물줄기를 잡았다. 하지만 손끝에 남은 서늘함은 쉬 가시지 않았다. 명치의 무게와는 다른 종류의.

"내일도 올까?" 루나가 물었다.

"모르지."

"오면 손님이야, 적이야?"

지운은 대답하지 못했다. 능선은 다시 텅 비어, 회색 하늘만 남아 있었다.

---

이튿날, 카페의 문이 열렸다.

지운은 카운터에서, 루나는 그 옆에서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문지방을 넘어선 것은 은빛 갑옷이었다. 어제 능선의 그 기수. 갑옷 위로 흐트러진 금발, 지친 그늘이 내린 눈. 여자였다. 그리고 그 여자는—문턱에 서서, 먼저 자기 검을 풀었다. 규칙대로. 문 밖 돌벽에 검을 세워 기대 놓았다. 손잡이에 무언가 촘촘히 새겨져 있는 게 얼핏 보였다. 이름 같은, 여러 개의.

여자는 검을 세워둔 손을 잠시 그 위에 얹었다. 놓기 싫은 것을 두고 오는 사람처럼. 그러곤 문 안으로 한 발 들어와, 지운을 똑바로 봤다.

"소문을 들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오래 명령만 내린 자의 것이었다. 그런데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무기를 두면, 여기서는 진영도 계급도 없다고."

지운은 대답 대신 그녀의 눈을 봤다. 명치가 벌써 무겁게 눌려왔다. 아직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는데.

여자가 다시 물었다. 이번엔 조금 더 조용히, 마치 자기 자신에게 묻듯이.

"그럼 여기서는—나도, 그냥 손님인가?"

루나의 손가락 하나가, 지운의 소매를 슬며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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