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문이 열리기 전에, 지운은 손등의 떨림부터 알아챘다.

전날 세리아가 남기고 간 '마른 소금'이 아직 손끝에 배어 있었다. 컵을 닦던 행주가 자꾸 미끄러졌다. 그때 카운터 너머 루나가 접시를 든 채 굳었다. 소녀의 귀 끝이 파르르 떨렸다.

"마스터, 오지 마. 오면 안 돼. 저건… 저건 냄새가 달라."

말이 끝나기 전에 문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경첩이 앓는 소리를 냈다. 문틀을 가득 메운 그림자가 먼저 들어오고, 그 뒤로 사내가 몸을 숙여 들어섰다. 검은 갑주에 붉은 눈. 세리아의 갑옷이 은빛으로 정돈된 것이라면, 이자의 것은 실전에서 긁히고 그을린 쇠였다. 허리에는 손잡이만 봐도 사람 목을 여럿 베었을 대검이 걸려 있었다.

마족. 그것도 지휘관급.

지운은 컵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서 오세요."

사내의 붉은 눈이 실내를 훑었다. 창가 자리, 카운터, 벽에 붙은 낡은 종이 세 줄. 시선이 마지막에 지운에게 못 박혔다.

"인간이 여기 서 있군."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물기가 다 빠진 나무 같았다. "광휘연맹 놈들이 이 골짜기에 첩자를 심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확인하러 왔다."

"첩자는 커피를 안 내려요. 서서 창밖만 보다 가겠죠." 지운은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앉으시겠어요?"

"내가 마족인 걸 알고도?"

"손님인 걸 아니까요."

사내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가 한 걸음 들어섰다. 마룻바닥이 그의 무게에 삐걱였다. 루나가 지운의 앞치마 자락을 움켜쥐고 뒤로 반쯤 숨었다.

그때 사내의 손이 대검 손잡이로 갔다.

"멈춰." 문 옆 그늘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지운도 몰랐다. 언제부터 오스카가 저기 앉아 있었는지. 무뚝뚝한 단골은 마시던 잔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턱으로 벽을 가리켰다.

"읽어. 저 종이."

카이겐— 사내는 아직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붉은 눈은 벽으로 향했다. 지운이 대신 읽었다.

"첫째, 문을 넘는 순간 계급과 진영을 문 밖에 두어라. 둘째, 옆자리의 잔을 넘보지 마라. 셋째, 마스터의 한계를 존중하라."

"규칙이라."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종이 세 줄로 전쟁을 멈추겠다고?"

"전쟁은 못 멈춰요." 지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커피 한 잔 마실 동안만 멈추면 돼요. 그 정도는 여기 있는 누구나 할 수 있고요."

오스카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동의의 소리였다.

사내는 한동안 서 있었다. 마룻바닥의 삐걱임이 멎었다. 이윽고 그의 손이 대검 손잡이에서 떨어졌다. 그는 허리띠를 풀어 검을 통째로 문 옆 벽에 세워 걸었다. 쇠와 나무가 부딪는 둔탁한 소리.

"카이겐." 그가 창가 자리로 걸어가며 말했다. "심연회 제3군 지휘를 맡고 있다. 이름은 알아둬라. 오늘 밤 습격의 명단에 이 가게가 없기를 바란다면."

"협박은 서비스에 포함 안 돼요." 지운이 원두 봉지를 열었다. "뭘로 드릴지는 제가 정할게요. 처음이시니까."

카이겐은 창가에 앉았다. 정확히— 지운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어제 세리아가 앉았던 그 자리였다. 등받이에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은 것 같은 착각. 세리아는 언제나 오후 세 시 전에 왔다가, 그림자가 문턱에 닿기 전에 떠났다. 카이겐이 문을 두드리는 건 늘 해가 골짜기 서쪽 능선에 걸린 뒤였다.

둘은 서로를 몰랐다. 같은 창밖을, 다른 시간에 바라보고 있었다.

지운은 그 생각을 삼키고 물을 끓였다.

포트가 데워지는 동안, 카이겐의 붉은 눈은 창밖 무인의 골짜기를 향해 있었다. 등이 곧았다. 너무 곧아서 부러질 것 같았다. 어깨선이 갑주 속에서 미세하게 굳어 있는 걸 지운은 놓치지 않았다. 저건 경계가 아니었다. 경계는 풀 수 있다. 저건 습관이었다. 십 년쯤 긴장 속에서 잔 사람의 척추.

지운은 산미를 억눌러 볶은 원두를 골랐다. 쓴맛의 뼈대는 굵게, 뒷맛에는 아주 조금의 흑설탕을. 왕족이나 맛본다는 그 사치품을, 손톱만큼.

"설탕은 넣지 마라." 카이겐이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단것은 방심하게 만든다."

"방심하시라고 넣는 거예요." 지운이 잔을 내밀었다. "여기선 방심해도 죽지 않으니까."

붉은 눈이 잔을 내려다봤다. 검은 물. 김이 올라왔다. 낯선 향이 코를 찔렀는지 카이겐의 콧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독이라면 이런 색을 고르진 않겠지." 그가 잔을 들었다.

"규칙 둘째, 기억하세요. 옆자리 잔은 안 돼도, 자기 잔은 다 마셔도 돼요."

카이겐이 마셨다.

첫 모금이 그의 목을 넘어가는 순간, 지운의 혀끝이 저렸다.

쓴맛이었다. 그냥 쓴 게 아니라, 오래 우려낸 쓴맛. 목구멍 안쪽에 걸려 삼켜지지도 뱉어지지도 않는 종류. 지운은 그 맛의 정체를 안다. 하고 싶은 말을 십 년간 삼킨 사람의 혀. 먼저 손을 내밀면 지는 게임— 손을 내밀고 싶어 죽겠는데, 내미는 순간 부하 전부가 죽는다고 믿는 자의 쓴맛.

지운의 심장이 조여왔다. 카이겐의 두려움이 그의 갈비뼈 안쪽으로 밀려들어왔다. 손끝이 다시 떨렸다. 어제 것 위에 오늘 것이 얹혔다. 그는 카운터를 짚었다.

"마스터." 루나의 손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소녀의 눈이 벌써 젖어 있었다. "얼굴 하얘. 그만해."

"괜찮아." 지운은 소녀의 머리를 한 번 눌렀다. "한 잔이야."

카이겐은 두 모금째를 넘기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곧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본인은 몰랐을 것이다.

"이상한 맛이군." 그가 중얼거렸다. "쓴데, 쓴 뒤에 뭔가가 온다. 이걸 뭐라고 부르지."

"위로요." 지운이 말했다. "이 세계엔 이름이 없더라고요."

카이겐은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눈이 다시 창밖으로 갔다. 골짜기 건너편, 광휘연맹의 초소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저 너머에 용사가 있다." 그가 낮게 말했다. "세리아 라인하르트. 검을 세 자루 부러뜨리며 내 부하 이백을 베었다. 만약 그 여자가 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나는 규칙이고 뭐고, 저 벽에 걸린 검을 다시 찰 거다."

지운은 컵을 닦았다. 손이 떨려 두 번 놓칠 뻔했다.

세리아는 어제 이 자리에 앉아, 카이겐이 벤 부하들의 이름을 세다 무너졌다. 지운은 그걸 안다. 두 사람은 같은 무게를 지고, 반대편에서 등을 맞댄 채 걷고 있었다.

말할 수 없었다. 규칙 둘째. 옆자리의 잔은 각자의 것이다. 지운은 그 말을 삼켰다. 대신 다른 걸 꺼냈다.

"지휘관님."

"카이겐이다. 여기선 지휘관이 아니라며."

지운이 웃었다. 카이겐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맞아요. 그래서요, 카이겐 씨. 지금 그 창밖 보면서 검 생각하는 거, 그거 여기 앉은 사람 아니에요. 지휘관 카이겐이죠." 지운은 컵을 내려놓았다. "문 넘을 때 그거 밖에 두고 왔잖아요. 지금 여기 있는 건 그냥, 쓴 커피 두 모금 마시고 어깨 좀 내려간 손님 한 명이에요."

카이겐이 그를 돌아봤다. 붉은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먼저 내밀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시죠." 지운이 조용히 이었다. 카이겐의 잔에서 읽은 그 쓴맛을, 그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냥 옆에 놓았다. "근데 여긴 이기고 지는 데가 아니에요. 여기서 먼저 앉는다고 지는 사람은 없어요. 그냥 앉는 거예요."

오래 침묵이 흘렀다. 포트에서 물이 식는 소리. 루나가 숨을 죽인 소리. 창밖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는 소리.

카이겐이 잔을 비웠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그가 일어섰다. 문 옆의 대검을 다시 허리에 채웠다. 쇳소리가 났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소리였다. 위협이 아니라, 그냥 무거운 물건을 드는 소리.

"값은." 그가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흑설탕 손톱만큼 넣은 값까지 쳐서." 지운이 손을 내밀었다.

카이겐은 주머니에서 금화 몇 닢을 세어 카운터에 놓았다. 짤그랑. 짤그랑. 마지막 한 닢이 앞선 것들 위로 겹쳐 떨어졌다.

그는 문 앞에서 멈췄다. 등을 보인 채, 아주 낮게.

"이 맛… 위험하군."

"네?"

"여긴 무기보다 무서운 곳이다." 카이겐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칼은 사람을 벤다. 그런데 이건— 사람을 앉힌다. 앉은 자는 다음 날 다시 칼을 들기 어려워지지." 그의 목소리에 아주 옅은 것이 스쳤다. 웃음이었을까. "전대 마스터라는 자가 왜 이 자리에 이걸 세웠는지 알겠다. 참으로 고약한 무기를 만들었어."

문이 열렸다. 저녁 바람이 훅 들어왔다.

"오늘 밤 습격 명단에서," 카이겐이 문턱을 넘으며 덧붙였다. "이 가게는 뺀다. 대신 내일 또 그 쓴 걸 내려라. 인간."

문이 닫혔다. 그의 발소리가 골짜기 자갈 위로 멀어졌다.

루나가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마스터, 살았어! 진짜 살았어!" 소녀가 지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저 사람 무서웠는데, 마스터가 이겼어. 커피로 이겼어!"

"이긴 게 아니야." 지운이 소녀의 등을 토닥였다. 손이 아직 떨렸다. "그냥 앉혔지."

오스카가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카운터에 놓았다. "마족 지휘관을 두 모금에 재우다니." 무뚝뚝한 얼굴에 처음으로 감탄 비슷한 게 스쳤다. "네 그 능력, 양쪽 진영이 알면 서로 널 데려가려고 전쟁을 또 하겠군."

"안 데려가요. 여기 마스터니까요." 지운이 카운터의 금화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때 손끝에 걸린 것이 있었다.

다른 것보다 차가운 금속. 지운은 그 한 닢을 집어 들었다. 금화 사이에 섞여 있던 동전. 색이 달랐다. 금이 아니라 검게 그을린 쇠였고, 표면에는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지운의 손끝이 얼어붙었다.

어제 도착한 편지 봉랍에 찍혀 있던 그것. 갈라진 틈처럼 생긴 문장. 코끝을 스치던 설탕 단내가 다시 떠올랐다.

균열. 균열교단.

"이거…" 지운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카이겐 씨가 놓고 간 거 아니에요."

오스카가 다가와 동전을 들여다봤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마족 주머니에," 오스카가 낮게 말했다. "왜 이게 들어 있지?"

바람이 다시 문틈을 흔들었다. 어딘가 아주 먼 곳에서, 웃으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있는 것만 같았다.

지운은 그 검은 동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했다.

동전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손바닥 위에서 그것은 방금 데운 커피보다도 차가웠다.

"오스카 씨." 지운은 동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이거, 카이겐 씨가 넣은 거 같아요?"

오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동전을 받아 갔다. 손가락으로 문양을 문지르고, 그을린 표면을 손톱으로 긁었다. 검게 탄 껍질 아래에서 금빛이 반짝 드러났다.

"위에만 그을린 거다." 오스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원래는 금화였어. 누가 일부러 문양을 새기고, 불에 그을려 색을 죽였지. 눈에 안 띄게."

"그게 무슨 뜻인데요."

"이걸 카이겐 주머니에 심은 놈이 있다는 뜻이다." 오스카가 동전을 카운터에 딱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카이겐 본인은 몰랐을 가능성이 높아. 놈이 여길 습격 명단에서 뺀다고 했지? 그런데 만약—"

오스카가 말을 멈췄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카이겐의 발소리가 사라진 골짜기 자갈길. 그 너머 광휘연맹 초소의 연기.

"만약 이 동전이," 오스카가 이를 사려 물었다. "카이겐이 여기 다녀갔다는 증거로 쓰인다면? 마족 지휘관이 중립지대 카페를 드나든다— 그게 심연회에 알려지면 카이겐은 반역자다. 광휘연맹에 알려지면 이 가게는 마족 소굴이 되고."

지운의 등줄기로 찬 것이 흘렀다. 손끝의 떨림이 이번엔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누가 그런 짓을…"

"웃으며 오는 자." 오스카가 어제 편지 얘기를 하듯 뱉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미 지운을 향해 있지 않았다. 문을, 그 너머의 어둠을 보고 있었다. "네가 어제 받은 편지, 봉랍에 이 문양이 있었다고 했지."

"어떻게 그걸…" 지운이 굳었다. "저 그 편지 아무한테도 안 보여줬는데요."

침묵이 카페를 눌렀다.

루나가 지운의 소매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소녀의 눈이 오스카와 지운 사이를 오갔다.

오스카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마시던 잔을 마저 비웠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조용했다.

"마스터." 그가 처음으로 지운을 그렇게 불렀다. "네게 말 안 한 게 있다."

지운은 행주를 쥔 손을 멈췄다.

"난 이 골짜기에 그냥 흘러든 단골이 아니야." 오스카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무뚝뚝한 얼굴이 처음으로 나이 들어 보였다. "돈 받고 소문을 파는 놈이었다. 광휘연맹한테도, 심연회한테도. 양쪽에 붙어서 서로의 정보를 팔았지. 그러다 이 가게를 알게 됐고—" 그가 카페 안을 둘러봤다. 벽의 세 줄 규칙, 창가 자리, 카운터. "여기 앉으면, 팔 것도 살 것도 없더군. 그냥 손님이었어. 그래서 눌러앉았다."

"그럼 그 편지 문양도…"

"안다. 이 문양이 누구 건지." 오스카가 검은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동전이 카운터 위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균열교단. 대륙 무기의 절반이 저놈들 손을 거친다. 전쟁이 끝나면 굶어 죽는 자들이지. 그리고 그 우두머리는—"

동전이 멈췄다. 그을린 균열 문양이 위를 향한 채였다.

"그림 발토스." 오스카가 이름을 뱉었다. "웃으면서 사람 목에 밧줄을 거는 놈이다. 폭력은 손도 안 대. 그냥 소문 하나, 동전 하나, 편지 하나로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지."

밖에서 문이 삐걱였다.

전부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바람이었다. 저녁 바람이 낡은 경첩을 흔든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틈으로 무언가가 스며들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 카페의 원두 향도, 골짜기의 흙냄새도 아니었다.

설탕. 왕족만 맛본다는 그 사치품의 단내가, 저녁 바람에 실려 들어왔다.

지운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제 편지에서 났던 그 냄새.

"루나." 지운이 소녀를 자기 뒤로 밀었다.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마스터, 저 냄새—" 루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녀의 귀 끝이 어제 카이겐이 왔을 때보다 더 세차게 떨렸다. "어제랑 똑같아. 그런데 더 가까워."

오스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쓰러졌다. 그의 손이 허리춤으로 갔다가— 규칙을 떠올린 듯 멈췄다. 이 가게엔 무기가 없다. 그가 스스로 내려놓았으니까.

발소리가 들렸다. 골짜기 자갈을 밟는 소리. 카이겐의 것처럼 무겁지도, 세리아의 것처럼 절도 있지도 않았다. 느긋했다. 산책하듯.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는 자의 걸음.

그리고 그 걸음에 맞춰, 누군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지운은 카운터 아래를 더듬었다. 전대 마스터의 노트가 손에 잡혔다. 손때 묻은 표지. 왜인지 그것을 쥐자 손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콧노래도 멈췄다.

문 반대편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나무 문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치 오랜 친구에게 말하듯.

"실례합니다. 아직 영업 중인가요?" 목소리가 웃었다. "듣자 하니 이 세계에 없던 맛을 낸다는 가게가 있다더군요. 검은 물 한 잔에 마족 지휘관이 검을 내려놓았다는 소문까지. 꼭 한번 맛보고 싶었습니다."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갔다.

"아, 그리고—" 목소리가 한결 더 다정해졌다. "제 동전, 돌려주시겠어요? 실수로 흘리고 간 모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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