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문을 밀고 들어온 여자는 검을 두 자루나 차고 있었다.

지운은 카운터를 닦던 행주를 내려놓았다. 은발이 어깨를 지나 허리까지 흘렀고, 눈 밑에는 며칠은 잠들지 못한 사람 특유의 검은 그늘이 앉아 있었다. 갑옷은 흠집투성이였지만 관리는 흠잡을 데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자기 몸은 팽개치면서 도구만은 반들반들 닦아두는 사람.

"자리에 앉으시려면."

지운은 벽을 가리켰다. 낡은 나무판에 세 줄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문 밖에요."

여자의 손이 자루로 갔다. 반사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 골짜기에서 무장을 풀라고? 광휘연맹의 용사에게?"

"규칙이라서요."

"규칙."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웃음이 다 나오기도 전에 어깨가 아래로 떨어졌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사람의 무너짐이었다. 지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뜨거운 물을 올렸다. 재촉하지 않는 것. 그게 이런 손님에게 필요한 유일한 예의였다.

여자는 한참을 문가에 서 있었다. 그러다 검 두 자루를 문 옆 우산꽂이 같은 통에 꽂았다. 조심스럽게, 다치지 않게, 마치 살아 있는 것을 눕히듯.

"세리아."

빈 의자를 끌어당기며 그녀가 말했다.

"세리아 라인하르트. 이름 정도는 알 텐데."

"저는 지운입니다. 카페 마스터고요."

"카페."

세리아가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렸다. 처음 씹어보는 음식 같았다.

---

지운은 원두를 갈았다. 남방 밀림에서 온 검은 열매. 이 세계 사람들은 독초로 알고 태워버리는 물건이었다.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세리아의 눈이 잠깐 카운터로 향했다.

"뭘 하는 거지."

"검은 물을 만드는 중입니다."

"독은 아니고?"

"드셔보시면 압니다."

루나가 주방 문틈으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마족 소녀의 뿔이 문틀에 살짝 부딪혔다. 지운은 눈짓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용사와 마족 견습생이 한 공간에 있는 그림은, 아직 세리아에게 보여줄 때가 아니었다.

김이 오르는 잔을 세리아 앞에 놓았다.

"뜨겁습니다. 천천히요."

세리아는 잔을 노려보았다. 냄새를 맡고, 한 번 더 맡고, 결국 한 모금을 삼켰다.

그 순간 지운의 혀끝에 짠맛이 번졌다.

바닷물 같은 게 아니었다. 마른 소금이었다. 다 울어버린 뒤, 뺨에 하얗게 말라붙은 눈물의 맛.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어 그냥 굳어버린 것. 지운은 알았다. 이 사람은 누군가를 잃었다. 한둘이 아니다. 이길 때마다 잃었고, 그 이름들을 하나도 잊지 못했다.

지운은 조용히 다시 움직였다. 우유를 데우고, 왕궁에서나 쓴다는 설탕을 아주 조금—손끝에 붙을 만큼만 녹였다. 짠맛을 씻어내는 게 아니라 감싸는 방향으로. 소금을 부정하지 않고, 그 위에 아주 얇게 단맛을 덮는 조합.

새 잔을 내밀었다.

"이건 아까랑 다릅니다. 부드러울 거예요."

세리아의 손이 잔을 감쌌다.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한 모금.

그녀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왜."

"네?"

"왜 이런 걸 만들지. 검도 없이. 이 위험한 자리에서."

세리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부하 하나가 이런 말을 했어. 전쟁이 끝나면 어머니 밭에 콩을 심겠다고. 그런 시시한 얘기를. 그 다음 전투에서 죽었어. 시신도 못 찾았고. 나는 그날도 이겼어. 승전보를 올렸지. 훈장을 받았어."

잔을 쥔 손이 떨렸다.

---

"이겨. 계속 이겨. 그런데 이길 때마다 명단이 길어져."

세리아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인의 골짜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른 풀과 바람뿐.

"알아? 나는 전쟁을 끝내고 싶어. 진심으로. 저 아이가 콩을 심을 수 있게."

"그럼 끝내면 되지 않습니까."

지운은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세리아가 픽 웃었다. 조롱이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모르는 소리. 용사가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거기서 그녀는 멈췄다. 다음 단어를 삼켰다. 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마치 그 말을 하면 무언가 무너진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지운은 서두르지 않았다. 원두를 한 번 더 갈았다. 그르렁, 하는 소리가 침묵을 채웠다. 세리아가 삼킨 단어의 무게를 지운은 짐작했지만, 곧장 꺼내지 않았다. 이런 건 손님이 스스로 말하게 두어야 한다. 대신 말해주면, 그건 위로가 아니라 판결이 된다.

"…용사가 화해를 말하면."

한참 뒤 세리아가 스스로 이었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겁먹은 걸로 읽혀. 배신으로 읽혀. 죽은 부하를 팔아 목숨을 구걸하는 걸로."

"그래서 못 하시는군요."

"그래서 못 해."

세리아가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아래로, 오래 참았던 것이 밀려나왔다. 소리 없이. 훈련된 사람의 우는 법이었다. 어깨도 흔들지 않고, 코도 훌쩍이지 않고, 그저 눈물만 흘리는.

"바보 같지. 대륙 최강의 용사가 검은 물 한 잔에."

"괜찮습니다."

지운은 냅킨을 내밀었다. 왕궁제 리넨은 아니고 그냥 거친 천이었다.

"여기서는 우셔도 아무도 안 봐요. 여기서는 그냥 손님이시니까."

세리아가 천을 받아 눈가를 눌렀다. 갑옷 사이로 삐져나온,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이 아이가 용사라니. 지운은 문득 그런 생각을 삼켰다.

---

그때부터였다. 지운의 손끝이 이상했다.

행주를 다시 집으려는데,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컵을 놓칠 뻔했다. 이마 안쪽에서 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등줄기가 서늘하게 젖었다. 짠맛이—세리아의 마른 소금이—이제 지운의 혀에서 사라지지 않고, 대신 가슴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잃어버린 이름들의 무게가, 그녀 것이 아니라 그의 것처럼 얹혔다.

그는 카운터를 짚었다.

'이게 대가구나.'

전대 마스터의 노트에 적혀 있던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감지한 것은 네게 머문다.* 그때는 무슨 시적인 경고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손님의 슬픔을 맛으로 읽으면, 그 슬픔이 진짜로 몸에 눌러앉는 것이다.

지운은 자기 몫으로 한 잔을 내려 마셔볼까 했다. 습관이었다. 힘들면 커피로 자신을 다독이던 습관. 그러나 첫 모금을 삼키고 아무 맛도,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자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내 결핍은 나도 못 읽지.'

남을 읽는 혀는 정작 자기 자신에게만 먹통이었다. 이 능력은 지운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세리아가 일어섰다. 눈가는 아직 붉었지만 등은 다시 곧게 펴져 있었다. 용사의 등이었다.

"얼마지."

"첫 손님이시니까 오늘은 안 받겠습니다."

"그런 장사가 어딨어."

"저희 가게는 그렇습니다."

세리아가 잠시 지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고, 문가로 걸어가 검 두 자루를 다시 챙겼다. 검을 허리에 걸치는 순간, 그녀의 표정에서 아까의 무너짐은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문을 넘는 순간 계급과 진영을 문 밖에 두어라. 규칙은 나갈 때도 작동했다.

"또 와도 되나."

"손님이신데요."

세리아가 처음으로 제대로 웃었다. 아주 짧게. 그러고는 문을 열고 마른 골짜기 속으로 사라졌다.

---

문이 닫히자마자 루나가 튀어나왔다.

"마스터! 얼굴이 하얘요! 아까부터 손 떨렸어요, 나 봤어요!"

"아, 이거."

지운은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물이 좀 뜨거웠나 봐. 괜찮아."

"거짓말. 마스터 열나요."

루나가 발끝으로 서서 지운의 이마에 손을 댔다. 작은 손이 차가웠다.

"괜찮다니까. 이 정도는 자고 나면 나아."

지운은 웃었다. 전생에서 수천 번 지어본 웃음이었다. 사장에게, 손님에게, 동료에게. *괜찮습니다,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그 웃음의 끝에 병실 천장이 있었다는 걸, 루나는 몰랐다.

루나는 입술을 삐죽였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빈 잔을 챙겨 카운터로 가져갔다. 그러다 창밖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마스터."

"응?"

"저기 누가 있어요."

지운이 고개를 들었다. 골짜기 저편, 마른 나무 그늘 아래. 검은 형체 하나가 카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얼굴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다만 두 개의 붉은 점만이 어둠 속에서 또렷했다. 눈이었다. 핏빛으로 타오르는, 마족의 눈.

지운의 등에 다시 소름이 돋았다. 이번엔 열 때문이 아니었다.

붉은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카페의 창 하나하나를 세듯 훑고 있었다.

"루나야, 저 사람 알아?"

루나가 대답하지 않았다. 지운이 돌아보니, 소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뿔 끝까지 하얗게.

"…나, 저 눈 알아요."

루나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저 눈을 보면, 왜 이렇게 무섭지."

붉은 눈이 천천히 감겼다 떠졌다. 그리고 그림자는 아무 소리도 없이 마른 나무 뒤로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운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바람에 마른 풀만 흔들렸다.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등 뒤에서 루나가 지운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그 작은 손이, 오늘따라 놓을 줄을 몰랐다.

지운은 커튼을 반쯤 당겨 창을 가렸다. 손끝은 여전히 떨렸지만, 이번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루나가 옷자락을 놓지 않는 이상, 자기까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됐다.

"루나야."

지운은 무릎을 굽혀 소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이마에서 열이 훅 몰려 시야가 잠깐 기울었다. 카운터 모서리를 짚어 버텼다.

"저런 손님은 안 무서워. 여기 들어오면 다들 똑같아지거든. 검을 든 용사도 방금 문밖에 검 두고 앉았잖아."

"…들어오면요?"

루나의 눈이 커졌다.

"들어오면. 그런데 저 사람은 안 들어왔어요. 밖에서만 보고 갔어요. 그런 게 제일 무서운 거예요, 마스터."

지운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전쟁고아로 이 골짜기를 떠돌던 아이의 직감이었다. 문을 넘지 않고 밖에서 지켜보는 자—규칙의 보호를 받지 않는 자. 카페의 세 줄은 문을 넘은 손님에게만 작동한다. 밖에 선 자에게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었다.

그 사실이 지운의 등을 다시 서늘하게 훑었다.

---

루나를 겨우 달래 주방으로 들여보낸 뒤, 지운은 카운터 아래 서랍을 열었다. 전대 마스터의 노트. 가죽 표지가 손때로 반질반질했다. 세리아를 상대하며 떠올랐던 그 붉은 글씨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감지한 것은 네게 머문다.*

그 아래, 오늘 처음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하루에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정해져 있다. 넘기면 멈추는 게 아니라, 쓰러진다. 나는 그걸 늦게 알았다.*

지운은 손끝으로 글자를 짚었다. 잉크가 번진 자국이 있었다. 마치 쓰다가 손이 떨렸던 것처럼. 이 사람도 그랬구나. 세리아 한 잔에 이만큼인데, 하루에 손님을 몇이나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계산이 서지 않았다. 실적에 쫓기던 몸이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쫓기고 있었다.

그때 노트 사이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이 미끄러졌다.

펼치자 지도였다. 대륙 남방, 밀림이 그려진 조악한 손그림. 검은 열매가 자생하는 자리에 동그라미가 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짧은 메모.

*이 열매가 끊기면 카페도 끝난다. 공급을 쥔 자가 곧 목줄을 쥔 자다. 조심해라—그자는 웃으며 온다.*

'그자.'

지운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노트 주인은 이미 누군가를 알고 있었다. 경고할 상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고를 남긴 채, 지운은 이 카페를 '상속'받았다. 다시 말해—전대 마스터는 죽었다.

무엇 때문에?

지운은 종이를 접다 말고 뒷면을 뒤집었다. 거기 한 줄이 더 있었다. 다른 잉크, 다른 필체가 아니라 같은 손인데 훨씬 급하게 갈겨쓴 글씨.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문장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잉크가 종이를 찢을 듯 눌린 채, 마지막 획이 아래로 길게 끌려 내려가 있었다. 무언가에 놀라 손을 놓친 사람의 흔적이었다.

똑.

지운은 숨을 멈췄다.

똑. 똑.

문이었다. 닫아둔 카페의 문. 세리아가 나가고, 붉은 눈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노크는 느렸다. 예의 바르게, 하나하나 세듯이. 손님의 노크가 아니었다. 이 골짜기에서 카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없다. 다들 그냥 밀고 들어오니까. 두드린다는 건, 안에 있는 사람의 반응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마스터?"

주방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겁에 질려 잠긴 소리였다.

똑, 똑, 똑.

지운은 노트를 서랍에 넣고 천천히 카운터를 돌아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열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문고리에 손을 얹기 직전, 그는 창의 커튼 틈으로 밖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마른 풀. 바람. 텅 빈 골짜기.

그런데 노크는 계속됐다. 눈앞의 문에서, 분명히. 두드리는 자가 보이지 않는 채로.

똑. 똑.

그리고 문틈 아래로, 종이 한 장이 스르륵 밀려 들어왔다. 붉은 밀랍으로 봉인된 편지였다. 인장에는 갈라진 원—균열 문양이 찍혀 있었다.

지운이 편지를 집어 든 순간, 봉인된 종이 위로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익숙한 냄새였다. 너무 익숙해서 소름이 돋는.

설탕. 왕족만 맛본다는 그 사치품의, 진하게 졸인 단내.

1화에서 카페 앞을 스쳐간 정체불명의 방문자가 풍기던 바로 그 냄새였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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