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뿔피리가 겹쳐 울리는 소리가 창유리를 긁고 지나갔다.
"놈이 앞당겼어." 세리아가 다시 말했다. 목검을 쥔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 "사흘이라더니. '무장 반입 금지 규칙 따위는 종잇조각이 될 거'라던 그 말—오늘 밤 안에 실행할 셈이야."
지운은 카운터 밑 붉은 숫자를 봤다. 하나. 손끝이 저렸다. 명치에 얹힌 무게가 뿔피리 박자에 맞춰 조여왔다.
"내일 새벽이겠지." 오스카가 벽에 기댄 채 낮게 말했다. 그는 회색 먼지가 묻은 어깨를 털지도 않았다. "봉화 신호대로면 병력이 능선 넘는 데 하룻밤. 오늘은 못 와. 대신—" 그가 턱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저 소리 들은 손님들이 먼저 온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붕대 감은 여자가 먼저 들어왔다. 뒤이어 상인 하나, 다리 저는 노병, 얼굴을 가린 마족 소녀. 뿔피리 소리에 잠자리를 뛰쳐나온 사람들이었다. 골짜기의 밤을 통틀어 이 낡은 목조 건물만 불이 켜져 있었으니까. 그들은 겁먹은 얼굴로 카운터로 몰려들었다.
"마스터, 소문이 사실이오? 여기가 불탄다는—" "내 아들이 마족 진영에 붙잡혀 있는데, 이 카페가 없어지면 이제 어디서—" "한 잔만. 마스터, 딱 한 잔만 내려주시오. 오늘 밤엔 도저히 눈을 못 감겠소."
손이 뻗어왔다. 대여섯 개의 손이. 지운은 반사적으로 잔을 꺼냈다. 원두를 갈았다. 뜨거운 물을 부었다. 붕대 여자가 첫 모금을 삼키는 순간, 혀끝에 쇠 맛이 번졌다—잘린 손가락, 돌아오지 않는 약혼자. 지운은 정확한 한 잔을 밀어냈다. 명치가 무거워졌다.
"다음." 그가 말했다.
노병이 마셨다. 재 맛.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지운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가 짓눌렸다.
"마스터." 루나가 소매를 잡았다. "숫자. 붉은 숫자."
"알아." 지운은 손을 놓지 않았다. "한 명만 더."
상인이 마셨다. 마족 소녀가 마셨다. 지운은 계속 읽었다. 손가락 하나에서 시작된 저림이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잔을 쥔 손이 떨려 뜨거운 물이 손등에 튀었다. 그는 아프다는 것도 몰랐다.
"조금만—" 그가 웃으려 했다. "조금만 더 하면, 다들 오늘 밤은 잘 수—"
무릎이 꺾였다.
카운터 모서리를 붙잡았지만 잡히지 않았다. 지운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뿔피리 소리도, 사람들의 비명도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멀어졌다. 명치의 무게가 목까지 차올라, 숨이 좁은 관을 통과하듯 힘겨웠다.
"마스터!" 루나가 무릎으로 미끄러져 그를 받쳤다. "봐,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세라고 했잖아! 몇 명이야, 방금 몇 명 읽었어!"
지운은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만 움직였다. 괜찮아, 라고 말하려 했다.
"괜찮지 않아!" 루나가 소리쳤다. 눈에 물이 그렁그렁했다. "당신 마스터랑 똑같아! 똑같이 죽으려고!"
그 말에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몰려들었던 손님들이 뻗었던 손을 거뒀다. 붕대 여자가 제 잔을 내려놨다. 노병이 문 쪽으로 물러섰다.
세리아가 무릎을 꿇고 지운의 등을 받쳤다. "마스터. 정신 차려."
오스카는 몰려든 사람들 앞을 팔로 막았다. "다들 나가. 오늘은 문 닫는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규칙 셋째. 마스터의 한계를 존중하라. 못 읽었나? 벽에 붙어 있잖아."
사람들이 하나둘 물러갔다. 마지막으로 마족 소녀가 문 앞에서 돌아봤다. "마스터… 죽지 마요." 그러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혔다. 카페 안엔 지운과 루나, 세리아, 오스카만 남았다.
루나는 지운을 카운터 뒤 낡은 의자에 앉혔다. 그의 손끝이 새하얬다. 아이의 손이 떨렸다. 그러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아이는 벌떡 일어나 카운터 아래 서랍을 뒤졌다.
"루나?" 세리아가 물었다.
"노트." 루나가 두꺼운 가죽 노트를 꺼냈다. 손때 묻은, 전대 마스터의 것. "여기 마지막 장…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어. 뜯겨나간 자국이 있는데, 뜯긴 종이가 발토스한테 있잖아. 근데."
아이는 노트를 촛불 가까이 가져갔다. 뜯긴 페이지의 다음 장,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표면을 촛불에 기울였다.
"펜으로 세게 쓰면… 아랫장에 눌린 자국이 남아. 나 글은 잘 못 읽는데, 눌린 건 손으로 만져져."
촛불이 가까워지자, 매끈한 종이 위로 그림자가 골을 드러냈다. 눌린 글씨. 전대 마스터가 강하게 눌러 쓴 마지막 문장이, 사라지지 않고 아랫장에 화석처럼 새겨져 있었다.
루나가 손끝으로 골을 더듬으며 한 글자씩 읽었다.
"'상한은… 되돌릴 수… 없다.'" 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만… 혼자… 다 마시지 않으면… 태우지 않아도… 된다.'"
카페 안의 촛불이 흔들렸다.
지운이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로 아이의 얼굴을 봤다. "혼자… 다 마시지, 않으면?"
"그래." 루나가 노트를 지운의 가슴에 들이밀었다. 아이는 더 이상 밝은 척하지 않았다. 겁먹은 아이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발토스가 뜯어간 종이는 '상한을 되돌리는 법'이 아니었어. 그런 건 없어. 되돌릴 수 없다고 여기 쓰여 있잖아! 그 인간이 미끼로 흔든 종이는—애초에 가짜 희망이었어."
세리아가 숨을 삼켰다. "그럼 발토스는 존재하지도 않는 걸 미끼로—"
"진짜 답은 이거야." 루나가 눌린 글씨를 손톱으로 눌렀다. "혼자 다 마시지 마. 마스터. 전대 마스터는 이걸 알면서도, 이걸 자기 손으로 써놓고도—결국 못 지켜서 죽은 거야. 손님을 혼자 다 받았어. 다 읽었어. 나눌 사람이 없었으니까."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져 노트 위로 번졌다.
"근데 당신은 있잖아. 나 있잖아." 루나가 제 가슴을 쳤다. "나 이제 능력 없어도 사람 읽어. 손가락 잃은 언니도 내가 읽었어. 커피도 내렸어. 그러니까 나눠 지는 거야. 반은 내가. 반은 당신이. 그리고 못 하는 건—"
"내일로 미뤄." 지운이 아이의 말을 이었다.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지운은 오래 침묵했다. 그의 손이 노트 위 눌린 글씨를 더듬었다. 전대 마스터의 손이 이 문장을 얼마나 세게 눌러 썼는지, 골이 깊었다. 지키지 못할 걸 알면서도, 다음 사람에게만은 알려주려 했던 유언 같은 필체였다.
"나는." 지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손님이 손을 뻗으면… 못 뿌리쳐요. 문 닫힌 가게 앞에서 돌아서 본 적이 있거든. 갈 곳 없이. 그때 그 불 꺼진 창문이… 아직도 여기 있어요." 그가 명치를 눌렀다. "그래서 나는, 내 가게만은 절대 문 안 닫으려고 했어요. 누가 와도. 언제 와도."
"그건." 루나가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당신이 죽으면 못 지켜. 죽은 마스터가 불 꺼뜨렸잖아. 며칠 동안.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이 가게 불 꺼져 있었어. 나 문 앞에서 얼어 죽을 뻔했다고."
지운이 아이를 봤다.
"그러니까 살아서 문 열어." 루나가 말했다. "매일 조금씩. 다 못 받아도. 반만 받고 반은 나 주고. 못 받은 사람한테는 '내일 와요' 하면 되잖아. 그게 문 닫는 거 아니야. 그게—"
"불을 계속 켜두는 방법." 지운이 웃었다. 오랜만에, 아프지 않은 웃음이었다.
오스카가 팔짱을 낀 채 낮게 코웃음을 쳤다. "그걸 이제야 알았나, 마스터. 나는 첫날부터 당신 과로할 거 알아봤는데." 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안도가 섞여 있었다.
지운은 몸을 일으켰다. 손끝은 여전히 저렸다. 그러나 무릎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카운터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벽에 붙은 세 줄의 규칙 앞에 섰다. 세 번째 줄—'마스터의 한계를 존중하라. 오늘의 손님 수는 마스터가 정한다.'
"오늘의 손님 수는." 지운이 소리 내어 읽었다. "마스터가 정한다." 그가 루나를 돌아봤다. "루나. 오늘부터 너랑 나눠서 정하자. 네가 세고, 내가 멈추고. 못 받은 사람은—"
"내일." 루나가 앞치마 끈을 고쳐 맸다. 정식 견습의 앞치마였다. "'경계선'은 도망 안 가니까. 내일도 여기 있으니까."
그것이 이 가게에서 마스터가 처음으로 배운 '거절'이었다. 뿌리치는 거절이 아니라, 살아서 다시 문을 열기 위한 거절.
세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지운을 오래 봤다. 목검 손잡이 위에 얹혔던 손이 이번엔 검이 아니라 제 가슴을 눌렀다.
"마스터." 그녀가 말했다. "아까 네 부탁—대답할게. 나는 여길 지킨다. 부하들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새겨진 이름들을 엄지로 문질렀다. "여기 앉았던 한 명의 손님으로."
문이 열리고 세리아가 밤 속으로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 있었다. 다리에 쪽지가 묶여 있었다. 루나가 창을 열자 새가 폴짝 뛰어들었다. 오스카가 쪽지를 풀어 펼쳤다.
"광휘연맹 문장이 없어." 그가 눈살을 좁혔다. "필체는—세리아군." 그가 소리 내어 읽었다. "'상부 명령엔 병력 소집이라 답했다. 나는 그 병력에 끼지 않는다. 새벽에, 갑옷 없이 혼자 간다. 용사로서가 아니라.'"
루나가 숨을 들이켰다. "혼자 온대. 진영 병력 데리고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손님으로 오겠다는 거지." 오스카가 쪽지를 접었다.
그때 다시 창을 긁는 소리. 이번엔 검은 깃털의 큰 새였다. 다리에 붉은 실로 묶인 쪽지. 실에는 심연회의 인장이 눌려 있었으나, 쪽지엔 인장이 없었다. 오스카가 그것도 펼쳤다.
한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카이겐이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마왕 대리로서 나는 이 골짜기 전투에 관여하지 않는다. 심연회 병력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다음 줄을 읽었다. "'다만 나 개인은, 데운 우유 한 잔을 아직 다 마시지 못했다. 그 잔을 마저 마시러 가겠다. 진영 없이. 새벽에.'"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루나가 두 쪽지를 나란히 카운터에 놓았다. 인장 없는 두 장의 종이. 하나는 용사의 필체, 하나는 마왕 대리의 필체. 각자, 따로, 상대가 온다는 것도 모른 채, 같은 새벽에 이 낡은 카페를 지키러 오겠다고 적어 보냈다.
"둘이 서로 온다는 거 몰라." 루나가 속삭였다. "각자, 자기 혼자 오는 줄 알고."
지운은 두 쪽지를 봤다. 명치의 무게가, 이상하게도 조금 가벼워졌다. 혼자 다 마시지 않으면 태우지 않아도 된다—전대 마스터의 유언이 목조 벽 안에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루나." 지운이 말했다. "내일 새벽, 갈지 않은 원두 세 봉지 준비하자. 세리아 씨 거, 카이겐 씨 거."
"세 봉지? 두 명인데."
"한 봉지는." 지운이 창밖 어둠을 봤다. "그 둘이 같은 테이블에 앉으면. 그때 내릴 거."
루나가 픽 웃었다. 눈물 자국이 마른 뺨 위로.
밤이 깊었다. 오스카는 문 옆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지운은 처음으로, 카운터 밑 붉은 숫자를 보고도 잔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내일 아침의 손님 목록을 루나와 함께 정했다. 누구는 오전에. 누구는 오후에. 누구는 내일 새벽 이후에. 못 받는 사람에게 건넬 말도 함께 정했다. '내일 오세요. 불은 켜져 있을 테니까.'
그렇게 골짜기의 밤이 지나갔다.
새벽이 왔다.
지운은 카운터에 세 봉지의 원두를 나란히 놓고, 물을 끓였다. 창밖 하늘이 회색에서 잿빛으로, 잿빛에서 옅은 파랑으로 물들었다. 세리아가 올 시간이었다. 카이겐이 올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할 새벽이었다.
그러나 능선을 넘어온 것은 세리아도, 카이겐도 아니었다.
지운이 먼저 소리를 들었다. 땅을 밟는 소리.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어쩌면 그 이상. 쇠가 부딪치는 소리. 골짜기의 마른 흙을 짓밟는 군화의 리듬. 무장 반입 금지 규칙 따위는 종잇조각이 될 거라던 그 말이, 새벽안개를 뚫고 형체가 되어 밀려들었다. 균열교단의 깃발—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오직 전쟁만을 파는 자들의 검은 균열 문양이 안개 속에서 흔들렸다.
무장한 용병들이 골짜기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카페를 향해.
루나가 창가에서 얼어붙었다. "마스터…"
그때였다.
카페 처마 밑, 전대 마스터가 걸어둔 낡은 놋쇠 종이—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저 혼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에. 떨림이 커졌다. 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점점 크게. 마치 스스로 무언가를 경고하듯, 혹은 부르듯.
지운의 손끝이 저렸다. 붉은 숫자 하나가 카운터 밑에서 그를 올려다봤다.
종이 저 혼자, 계속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