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새벽 4시 47분. 침대에서 눈을 뜬다. 천장이 보인다. 하얀 천장. 왜 누워 있지?

이준호는 몸을 일으킨다. 손가락이 떨린다. 왼쪽 손가락. 아니, 양쪽 다 떨린다. 침대 옆 탁자에 휴대폰이 있다. 화면을 켠다.

시간 골목 앱. 빨간 숫자.

남은 수명: 6개월 3일 15시간 23분. 통장 잔액: 2억 5,340만 원.

준호는 이 숫자들을 본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침대도, 벽도,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숫자만. 빨간 숫자가 깜빡인다.

욕구가 올라온다.

욕구라고 부르기도 이상하다. 호흡 같은 것이다. 심장이 뛰는 것처럼 자동적이다. 손가락이 화면을 향한다. 떨리면서. 욕구는 신체를 통제한다. 의지는 어디 있는가? 의지라는 것이 존재했던가?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손이 떨린다.

거울이 필요하다. 욕구는 자신을 본다. 거울을 본다. 욕구는 거울 속 자신을 확인한다.

화장실. 거울 앞. 손을 씻으려고 한다. 손가락이 떨려서 물이 손 위를 흐른다. 거울에 비친 얼굴. 그것이 자신인가? 눈이 텅 비어 있다. 광채가 없다. 마치 누군가 내부의 것들을 모두 꺼내간 것처럼.

휴대폰을 다시 든다.

"시간 골목. 거래 시작."

음성 명령이 작동한다. 화면이 전환된다. 거래 대기 화면. 초당 단가: 3,000원. 거래 시간 설정: 1시간. 예상 수익: 1,080만 원.

손가락이 올라온다. 거래 버튼 위에서 멈춘다. 떨린다.

'거래 진행'을 누르면 된다.

누르지 않는다.

누른다.

동시에 초인종이 울린다.

음성 안내: "거래가 진행 중입니다. 남은 시간: 59분 47초."

문을 연다.

최태수. 준호의 아버지다. 준호는 이 사람을 본다. 누구인가? 왜 이 사람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가? 얼굴이 낯설다. 아니, 낯설지 않다. 그런데 누구인지 모른다.

"준호."

아, 자신의 이름이 준호인가? 맞다. 준호다. 그렇게 불린 적이 있다. 어디서? 언제?

최태수는 아들의 얼굴을 본다.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손이 떨린다. 이것이 자신의 아들인가?

"넌... 이제 나를 못 알아보니?"

준호는 입을 연다. 대답하려고 한다. 그런데 말이 없다. 생각이 없다. 뇌가 비어 있다. 뇌가... 어디에 있는가?

최태수는 준호의 손을 본다. 떨리고 있다. 휴대폰을 들고 있다. 화면에는 카운터가 돌아가고 있다. 남은 시간 59분 12초. 초당 3,000원. 거래 중.

최태수의 얼굴이 굳는다.

"거래를 멈춰라."

준호는 들었는가? 이 말을 이해했는가? 최태수는 아들의 손을 잡으려 한다. 준호는 휴대폰을 치운다. 자신의 거래 화면이 보이지 않게.

"아버지... 아니, 누구세요?"

최태수의 얼굴이 흔들린다. 회색 머리. 깊게 패인 눈가. 그 얼굴이 준호의 뇌에 기록되지 않는다.

최태수는 준호의 침실로 간다. 책상 위에 노트북이 있다. 의료 기록이 열려 있다. 최신 MRI 검사 결과. 화면에는 뇌 영상이 떠 있다. 해마 부분이 강조되어 있다. 정상(8ml) 대비 현재 크기: 1.6ml. 위축도: 80%.

의사의 목소리. 녹음 파일이 재생되고 있다.

"해마 위축이 80%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임상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입니다. 현재 추세로 거래를 계속하면 6개월 내 기억 능력이 5% 이하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환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식물인간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최태수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침실로 돌아온다. 준호는 여전히 휴대폰을 들고 있다. 화면을 보고 있다. 남은 시간 57분 34초. 거래 진행 중.

최태수는 준호의 앞에 선다.

"내 빚이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목소리가 갈라진다. 최태수는 자신의 손을 주먹으로 쥔다. 빚을 갚기 위해 아들을 팔았다. 시스템에 던졌다. 그리고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준호는 아버지의 말을 듣는가?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가? 보지 않는다. 화면을 본다.

"돈을 많이 벌었어. 봐."

준호는 휴대폰 화면을 아버지에게 보인다.

"2억 5,340만 원. 돈이 많아. 많아."

목소리에 감정이 없다. 마치 날씨를 보고하는 것처럼. 2억 5,340만 원. 그것이 준호의 세계 전부다. 그 숫자가 증가하는 것. 그 숫자 옆의 다른 숫자. 남은 수명 6개월 3일. 그것도 감소하는 것. 그 감소가 주는 쾌감.

최태수는 눈을 감는다.

"언제부터... 언제부터 넌 내 아들이 아니게 됐니?"

준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다. 질문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누군가 물었다. 누군가. 누구? 이 얼굴은 누구인가? 이름은? 회색 머리의 그 사람. 왜 계속 보는가?

최태수는 준호의 손을 잡는다. 떨리는 손.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

"제발. 거래를 멈춰라."

준호는 입을 연다.

"남은 시간 55분 18초."

그것만 본다. 그것만 말한다. 카운터가 돌아가고 있다. 초당 3,000원. 1시간에 1,080만 원. 그 숫자가 깜빡인다. 빨간색으로 깜빡인다.

최태수는 준호의 손을 빼앗으려 한다. 휴대폰을 빼앗으려 한다. 준호의 손가락이 화면을 감싼다. 어떤 힘도 준호의 손을 열 수 없다. 욕구가 그 손을 지킨다. 욕구가 신체 전체를 지배한다.

"멈춰. 제발 멈춰."

최태수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울음이 섞인다.

준호는 웃는다.

웃음이 나온다. 공허한 웃음. 의미 없는 웃음. 마치 누군가 자동으로 준호의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것처럼.

"돈이 많아. 아버지. 돈이... 많아."

준호의 눈은 여전히 화면을 본다. 화면에는 카운터가 돌아가고 있다. 남은 시간 52분 41초.

거래는 계속된다.

최태수는 아들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는 것을 포기한다. 대신 아들을 안는다. 떨리는 몸. 그 떨림을 느낀다. 신경이 파괴되고 있다. 뇌가 파괴되고 있다. 아들이 파괴되고 있다.

준호는 저항하지 않는다. 하지만 팔도 들지 않는다. 포옹하지 않는다. 마치 살아 있지 않은 것처럼.

최태수의 눈물이 준호의 머리에 떨어진다.

준호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뇌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오직 욕구만 있다. 욕구는 생각이 아니다. 욕구는 욕구일 뿐이다.

화면이 깜빡인다.

남은 시간 48분 15초.

초당 3,000원.

1시간 거래 시 1,080만 원.

그 숫자들만 남는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멀어진다. 아버지의 팔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화면만. 카운터만. 숫자만.

욕구만.

최태수는 준호를 놓는다. 아들의 손을 놓는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들을 구할 방법이 없다. 이미 너무 늦었다. 아들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남은 것은 욕구의 껍질뿐이다.

최태수는 침실 문을 나간다.

준호는 혼자 남는다.

휴대폰을 본다.

화면에 떠오르는 것.

남은 수명: 6개월 3일 47분.

초당 가격: 3,000원.

1시간 거래 시 1,080만 원.

손가락이 떨린다.

손가락이 화면을 향해 움직인다.

움직인다.

멈추지 않는다.

손가락이 화면에 닿는다.

거래 버튼을 누른다.

화면이 변한다.

[거래 시작]

[남은 수명: 6개월 2일 23시간 59분 58초]

[현재 수익: 1,080만 원]

시간이 깎인다. 초 단위로. 분 단위로. 시간 단위로.

준호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숫자가 변하는 것을 본다.

거실 벽에 붙은 달력. 9월 14일. 준호는 오늘이 며칠인지 모른다. 어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내일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달력 위의 빨간색 숫자들만 보인다. 그것도 점점 희미해진다.

침실 복도. 최태수는 벽에 기댄다.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어깨가 떨린다. 울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아들을 구하지 못했다. 아들을 잃었다.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아들 자신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욕구의 기계일 뿐이다.

최태수는 휴대폰을 꺼낸다. 손가락이 떨린다. 화면에 뜨는 것. 경찰청 적발 기록. 관리국 조사 통보. 뉴스 기사. '47회 거래 남성, 기억 능력 15% 수준까지 악화. 의료진 "회복 불가능 판정"'. 그 기사 아래 준호의 얼굴 사진. 눈빛 없는 표정.

최태수는 전화기를 들었다가 놓는다. 누구에게 전화할 것인가? 누가 아들을 구할 수 있는가? 의사도 못 했다. 경찰도 못 했다. 자신도 못 했다. 시스템이 원한다. 시스템이 아들을 먹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빚이 그 시스템에 아들을 던졌다.

최태수는 바닥에 앉는다.

거실에서 준호는 여전히 화면을 본다. 거래 시간이 40분 남았다. 손가락이 떨린다. 손가락이 움직인다. 다음 거래 버튼을 누르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거래가 끝나지 않았다. 현재 거래를 멈출 수 없다. 거래를 멈추면 불안하다. 거래를 멈추면 공허하다.

그래서 준호는 기다린다. 카운터가 돌아가는 것을 본다.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본다. 통장 잔액이 늘어나는 것을 본다.

[거래 진행 중: 남은 시간 35분 12초]

[현재까지 수익: 1,050만 원]

[누적 거래량: 58회]

[기억 능력: 20%]

[해마 위축도: 80%]

화면에 떠오르는 정보들. 준호는 이것들을 읽지 않는다. 단지 숫자들을 본다. 그 숫자들이 깜빡인다. 빨간색으로. 노란색으로. 초록색으로.

색깔이 변할 때마다 도파민이 분비된다. 뇌 선조체가 반응한다. 손가락이 경련한다. 호흡이 빨라진다. 심박수가 올라간다.

욕구가 신체를 지배한다.

욕구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준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가 있다. 방금 전에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 방이 어디인지도 모를 때가 있다. 하지만 화면이 무엇인지는 안다. 화면이 자신의 전부다.

화면이 자신이다.

화면 없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준호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눈을 들지 않는다. 화면만 본다. 화면에서 눈을 떼면 불안하다. 화면에서 눈을 떼면 죽을 것 같다.

[거래 진행 중: 남은 시간 20분 47초]

[현재까지 수익: 624만 원]

시간이 깎인다. 수명이 깎인다. 그 깎이는 것을 보는 쾌감. 그 쾌감이 준호를 살린다. 아니다. 그 쾌감이 준호를 죽인다. 하지만 준호는 죽음을 느끼지 않는다. 죽음도 삶도 구별하지 않는다.

오직 숫자의 변화만 있다.

오직 욕구만 있다.

최태수가 거실로 돌아온다. 준호의 모습을 본다. 고개를 숙인 아들. 손가락이 떨리는 아들. 눈빛이 없는 아들. 더 이상 자신의 아들이 아닌 무언가.

최태수는 준호의 옆에 앉는다.

"준호."

준호는 반응하지 않는다.

"준호."

다시 부른다. 준호는 여전히 화면을 본다.

"내 이름이 뭐야?"

최태수가 묻는다.

준호는 입을 연다.

"남은 시간 15분 33초."

그것만 말한다. 아버지의 질문은 준호의 귀에 도달하지 않는다. 질문은 신호다. 신호는 필터링된다. 오직 화면의 신호만 통과한다.

최태수는 준호의 손을 본다. 손가락이 경련한다. 신경이 손상되었다. 뇌가 손상되었다. 손상된 뇌가 손가락을 움직인다. 손가락은 자동이다. 의지가 없다. 욕구만 있다.

최태수는 준호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목소리가 떨린다. 눈물이 흐른다.

준호는 반응하지 않는다.

[거래 진행 중: 남은 시간 5분 22초]

[현재까지 수익: 954만 원]

카운터가 빨라진다. 마지막 분. 마지막 초. 시간이 깎인다.

그 깎이는 것을 보는 준호의 얼굴에 표정이 나타난다. 처음으로. 기대. 설렘. 욕구가 정점에 도달한다.

[거래 완료]

[총 수익: 1,080만 원]

[누적 거래 금액: 5억 4,120만 원]

[남은 수명: 6개월 2일 23시간]

화면이 변한다.

거래 버튼이 나타난다.

다음 거래 버튼.

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움직인다.

최태수가 손을 잡는다.

"멈춰. 제발."

준호는 저항한다. 아버지의 손을 밀어낸다. 약한 힘이지만 집요하다. 욕구의 힘이다. 욕구는 약해 보이지만 절대적이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준호가 중얼거린다. 말인가? 음성인가? 의미 있는 언어인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손가락이 화면을 향해 움직인다.

최태수가 휴대폰을 빼앗는다.

준호가 소리를 지른다.

"아니야! 아니야!"

목소리가 왜곡된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다. 짐승의 울음소리다. 욕구의 울음소리다.

최태수는 휴대폰을 들고 침실로 간다.

준호는 뒤를 따른다. 손가락이 떨린다. 몸 전체가 떨린다. 금단 증상이다. 거래가 끝났다. 다음 거래가 없다.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뇌가 비명을 지른다.

"돌려줘! 돌려줘!"

준호가 외친다.

최태수는 침실 문을 잠근다.

문 너머에서 준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비명. 울음. 욕구의 울음.

최태수는 휴대폰을 본다. 화면에 뜨는 것. 시간 골목 앱. 다음 거래 버튼. 초당 3,000원. 1시간에 1,080만 원.

손가락이 전원 버튼 위에서 멈춘다. 켜고 싶다. 앱을 켜고 싶다. 아들을 위해 거래를 하나 더 시작하고 싶다. 그러면 아들이 조용해질 것이다. 욕구가 채워질 것이다.

최태수는 손을 주먹으로 쥔다. 손가락이 경련한다. 욕구가 그의 손도 지배하려 한다. 자신도 중독되었다. 아들을 구하려던 손이 이제 아들을 더 팔려고 한다. 최태수는 그것을 안다. 시스템이 자신도 잡았다는 것을 안다.

최태수는 휴대폰의 전원을 끈다.

침대에 앉는다.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아들은 이미 죽었다. 신체는 살아 있지만 아들은 죽었다. 욕구의 기계만 남았다. 자신의 빚이 만든 기계. 자신의 빚이 아들을 먹었다. 시스템이 아들을 먹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시스템에 아들을 던졌다.

문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계속된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발로 차는 소리.

욕구의 울음.

최태수의 손이 떨린다. 휴대폰을 집으려는 손. 전원을 켜려는 손. 아들의 욕구를 채워주려는 손.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손.

최태수는 손을 침대 아래 깔아 누른다. 신체적 저항. 손가락이 저항한다. 욕구가 손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최태수는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

침대 위에 놓인 휴대폰. 검은 화면. 전원이 꺼진 화면.

하지만 최태수는 안다. 화면을 켜면 무엇이 나타날지 안다. 시간 골목 앱. 다음 거래 버튼. 욕구의 숫자들. 박수영의 유산 코드로 시작된 이 모든 것.

그리고 아들의 손가락이 그 버튼을 누를 것을 안다.

문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계속된다.

욕구는 멈추지 않는다.

욕구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거실에서 준호의 몸이 경련한다. 바닥에 쓰러진다. 손가락이 허공을 헤맨다. 뇌가 비명을 지른다. 거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욕구 없이는 살 수 없다. 그것이 준호의 전부가 되었다.

침실 문. 최태수의 손가락이 휴대폰 전원 버튼을 누르려고 한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거래를 켜면 아들이 조용해질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역할이 아닌가.

손가락이 화면을 향한다.

멈춘다.

거실에서 문을 부수는 소리가 난다.

준호가 문을 부순다. 약한 몸이지만 욕구의 힘은 절대적이다.

최태수는 휴대폰을 들고 일어난다.

켤 것인가.

아니면 준호가 문을 부술 것인가.

시간이 흐른다.

욕구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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