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새벽 3시 47분. 준호는 노트북 화면 앞에서 박수영의 이름을 검색했다.
'타임트레이드 창시자 박수영, 2년 전 휴식 선언 후 행방불명' — 공식 기사는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추측과 음모론으로 채워졌다. 은퇴, 해외 은거, 죽음. 어떤 확실한 정보도 없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떨렸다. 해마 위축 44%의 신경학적 증거. 어제 거래 기록도 떠오르지 않았다. 28회차였나, 29회차였나. 통장 잔액만 선명했다: 2억 7,800만 원.
그는 박수영의 개인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2040년 이후 업데이트는 없었다. 하지만 숨겨진 폴더가 있었다. 암호화된 디렉토리. 파일명: 'lastmessage_encrypted.mp4'.
준호는 박수영의 개발 로그에서 본 복호화 키를 입력했다. 암호는 그의 생일이었다. 2003년 7월 15일. 파일이 풀렸다.
화면이 켜졌다.
박수영이 보였다.
50대 초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침몰했다. 마치 무언가를 본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나는 인간의 수명을 정량화했다."
목소리가 낮고 단조로웠다.
"초기 동기는 순수했다. 남은 시간을 정확히 알면 의료 개입의 시점을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암 환자의 생존 확률, 뇌졸중 발병 확률, 심장 질환의 임계점. 모두 수치화되면 인류의 평균 수명은 5년 이상 연장될 것이라고 믿었다."
박수영이 일어났다. 배경은 어두운 방. 창문은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자본은 그 수치를 다르게 읽었다. 남은 수명을 화폐로 변환하는 것. 그것이 금융의 미래라고. 2년 내에 전 지구적 인구의 80%가 등록되었다. 정부는 통제할 수 없었고, 오히려 세수 확보 수단으로 활용했다. 은행은 담보 금융의 새로운 상품을 발견했다. 내 발명은 인류의 노예 시스템이 되었다."
화면이 흔들렸다. 박수영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준호와 똑같은 손 떨림이었다.
"이 시스템은 회복 불가능하다. 중앙 서버를 파괴해도 로컬 노드들이 계속 작동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 구조. 내가 설계한 그 완벽한 구조가 이제 나를 묶고 있다. 이 시스템은 개인이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이 나의 절망이다."
박수영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눈이 확대됐다. 그 안에는 무언가 죽은 것이 있었다.
"내 죽음이 누군가의 깨어남이 되길 바란다. 그 누군가가 나보다 나은 길을 찾길 바란다."
검은 화면.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멈춰 있었다. 화면의 반사만 눈에 남아 있었다. 박수영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처럼 겹쳐 보였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준호는 눈물이 나는 것을 느껴도 닦지 않았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기 때문이었다. 박수영의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이 시스템은 개인이 파괴할 수 없다.' 그 말이 준호의 뇌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회복 불가능한 해마 위축. 불가역적 신경 손상. 파괴할 수 없는 시스템. 모두 같은 문장으로 들렸다.
준호는 마우스를 움직여 박수영의 폴더를 더 탐색했다.
암호화된 텍스트 파일이 나타났다. 'System_Architecture_Note.txt'. 복호화 키는 동일했다. 파일이 열렸다.
``` 2040년 12월 14일
이 시스템은 이미 전 지구적으로 퍼졌다. 중앙 관리 체계는 명목상일 뿐. 실제로는 5,847개의 로컬 노드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하나의 노드를 파괴해도 나머지가 그 기능을 대체한다.
나는 백도어(backdoor)를 남기려 했다.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코드. 하지만 그 코드조차 분산되어 있다. 어느 한 사람이 전체를 파괴할 수 없도록 내가 설계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시스템은 완벽한 감옥이다. 나는 나 자신을 감옥에 가두었다.
2041년 1월 3일
파괴할 수 없다. 이 시스템은 파괴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파괴할 수 없다. 하지만 시도할 수는 있다. ```
텍스트가 여기서 끝났다.
준호는 노트북을 내려다봤다. 시간이 3시 52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박수영의 파일을 닫고, 시간 골목 앱을 켜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손을 조종하는 것처럼.
화면에 새로운 거래 기회가 떴다.
'VIP 승격 기념 한정 거래: 초당 4,200원'
준호는 그 화면을 바라봤다. 박수영의 절망이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파괴할 수 없는 시스템. 파괴할 수 없는 자신. 그것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거래 시간: 1시간'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경련했다. 누르려다 멈추고, 다시 누르려다 멈추고. 화면을 끄려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3억 5,500만 원.
부모의 빚은 이미 갚았다. 500만 원도 남았다. 필요한 것은 모두 끝났다. 그런데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화면 위에 있었다. 버튼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거래 확인?"
앱이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박수영의 마지막 메모를 다시 읽었다.
'나도 파괴할 수 없다. 하지만 시도할 수는 있다.'
그 문장이 자신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언제 자신이 이걸 썼지?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알고 있었다. 손가락이 이미 알고 있었다.
새벽 4시. 거실의 불이 켜졌다.
최태수가 나타났다. 아버지의 얼굴은 창백했다. 준호의 거래 내역을 본 것이었다. 33회차. 34회차. 35회차. 숫자들이 아버지의 눈에 박혔을 것이다.
"준호."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만해."
준호는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화면만 봤다. '거래 확인?' 버튼이 깜빡이고 있었다. 박수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인이 파괴할 수 없다.'
아버지가 준호의 팔을 잡았다. 손가락이 키보드에서 떨어졌다.
그 순간, 새로운 알림이 울렸다.
'월 한도 초과로 VIP 등급 자동 승격: 초당 4,800원 (5분 한정)'
시간 골목의 시스템이 준호의 거래 한도를 감지하자 자동으로 고객 등급을 상향했다. 블랙마켓은 큰 손을 놓치지 않는다.
준호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키보드 위로 돌아갔다.
"준호!"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준호는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박수영의 절망 속에. 파괴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 그리고 자신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그 절망 속에.
손가락이 화면을 누르고 있었다.
'거래 확인.'
통장 잔액이 변했다.
3억 5,500만 원 → 3억 5,850만 원.
남은 수명이 변했다.
23년 4개월 → 23년 3개월 48분.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더 이상 그것을 '손실'로 읽지 않았다. 그것은 거래였다. 교환이었다. 수명과 돈의 완벽한 등가교환. 박수영이 설계한 그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부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팔이 준호를 잡고 있었지만, 준호의 손가락은 이미 다음 거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새로운 알림이 울렸다.
'VIP 플래티넘 승격: 초당 5,000원 (10분 한정)'
준호의 눈이 그 숫자를 따라갔다.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노트북을 집어 던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거래는 진행 중이었다. 박수영의 절망이 준호를 통해 구현되고 있었다. 파괴할 수 없는 시스템이 준호를 파괴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호는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아버지의 손이 노트북을 향해 뻗었다. 준호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화면을 가렸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안 돼요."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딱딱하고 기계적이었다.
최태수는 멈췄다. 아들의 얼굴을 봤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있었다. 3주 전만 해도 자신에게 빚을 갚아주던 그 아들이 아니었다.
"어제 뭐했는지 기억나?"
최태수가 물었다.
준호는 침묵했다. 어제가 뭐였는지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 아침? 어제 밤? 어제 자신이 뭘 했는지 기억이 없었다.
"준호, 어제 뭐했는지 말해봐."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르겠어요."
준호의 대답은 정직했다.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최태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들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무언가 빠져 있었다. 기억이. 인식이. 자신의 아들이 아닌 뭔가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너 목소리가 이상해. 어제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지?"
최태수가 다시 물었다. 아들의 음성 변화를 감지한 것이었다. 딱딱하고 기계적인 톤. 감정의 결여. 이건 피로가 아니었다. 뭔가 더 깊은 손상이었다.
준호는 답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어제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가 뭐였는지도 모르는데.
"빚은 다 갚았어. 봤지? 통장."
준호가 말했다. 자신의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빨랐다. 감정이 없었다.
"그럼 왜..."
"모르겠어요."
준호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고 있었다. 박수영의 영상에서 봤다. 그 창시자의 절망하는 목소리에서. 시스템이 이미 세상에 퍼져버렸다는 것을. 개인이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스템이 자신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알아도 멈출 수 없었다.
"시간이..."
준호가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이 줄어드는 게 좋아요."
아버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최태수는 아들을 바라봤다. 그 창백한 눈동자 뒤에서 무언가 죽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들의 청각 피질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것은 감정 중추인 편도체를 자극하지 못했다. 신호는 도착했지만 의미는 전달되지 않았다.
"제발, 멈춰. 뭐라도 말해봐."
최태수가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준호의 눈빛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화면 속의 숫자들. 그것만이 유일한 신호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빨간색 숫자가 떴다.
'경찰청 타임트레이드 위반 적발 알림: 월 한도 초과 거래 34회 기록'
준호는 그것을 봤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닫지 않았다. 대신 시간 골목 앱을 켰다. 경찰 알림과 앱의 알림이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준호!"
아버지가 소리쳤다.
하지만 준호는 이미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있었다. 박수영이 설계한 그 세계. 수명이 숫자로 표시되고, 시간이 돈이 되고, 자신의 의지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세계.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송민재로부터: 경찰 추적 중. 블랙마켓 네트워크로 접속 필요. 즉시 이동하세요.'
준호는 그 메시지를 읽었다. 송민재. 그 이름이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하지만 손가락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주소를 입력하고 있었다. 동시에 앱 화면에는 새로운 거래가 떠 있었다.
'긴급 거래: 초당 5,800원 (5분 한정)'
손가락이 화면을 향해 움직였다. 거래 확인 버튼. 그 위에서 멈췄다. 누르려 했다.
그 순간, 기억이 끊겼다.
"어디 가?"
최태수가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도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단지 손가락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박수영의 절망이 그를 끌고 가고 있었다.
최태수가 준호의 팔을 잡았다. 아들을 붙잡으려 했다.
"제발, 멈춰. 제발."
목소리가 울고 있었다.
준호는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화면을 봤다. 그 화면 속에서 자신의 남은 수명이 초 단위로 줄어들고 있었다. 23년 3개월 45분. 43분. 40분.
그리고 통장 잔액은 올라가고 있었다. 3억 5,850만 원. 3억 6,200만 원. 3억 6,550만 원.
두 개의 숫자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 개는 떨어지고, 한 개는 올라가고. 완벽한 균형. 박수영이 설계한 그 완벽한 악순환.
준호는 일어섰다. 아버지의 손이 떨어졌다.
"아버지, 미안해요."
최태수의 손이 떨렸다.
"내가 파괴해야 해. 박수영이 못 한 것을."
"아니야, 아니야. 이건 너 때문이 아니야. 이건 내 빚 때문이야. 내가..."
최태수가 무릎을 꿇었다. 아들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준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신발을 신고 있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화면을 켜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여전히 박수영의 메모가 떠 있었다.
'시스템은 이미 전 지구적으로 퍼졌다. 중앙 서버를 파괴해도 로컬 노드들이 계속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개인이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이 나의 절망이다.'
그리고 그 아래, 준호 자신이 몇 시간 전에 쓴 메모:
'나도 파괴할 수 없다. 하지만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준호의 손가락은 파괴 코드를 작성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시간 골목 앱을 켜고 있었다. 새로운 거래 기회를 찾고 있었다. 초당 5,200원. 그 다음 5,500원.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하려다 멈추고, 다시 터치하려다 멈추고 있었다. 파괴 코드를 찾으려던 의지가 거래의 쾌감에 밀려나고 있었다. 백도어 코드를 입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손가락은 대신 새로운 거래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초당 5,700원 (3분 한정)'
그 숫자가 모든 것을 삼켰다. 파괴의 의지도, 저항의 욕망도. 손가락은 자동으로 거래 확인을 누르고 있었다. 통장 잔액이 올라갔다. 남은 수명이 내려갔다.
준호가 문을 향해 걸어갔다.
최태수가 뒤에서 손을 뻗었다.
"준호!"
하지만 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을 켜고 있었다. 송민재의 메시지에 응답하고 있었다.
'블랙마켓 입장 코드: 송민재가 보낸 주소로 30분 내 도착 필요. 경찰 추적 회피 경로 포함.'
준호는 신발을 신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제발, 멈춰. 뭐라도 말해봐."
최태수가 아들의 어깨를 잡았다. 손가락이 화면을 켜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손가락은 알고 있었다. 손가락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됐다.
준호는 아버지의 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멀리서 오는 신호 같았다. 중요하지 않은 신호. 화면의 숫자들이 훨씬 더 명확했다.
"아버지, 미안해요."
준호가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말을 마치지 못했다. 기억이 끊겼다. 방금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해마 손상 3단계 진입. 최근 1주일 기억 소실.
준호는 멈춰 섰다. 손가락이 화면을 켜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손가락은 알고 있었다.
"준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르겠다. 중요하지 않은 신호였다.
문이 닫혔다. 복도의 불이 켜졌다.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화면을 켜고 있었다.
새로운 거래 기회가 떠 있었다.
'긴급 거래: 초당 6,000원 (3분 한정)'
준호의 손가락이 화면을 향해 움직였다. 거래 확인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누르려고 했다.
그 순간, 기억이 완전히 끊겼다. 해마 손상 3단계. 최근 기억 전부 소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왜 밖으로 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손에 들려 있는 휴대폰이 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손가락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의 야간 편의점 앞. 준호는 멈춰 섰다. 손가락이 화면을 켜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손가락만 명확했다.
거울 같은 편의점 유리창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준호는 그것을 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이게 누구지?'
공포가 스쳤다. 그 얼굴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창백했고,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있었고, 입가가 경련하고 있었다. 그 얼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아가 없었다. 의지가 없었다.
그 얼굴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손가락이 움직였다.
새로운 거래 기회가 떴다.
초당 6,500원.
그 숫자만 명확했다. 그 숫자를 따라 손가락이 움직였다. 누르고 있었다.
거래 확인.
통장 잔액이 올라갔다. 남은 수명이 내려갔다.
'남은 수명: 23년 2개월 15분'
손가락이 새로운 거래 기회를 감지했다. 초당 7,000원. 그 숫자를 따라 손가락이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에 떴다.
[남은 수명: 23년 2개월 15분]
그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