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강남역 지하 3층

회색 콘크리트 벽이 노출된 방. 의도적으로 어둡게 조절된 조명 아래 시간 골목의 거래 클럽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식 거래소의 통제를 벗어난 불법 시장이었다. 준호는 입장할 때마다 느끼는 불안감을 무시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최근 며칠간 거래 욕구는 약물 중독자의 금단 증상처럼 신체를 지배했다.

"거래 대기 중인 분?"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준호에게 다가왔다. 시간 골목의 매니저였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당 단가 2,100원입니다. 30분 거래면 378만 원."

숫자가 뇌에 박혔다. 공식 거래소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수익률이었다. 준호는 지갑을 꺼내려다 멈췄다. 의자에 앉은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거래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반복적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탭, 탭, 탭. 리듬감 있는 동작이 아니었다. 강박증처럼 보였다. 30초마다 거래를 반복했다. 통장 잔액이 증가할 때마다 그녀의 입가가 경련했다.

준호는 그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3화. 신경과 병원 대기실. 그녀도 MRI 검사 결과를 받고 있었다. 당시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절망적이었다. 준호는 자신의 처지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직 부모의 빚을 갚아야 했으니까.

지금 그 여자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경희?"

준호가 말을 걸었다. 여자는 거래 버튼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가 초점을 맺는 데 3초가 걸렸다.

"어... 어디서?"

목소리가 쉬었다. 마치 며칠간 말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신경과 병원에서. 3주 전."

이경희는 웃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입가의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경련했다.

"아, 네. 그때... 기억 안 나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준호는 이해했다. 해마 손상. 3주 전의 기억이 이미 소실되었다는 뜻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준호는 의도적으로 일반적인 인사말을 했다. 하지만 이경희의 반응은 예상을 벗어났다.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울음이라기보다는 신음에 가까웠다.

"거래하고 싶은데 거래 못 하고... 거래하면 공허하고... 뭘 하는 거예요?"

손가락이 다시 화면을 두드렸다. 탭, 탭, 탭. 울면서도 거래를 멈추지 않았다.

"왜 멈추지 않으세요?"

준호가 물었다.

이경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광기에 가까웠다.

"멈출 수 없어요. 거래 없이는 불안해요.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여요. 마치... 마치 누군가 제 손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저예요. 제 손이 저를 움직이고 있어요."

울음과 웃음이 섞였다. 그녀의 얼굴은 마비된 표정이었다. 마치 신경이 끊어진 인형처럼.

"거래 후에는 더 공허해요. 그래서 또 거래해요. 계속... 계속..."

준호는 그 얼굴을 본다. 자신의 눈이 반사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었다. 이경희의 눈에는 기억이 없었다. 3주 전 병원에서의 만남도, 지난 거래들도,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두 사라졌다. 남은 건 거래 욕구뿐이었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아직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경희처럼 통제 불능은 아니었다. 자신은 아직 기억이 있었다. 부모의 빚을 갚은 기억도, 아버지의 얼굴도,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차이였다.

아직은.

"저 사람, 누구예요?"

준호가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이경희? 1년 전만 해도 변호사였어. 법원에서 타임트레이드 소송을 담당했던... 유명한 변호사."

송민재의 목소리였다. 그는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준호는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거래소에서 여러 번. 하지만 말을 나눈 적은 없었다. 그저 같은 거래자일 뿐이었다.

"지금?"

"지금? 거래 중독으로 인격 변성. 변호사 자격 박탈. 가족도 다 떠났어. 남은 건 거래 욕구뿐이야. 월 평균 50시간 거래해. 초당 1,500원 정도에 거래하니까... 월 2억 7천만 원 정도 버는데, 다 거래 자금으로 재투자해. 악순환이지."

송민재는 담배를 피웠다. 그의 손가락은 떨리지 않았다. 준호는 그것을 봤다. 송민재는 거래하지 않고 있었다. 거래소에 와 있지만, 거래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었다. 왜일까?

"기억 능력?"

"5% 정도. 어제 일을 기억 못 해. 자기가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아. 그런데도 거래는 계속해. 신기하지 않아? 이 시스템은 완벽하게 설계되었어. 사람을 파괴하면서도 파괴당하는 사람이 원하게 만들어. 그게 진짜 천재성이야."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이경희를 바라봤다. 그녀는 다시 거래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반복적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울음은 멈췄다. 하지만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렀다.

이것이 6개월 후의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1년 후일 수도 있다. 아니면 더 빨리 올 수도 있다.

의사의 진단이 떠올랐다. 2년 내 기억 능력 30% 이하. 6개월 내 70% 위축 예측. 현재 거래 속도라면 충분히 가능한 수치였다.

준호는 강남역 지하 통로를 빠져나왔다. 손가락이 떨렸다.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시간 골목 앱의 거래 기록: 27회차. 남은 수명: 22년 8개월 14일. 통장 잔액: 3억 2,456만 원.

부모의 빚은 이미 청산했다.

그렇다면 이 거래는 무엇 때문인가? 준호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거래를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경희처럼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집으로 돌아간 준호는 거실의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는 코딩 환경이 뜨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임트레이드 시스템의 구조.

중앙 서버. 거래 기록 DB. 인증 시스템. 단가 산정 알고리즘. 블랙리스트 관리 시스템.

준호는 개발자였다. 이 시스템의 아키텍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을 만든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만든 게 아니라... 상속받았다.

박수영의 코드. 박수영의 알고리즘. 박수영의 악의적 설계.

이 시스템을 파괴해야 한다. 이경희 같은 사람들을 더 만들면 안 된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코드가 화면에 나타났다.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기 시작했다. 중앙 서버의 백도어. 거래 기록 DB의 암호화 방식. 블랙마켓 포탈의 인증 우회 경로. 박수영이 남겨둔 탈출구들이었다.

밤 2시였다.

노트북의 시간 표시가 깜빡였다. 준호는 시간을 보지 않았다. 대신 화면의 코드에만 집중했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래 중독의 그것이 아니었다.

파괴의 손가락이었다.

03:47.

화면에 코드가 100줄을 넘었다. 200줄. 300줄. 타임트레이드 시스템의 중앙 서버로 접근하는 백도어 코드였다. 박수영이 설계한 보안 취약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박수영도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이 얼마나 악한지. 얼마나 완벽하게 인간을 파괴하는지. 그래서 박수영은 파괴 경로를 남겨두지 않았을까?

준호의 손가락이 멈췄다.

파일을 실행하려는 직전, 거울을 봤다. 노트북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에는 웃음이 떠있었다.

이경희의 그것과 같은 웃음.

준호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것도 거래와 같다는 것을. 파괴 코드를 작성하는 것도 거래 버튼을 누르는 것도, 모두 같은 도파민 회로를 자극한다는 것을.

자신은 거래를 멈추기 위해 파괴 코드를 쓰고 있는 게 아니었다. 거래를 정당화하기 위해 파괴라는 명분을 만들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Delete 키를 향했다.

300줄의 코드가 사라졌다. 타임트레이드 시스템 파괴 계획이 휴지통으로 옮겨졌다.

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시간 골목 앱 알림]**

**"당신의 거래 기록이 공식 거래소에 적발되었습니다."**

**"조사 대상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타임 거래소 앱 알림]**

**"시간 단가 4,000원 상승!"**

**"역대 최고 단가입니다!"**

**"지금이 거래 기회입니다!"**

준호의 손가락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거래 버튼이 빛나고 있었다.

28회차.

초당 4,500원.

30분 거래면 810만 원.

법적 위기와 금전적 유혹이 동시에 떨어졌다. 어느 것이 손가락을 움직이는가? 준호는 알고 있었다. 둘 다가 아니라는 것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의지도, 법적 위기도, 금전적 유혹도 아니었다.

그것은 중독이었다.

도파민이었다.

선택할 수 없는 자동 반응이었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팽개쳤다. 화면이 바닥에 떨어졌고,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거실의 불이 켜졌다.

"준호?"

아버지 최태수가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다.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에는 은행 거래 내역이 떠 있었다. 부모 명의 계좌로 들어온 거래 알림들이었다.

"이게... 뭐야?"

3억 2,456만 원. 그 숫자를 보고 있었다.

"부모 빚을 다 갚았다고 했잖아. 그럼 이건 뭐하는 거야?"

최태수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아니, 공포가 있었다.

그것은 아들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는 공포였다.

준호는 답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여전히 화면을 향하고 있었다. 거래 버튼이 빛나고 있었다.

"준호, 뭐 하는 거야?"

최태수가 다가왔다. 아들의 손을 보았다. 떨리고 있었다.

"아빠, 내 손 봐."

준호가 말했다.

"손가락이 떨려. 멈출 수 없어. 마치... 누군가 내 손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최태수는 아들의 얼굴을 봤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입가에는 웃음이 떠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광기에 가까웠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여. 하지만 그건 내 손이야. 내 손이 날 움직이고 있어."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빠, 난 이미 멈출 수 없어."

최태수는 아들의 팔을 잡았다.

"안 돼. 제발 안 돼."

하지만 준호의 손가락은 계속 움직였다. 화면을 터치하려고.

휴대폰이 울렸다.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 알림]**

**"당신의 거래 기록이 적발되었습니다."**

**"신분증 확인이 필요합니다."**

**"즉시 출석하세요."**

그리고 바로 그 다음.

**[타임 거래소 앱 알림]**

**"시간 단가 5,000원 상승!"**

**"역대 최고 단가입니다!"**

**"지금이 거래 기회입니다!"**

준호의 손가락이 화면을 향했다.

최태수가 아들의 팔을 더 세게 잡았다.

"안 돼!"

하지만 준호의 손가락은 계속 움직였다. 화면을 향해.

준호는 거울을 보았다. 노트북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입가에는 이경희와 같은 웃음이 떠있었다.

"멈출 수 없어요. 거래 없이는 불안해요. 그래서 또 거래해요. 계속."

이경희의 말이 준호의 입에서 나왔다. 아니, 준호의 말이 이경희의 말이 되었다.

그는 이미 이경희가 되어 있었다.

30회차.

손가락이 화면에 0.1mm 남은 상태에서 정지했다.

준호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것.

최태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돼!!!"

화면이 암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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