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9시 47분, 준호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을 터치했을 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거래 버튼을 누른 지 정확히 30일이 지난 순간이었다.
화면에 떠오른 숫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래 횟수: 23회** **누적 거래 시간: 50시간 18분** **총 수익: 1억 8,340만 원** **남은 수명: 19년 2개월 16일**
초반에 1시간 거래로 18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준호는 계산했다. 3억 원 빚을 갚으려면 166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그 숫자는 현실이 되었다. 아니, 그 이상이 되었다. 부모의 빚은 이미 한 달 전에 청산되었다. 은행 송금 확인서가 휴대폰에 남아 있었다.
**출금: 3억 원** **수취인: 최태수** **잔액: 1억 8,340만 원**
그런데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 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지난주 수요일은? 그것도 몰랐다. 뇌 안개가 걷혀 있지 않은 채로, 마치 누군가 그의 기억에서 페이지를 하나씩 뜯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의도하지 않은 움직임. 신체의 반란.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신경과 진료 예약 알림: 오전 11시 30분**
그는 일어났다. 샤워를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었다. 어제 무엇을 입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무엇을 입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냥 입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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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의사의 얼굴은 진지했다. 준호는 이미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나쁜 소식을 전할 때 하는 표정. MRI 영상이 모니터에 뜨자, 의사는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였다.
"3주 전 검사와 비교해보겠습니다."
이전 영상에서 해마는 아직도 형태가 남아 있었다. 약간 작아 보였지만, 분명 그 자리에 있었다.
현재 영상에서 해마는 쭉 줄어들어 있었다. 마치 말라가는 과일처럼.
"해마 부피가 3.2밀리리터에서 1.8밀리리터로 감소했습니다. 위축률 약 44%입니다. 정상인의 8밀리리터와 비교하면..."
의사는 멈췄다. 준호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표정이 없었다. 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공허한 눈빛.
의사가 계속했다.
"이제 회복 불가능 단계입니다. 한 달에 1회 이상 거래를 하면 신경학적 손상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현재 추세라면 2년 내에 기억 능력이 30% 이하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준호의 입술이 움직였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네?"
"제 수명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의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그의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준호는 뇌 손상 단계를 묻는 것이 아니라, 팔 수 있는 시간의 양을 묻고 있었다.
"타임트레이드 시스템상으로는 약 19년입니다만..."
"감사합니다."
준호는 일어났다. 의사는 뭔가 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준호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 눈 속에는 공포도 없었고, 후회도 없었다. 오직 하나의 감정만 있었다.
더 거래하고 싶은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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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정은미가 준호의 집에 나타났다.
"진짜 왔네. 너, 문도 안 열더니."
준호는 현관을 열었다. 정은미는 안으로 들어서다가 멈췄다. 준호를 봤기 때문이다.
"...뭐 하는 거야?"
준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가벼운 진전이 아니라, 눈에 띄는 수준의 떨림. 정은미는 준호의 눈을 봤다. 초점이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깊은 수심에 가라앉아 위를 보고 있는 것처럼.
"어제 뭐 했어?"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정은미는 소파에 앉혔다. 울음이 터졌다. 처음엔 눈물이 흘렀다. 그 다음 목이 메었다. 어깨가 떨렸다.
"제발 멈춰. 뭐 하는 거야? 부모님 빚도 다 갚았잖아. 왜 계속하는 거야?"
준호는 입을 열었다.
"부모 빚을 다 갚았어."
"그럼 왜—"
정은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더 많아졌다. 그녀는 준호를 바라봤다. 자신이 알던 준호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껍질뿐이었다. 안은 비어 있었다.
"우리 헤어지자."
정은미가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준호의 입이 움직였다. 뭔가 말하려다 멈췄다. 다시 입을 벌렸다. 닫았다. 반복.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왜 계속하는지. 손가락이 거래 버튼을 누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뇌가 그것을 명령하는 이유가.
정은미는 준호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손은 떨리고 있었고, 그 눈은 자신을 보지 않았다. 자신의 울음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일어났다.
"나 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은미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그 소리는 준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은 들어왔지만 뇌가 처리하지 못했다. 그의 뇌는 이미 다른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거실은 조용했다. 정은미의 울음소리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침묵뿐이었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시간 골목 앱을 열었다. 현재 단가는 초당 2,150원이었다. 1시간 거래하면 774만 원. 그 숫자를 보자 신체가 반응했다. 심박수가 올라갔다. 호흡이 빨라졌다. 손가락이 거래 버튼 위에서 맴돌았다.
그 순간, 준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거래 중독 관련 게시물을 찾았다.
**[주의] 타임트레이드 중독의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
**작성자: 신경과 전문의 A**
*도파민 중독은 약물 중독과 동일한 신경회로를 활성화합니다. 뇌 스캔에서 약물 중독자와 거래 중독자는 구별되지 않습니다. 선조체(보상 중추)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전전두엽(판단 중추)의 억제 기능이 마비됩니다. 결론: 의지만으로는 멈출 수 없습니다. 신경학적 손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댓글 섹션:
**1번 댓글**: 저 의사 말이 맞는데... 난 작년부터 거래 40회 했는데 기억이 반 이상 날라갔어. 지금도 앱만 켜면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임. 의지? 그런 게 없습니다.
**2번 댓글**: 나는 의지로 멈출 수 있다. 언제든지 원하면 멈춘다.
준호는 그 댓글을 읽었다. 2번 댓글. 자신의 생각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5분 후, 준호의 손가락은 자동으로 움직였다. 시간 골목 앱을 켰다. 거래 버튼을 눌렀다.
**1시간 거래 시작** **남은 수명 카운트다운 중** **19년 2개월 → 19년 1개월 59일 57시간...**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준호는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쾌감이 뭔지 알았다. 도파민. 신경전달물질. 화학. 생물학. 자신의 뇌가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휴대폰 화면이 깜빡였다.
**시간 골목 앱 알림** **"다음 거래 준비 완료. 단가 상승: 초당 2,200원"**
준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것만. 오직 눈동자만. 나머지는 고정되어 있었다. 거래 버튼 위의 손가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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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다. 준호는 신경과 외래를 다시 찾았다. 어제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정은미가 왔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았다. 언제였지? 의사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의사는 준호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다시 왔네요."
준호는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MRI 필름을 들고 조명 박스에 붙였다. 흰색 배경 위로 뇌 단면이 나타났다. 해마 부분이 까맣게 축소되어 있었다.
"지난 검사 후 3주 만입니다. 해마가 또 축소됐어요. 이번엔 1.5밀리리터."
의사의 손가락이 필름 위를 가리켰다.
"정상인 8밀리리터. 3주 전 1.8밀리리터. 지금 1.5밀리리터."
준호는 숫자를 따라갔다. 1.5. 3주에 0.3밀리리터가 더 줄었다.
"거래 횟수가 늘었나요?"
의사는 준호의 손을 봤다. 떨림이 더 심해졌다. 그리고 눈을 봤다. 초점이 흐릿했다. 마지막 방문보다 훨씬 더.
"지난 주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십니까?"
준호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손을 펼쳐 봤다. 손가락 떨림이 보였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펜을 놨다. 화면을 돌렸다. 무력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현재 속도라면 6개월 내 해마 위축이 70%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시점에서 기억 능력은 20% 이하로 떨어집니다."
6개월. 준호는 이 숫자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 이후로는?"
의사는 준호를 바라봤다. 마치 이미 끝난 사람을 보는 눈빛이었다.
"회복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자신이 거래 중독자라는 사실조차 잊게 됩니다. 그리고도 계속 거래할 것입니다."
침묵. 준호의 얼굴이 변하지 않았다. 공허했다. 감정이 빠져나간 듯. 의사는 이런 표정을 전에 봤다. 거래 중독자들의 표정. 이미 뇌 손상이 진행 중인 상태.
"거래를 멈춰야 합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미 설득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목소리.
"지금 당신은 임계점에 있습니다. 한 달에 1회 이상 거래하면 영구 손상입니다."
준호는 계산했다. 지난 한 달간 몇 회를 거래했는가?
23회.
의사가 말했다.
"당신은 이미 그 기준을 넘었습니다."
준호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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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나온 준호는 강남역으로 향했다. 지하 3층. 카페 크로노스. 송민재를 찾았다.
송민재는 준호를 보고 미소 지었다. 냉정한 미소였다. 감정이 없었다.
"23회차네. 다음은?"
"24회차."
"단가 확인했어?"
"초당 2,300원."
송민재는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 시간 골목의 실시간 거래 현황이 떠올랐다. 붉은 색 그래프. 거래 단가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내일 초당 2,500원까지 갈 거야."
송민재의 손이 노트북 위에서 움직였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손.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미세한 진동. 마치 준호의 손처럼.
준호는 그것을 봤다. 송민재도 거래자였다. 지금은 중개인이지만, 한때는 자신처럼 거래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손은 통제 불가능해 보였다.
"거래 신청합니다."
"1시간?"
"2시간."
송민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2시간은 초당 2,300원 × 7,200초 = 1,656만 원. 위험한 거래였다.
송민재는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흔들렸다. 이 사람은 이미 끝났다고. 자신처럼.
송민재의 손이 떨렸다. 마우스를 집어 들었다가 놨다. 다시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키를 누르려다 멈췄다. 마치 인형의 팔처럼.
"2시간 거래. 확인합니다."
노트북 화면에 거래 기록이 뜨자, 송민재는 화면을 돌렸다.
**거래자: 송민재** **누적 거래 횟수: 127회** **누적 거래 시간: 312시간** **총 수익: 11억 3,400만 원** **남은 수명: 8년 7개월**
준호는 그 숫자를 봤다. 127회. 312시간. 8년.
송민재의 손이 다시 떨렸다. 화면을 닫으려는 손. 하지만 그 손은 닫지 못했다. 대신 다른 파일을 켰다. 거래 중개 현황. 그 안에는 수십 개의 이름이 있었다. 모두 준호처럼 처음 몇 회차에 있는 거래자들이었다.
"3년 전부터 거래했어. 127회. 지금 기억이 30% 정도야. 어제 일도 가물가물해."
송민재는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신음처럼 들렸다.
"너는 아직 6개월 남았어. 좋은 시간이야. 나는 이미 지났거든. 이들도 다 같은 길을 갈 거야. 처음엔 나처럼 생각해. 의지로 멈출 수 있다고. 책임감으로 멈플 수 있다고. 하지만 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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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후.
준호의 통장 잔액: 1억 9,996만 원.
준호의 남은 수명: 18년 9개월 23일.
거래를 마친 준호는 카페를 나왔다. 강남역 지하 통로를 걸었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누군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 공허한 눈. 손 떨림.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 최태수 전화**
준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시간 골목 앱을 켰다. 현재 단가는 초당 2,350원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 순간, 알림이 떴다.
**"[긴급 알림] 거래 25회차 준비 완료. 단가: 초당 2,500원. 지금 거래하시겠습니까?"**
준호는 강남역 통로에 멈춰 섰다. 사람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휴대폰 화면만 봤다. 확인 버튼.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동으로. 의지 없이.
**확인 버튼**
손가락이 누르려던 그 순간, 다른 알림이 떴다.
**[시간 거래소 공식 알림]** **거래 횟수 기록: 24회** **월간 거래 횟수: 24회 (한 달에 1회 이상 기준 초과)** **경고: 신경학적 손상 임계점 도달** **향후 거래는 본인의 책임입니다.**
준호는 이 알림을 읽었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책임.
자신의 책임이라고?
준호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떨렸다. 눈에 띄는 수준의 떨림. 그 손가락이 다시 확인 버튼으로 향했다.
심박수가 올라갔다. 155. 160. 165. 맥박이 목에서 뛰었다. 호흡이 빨라졌다. 가슴이 조여 올 것 같았다.
준호는 멈출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손가락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의지를 모아 화면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순간을 지나면 다음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다음 순간도. 영원히.
손가락이 버튼을 눌렀다.
**25회차 거래 시작** **남은 수명: 18년 9개월 21일**
숫자가 줄어들었다. 준호의 신체가 반응했다. 심박수가 정상화되었다. 호흡이 안정되었다. 손 떨림이 멈췄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강남역 통로에서 준호는 웃음을 흘렸다. 누군가 그를 지나쳐 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중독자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