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진료실의 형광등이 준호의 눈을 지졌다. 하얀 벽, 회색 카펫, 의사의 무표정한 얼굴. 모든 것이 과도하게 선명했다. 그것이 더 무섭다는 것을 준호는 알고 있었다.
"MRI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돌렸다. 흑백의 뇌 단면 영상이 떠올랐다. 준호는 신경과 전문의 자격증을 읽을 수 없었다. 다만 의사의 입술이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정상 해마는 약 8밀리리터입니다."
의사가 마우스를 클릭했다. 영상이 확대되었다. 왼쪽 두뇌 깊숙한 곳의 해마라고 표시된 부위가 도드라졌다. 하얀색으로 밝게 빛나는 조직.
"이것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해마 부피가 완전합니다."
의사가 다시 클릭했다. 화면이 바뀌었다. 준호의 뇌 영상이 나타났다. 같은 위치, 같은 각도. 하지만 다른 모습이었다.
"이것이 당신의 해마입니다."
의사가 손가락을 들었다. 그 부위를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서 준호의 시선이 멈췄다. 정상 해마보다 현저히 작았다. 가장자리가 불규칙했다. 마치 깨물린 과자처럼.
"부피 측정 결과 6.2밀리리터입니다. 3주간 1.8밀리리터가 축소되었습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계속됐지만 준호는 그 숫자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영상 속 자신의 뇌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배경 위에 흰색으로 표현된 자신의 조직이, 마치 물에 흠뻑 젖은 스펀지처럼 수축해 있었다.
"타임트레이드 사용자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패턴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 문장에는 책임감이 없었다. 단지 의료 진단일 뿐이었다.
"회복 가능합니까?"
준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성대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 소리가 정말 자기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의사가 모니터를 다시 돌렸다. 준호의 뇌 영상이 보였다. 그 작은 해마.
"한 달에 1회 이상 거래할 경우, 회복 불가능합니다."
의사의 말이 끝났다. 하지만 준호의 귀는 계속 울렸다. 회복 불가능. 회복 불가능. 그 말이 뇌에 박혔다. 3주 전 자신의 해마는 정상이었다. 3주 후 자신의 해마는 돌이킬 수 없었다.
"현재 당신의 판단 중추, 즉 전전두엽 활성도도 저하되고 있습니다."
의사가 다른 이미지를 띄웠다. 컬러 뇌 영상이었다. 빨강, 노랑, 파랑으로 표현된 뇌 활동. 준호의 영상에서 전전두엽 부위가 파란색으로 거의 표시되지 않았다.
"도파민 회로가 과도하게 자극되고 있습니다. 거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당신의 뇌는 마약을 주입받은 것과 동일한 상태가 됩니다. 선조체의 도파민 분비가 극도로 증가합니다. 동시에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억제됩니다."
의사가 손가락으로 영상을 가리켰다.
"이것이 현재 당신의 상태입니다. 판단 중추가 손상되고 있습니다. 거래를 멈추지 않으면 6개월 후에는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준호는 영상을 봤다. 자신의 뇌가 자신을 배반하고 있었다. 그 배반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료 데이터가 증명했다.
침묵이 흘렀다. 준호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의사의 얼굴이 변했다. 놀람이 아니라 실망이었다. 의사는 준호를 수백 번 본 사람이라는 표정이었다. 같은 말을 하는 거래자들.
"당신은 거래를 멈출 수 없습니다. 이미 중독 상태입니다. 신경생물학적으로 당신의 선택지는 없습니다."
의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의사의 말이 들렸지만 그의 뇌는 이미 다른 곳을 계산하고 있었다. 회복 불가능이라는 선언이 떨어지는 순간, 전전두엽의 활동이 더욱 약해졌고, 선조체는 거래의 보상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의사의 목소리는 배경음이 되었다.
"부모의 빚이 3억 원입니다."
준호가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계산 모드. 뇌의 생존 회로가 발동했다.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생존 전략을 짜는 것. 도파민이 이성을 짓눌렀다.
"남은 시간이 23년 1개월입니다. 현재 단가로 계산하면..."
준호의 입술이 계속 움직였다. 의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모니터를 꺼버렸다. 준호의 위축된 해마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진료실을 나가며 준호는 대기실을 지났다.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앉은 사람들. 대부분 젊았다. 20대 중후반부터 40대까지. 모두 타임트레이드 사용자의 눈을 했다. 초점이 없고, 손이 떨리고, 입술이 자주 움직였다.
한 여성이 준호의 시선을 받았다. 30대 초반쯤. 검은 눈썹 아래 공허한 눈. 그녀는 손가락을 꼬고 있었다.
"거래하고 싶은데... 거래하면 불안하고... 거래 안 하면 더 불안하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준호는 그 말을 들었다. 정확히 들었다. 그 목소리가 자신의 미래였다. 준호는 그 여성의 눈과 마주쳤다.
여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두려움. 그리고 준호를 향한 절박함. 마치 자신이 빠진 늪에서 준호를 끌어당기려는 듯.
"이경희?"
준호가 중얼거렸다. 병원 신청서에서 본 이름이었다. 신경과 대기실 명단.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네?"
여성이 반응했다.
"아... 아니, 괜찮습니다."
준호가 고개를 돌렸다. 대기실 출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요."
여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문을 밀었다. 복도의 형광등이 떠올랐다. 자신의 발이 회색 타일 위에서 빨라졌다.
휴대폰이 울렸다. 정은미였다. 3번째 전화였다. 준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면을 내렸다. 메시지 알림이 있었다.
**정은미: 병원 다녀왔어? 뇌 MRI 결과 나왔어?**
**정은미: 준호, 진짜 답장 좀 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정은미: 거래 또 했어? 진짜 제발... 답장만 해.**
준호는 메시지를 읽고 휴대폰을 내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정은미의 걱정이 자신을 옭아맸다. 그 무게가 숨을 막았다. 그래서 거래해야 했다. 거래해야 그 무게가 사라졌다. 거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의사의 말도, 정은미의 걱정도, 자신의 해마도.
준호는 정은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정은미가 받았다.
"준호?"
정은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는 그 떨림을 들었다. 그것이 자신의 선택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응. 나야."
"병원은? MRI 결과는?"
"...결과가 안 좋아."
침묵이 흘렀다. 정은미의 숨소리만 들렸다.
"얼마나?"
"해마가 축소됐어. 회복 불가능하대."
정은미의 숨이 끊겼다. 그 끊김이 준호의 가슴을 찔렀다.
"그럼... 거래를 멈춰야 하는 거 아니야?"
"알아."
"준호, 진짜 멈춰. 제발. 나... 너 없이는 못 살아."
정은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준호는 그 목소리를 들었지만, 동시에 타임트레이드 앱을 열고 있었다.
**남은 수명: 23년 1개월 14일**
**현재 시간 단가: 초당 1,200원**
휴대폰이 울렸다. 타임트레이드 시스템 알림이었다.
**[긴급 알림] 시간 단가 상승! 현재 초당 1,500원 (변동률 +25%)**
**거래 기회 증가. 지금 거래하세요.**
준호의 눈이 밝아졌다.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다. 25% 상승. 같은 1초를 팔면 300원을 더 얻는다는 뜻이었다.
"거래하지 말아. 진짜 제발."
정은미가 다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왜곡되어 들렸다. 마치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준호는 그것이 정은미의 목소리인지, 자신의 뇌가 만든 환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응. 멈춘다."
준호가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뇌의 전전두엽이 이미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진짜?"
"진짜다."
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정은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 순간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준호는 거래 버튼을 눌렀다.
타임트레이드 앱이 떠올랐다. 거래 버튼이 화면의 중앙에 있었다. 손가락이 올라왔다.
병원 복도에서 준호는 멈췄다. 창 밖으로 서울 시내가 보였다. 회색 건물들, 검은 도로, 그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도 모두 거래하고 있을 것이다. 남은 수명을 팔고, 통장 잔액을 늘리고, 뇌를 깎아내리고 있을 것이다.
**부모 빚이 3억 원.**
**현재 통장 잔액이 1억 5천만 원.**
**남은 거래액: 1억 5천만 원.**
**현재 단가로 계산하면: 1억 5천만 원 ÷ 1,500원 = 100,000초 = 27.8시간.**
준호의 머리가 계산했다. 27.8시간. 약 3주. 그러면 부모의 빚이 완전히 청산된다.
**그 후에는 거래를 멈출 것이다.**
이 다짐이 준호를 움직였다. 거짓 다짐. 하지만 그것만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준호는 거래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떨렸다.
그 순간 의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회복 불가능합니다."**
손가락이 멈췄다. 3초. 5초. 10초.
준호는 거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타임트레이드 앱을 내렸다.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그 얼굴은 낯설었다.
병원을 나가며 준호는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는 묻지 않았다. 어디로 가느냐고. 준호는 주소를 말했다. 강남역 지하 3층. 시간 골목의 입구.
택시 안에서 준호는 다시 타임트레이드 앱을 열었다. 거래 버튼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누르기만 하면 돼. 1,500원. 25% 상승. 27.8시간으로 부모 빚 청산. 그 후에는 진짜 멈춘다.
준호의 손가락이 내려왔다.
거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은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커뮤니티 탭. 온라인 게시판 '타임트레이더'. 수십만 명의 거래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곳.
**제목: 해마 위축 진단받았는데 계속 거래해야 할까요?**
**작성자: wanttodie2043 / 작성일: 3일 전**
**본문: 뇌 MRI에서 해마 위축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회복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은 수명 기한이 5년 6개월입니다. 만약 거래를 멈추면 이 기한 내에 돈을 못 벌 것 같습니다. 계속 거래해야 할까요?**
댓글들이 빼곡했다.
**comment1: 이미 늦었어요. 거래를 멈추고 싶어도 못 멈춥니다.**
**comment2: 저도 같은 상태입니다. 해마 위축 진단받고 6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어제 일을 기억 못 합니다. 그래도 거래합니다.**
**comment3: 수익이 최고입니다. 가족 빚이 있다면 거래하세요. 뇌는 나중에 생각해도 됩니다.**
**comment4: 정신과 약을 먹어도 거래를 멈출 수 없습니다. 이미 신경생물학적으로 중독되었습니다. 포기하세요.**
**comment5: 저는 거래를 멈췄습니다. 3개월이 지났습니다. 불안합니다. 거래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거래를 허락해주세요.**
준호는 화면을 스크롤했다.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 수백 개, 수천 개.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해마 위축, 회복 불가능, 그래도 거래함.
택시 안의 공기가 답답해졌다. 준호는 커뮤니티를 닫고 다시 거래 버튼으로 돌아갔다. 1,500원. 손가락이 내려왔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정은미의 전화였다. 다시 전화가 왔다. 준호는 받았다.
"준호! 제발... 지금 어디야?"
정은미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준호는 정은미가 우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그 울음이 점점 왜곡되어 들렸다. 마치 녹음된 음성을 재생하다가 속도를 늦추는 것처럼. 정은미의 목소리가 기계음으로 변해갔다.
"병원 근처야. 왜?"
"거래하지 말아. 진짜. 나... 나 혼자는 못 살아. 너 없이는..."
정은미의 목소리가 끊겼다. 울음소리만 들렸다. 그 울음도 점점 희미해졌다.
준호는 정은미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기억이 흐릿했다. 그녀의 눈 색깔이 뭐였더라? 머리는 길었나 짧았나? 목소리는 높았나 낮았나? 모든 것이 불명확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보고 있는 것처럼.
"진짜 멈춰야 해. 정은미의 이름... 너 기억하지?"
정은미가 물었다. 그 질문 속에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거래 버튼 위에서 멈췄다. 정은미의 울음소리가 의사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하지만 그 울음도 점점 희미해졌다. 도파민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응. 멈춘다. 약속한다."
준호가 거짓말을 했다. 이번에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진짜? 진짜 멈춰?"
정은미가 물었다. 그 물음 속에는 절망과 희망이 섞여 있었다.
"진짜다."
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정은미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 순간 준호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누구와 통화했던가? 왜 전화를 받았던가? 그런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택시가 강남역 지하 3층에 도착했다. 준호는 내렸다. 지하로 더 내려갔다. 조명이 어두워졌다. 상점들이 보였다. 편의점, 카페, 휴대폰 가게. 그리고 골목.
시간 골목의 입구였다. 사인이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어두운 통로. 준호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첫 방문입니까?"
목소리가 들렸다. 골목 어귀에 서 있던 남자였다. 30대 중후반. 검은 정장. 차갑고 공허한 눈. 그 눈이 준호에게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
준호가 답했다.
"타임트레이드 거래를 원하십니까?"
남자가 물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네. 공식 거래소보다 높은 단가로. 박수영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거래가 있다고 들었는데."
준호가 말했다.
남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것이 답이었다.
"당신은 박수영을 아십니까?"
남자가 물었다.
"아니. 하지만 시간 골목에서는 그런 거래가 있다고."
준호가 말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그 남자를 자세히 봤다. 뭔가 이상했다. 그 남자의 눈이 자신의 눈과 같았다. 초점이 없고, 공허하고, 거래에만 집중된 눈.
"혹시... 송민재?"
준호가 물었다.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이 답이었다.
"당신은?"
송민재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준호야. 우리 같은 학교였잖아. 10년 전에."
준호가 말했다.
"..."
송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기억, 또는 그 기억의 파편. 10년 전 같은 교실. 그때 준호는 꿈이 있었다. 송민재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 둘 다 이곳에 있었다.
"당신도 거래하고 있군요."
송민재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진단이었다.
"네. 해마가 축소됐어요. 의사가 회복 불가능하대."
준호가 말했다.
송민재의 입가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근육의 경련이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3년 전에 진단받았습니다. 지금은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송민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런데도 거래를..."
"거래를 멈출 수 없습니다. 신경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송민재가 준호의 말을 끊었다.
"당신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거래를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송민재는 준호를 더 깊은 골목으로 인도했다. 조명이 더 어두워졌다. 벽에는 낙서가 있었다. 거래자들의 메시지들. 돈이 나왔다. 기억이 없다. 멈출 수 없다. 박수영의 시스템을 파괴하자.
송민재가 멈췄다. 작은 방의 문 앞이었다.
"거래 단가는 초당 2,100원입니다. 공식 거래소보다 75% 높습니다. 신분증은 필요 없습니다. 거래 기록도 남지 않습니다."
송민재가 말했다.
"대신?"
준호가 물었다.
송민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근육의 경련이었다.
"대신 당신은 혼자입니다. 부작용이 생겨도 신고할 수 없습니다. 중독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박수영의 시스템 파괴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송민재가 말을 멈췄다. 준호는 그 말의 의미를 물었다.
"시스템 파괴가 뭐죠?"
"박수영이 만든 타임트레이드 시스템의 코드를 조작해서 공식 거래소의 시장을 붕괴시키는 거래입니다. 대량의 위조 거래 기록을 만들어서 시간 단가를 폭락시키는 것이죠. 당신이 여기서 거래할 때마다 그 기록이 시스템에 쌓입니다. 당신도 모르게."
송민재가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럼 제가 범죄에 참여하는 건가요?"
준호가 물었다.
"범죄입니다. 하지만 증거는 남지 않습니다. 거래 기록도 없으니까요."
송민재가 말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송민재가 물었다. 그의 눈은 준호를 재단하고 있었다.
준호는 잠시 멈췄다. 박수영의 시스템 파괴. 타임트레이드 자체를 무너뜨리는 거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뇌는 이미 도파민을 갈구하고 있었다. 2,100원. 75% 상승. 부모 빚 청산. 그 후에는 멈춘다.
"괜찮습니다."
준호가 답했다.
송민재가 문을 열었다. 안에는 컴퓨터가 하나 있었다. 타임트레이드 앱이 띄워져 있었다. 거래 버튼. 빨간색으로 깜빡이는 남은 수명. 23년 1개월.
"거래하시겠습니까?"
송민재가 물었다.
준호는 의자에 앉았다. 마우스를 집었다.
**[긴급 알림] 시간 단가 추가 상승! 현재 초당 2,100원 (변동률 +75%)**
**블랙마켓 거래 기회. 지금 거래하세요.**
알림이 떠올랐다. 2,100원. 75% 상승. 의사의 말도, 정은미의 걱정도, 자신의 해마도 모두 잊혀졌다.
준호는 거래 버튼을 눌렀다.
**[거래 개시] 1시간 거래 시작 / 예상 수익: 7,560,000원**
**카운트다운: 3,600초**
**3,599...**
**3,598...**
**3,597...**
거래가 시작되는 순간 준호의 신체는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졌다. 마치 물속에 빠진 것처럼 주변이 뭉개졌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3,596...**
**3,595...**
**3,594...**
준호의 시야에서 색이 빠져나갔다. 모니터의 숫자들이 흰색으로만 보였다. 그것도 점점 희미해졌다. 뇌의 해마가 축소되고 있었다. 거래 중 신경 손상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준호는 정은미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은 기억났다. 정은미. 하지만 그 얼굴은? 눈의 색깔은? 목소리는? 모두 흐릿해졌다. 마치 물에 젖은 사진처럼 번져 있었다.
**3,593...**
**3,592...**
**3,591...**
준호는 송민재를 기억하려고 했다. 10년 전 같은 학교. 하지만 그때 송민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기억도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대신 현재의 송민재만 남았다. 공허한 눈. 기계적인 움직임. 자신의 미래.
**3,590...**
**3,589...**
**3,588...**
준호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해보려고 했다. 부모의 빚. 맞다.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거래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부모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떤지. 모두 사라졌다.
**3,587...**
**3,586...**
**3,585...**
송민재는 준호를 보며 서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는 이 장면을 수백 번 봤을 것이다. 또 다른 중독자. 또 다른 수익원. 또 다른 희생자. 또 다른 자신의 모습.
준호의 손가락은 여전히 마우스 위에 있었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희미해졌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을 보는 것처럼.
**3,584...**
**3,583...**
**3,582...**
준호의 의식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거래를 멈춰야 한다는 생각과 거래를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존재했다. 뇌의 전전두엽은 거래를 멈추라고 외쳤지만, 선조체는 더 많은 도파민을 갈구했다. 그 둘 사이에서 준호는 사라지고 있었다.
**3,581...**
**3,580...**
**3,579...**
준호는 거래 중단 버튼을 찾으려고 했다. 어디 있었더라? 화면의 왼쪽? 오른쪽? 아래? 버튼이 어디 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마치 그 버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3,578...**
**3,577...**
**3,576...**
송민재가 준호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감정했다.
"당신은 이제 나처럼 될 것입니다."
준호는 송민재를 봤다. 그 순간 준호는 송민재를 자신의 미래 모습으로 인식했다. 10년 후의 자신. 20년 후의 자신. 기억을 모두 잃고, 거래만 반복하는 자신.
**3,575...**
**3,574...**
**3,573...**
준호는 거래 중단을 시도했다. 손가락이 화면을 누르려고 움직였다. 하지만 어디를 눌러야 할지 몰랐다. 뇌가 그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송민재, 멈춰. 거래를 멈춰야 해."
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자신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처럼.
송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준호를 봤다. 그 공허한 눈으로.
**3,572...**
**3,571...**
**3,570...**
카운트다운은 계속됐다. 시간 골목의 깊숙한 곳, 컴퓨터 화면 위의 빨간 숫자들이 줄어들었다. 준호의 뇌는 변화하고 있었다. 해마는 축소되고 있었다. 전전두엽의 활동은 더욱 약해지고 있었다. 도파민 회로는 극도로 자극되고 있었다.
**남은 수명: 23년 1개월 → 22년 11개월**
화면에 표시되었다. 거래 시작 후 단 몇 분 만에 2개월이 사라졌다. 돌이킬 수 없는 손상. 즉각적인 소실.
준호는 그 숫자를 봤다. 22년 11개월. 그것이 자신의 남은 시간이었다. 아무리 거래를 멈춰도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3,569...**
**3,568...**
**3,567...**
준호는 마지막으로 거래 중단을 시도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헤맸다. 그 손가락도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멈춰. 제발. 멈춰."
준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3,566...**
**3,565...**
**3,564...**
카운트다운은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