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새벽 5시 35분

침대에서 일어난 준호의 손가락은 여전히 거래 버튼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빨간색 깜빡임. 23년 4개월. 남은 수명이 화면에 박혀 있었다. 한 번 더. 아니, 한 번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준호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노트북을 켜는 데 3초. 엑셀을 여는 데 5초.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가 움직였다.

초당 1,200원.

그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1,200 × 60 × 60 = 4,320,000원.

준호는 화면을 노려봤다. 숫자 앞에서 호흡이 얕아졌다. 1시간에 432만 원. 하루에 6시간을 거래한다면?

432 × 6 = 2,592,000원.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마우스를 집어들고 계산 셀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한 달에 20일, 일하는 날만 거래한다고 치면?

2,592,000 × 20 = 51,840,000원.

51,840,000원. 5천만 원을 넘었다.

3개월이면?

51,840,000 × 3 = 155,520,000원.

1억 5,552만 원.

준호의 눈이 커졌다. 화면 위의 숫자를 몇 번이나 읽었다. 다시 읽었다. 여전히 같은 숫자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채무자 추심원의 목소리도. 어머니가 밤새 한숨을 쉬던 소리도.

'3개월이면 돼.'

준호가 중얼거렸다. 엑셀 셀을 클릭했다. 글씨를 크게 했다. 155,520,000. 화면에 커다란 숫자가 떠올랐다.

'할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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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 8시. 준호는 침대에서 타임트레이드 앱을 켰다. 남은 수명: 23년 4개월 2일 23시간 47분 12초. 초당 가격: 1,200원.

버튼을 눌렀다.

1시간 거래. 거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화면이 번쩍였다. 남은 수명이 23년 4개월 2일 22시간 47분 12초로 뚝 떨어졌다. 통장에는 432만 원이 입금되었다. 준호는 화면을 가만히 봤다. 수명이 줄어드는 것보다 통장 잔액이 늘어나는 것이 더 명확했다. 현재 잔액: 649만 원.

두 번째 거래. 오후 12시. 다시 1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저녁에 뭘 했는지 기억이 흐릿했다. 아침에 먹은 밥의 맛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통장 잔액은 1,081만 원이 되어 있었다.

세 번째 거래. 오후 1시. 1시간 더.

준호의 손가락이 거래 버튼 위에서 멈췄다. 이미 오늘 3시간을 거래했다. 계획은 하루 6시간이었다. 그럼 3시간을 더?

화면을 본다. 남은 수명: 23년 4월 2일 20시간 47분 12초. 빨간색이 더 진해 보였다.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맴돌았다. 누르려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누르려 한다. 그 반복이 5초 동안 계속됐다. 결국 손가락이 내려왔다.

'거래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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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가 끝났을 때, 준호의 통장 잔액은 648만 2,400원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정해진 시간에만 거래했다. 거래가 끝나면 두통이 밀려왔고, 기억이 조각났다. 어제를 기억 못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통장 잔액이 중요했다.

두 번째 주. 준호는 계획을 수정했다. 6시간은 너무 많다. 7시간을 하자. 하루 7시간이면 3,024만 원. 한 달에 20일이면 60,480,000원. 3개월이면 181,440,000원.

더 많아졌다.

준호는 거래 시간을 늘렸다. 월요일에 8시간. 화요일에 7시간. 수요일에 6시간. 목요일에... 잠깐, 목요일에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제가 목요일이었나? 금요일이었나?

휴대폰 캘린더를 확인했다. 금요일이었다.

두 번째 주는 거래 7회. 총 7시간. 통장 잔액: 4,405만 2,400원.

아직도 계획보다 많이 했다. 준호가 엑셀을 다시 켰다. 현재 속도면 3개월에 충분할 것 같다. 아니, 더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래 시간을 늘려야 한다.

---

세 번째 주 수요일. 카페에서 정은미가 준호를 봤을 때, 준호의 얼굴에는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요즘 자주 안 보이네. 뭐 하는 거야?"

준호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제 뭐 했어?"

정은미의 질문이 떨어졌다. 준호가 눈을 깜빡였다. 어제? 어제가 언제지?

"어... 어제?"

"응. 어제."

준호가 손가락을 세기 시작했다. 오늘이 수요일이면, 어제는 화요일이고... 화요일에 뭘 했더라? 거래를 했다. 맞다. 거래를 했다. 그런데 그 외에? 밥을 먹었나? 씻었나?

준호가 어제의 감각을 더듬으려 했다. 손가락 끝이 무언가를 찾으려 허공을 헤맸다.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는 거래 숫자와 화면의 카운트다운뿐이었다.

"기억 안 나는데..."

정은미의 표정이 굳었다.

"뭐? 어제 뭐 했는지 기억 안 난다고?"

"아, 바빠서 그런 거야. 요즘 프로젝트가 많아서..."

거짓말이었다.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었다. 모든 시간이 거래에 쓰였다. 정은미가 준호를 자세히 봤다. 눈 밑의 검은 자국. 떨리는 손가락. 말끝이 흐릿한 발음.

"병원 가봐. 뭔가 이상한데."

"괜찮아. 괜찮아, 진짜."

준호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은미가 말했다. 어제 뭐 했는지 기억 못 한다는 건 정상이 아니라고. 그런데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생각했다. 그게 뭐 어때? 통장 잔액이 9,429만 원이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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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주가 끝났을 때, 준호는 타임트레이드 앱의 월 통계를 확인했다.

'월 거래량: 19시간 32분'

'월 한도: 20시간'

'남은 한도: 28분'

준호의 손가락이 멈췄다. 남은 한도가 28분? 한 달이 아직 남아 있는데?

앱을 스크롤했다. 더 자세한 설명을 찾았다.

'월 거래량 제한: 최대 20시간. 이는 사용자의 신경학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월 20시간 이상의 거래는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

준호가 화면을 내려다봤다. 어제의 기억이 없다. 지난주 목요일도 기억이 없다. 하지만 통장 잔액은 9,429만 2,400원이었다.

거의 1억에 다 왔다.

앱을 더 스크롤했다. 화면 하단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한도 초과 거래는 블랙마켓을 통해 가능합니다. (비추천)'

'블랙마켓'

준호의 눈이 그 글씨에 박혔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글씨 위로 올라갔다.

계획이 흔들렸다. 28분만으로는 부족했다. 3개월 안에 1억 5,500만 원을 벌어야 했다. 아직도 6,000만 원이 남아 있었다.

28분으로 거래하면 얼마나 될까?

28분 × 1,200원 = 33만 6,000원.

6,000만 원을 벌려면?

6,000만 원 ÷ 33만 6,000원 = 약 178개월.

거의 15년.

손가락이 화면을 누르려다가 멈췄다. 다시 누르려다가 멈췄다. 그 반복이 몇 초 동안 계속됐다.

통장 잔액을 본다. 9,429만 2,400원.

남은 한도를 본다. 28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채무자 추심원의 목소리도.

화면을 더 스크롤했다. 블랙마켓의 단가가 떴다.

초당 1,800원.

28분이 아니라 무제한이라면?

1,800원 × 3,600초 = 648만 원. 1시간에 648만 원.

6,000만 원을 벌려면?

6,000만 원 ÷ 648만 원 = 약 9.26시간.

9시간.

준호의 호흡이 빨라졌다.

손가락이 '블랙마켓'이라는 글씨 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누르려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누르려다가 멈춘다. 그 반복이 10초 동안 계속됐다. 이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르지 말자. 누르지 말자.

그 다음 순간, 충동이 밀려온다. 누르자. 누르자.

손가락이 화면을 누르려던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준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화면의 '블랙마켓'이라는 글씨와 아버지의 이름이 동시에 깜빡였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초록색. 두 개의 신호가 뇌를 자극했다. 준호는 아버지의 전화를 거절했다.

화면으로 돌아왔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블랙마켓 글씨 위로.

누르지 말자. 누르지 말자. 누르지 말자.

그 생각이 1초를 지배했다. 그 다음 1초는 누르자가 지배했다.

준호는 손가락을 내렸다.

---

'타임트레이드 공식 거래소'에서 '시간 골목'으로 진입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앱 하단의 '기타'라는 탭을 눌렀다. 그 안에 '서비스 약관'이라는 폴더가 있었다. 폴더를 열었다. 무수한 텍스트 더미가 나타났다. 준호는 무시했다. 텍스트의 맨 아래에 작은 QR 코드가 있었다. 스캔했다.

화면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시간 골목에 접속합니다.'

'신분증 확인을 건너뜁니다.'

'익명 거래 모드 활성화.'

그리고 새로운 화면이 켜졌다. 공식 거래소와 거의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달랐다. 단가.

공식 거래소: 초당 1,200원.

시간 골목: 초당 1,800원.

600원의 차이. 1시간이면 216만 원의 추가 수익이었다.

준호의 호흡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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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간 골목 거래는 오후 3시 12분에 이루어졌다. 준호는 침대에 누워 화면을 켜고 거래 버튼을 눌렀다.

'1시간 거래를 시작합니다.'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나타났다. 3,600초. 3,599초. 3,598초.

동시에 통장 잔액이 업데이트되었다.

9,429만 2,400원 → 9,608만 2,400원.

179만 원이 0.03초 만에 들어왔다.

준호의 눈이 커졌다.

이건 공식 거래소와 다르다. 속도가 다르다. 쾌감의 강도가 다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보다 더 심했다. 하지만 준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카운트다운을 계속 봤다.

3,400초. 3,300초. 3,200초.

매 초마다 통장 잔액이 1,800원씩 증가했다. 화면이 흔들렸다. 아니, 시야가 흔들리고 있었다.

귀에 울음이 들렸다. 저음의 윙윙거림이 계속됐다.

뭔가 뇌에 박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천공하는 듯한 압박감이 아니라, 신경이 자극되는 감각이었다. 뇌 조직이 마비되어 있었다.

2,000초. 1,500초. 1,000초.

"할 수 있겠는데..."

준호가 중얼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500초. 100초. 10초.

'거래 완료'

화면에 최종 수익이 떴다.

'1시간 거래 수익: 648만 원'

'현재 통장 잔액: 1억 77만 2,400원'

1억.

준호의 눈이 벌어졌다. 거의 4주 전만 해도 절망 속에서 타임트레이드 초대장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통장에는 1억이 있었다.

부모의 빚을 다 갚을 수 있다.

준호가 일어나 앉았다. 하지만 몸이 쓰러졌다. 현기증이었다. 침대 옆의 벽을 잡아야 했다.

"뭐... 뭐지?"

시야가 흐릿해졌다. 좌우가 뒤틀렸다. 하지만 손에 들린 휴대폰의 화면만은 명확했다.

1억 77만 2,400원.

이 숫자가 세상의 모든 것보다 선명했다.

---

다음 날 아침. 준호는 깼다. 하지만 눈을 뜬 건 아니었다. 눈은 떠 있었지만 주변이 인식되지 않았다.

침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천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몸을 일으키려 했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움직였다. 서서히.

휴대폰을 찾았다. 화면을 켰다.

시간: 오전 7시 23분.

통장 잔액: 1억 77만 2,400원.

남은 수명: 23년 3개월 14일.

준호가 남은 수명 숫자를 봤다. 어제는 23년 4개월이었다. 1시간 거래로 20일이 줄었다. 거래 회차 누적: 1회(공식 거래소 19시간 32분 + 블랙마켓 1시간).

하지만 648만 원이 들어왔다.

준호가 계산했다. 1시간에 20일을 준다. 그럼 남은 수명 23년이면... 대략 4,140시간을 거래할 수 있다. 약 173일. 약 5.7개월.

5.7개월 동안 매일 24시간을 거래하면...

준호가 계산기 앱을 켰다.

648만 원 × 4,140시간 = 26억 8,272만 원.

26억.

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아버지의 빚은 5억 2천만 원이었다. 26억이면 부모의 빚을 갚고도 20억이 남는다.

20억.

그 숫자가 준호의 뇌를 채웠다. 그 숫자가 모든 걸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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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미는 그날 오후 준호에게 전화했다.

"안녕? 요즘 어때?"

준호는 현재 시간 골목의 두 번째 거래 중이었다. 1시간 거래. 남은 시간 43분. 통장에 현재 들어오는 돈: 1억 725만 2,400원.

"응, 괜찮아."

"거짓말하지 마. 지난번에 어제 뭐 했는지도 기억 못 한다고 했잖아. 병원 가봤어?"

준호가 화면을 봤다. 카운트다운. 43분. 42분. 41분.

"응, 병원 갔어. 괜찮대."

"거짓말. 너 목소리 떨리고 있어."

"떨리지 않아."

하지만 준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1분에 108만 원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친구와의 대화는 거슬렸다.

"준호, 진심으로 말하는데. 뭔가 이상해. 너 요즘 눈빛이 다르고, 말도 이상하고..."

"정은미."

준호가 끊었다.

"뭐?"

"나 지금 바빠."

"뭐 하는데?"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통화를 끊었다.

화면으로 돌아왔다. 20분 28초 남았다. 약 220만 원이 더 들어올 시간.

준호는 정은미의 목소리를 지웠다.

---

네 번째 주, 준호는 공식 거래소의 남은 한도 28분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매일 시간 골목에서 2~3시간을 거래했다.

월요일: 2시간 거래, 1,296만 원. 화요일: 3시간 거래, 1,944만 원. 수요일: 2.5시간 거래, 1,620만 원.

통장 잔액은 매일 폭증했다.

그리고 매일, 뭔가 뇌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목요일 아침, 준호는 깼다. 옷을 찾으러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옷이 어떤 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전날 입은 옷의 색을 기억하지 못했다. 전날 뭘 했는지도.

거래했다. 그건 기억난다. 3시간 거래. 거래 회차 누적: 8회(공식 거래소 19시간 32분 + 블랙마켓 8시간 30분). 1,944만 원. 통장에 1억 3,000만 원대.

그런데 거래 전에 뭘 했는지는?

밥을 먹었나? 아니다. 밥 먹은 기억이 없다.

누군가와 만났나? 기억이 없다.

그냥 밤새 거래한 것 같다. 밤새 화면을 봤다. 카운트다운을 봤다. 통장 잔액이 늘어나는 것을 봤다.

그 외에는?

준호가 거울을 봤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 밑의 검은 자국이 더 짙어져 있었다. 광대뼈가 두드러져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빠졌지?

기억이 없었다.

---

금요일 오전, 준호의 아버지가 전화했다. 이번엔 준호가 받았다.

"아버지."

"준호? 넌... 괜찮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떤 감정인지 준호는 모르겠다. 걱정? 의심?

"응, 괜찮아요."

"요즘 연락이 없어서... 뭐 하는 거야?"

준호는 한 초를 생각했다. 1초 거래. 1,800원. 대답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팔려나갈까?

"일 하고 있어요. 프로젝트."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거래는 일이다. 시간을 파는 일이다.

"그런데 말이야, 준호. 너 요즘 이상해. 어제 전화했을 때도 목소리가..."

"아버지, 괜찮습니다. 아버지 빚, 다 갚아드릴 거예요."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의 숨소리만 들렸다.

"뭐... 뭐라고?"

"빚. 다 갚아드릴 거라고요."

준호가 화면을 봤다. 현재 통장 잔액: 1억 3,847만 원.

"어... 어떻게?"

"일해서요."

"준호, 이거 뭔가 이상한데. 너... 혹시..."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는 그 떨림을 무시했다.

"아버지, 저 이제 전화 끊겠습니다. 할 일이 있어서."

"준호, 잠깐..."

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화면을 다시 켜고 시간 골목에 접속했다. 오후의 거래 시간을 예약했다. 3시간.

---

토요일.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거래하는 동안 내내 누워만 있었다.

2시간 거래. 1,296만 원. 거래 회차 누적: 10회(공식 거래소 19시간 32분 + 블랙마켓 10시간 30분).

남은 수명: 23년 2개월 14일.

뇌 MRI 상 해마 부피 추정치: 6.8ml(정상 8ml). 월 0.8ml 축소 속도.

통장 잔액이 1억 5,000만 원을 넘었다.

1억 5천만 원.

부모의 빚 5억 2천만 원의 약 3분의 1.

아직도 3억 7천만 원이 남았다.

준호가 계산했다. 이 속도면... 몇 주 더?

계산이 복잡했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충 계산해도 한두 달 안에 전부 갚을 수 있을 것 같다.

한두 달.

그 기간 동안 자신의 뇌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

일요일 오후 3시. 준호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발신자: 정은미.

내용: '준호, 내일 병원 가자. 나랑. 뇌 MRI. 받아봐.'

준호는 메시지를 읽었다. 읽고 삭제했다.

대신 타임트레이드 앱을 켰다.

거래 준비.

4시간.

2,59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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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 10시. 정은미는 준호의 집 앞에 나타났다. 준호는 침대에서 거래 중이었다. 2시간 거래. 남은 시간 1시간 27분.

정은미가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눌렀다. 여전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정은미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침실에서 준호를 찾았다. 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었다.

"준호!"

정은미가 외쳤다. 준호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화면을 향해 있었다.

"뭐... 뭐야?"

"병원 가자고 했잖아. 뇌 MRI."

"지금 거래 중이야. 1시간 27분 더."

정은미가 준호의 얼굴을 봤다. 눈 밑의 검은 자국.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 입술의 색이 창백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일어나."

정은미가 준호의 팔을 잡으려 했다. 준호가 몸을 돌렸다. 팔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피부가 닿는 순간, 차가움이 전해졌다. 손가락 끝의 온도가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 마. 거래 중이야."

준호의 목소리는 무감각했다. 정은미가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엔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준호가 손을 치켜들었다. 저항이 강했다. 정은미의 손가락에 통증이 흐르고 지나갔다.

"거래? 뭐 거래?"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만 계속 봤다. 카운트다운. 1시간 20분. 1시간 19분.

정은미가 화면을 봤다. 남은 수명: 23년 2개월 8일. 통장 잔액: 1억 5,296만 원.

"이게... 이게 뭐야? 너 수명을 팔고 있어?"

"응."

준호가 대답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뭐? 미쳤어? 당장 멈춰!"

정은미가 준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준호가 손을 치켜들었다.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거실로 나갔다. 정은미가 뒤를 따라갔다.

"준호! 이거 뭐 하는 짓이야? 너 뇌가 손상돼! 병원 가야 돼!"

"괜찮아. 괜찮아."

준호가 소파에 누웠다. 화면을 계속 봤다. 카운트다운. 50분. 49분.

정은미가 소파 옆에 앉았다. 준호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너 어제 뭐 했어?"

"거래했어."

"그 전날은?"

"거래했어."

"지난주는?"

"거래했어."

정은미의 목소리가 떨렸다.

"넌 뭘 먹어? 뭘 입어? 뭘 해?"

준호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기억이 없었다.

"병원 가자. 제발."

정은미가 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맥박이 약했다. 준호는 손을 빼지 않았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화면을 향해 있었다.

30분. 29분. 28분.

"너 지금 중독됐어. 알아?"

정은미가 말했다. 준호는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위의 숫자를 본다. 통장 잔액. 1억 5,296만 원. 남은 수명. 23년 2개월 8일.

중독.

그 단어가 준호의 뇌를 스쳤다. 중독이라고? 이건 중독이 아니다. 이건 계획이다. 체계적인 계획이다.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한 계획이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카운트다운이 줄어드는 것을 보지 않으면 불안했다.

20분. 19분. 18분.

"제발 멈춰. 제발."

정은미가 울고 있었다. 준호는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10분. 9분. 8분.

---

월요일 오전 11시 27분. 거래가 완료되었다.

'거래 완료'

'1시간 거래 수익: 648만 원'

'현재 통장 잔액: 1억 5,944만 원'

준호가 화면을 봤다. 정은미가 준호를 봤다.

"이제 병원 가자."

정은미가 말했다. 준호는 일어나 앉았다. 현기증이 밀려왔다. 침대 옆의 벽을 잡아야 했다.

"알겠어."

준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거짓이었다. 준호는 이미 다음 거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3시간. 1,944만 원. 거래 회차 누적: 11회(공식 거래소 19시간 32분 + 블랙마켓 11시간 30분). 통장 잔액 1억 7,888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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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오후 2시. 준호는 병원에 있었다. 신경과 진료실.

의사가 준호의 MRI 이미지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뇌의 단면도가 떴다. 회색과 흰색의 복잡한 영상이었다.

"음... 이상한데요."

의사가 중얼거렸다.

"뭐가 이상한데요?"

정은미가 물었다. 준호는 침묵했다.

"해마의 위축도가 정상보다 높습니다. 정상 성인의 해마 부피는 약 8ml인데, 이 환자는 5.2ml입니다."

의사가 화면을 가리켰다. 뇌의 안쪽, 해마라고 표시된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작아 보였다.

"얼마나 심한 건데요?"

정은미가 물었다.

"상당히 심합니다. 이 정도면 기억력 손상, 학습 능력 저하, 심할 경우 치매 초기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준호를 봤다.

"최근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셨거나, 약물 복용, 또는 반복적인 신경 자극에 노출되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뭐 하신 거예요?"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사가 다시 화면을 봤다.

"또한 전전두엽의 활성도가 비정상적으로 낮고, 선조체의 활성도가 과도하게 높습니다. 이는 보상 회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중독 증상의 신경학적 특징입니다."

"중독?"

정은미가 물었다.

"네. 도박, 약물, 게임 등 중독 상태에서 나타나는 뇌 패턴입니다. 이 환자는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의사가 준호를 봤다.

"지금 당장 그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계속하면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준호는 여전히 침묵했다.

---

병원을 나온 후, 정은미는 준호의 팔을 잡았다.

"넌 이제 그 앱을 지워야 돼."

"안 돼."

준호가 대답했다.

"뭐가 안 된다고? 너 뇌가 손상되고 있어!"

"알아."

"알면서도?"

"알면서도."

준호가 정은미를 봤다. 눈이 공허했다.

"근데 멈출 수 없어."

정은미의 질문이 준호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왜?"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으로 향했다. 앱을 켰다. 타임트레이드.

남은 수명: 23년 2개월 8일.

통장 잔액: 1억 5,944만 원.

아직도 3억 6,056만 원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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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을 켰다.

남은 수명: 23년 1개월 28일.

통장 잔액: 1억 7,296만 원.

어제 거래. 3시간. 1,944만 원. 거래 회차 누적: 12회(공식 거래소 19시간 32분 + 블랙마켓 12시간 30분).

준호가 계산했다. 부모의 빚은 5억 2천만 원. 현재 통장 잔액 1억 7,296만 원. 아직도 3억 4,704만 원이 남았다.

이 속도면 몇 주 더?

손가락이 거래 버튼 위로 움직였다.

누르지 말자. 누르지 말자. 누르지 말자.

그 생각이 1초를 지배했다.

그 다음 1초는 누르자가 지배했다.

준호의 손가락이 내려왔다.

'거래를 시작합니다.'

화면에 카운트다운이 나타났다.

3,600초.

3,599초.

3,598초.

그리고 준호는 알았다.

자신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을.

뇌 해마가 5.2ml로 위축되어 있고, 거래 회차 누적 12회, 전전두엽이 억제 기능을 잃고, 선조체가 광란의 도파민을 분비하는 상태.

남은 수명이 빨간색으로 깜빡이는 화면 앞에서, 손가락이 떨리며 거래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통장 잔액 1억 7,296만 원 앞에서 멈출 수 없는 자신을.

아버지의 빚을 갚겠다던 계획 따위는 이미 사라졌다. 1억 도달 후에도 계속 거래하는 이유는 더 이상 명분이 아니었다. 부모의 빚을 갚는 것도, 새로운 목표인 26억도 중요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순수한 중독뿐이었다.

카운트다운뿐이었다.

3,500초.

3,400초.

3,300초.

그리고 그 숫자가 줄어드는 쾌감. 매 초마다 1,800원씩 들어오는 통장 잔액. 그것만이 뇌를 자극했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인다. 거래를 누르려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누른다. 그 반복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

준호는 알았다.

자신이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손가락이 다시 버튼 위로 간다.

정은미의 목소리가 들린다. 병원 의사의 목소리도. 아버지의 목소리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뚫고, 화면의 카운트다운만 들린다.

3,200초.

3,100초.

3,000초.

손가락이 거래 버튼 위에서 멈춘다. 누르려다가, 멈추려다가. 그 반복. 그 순간 준호의 눈이 화면을 떠난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광대뼈가 두드러진 얼굴. 눈 밑의 검은 자국. 창백한 입술.

그 얼굴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다.

다시 화면을 본다.

2,500초.

2,400초.

2,300초.

통장 잔액이 계속 늘어난다. 남은 수명은 계속 줄어든다.

준호의 손가락이 떨린다.

휴대폰을 들거나, 거래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어느 쪽이든 다음은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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