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본문

박의령의 손이 이준호의 어깨에서 떨어졌을 때, 방 안의 공기가 멈췄다. 그 질문—'조선을 구한 자는 누구입니까?'—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이준호는 그것을 알았다. 자신의 어딘가 깊은 곳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자신의 일부에서.

여인의 숨이 가빠졌다. 폐렴이 심각했다. 가슴이 천천히 움직였다. 임사 상태. 정확히 2시간 47분 남았다. 이준호는 그것을 직감했다. 슈미트와의 첫 빙의 이후, 그는 임사 상태의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톰슨의 기억이 이를 가르쳤다. 뒤폰의 경험이 이를 확증했다.

도마스 윌슨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차분했다. 계산된 것이었다. 무언가 이미 계획된 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확신 속의 미소.

"프리츠 해버는 현재 베를린 대학의 화학과 교수입니다." 윌슨이 여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질소 고정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비료와 폭약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기술입니다. 당신이 그의 지식을 흡수하면, 어떤 신약이든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생제, 항독소, 백신—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저렸다. 그것은 자신의 손가락인가. 톰슨의 손가락인가. 뒤폰의 손가락인가.

"왜 하필 그의 아내입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목소리가 깊었다. 낮았다.

"왜냐하면 해버는 런던에 있고, 그의 아내는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윌슨이 대답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윌슨이 손을 펼쳤다. 그 안에는 편지가 있었다. 필체는 여성스러웠다.

"이것은 해버의 아내가 지난주 남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녀는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남편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그를 빙의하면, 당신은 그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하지만 해버는 절대 그것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가 되기 때문입니다."

박의령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이것은 협박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윌슨이 일어섰다. "당신의 의사, 이준호. 그는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가 모르는 사이에. 슈미트를 빙의했을 때, 톰슨을 빙의했을 때, 뒤폰을 빙의했을 때—매번 그는 조선을 구하겠다는 명분 아래 자신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해버를 빙의하면, 그는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조선을 구한 자는 더 이상 이준호가 아니라, 해버가 될 것입니다. 혹은 우리가 될 것입니다."

김재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경쾌한 웃음이 아니었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의사."

김재훈이 종이를 들어올렸다. 계약서였다. 큼지막한 인장들이 찍혀 있었다. 조선 정부의 인장, 바이엘의 인장, 글래스고우의 인장, 스탠다드 파마슈티컬의 인장.

"이것은 5년 전부터 체결된 계약입니다. 조선 정부가 서양의 신약 기술을 원했고, 제국의 카르텔이 조선 시장을 더욱 깊숙이 지배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신약은 그 양쪽 모두의 이익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도구였습니다."

이준호는 그 계약서를 바라봤다. 글자들이 떨렸다. 아니, 자신의 눈이 떨렸다.

"당신의 신약이 성공했을 때, 조선 정부는 서양의 신약 기술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카르텔은 조선 시장을 완전히 독점했습니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확신이 없었다.

"신약의 원료를 보세요." 김재훈이 또 다른 종이를 펼쳤다. 신약의 처방전이었다. "인삼, 황기, 감초—모두 조선의 약재입니다. 하지만 추출 용제는? 에탄올입니다. 정제 장비는? 독일 바이엘의 크로마토그래피 장비입니다. 배양 배지는? 영국 글래스고우의 제품입니다. 보존 용기는? 미국 스탠다드 파마슈티컬의 유리병입니다."

김재훈이 천천히 다가왔다.

"당신의 신약은 조선을 강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조선을 더욱 의존하게 만듭니다. 신약의 모든 재료가 제국에서 수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약재는 껍질일 뿐입니다. 진짜 신약은 제국의 기술에서 나옵니다."

박의령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멈췄다. 윌슨의 손에 권총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을 구한 자는 누구입니까?" 박의령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이준호를 향해.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입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도 아닙니까?"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음성, 톰슨의 음성, 뒤폰의 음성—세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가 사라졌다. 입술이 움직였다. 혀가 뒤틀렸다. 어느 목소리도 완성되지 못했다.

여인의 숨이 더욱 가빠졌다. 가슴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1시간 52분 남았다. 이준호는 정확히 알았다.

"선택하세요, 의사." 윌슨이 말했다. "해버를 빙의하고 조선을 구하세요. 그러면 당신은 우리의 신약 제조 기계가 될 것이고, 조선은 영원히 우리의 의료 식민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선의 환자들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면 거절하세요. 그러면 신약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고, 조선의 환자들은 계속 죽을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침을 집었다 놨다. 손가락이 저렸다. 마치 전기가 흐르는 듯. 손목이 경직되었다. 침을 다시 들었다. 여인의 팔 위로 내려오고 있었다. 침의 끝이 피부에 닿으려 하는 순간, 이준호는 침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만약 해버를 빙의하면, 이준호는 그 죽음을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는 죽음. 아내의 죽음을 모르는 남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윌슨의 진짜 목적이었다. 신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준호를 완전히 부수는 것. 그를 기계로 만드는 것.

그리고 거절하면? 조선의 환자들이 죽는다. 수천, 수만의 조선 환자들이 죽는다. 신약이 없으면 그들은 살 수 없다.

침을 다시 들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슈미트인가. 톰슨인가. 뒤폰인가. 아니면 이제 아무도 아닌가.

침을 내려놨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최영수였다. 뒤에는 경찰이 아닌 정부 관리들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엄숙했다. 박의령이 최영수를 불렀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 방 밖에서.

"이 모든 대화를 녹음했습니다." 최영수가 작은 축음기를 들어올렸다. "조선 정부와 제국 카르텔의 거래, 신약의 원료 수입 구조, 의료 식민지화 계획—모두 녹음되었습니다."

김재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모든 계획이 녹음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문에 나갈 것입니다." 최영수가 계속했다. "내일 아침 신문에. 이 기사는 런던 타임스, 베를린 신문, 뉴욕 헤럴드에도 동시에 전달될 것입니다."

제국의 카르텔이 조선을 의료 식민지로 만들려던 음모가 세계에 드러날 것이었다.

윌슨이 총을 들어올렸다.

박의령이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침이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침. 그것은 이준호의 침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 침술의 최고 기술. 명혈을 정확히 노리는 침.

윌슨이 쓰러졌다. 가슴에서 피가 흘렀다. 침이 심장을 관통했다.

경찰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박의령을 제압하지 않았다. 대신 김재훈을 제압했다.

"이준호 의사를 풀어주세요." 관리가 말했다. "그리고 이 독일인의 시신은 어디서 온 것인가를 조사하겠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이준호는 여전히 침을 들고 있었다. 여인의 팔 위에서. 그녀의 임사 상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 20분 남았다.

박의령이 이준호에게 다가왔다. 노인의 얼굴은 창백했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명확했다.

"이제 정말로 선택할 차례입니다." 박의령이 말했다. "이번에는 누구도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준호는 박의령을 바라봤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윌슨이 죽었다. 김재훈이 체포되었다. 최영수의 녹음이 모든 것을 폭로했다. 신약의 진실이 드러났다. 더 이상 제국의 식민지 도구가 될 필요가 없다.

이제 이준호는 자유롭다.

하지만 자유란 무엇인가. 여인의 숨이 더욱 가빠졌다. 가슴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15분 남았다.

여인의 눈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안에는 공포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있었다. 간청. 아니, 그 이상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되, 그 죽음이 의미 있기를 바라는 눈빛. 그리고 이준호가 무엇을 하든 그것을 용서하겠다는 눈빛.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듯, 아니면 무언가를 인정하려 하는 듯. 그 입술의 형태는 분명했다. 신약을 포기해도 좋다는 신호. 그 죽음이 의미 있으면 충분하다는 신호.

이준호는 여인의 팔을 잡았다. 피부가 뜨거웠다. 열이 심했다. 폐렴이 급속도로 진행 중이었다. 그의 의료 감각이 말해주었다. 이 여인은 30분 안에 죽을 것이다. 해버의 아내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은 이제 이준호뿐이다.

침을 들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내려놨다. 다시 들었다.

만약 해버를 빙의하면, 이준호는 그 죽음을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는 죽음. 아내의 죽음을 모르는 남편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윌슨의 진짜 목적이었다.

그리고 거절하면? 조선의 환자들이 죽는다. 수천, 수만의 조선 환자들이 죽는다.

침을 내려놨다.

이준호가 천천히 일어섰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있었다. 톰슨의 손도 아니고, 뒤폰의 손도 아닌. 오직 이준호의 손이었다. 고통을 느끼는 손. 선택을 한 손.

최영수가 다가왔다.

"의사." 최영수가 말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했습니까?"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만 있었다. 깊은 침묵.

박의령이 여인의 시신을 바라봤다.

"조선을 구한 자는 누구입니까?" 박의령이 다시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방 밖에서 서울의 밤이 계속되고 있었다. 거리에서는 환자들의 신음이 들렸다. 장티푸스, 폐렴, 콜레라. 신약이 없는 조선의 밤. 이제 신약도 없을 것이다. 해버를 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준호는 더 이상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이 되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것으로 모든 감각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박의령이 이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당신은 이제 누구입니까?"

박의령의 질문에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침을 집어 들었다. 여인의 팔에 남겨진 침을. 그것을 천천히 자신의 팔에 내려놨다.

침이 피부를 뚫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울렸다. 슈미트인가. 톰슨인가. 뒤폰인가. 그 모든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가 사라졌다.

이준호의 몸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침은 치명적인 위치를 노리지 않았다. 그것은 고통을 주기 위한 침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침이었다.

"누구인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였다. 슈미트도, 톰슨도, 뒤폰도 아닌. 오직 이준호의 목소리.

"고통을 느끼는 자. 선택을 한 자. 그것이 나입니다."

이준호는 침을 천천히 빼냈다. 피가 흘렀다. 자신의 피였다.

"조선을 구한 자는 누구입니까?" 박의령이 다시 물었다.

이준호는 여인의 시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아무도 아닙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아니,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