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명동 약방의 뒷방. 뒤폰의 창백한 얼굴이 이준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손가락이 떨렸다. 침 주머니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슈미트의 기억, 톰슨의 기억, 뒤폰의 기억이 뇌 속에서 중첩되며 울부짖었다. 세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말했다. *더 강해져야 한다. 더 완벽해야 한다. 조선을 구해야 한다.* 손가락이 뒤폰의 팔목에 닿으려던 순간, 문이 열렸다.

도마스 윌슨이 들어섰다. 검은 정장, 금시계, 냉정한 눈빛. 뒤에는 경찰복을 입은 사내들이 따랐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김재훈의 것이 아니었다. 윌슨의 것이었다.

"침을 놓으시겠습니까, 의사 선생님?"

윌슨이 침대 옆에 섰다. 뒤폰은 여전히 고열로 신음했다. 체온계가 4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티푸스. 임사 상태까지는 육 시간 남아 있다.

"아니면 포기하시겠습니까? 조선을 포기하고, 당신의 신약을 포기하고, 당신 자신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윌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이 환자를 살리면,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겠습니다. 신약의 공식, 임상 데이터, 당신의 이름까지. 제국 제약 카르텔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조선은 영원히 우리의 약에 의존할 것이고요."

이준호는 침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침끝이 공중에서 흔들렸다. 뒤폰의 팔목이 몇 센티미터 앞에 있었다.

"침을 놓으면 뒤폰은 산다. 하지만 조선은 죽는다."

윌슨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침을 놓지 않으면 뒤폰은 죽는다. 하지만 당신의 신약은 조선의 것이 될 수 있다."

침 주머니가 이준호의 손에서 떨렸다. 뒤폰의 신음이 더 크게 들렸다. 윌슨의 경찰들이 한 발씩 안으로 들어섰다.

"결정하십시오."

이준호의 눈이 침 주머니에서 윌슨으로 옮겨갔다. 그 순간, 깨달음이 스쳤다. 윌슨의 자신감. 그것은 신약의 공식을 빼앗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제국 제약 카르텔이 두려워하는 것은 조선의 자립이 아니라—

원료다.

인삼, 황기, 감초. 조선이 신약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신약의 모든 원료를 제국이 독점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윌슨의 말 속에 숨겨진 진실. 신약의 제조법은 이미 포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원료였다.

이준호는 침을 내려놨다. 책상 위에 떨어진 침 주머니. 손가락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조선을 구하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준호가 일어섰다. 윌슨과 눈높이를 맞췄다.

"더 강한 신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선 스스로 약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신약 제조법을 공개하겠다는 뜻입니까?"

"모든 것입니다. 화학식, 임상 데이터, 제조 공정. 조선 정부에 양도합니다."

침묵이 방을 가득 채웠다. 뒤폰의 신음이 더 크게 들렸다. 윌슨의 입가가 약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럼 당신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군요. 이름도 없고, 기술도 없고, 심지어 정체성도 잃어가고 있으면서."

"네. 그렇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가 침 주머니를 다시 들었다. 하지만 뒤폰에게로 가지 않고, 자신의 팔목에 대었다. 침끝이 정맥 위에 멈췄다.

"저는 제 신약으로 제 정체성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제 선택으로 만들겠습니다. 이 선택이 제 정체성입니다."

윌슨이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경찰들이 뒤따랐다. 그 순간, 뒷방 문이 열렸다.

박의령이 들어섰다. 뒤에는 최영수 기자. 손에는 검은 상자—축음기였다.

최영수가 말했다.

"도마스 윌슨, 당신은 영국 대사관에 인도됩니다."

윌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경찰들을 돌아봤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선 경찰청이 아니라 서울 헌병대였다. 고종의 친러 세력이 움직인 것이었다.

윌슨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경멸이 아니라 다른 감정이 흘러나왔다. 인정. 혹은 두려움.

"당신은 정말 미쳤습니다."

그가 경찰들에게 이끌려 나갔다. 발걸음 소리가 명동 거리로 멀어졌다.

박의령이 이준호에게 다가섰다. 스승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썹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저는 누구인가요, 스승님?"

이준호가 먼저 물었다. 침 주머니는 여전히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바늘은 자신의 팔목 위에 멈춰 있었다.

박의령이 이준호의 손을 내려놨다. 침 주머니가 책상 위에 떨어졌다.

"당신은 이제 당신이 아닙니다."

박의령의 목소리가 갈렸다.

"하지만 당신의 선택은 당신입니다. 그 선택이 당신을 정의합니다."

이준호는 스승의 얼굴을 봤다. 박의령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제자의 죽음을 보는 눈물이 아니었다. 제자가 죽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을 목격하는 눈물이었다.

박의령이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주머니에서 낡은 종이 꾸러미가 나왔다. 약재 침출 온도표, 약초 배합 기록, 백 년을 이어온 한의학의 비밀들이 적혀 있었다. 박의령이 그것을 이준호의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평생의 한의학 이론, 약재 공급망, 제자까지.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들을 다시 만들겠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조선의 한의사들과 함께."

박의령이 이준호의 눈을 마주봤다.

"이것들은 이제 조선의 모든 한의사에게만 전수됩니다. 당신이 공개한 화학식만으로는 신약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약재의 효능을 극대화하는 침출 시간, 온도, 그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 조선의 것입니다."

이준호가 종이를 들었다. 손가락이 글씨를 따라갔다. 자신의 글씨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이 이 글을 남긴 것 같았다.

최영수 기자가 축음기를 들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의사 선생님, 저는 이 모든 것을 기사화합니다. 의료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 자립을 선택한 한 사람의 결단으로."

최영수가 이준호의 어깨에 손을 놨다.

"당신의 이름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이 기록될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잊더라도, 당신이 무엇을 택했는지는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손등의 혈관이 파랗게 도드라져 있었다. 손가락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슈미트의 손인지, 톰슨의 손인지, 아니면 자신의 손인지. 하지만 그 손이 환자들을 치료해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박의령이 이준호의 손을 다시 잡았다.

"당신은 선택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사흘 뒤. 런던, 제약 회사 협회 사무실.

도마스 윌슨은 감옥에 있지 않았다. 영국 대사관의 외교적 보호로 풀려났다. 조선 정부는 국제 분쟁을 피하기 위해 그를 방출했다.

윌슨이 사진을 들었다. 이준호의 사진. 신문 기사와 함께 나간 사진이었다. 그의 얼굴이 흐릿했다.

그의 옆에 제국 제약 카르텔의 회장들이 앉아 있었다. 바이엘, 글래스고우 약품, 스탠다드 파마슈티컬의 경영진들. 회의실의 벽에는 세계 지도가 붙어 있었다. 조선은 이미 표시되지 않았다.

"당신은 실패했습니다."

회장이 말했다.

윌슨이 웃음을 흘렸다. 패배의 웃음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우리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도를 가리켰다. 조선 전도.

"당신들은 신약의 제조법이 공개된 것에만 주목합니다. 하지만 신약의 원료는 어디서 나옵니까?"

윌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실을 걸어 다니며 말했다.

"인삼, 황기, 감초. 그 모든 약재의 국제 공급망은 여전히 우리의 것입니다. 조선이 신약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신약의 원료를 독점합니다. 그들이 우리 없이 생존할 수 없도록."

윌슨이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는 이미 편지들이 쌓여 있었다. 인도, 중국, 태국의 약재 무역상들로부터 온 편지들.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조선으로의 약재 수출 중단.

"이것이 진정한 게임입니다."

회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이미 짜여 있었다. 신약의 제조법이 아니라 원료 시장의 독점. 더 교묘하고, 더 오래 지속될 방법.

윌슨이 이준호의 사진을 다시 봤다. 흐릿한 얼굴. 초점이 맞지 않은 눈빛.

"이 사람은 이미 자신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윌슨이 사진을 책상에 내려놨다.

---

한강 둔치. 여인숙 뒷방.

이준호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뒤폰은 이미 떠났다. 장티푸스에서 회복된 그는 런던으로 돌아갔다. 바이엘의 사람으로서.

박의령이 방에 들어섰다. 손에는 낡은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백 년 전 의관이 남긴 약초 목록. 그 위에는 손글씨로 쓰인 주석이 있었다. *이것을 완성시킬 자는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을 것이다.*

박의령이 책을 이준호의 가슴 위에 놨다.

"당신은 그 예언을 완성했습니다."

이준호가 책을 봤다. 그의 눈이 글씨를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읽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글씨를 보는 것처럼.

"저는 누구입니까?"

이준호가 다시 물었다.

박의령이 이준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스승의 손이 따뜻했다.

"당신은 조선을 구한 자입니다."

"아니, 스승님. 저는 조선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제 신약을 포기했으니까요."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박의령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잘못 생각합니다. 신약은 도구일 뿐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조선이 스스로 약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당신의 선택이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이준호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남의 것인 것처럼. 그가 창문으로 나갔다. 한강이 보였다. 강 건너편으로 서울의 밤이 펼쳐져 있었다. 명동, 남촌, 종로. 어디선가 신약을 만드는 한의사들. 어디선가 그 신약을 받아 목숨을 건지는 환자들.

이준호가 돌아섰다.

"스승님, 저는 또 다른 기술자를 찾고 있습니다."

박의령이 물었다.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원료 생산 기술자입니다. 그의 임사 상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준호의 눈빛이 변했다. 슈미트의 눈빛, 톰슨의 눈빛, 그리고 자신의 눈빛이 겹쳐 있었다.

"그를 빙의하면, 조선은 신약의 원료까지 자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윌슨이 원료 시장을 독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안에 있는 기억들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말합니다.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고."

박의령이 이준호의 어깨에 손을 놨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정체성을 잃은 자는 죽은 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죽은 자가 계속 움직인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영혼이 그를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 안의 영혼들이 저를 움직입니다."

이준호가 창문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손이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처럼. 손가락이 한강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조선을 움직입니다."

박의령의 손이 이준호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당신은 더 이상 제 제자가 아닙니다."

"네. 저는 이제 조선의 것입니다."

한강 둔치의 여인숙. 그 뒷방의 창에서 이준호의 실루엣이 보였다. 얼굴은 어둠 속에 있었다. 몸만 밤의 빛에 드러나 있었다. 마치 유령처럼.

창 밖 한강이 이상하게 출렁였다. 별도 없는 밤하늘이 유독 짙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 어둠 속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

삼 년 뒤. 서울 남촌 진료소.

이준호는 환자들을 보고 있었다. 하루에 수십 명. 콜레라, 장티푸스, 천연두, 그 외 수많은 풍토병들. 그들 모두가 신약을 받았고, 그들 모두가 살아났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침을 놓을 때마다. 하지만 침은 정확하게 혈위를 찾았다. 마치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박의령이 진료소에 들어섰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당신은 당신의 선택을 후회하십니까?"

박의령이 물었다.

이준호가 침 주머니를 내려놨다. 다음 환자를 기다렸다. 하지만 환자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름을 부르려던 입이 멈춰 섰다.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모르겠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감정이 없었다. 혹은 너무 많은 감정이 섞여 있어서 감정처럼 들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은 압니다."

박의령이 진료소의 벽을 봤다. 그곳에는 신문 기사들이 붙어 있었다. 조선의 여러 신문사에서 나간 기사들. *조선 신약, 제국 카르텔의 독점 깨뜨리다.* *의료 영웅이 아닌, 국가 자립의 선택자.* *조선을 구한 자는 누구인가—아무도 알 수 없다.*

박의령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제자의 눈이 환자를 보고 있었지만, 환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마치 투명한 유령을 보는 것처럼.

"당신은 이미 누구인지 잊었습니까?"

박의령의 질문에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을 다시 들었다. 환자의 팔목을 찾았다. 침끝이 정확하게 혈위를 찔렀다. 환자가 신음했다. 하지만 이준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

런던. 제약 회사 협회 사무실. 밤.

도마스 윌슨이 창문을 통해 런던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편지 묶음이 들려 있었다. 인도, 중국, 태국, 베트남으로부터 온 편지들.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조선으로의 약재 수출 중단. 가격 인상. 공급 제한.

"게임은 계속된다."

윌슨이 중얼거렸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준호가 신약의 제조법을 포기했을 때, 윌슨은 이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원료의 독점. 더 은밀하고, 더 오래 지속될 전략.

조선이 신약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신약을 만드는 모든 것을 제국이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신약의 제조법보다 원료가 더 중요했다. 제조법은 언젠가는 유출되겠지만, 원료는 영원히 제국의 것이 될 수 있었다.

윌슨이 창문에 손을 얹었다. 런던의 밤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

한강 둔치. 여인숙 뒷방. 밤.

이준호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손에는 낡은 사진이 들려 있었다. 어린 시절의 사진. 그 얼굴을 보고도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의 얼굴인지. 자신의 얼굴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인지.

박의령이 방 구석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제자를 보고 있었다.

이준호의 입이 움직였다. 매우 낮은 목소리로.

"스승님, 저는 이제 원료 생산 기술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의 임사 상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의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빙의하면, 조선은 신약의 원료까지 자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진정한 시작입니다."

이준호가 사진을 내려놨다. 사진이 가슴 위에 떨어졌다. 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제 안의 목소리들이 말합니다. 게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다음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한강의 물이 창밖에서 흘렀다. 밤하늘이 유독 짙었다. 별 하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신호처럼.

박의령이 일어섰다. 그가 이준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스승의 손이 떨렸다.

"당신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습니다."

박의령의 목소리가 갈렸다.

"당신은 이미 죽은 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준호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안에 다른 목소리들이 섞여 있었다. 슈미트의 목소리, 톰슨의 목소리,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

박의령이 방을 나갔다. 뒷방의 문이 닫혔다. 그 안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오직 침대 위의 몸뚱이만 남았다. 가슴 위에 떨어진 낡은 사진. 누구의 얼굴인지 알 수 없는 그 사진.

한강이 계속 흘렀다. 밤이 계속 깊어졌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임사 상태가 임박했다. 원료 생산 기술자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고 했다.

런던과 한강, 두 곳에서 동시에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윌슨의 손으로 원료 시장이 조여지고 있었고, 한강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영혼이 깨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조선의 약국은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의 손으로 움직이고 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약국이 계속 약을 만들고, 계속 환자들을 치료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밤이 깊어질 때마다, 다음의 기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강의 물이 이상하게 요동쳤다. 별 하나가 떨어지는 듯 밤하늘이 갈라졌다. 무한한 순환의 숙명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