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비스의 가장자리
거울 앞에서 이준호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럿을 보고 있었다.
왼쪽 눈은 슈미트의 차가움이었고, 오른쪽 눈은 톰슨의 절망이 어려 있었다. 코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입가는 낯선 주름으로 가득했다. 손가락을 움직여보니 손목이 따로 반응했다. 이것이 신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세 개의 망령이 한 구의 살갗 위에 중첩된 것인가?
여인숙 방의 어두운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시선을 떼었다기보다 누군가가 그의 목을 돌렸다. 손가락이 저절로 펴졌다. 주머니에서 플레밍의 사진을 꺼냈는데, 이것도 자신이 꺼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사진 속의 스코틀랜드 세균학자는 웃고 있었다. 웃음이 아니라 비웃음이었다.
이준호는 거리로 나갔다. 아니, 무언가가 그를 거리로 밀어냈다.
서울의 밤거리는 여름의 습기로 흐릿했다. 종로 어귀에서 시작해 남촌으로 향했다가, 다시 북촌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종로 4가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발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았다. 뇌가 지령을 내렸으나 다리는 다른 명령을 따랐다. 슈미트의 기억이 속삭였다. _저쪽이다. 저기에 있다._ 톰슨의 목소리가 겹쳤다. _아니, 이쪽이다. 느껴진다._
그들은 누구를 찾고 있는가? 이준호는 자신이 무엇을 찾는 중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발이 가는 길을 따를 뿐이었다.
플레밍. 그 이름이 뇌 어딘가에서 울렸다. 슈미트의 기억에서. 톰슨의 기억에서. 두 기억이 일치하는 유일한 대상. 런던의 세균학 연구소. 페니실린 발견. 그리고 그 공식의 완성. 슈미트는 플레밍을 경쟁자로 알았고, 톰슨은 플레밍을 구원자로 생각했다. 두 욕망이 한 몸에서 충돌할 때,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플레밍을 손에 넣는 것. 플레밍의 지식을 빙의시키는 것. 플레밍의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골목 안 낡은 집의 방에서 사람을 발견했다. 홍역이었다. 전신이 발진으로 덮여 있고, 호흡이 끊어질 듯 얕았다. 이준호는 맥박을 잰다. 이미 임사 상태였다. 손을 뻗었다. 그러자 톰슨이 속삭였다. _아니다. 이 자는 아니다._ 발을 돌렸다.
또 다른 거리. 또 다른 골목. 또 다른 사람들의 임사 상태.
폐병으로 누워있는 노인. 아니다. 장티푸스로 앓고 있는 상인. 아니다. 콜레라로 쓰러진 아이. 아니다. _아니다. 아니다._ 톰슨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슈미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이준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거리의 사람들이 뒤돌아봤다. 미친 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새벽 4시쯤, 명동의 한 약방 뒤 창고에서 그를 발견했다.
프랑스 제약사 르네 뒤폰이었다. 이름을 어떻게 아는가? 슈미트의 기억에 있었다. 바이엘 회사의 경쟁사 르샤르 프레레의 약학 담당자. 3년 전 상하이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아니, 이준호가 만난 것이 아니라 슈미트가 만난 것이었다. 그 기억이 이준호의 뇌 속에서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뒤폰이 서울 명동에 있다는 정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슈미트의 기억 속에도 없었다. 톰슨의 기억 속에도. 누군가가 그를 여기 두었다. 누군가가 이준호를 이 창고로 인도했다.
뒤폰은 홍역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온몸이 발진으로 검게 변했고, 눈에는 희미한 광채만 남아있었다. 호흡 간격이 30초를 넘었다. 이미 3시간을 넘겼을 것이다. 임사 상태의 끝이 가까웠다.
이준호는 뒤폰의 손을 잡았다.
몸이 경직되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것도 임사 상태의 반응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었다. 뒤폰의 입술이 움직였다. 프랑스어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이준호는 프랑스어를 모르는데, 슈미트는 알았다. 슈미트의 혀가 이준호의 입에서 움직였다.
"Pardonnez-moi. Pardonnez-moi."
용서해달라. 용서해달라.
이준호는 뒤폰의 이마에 침을 놓으려 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손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움직였다. 침을 들었다. 아니, 누군가가 손을 들게 했다. 침의 끝이 뒤폰의 피부에 닿으려 할 때, 이준호의 몸 전체가 진동했다.
팔이 갈라졌다. 가슴이 찢어졌다. 뇌가 두 개로 나뉘었다. 왼쪽 뇌에서 슈미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른쪽 뇌에서 톰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둘 다 뒤폰을 원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다른 목적으로. 슈미트는 경쟁자의 지식을 빼앗으려 했고, 톰슨은 죽어가는 자의 영혼을 구하려 했다. 그들의 욕망이 이준호의 신체를 전장으로 만들었다.
침이 뒤폰의 피부를 뚫었다.
그 순간, 이준호는 자신이 누구인지 완전히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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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둔치로 나왔을 때는 이미 새벽 6시였다.
발을 질질 끌며 나온 이준호는 진흙밭에 쓰러졌다. 뒤폰의 기억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파스퇴르 연구소에서의 10년. 홍역 백신 개발에 쏟은 모든 것.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기록한 실험 노트 300장. 그리고 모두가 무의미했다는 깨달음. 그 절망감이 이제 이준호의 것이었다. 동시에 톰슨의 기억도 밀려들었다. 런던 의학 학회에서의 수치심. 동료들의 조롱. 그리고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기적. 자신이 평생 찾던 것을 다른 이가 손에 넣었다는 절망. 슈미트의 기억도. 바이엘 회사의 실험실. 합성 항생제 개발 프로젝트. 그리고 자금 삭감과 함께 찾아온 죽음. 세 명의 절망이 한 사람의 뇌 속에서 울부짖었다.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뒤폰의 얼굴이었다. 아니, 뒤폰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이소영의 목소리였다.
이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강 건너 여인숙의 불을 등지고 이소영이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명확하지 않았다. 이준호의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초점을 맞추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소영이 한 발 다가섰다. 그녀는 이준호를 미행해왔다. 직전 밤 여인숙 뒷골목에서 그를 본 이후로. 처음에는 김재훈의 지시였다. 하지만 밤마다 그를 따라다니며 목격한 것은 지시 이상의 것이었다. 신약이 나타나던 날부터 그의 변화를. 슈미트와 톰슨의 기억이 그 안에서 충돌하던 모든 순간을.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이것이 단순한 감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이준호를 파괴하려 했고, 그녀는 그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정했다. 기자 최영수를 찾아가기로. 신약이 기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 속에서 빚어진 것임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당신 손이 낯설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슈미트와 톰슨과 뒤폰의 목소리만 울렸다. 세 개의 외침이 한 구의 목에서 나왔다.
"당신의 어머니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준호는 생각했다. 어머니? 누구? 그 단어가 뇌에 닿지 않았다. 혀가 말을 만들지 못했다. 기억이 없었다. 또는 그 기억이 너무 깊어서 닿을 수 없었다. 세 개의 영혼이 그것을 짓누르고 있었다.
"당신이 처음 만난 환자는 누구입니까? 그 환자의 이름을 말해보세요."
말할 수 없었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세 명의 망령이 당신의 살갗 안에서 춤을 추고 있고, 당신은 그들의 중심이 아닙니다. 당신은 무엇도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도 아닙니다."
이소영이 등을 돌렸다. 불을 등진 그녀의 실루엣이 강을 건넜다. 이준호는 움직일 수 없었다. 발이 반응하지 않았다. 팔도. 목도. 오직 눈만 따라갔다. 이소영이 여인숙 문을 들어섰다. 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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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나왔을 때는 아침 8시였다.
신문 소년들이 종로를 누비며 외쳤다.
"신약의 비밀! 이준호는 세 명의 영혼이 조종하는 인형인가? 기자 최영수의 독점 보도! 신문사 신보 읽어보세요!"
이준호는 한 부를 집어 들었다. 손이 자신의 의지로 움직였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최영수의 기사는 명확했다. 신약의 출현 시점과 슈미트의 사망 시점이 일치한다. 톰슨의 임사 상태와 항생제 기술 습득의 연관성. 그리고 플레밍의 사진. 누가 기자에게 이 정보를 흘렸을까? 기사의 말미에는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호는 알았다. 이소영이었다. 그녀가 최영수를 찾아갔다. 신약이 진정한 기적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 속에서 빚어진 것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것이 누군가의 명령이었는지, 아니면 그녀 자신의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정이 이제 서울 전역을 휩쓸고 있었다.
기사의 마지막은 단정적이었다.
"이준호라는 인물이 정말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신약의 진정한 창조자는 세 명의 서양인일 수도 있다. 조선의 영웅이라고 칭송받던 이준호는 사실 제국의 망령들이 조종하는 도구가 아닐까? 우리는 기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제국의 기술 침탈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거리의 반응은 빨랐다.
신문을 읽는 양반들이 웅성거렸다. 약방 앞에서 남정네들이 기사를 놓고 논쟁했다. 누군가가 손가락질을 했다. "저 사람 아닙니까?"
이준호는 걸음을 빨리했다. 발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떠밀리고 있었다. 거리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신문 기사의 의심 속으로.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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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거리의 한 찻집에서 이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손이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놨다가 다시 들었다. 슈미트가 커피를 마시고 싶어 했다. 톰슨이 그것을 거부했다. 뒤폰이 중립적이었다. 세 명의 욕망이 한 구의 신체 안에서 싸웠다. 혀가 꼬였다. 시각이 흔들렸다. 말하려던 단어들이 뇌에서 사라졌다.
"이준호 선생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이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김재훈이었다. 정부의 관리. 신약 공장 건설을 지원했던 자.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지원자의 환한 표정이 아니라 다른 것이 있었다. 계산. 확신. 그리고 연민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이소영과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톤이 달랐다. 이소영은 슬픔으로 죽음을 선언했고, 김재훈은 사실로 죽음을 진술했다.
"당신이 처음 슈미트를 만났을 때, 당신은 이미 우리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당신이 빙의 능력을 각성했다고 생각했습니까? 그것은 각성이 아니었습니다. 각성시킴이었습니다."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신이 신약을 만들 때, 당신이 제국 카르텔을 맞서 싸운다고 생각했습니까? 당신은 한 카르텔을 깨뜨리고 다른 카르텔을 세웠을 뿐입니다. 우리의 카르텔을."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번에는 누가 떨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공포였다. 남은 자신의 일부가 반응했다.
"당신이 플레밍을 찾아다니는 것도 당신의 의지가 아닙니다. 당신은 이미 죽었고, 세 명의 영혼만 남았으며, 그들은 우리의 지시를 따릅니다."
김재훈이 손을 들었다.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계약서였다. 이준호는 읽을 수 없었다. 눈이 글자를 포착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줄은 명확했다.
**서명인: 이준호 · 박의령 · 최영수 · 그리고 또 다른 이름**
그 이름은 검은 줄로 지워져 있었다. 지워진 이름 위에 김재훈의 손가락이 놓였다.
"이 분이 당신의 진정한 조종자입니다. 당신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만날 것입니다. 플레밍을 빙의시킨 후에."
이준호는 지워진 이름을 응시했다. 검은 줄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글자들. 이름의 길이로 보아 세 글자. 아니, 네 글자인가? 직책을 나타내는 글자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익숙한 획의 조합. 첫 번째 획은 수직이고, 두 번째는 가로로 뻗어 있었다. 그 다음이 복잡했다. 마치 그 글자가 의도적으로 더 두껍게 칠해진 것처럼. 하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슈미트의 기억도, 톰슨의 기억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이름을 철저히 감춰놓았다.
김재훈의 입가에 기울어진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까?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되었습니다. 당신의 능력. 당신의 만남. 당신의 신약. 당신의 정체성 소실. 그리고 당신의 마지막 선택. 모두."
이준호는 손가락을 펴려 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였다. 종이를 집어 들었다. 아니, 누군가가 종이를 집게 했다.
"당신은 이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플레밍을 빙의시킬 것인가, 아니면 강에 몸을 던질 것인가. 하지만 그것도 선택이 아닙니다. 죽은 자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단지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이준호는 일어섰다. 자신이 일어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발이 움직였다. 계단을 내려갔다. 거리로 나왔다. 사람들이 신문을 들고 그를 보았다. 그들의 눈이 신문 기사와 그의 얼굴을 반복해서 비교했다.
한 노파가 이준호에게 다가섰다.
"당신이 이준호입니까? 우리 손주를 살렸다던?"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입이 누군가 다른 이의 말을 하려 했다. 톰슨의 목소리가 나오려 했다. 슈미트의 웃음이 터지려 했다. 뒤폰의 절망이 울려 퍼지려 했다.
이준호는 달렸다.
한강 둔치로.
플레밍의 사진을 들고.
자신의 손인지 확실하지 않은 손으로.
세 개의 영혼이 한 구의 몸을 지배하는 와중에도, 남은 자신의 일부는 저항했다. 강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 무언가가 울부짖었다. 이준호라는 이름이 뇌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울렸다. 하지만 그 울음은 세 개의 목소리에 묻혔다. 손가락이 사진을 찢으려 했다. 아니,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사진을 들고 있게 했다. 그리고 강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발이 멈췄다. 발목이 누군가에게 잡혔다.
"이준호."
박의령이었다.
스승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의 손은 이준호의 발목을 잡고 있었고,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박의령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그는 이준호를 찾기 위해 종로의 모든 골목을 헤맸다. 여인숙에서 출발한 발걸음을 따라 거리를 누비며.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그를 뒤따랐다. 발자국이 들렸다. 하지만 박의령은 멈추지 않았다. 편지를 전해야 했다. 이준호에게. 그 편지는 그의 주머니에서 빼앗길 뻔했다. 뒤따르던 발걸음이 가까워졌을 때, 박의령은 몸을 날렸다. 편지를 품에 안고. 누군가의 손이 그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박의령은 놓지 않았다. 강변에 도달할 때까지. 이준호를 찾을 때까지.
"편지를 읽었습니까?"
"편지?"
이준호는 자신이 말한 것인지, 아니면 슈미트가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박의령이 주머니에서 낡은 종이를 꺼냈다. 편지였다. 봉인이 뜯어져 있었다. 손글씨는 박의령 자신의 것이었다. 종이의 가장자리는 흙으로 더럽혀 있었다. 누군가와 싸우는 과정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박의령은 그 편지를 지켜냈다. 목숨을 걸고.
박의령이 편지를 펼쳤다. 내용은 짧았다.
**또 다른 기술자가 있다. 하지만 그를 찾으면 돌아올 수 없다. 그 앞에, 당신은 한 가지를 알아야 한다. 신약을 만든 자는 당신이 아니다. 신약을 원한 자가 있다. 정부의 누군가. 김재훈이 그 누군가의 부하일 뿐이다. 그 누군가는 신약을 이용해 조선을 다른 목적으로 조종하려 한다. 당신이 구하려던 조선은 이미...**
편지가 여기서 끝났다. 끝이 찢겨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사라졌다. 박의령이 쓰던 중 누군가가 편지를 빼앗아갔던 것이다. 아니면 박의령이 의도적으로 찢었던 것이다. 너무 위험한 진실이어서. 그 진실을 누군가는 알아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박의령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왔다. 박의령을 멈추기 위해. 편지를 빼앗기 위해. 하지만 박의령은 강변까지 왔다.
"누가?"
이준호가 물었다.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였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박의령이 이준호의 눈을 보았다. 스승의 눈에는 죽음의 빛이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발자국이 들렸다. 여러 발자국. 빠르게 다가오는 발자국. 누군가들이 강변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박의령은 그들을 들었다. 하지만 이준호에게 말을 마쳐야 했다.
"당신을 만든 자입니다. 정부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박의령이 입을 열려 했다. 더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