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치장의 쇠사슬이 풀린 지 사흘째였다.
이준호는 한강 둔치의 허름한 여인숙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손가락이 떨렸다. 톰슨의 기억에서 비롯된 떨림인지, 슈미트의 그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손등을 들었다. 피부 결이 낯설었다. 한 달 전 자신의 손이 이렇게 거칠었던가? 톰슨은 실험실에서 화학 약품을 다뤘다. 그 손이 지금 자신의 손 위에 겹쳐 있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한강의 냄새—진흙, 썩은 물풀, 인분. 1890년대 조선의 냄새다. 이준호는 이 냄새를 혐오했던가? 슈미트는 이것을 '미개한 동양의 악취'라고 불렀다. 톰슨은 이것을 '인간의 고통의 냄새'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이준호는?
방문이 열렸다.
"이준호."
김재훈이었다. 정부 관리의 얼굴에는 결정적 무언가가 떠 있었다. 이준호는 일어나 앉았다. 움직임이 과도했다. 톰슨의 민첩한 반사신경이 발동된 것이다.
"세 번째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준호가 먼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압니다. 플레밍. 스코틀랜드 세균학자. 또 한 명의 기술자.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톰슨의 기억이 슈미트와 뒤섞이고, 제 기억은 물처럼 흘러내립니다. 세 번째를 하면 저는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이준호는 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 안의 얼굴을 봤다.
눈썹의 모양이 이상했다. 슈미트처럼 진했다. 눈동자는 톰슨의 차가움을 담고 있었다.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는 냉소가 맺혀 있었다. 이것이 내 얼굴인가?
"이미 늦었습니다."
김재훈이 웃었다. 그 웃음은 동정이 아니라 승리의 웃음이었다.
"당신의 신약이 두 번째 빙의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십니까?"
김재훈은 책상 위에 서류 한 장을 내려놓았다. 영문으로 된 보고서였다. 제목은 명확했다:
**「ANALYSIS OF CHOSON PHARMACEUTICAL INNOVATION: SUSPECTED SUPERNATURAL ORIGIN」**
"런던에서 보낸 것입니다. 영국 왕립 학회의 분석입니다. 당신의 신약의 화학 구조가 톰슨의 미발표 논문과 일치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불가능한 일치입니다. 톰슨은 조선에서 그 논문을 완성한 적이 없거든요."
김재훈은 보고서의 핵심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분자 구조식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옆에 톰슨의 서명이 있었다. 1887년 런던에서 기록된 것이었다.
"당신은 톰슨의 기억을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의 미완성 논문을 당신의 손으로 완성했습니다. 제국들이 깨달은 것은 간단합니다. 당신은 영혼 빙의 능력자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서양의 기술을 강탈하고 있다."
이준호는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수치들이 정확했다. 너무나 정확했다.
"이것이 세상에 나가면?"
이준호가 물었다.
"조선의 무당이 악마의 힘으로 기술을 갈취한다는 이야기가 제국들의 신문에서 얼마나 잘 팔려나갈까요? 그리고 당신의 신약은?"
이준호가 거울을 집어던졌다. 유리가 깨졌다.
"그래서 당신이 제 정체성을 더 강하게 파괴하려고 합니까?"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구하려고 합니다."
김재훈이 의자에 앉았다.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세 번째 빙의를 하십시오. 플레밍의 기술을 습득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신약은 더 완벽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제국들의 분석을 무효화합니다."
김재훈은 보고서를 펼쳤다. 그 위에 또 다른 문서를 덮었다. 가설적 분석이었다. 만약 플레밍의 항생물질 이론이 더해진다면 신약의 분자 구조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었다.
"신약이 완벽하면, 그것은 더 이상 빙의의 결과가 아니라 순수한 조선의 과학이 됩니다. 왜냐하면 화학 구조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플레밍의 기술이 더해지면, 신약의 분자 구조는 기존의 어떤 이론과도 맞지 않게 됩니다. 제국들의 학자들도 이것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그러면 저는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남습니다."
이것이 계약의 조건이었다. 이준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슈미트를 빙의할 때부터. 톰슨을 빙의할 때부터.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김재훈이 나가자, 이준호는 거울의 파편들을 주웠다. 여섯 조각. 여섯 개의 얼굴이 보였다. 모두 다르고, 모두 자신이었다.
밤이 내렸다.
이소영이 진료소 뒷방에 나타났을 때, 이준호는 약재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약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톰슨이나 슈미트와는 무관한 냄새.
"아버지가 당신을 찾으셨습니다."
이소영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이준호는 돌아보지 않았다.
"당신이 세 번째 빙의를 준비 중이라고 하셨어요."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버지입니다."
이소영이 뒤쪽으로 물러섰다. 이준호가 돌아섰을 때,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세 번째를 하면, 당신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저는 그 광경을 봐야 하는군요. 제가 사랑하던 사람이 조각조각 사라지는 것을."
이준호가 손을 뻗었다. 이소영의 팔을 잡으려고.
"당신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닙니다."
이소영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더 이상 당신이기를 멈추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녀는 돌아섰다. 뒷방 문을 열었다. 밖은 밤이었다.
"기다려주세요."
이준호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이소영은 멈추지 않았다. 밤의 거리로 사라져 갔다. 이준호는 빈 방에 남겨졌다. 약재의 냄새 속에서, 자신의 손을 들어 봤다. 그것이 정말 자신의 손인지 확인하기 위해.
새벽 두 시. 최영수 기자가 찾아왔다. 신문사의 야근 기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 저는 큰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당신의 신약의 정체에 대해서요."
이준호는 말하지 않았다.
"당신이 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당신이 임사 상태의 인물들의 기억을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신약이 실은 그들의 지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어디서 그런 말을?"
"조선 정부 내 한 관리로부터입니다. 그는 당신이 세 번째 빙의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최영수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의사 선생님. 혹시 당신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꿈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슈미트의 꿈? 톰슨의 꿈? 아니면 조선의 꿈이라고 명명된 누군가의 꿈?"
이준호는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저는 기사를 쓸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답변을 하든. 하지만 당신도 알 겁니다. 이 기사가 세상에 나가면, 당신의 신약은 더 이상 신약이 아니라 '악마의 산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요. 제국 제약 회사들은 이것을 환영할 것입니다."
최영수는 신문 원고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제목은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의료 영웅 이준호, 실은 영혼 빙의 능력자?—신약의 정체성을 둘러싼 미스터리'**
이준호는 제목을 읽고 침묵했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최영수는 나갔다. 원고만 남겨졌다.
박의령이 나타난 것은 자정이 지난 후였다.
늙은 한의사는 손에 편지를 들고 있었다. 오래된 종이였다. 이전에 건네줬던 그 편지의 나머지 부분이었다.
"이것을 읽어 보거라."
박의령은 편지를 펼쳤다. 글씨는 떨렸다. 마치 누군가 죽음의 순간에 쓴 것처럼.
*'또 다른 기술자가 있다. 하지만 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사람은 당신의 정반대편에 있을 것이다. 당신이 서양 기술을 흡수한다면, 그 사람은 동양 기술을 지킬 것이다. 당신이 조선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위해 조선을 버릴 것이다. 그 순간이 올 때, 진정한 선택의 기로가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조선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한 선택이 될 것이다.'*
박의령이 편지를 내려놨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하지만 너는?"
이준호는 말하지 않았다.
"세 번째 빙의를 하면, 넌 완전히 사라진다. 슈미트도 톰슨도 아닌, 어떤 제3의 존재가 된다. 하지만 세 번째 빙의를 하지 않으면, 조선은 제국 제약 카르텔의 수중으로 돌아간다. 두 선택 모두 끔찍하다."
박의령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눈빛은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묻고 싶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멈추고, 원래의 이준호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나아갈 것인가?"
이준호가 거울 파편을 집어 들었다. 그 안에 여섯 개의 얼굴이 보였다.
"제가 원래 이준호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모르겠다."
박의령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진 것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단호했다. 하지만 그 단호함이 누구의 것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세 번째 빙의를 하겠습니다."
박의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버지의 얼굴이 아닌, 스승의 얼굴로.
"그렇다면 이것을 받아 두거라."
박의령이 손에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상자였다. 그 안에는 한 줄의 글귀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세 번째 기술자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나타날 때, 넌 알 것이다."
박의령이 나갔다. 뒷모습이 늙어 보였다.
이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방 안에서, 거울 파편들과 함께.
그 파편 중 하나에 얼굴이 비쳤다. 슈미트도 아니고, 톰슨도 아니고, 자신도 아닌 누군가의 얼굴.
그 얼굴이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
한강 둔치에서 밤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레밍. 스코틀랜드 세균학자.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그의 기억과 지식은 여전히 살아 있다. 어디선가.
이준호는 손에 든 사진을 봤다. 플레밍의 얼굴. 그 얼굴에는 결정적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죽음 직전의 깨달음. 혹은 절망.
종이가 밤이슬에 젖어 자꾸만 구겨졌다. 이준호는 사진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꺼냈다를 반복했다. 손이 떨렸다.
정해진 길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
이준호는 박의령이 건넨 상자를 다시 꺼냈다. '세 번째 기술자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무슨 뜻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것.
김재훈이 말했던 대로, 제국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윌슨이 한강 둔치에서 보여줬던 문서—조선 정부와의 5년 장기 독점 계약서. 그 서명란에는 누군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조선 정부 내부의 누군가.
한강의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어두운 물결 위에 달빛이 부서졌다. 그 부서진 달빛들이 마치 거울 파편처럼 보였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준호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누가 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준호."
이소영의 목소리였다.
이준호가 천천히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형체가 보였다. 진료소의 약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호흡이 가팬 것으로 보아 빨리 온 것 같았다.
"왜 왔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그 말투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소영이 가까이 왔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이준호는 그녀의 눈이 빨갛게 부어 있음을 알았다. 울었다는 뜻이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이소영이 말했다.
"당신이 세 번째 빙의를 하기로 했다고."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소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은 이미 반은 죽어 있습니다. 세 번째 빙의를 하면 완전히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죽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조선을 사랑하십시오."
이준호가 말했다. 그것은 슈미트의 말투였다. 냉정하고, 계산적이고, 감정이 없는.
이소영이 뒷걸음질 쳤다.
"당신은 정말로 그렇게 변해 버렸습니까?"
"모릅니다."
이준호가 진실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제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세 번째 빙의를 하지 않으면, 제국들이 조선의 의료를 완전히 장악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빈민가의 환자들은 계속 죽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책임입니까?"
이소영이 외쳤다.
"당신은 의사지, 국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의사도 국가의 일부입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의사가 환자를 외면하면, 그것은 국가가 국민을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죽는 것도 같은 논리입니까?"
이소영이 물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는 것입니다.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 되면, 나도 남겨진 사람이 됩니다."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가 돌아올 수 있다면 돌아오겠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돌아올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발 제 대신 계속 살아주십시오."
이소영이 앞으로 나아가 이준호의 옷깃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당신의 손이 낯설었던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미 당신은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육신만 남겨진 채."
이소영은 이준호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호도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붙잡는다면,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선택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십시오."
이준호가 말했다.
"더 이상 이 곳에 있지 마십시오."
이소영이 한참을 서 있다가, 천천히 손을 놓았다.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렇다면 이별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떠나면, 나도 떠날 것입니다. 진료소를 문을 닫고, 조선을 떠날 것입니다. 해외로 나가겠습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만나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이소영은 뒤돌아섰다. 달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결국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한강 둔치에는 이준호 혼자만 남겨졌다.
플레밍의 사진을 들고.
그 사진 속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확인했다. 손톱의 모양이 다르고, 손의 크기도 달랐다. 더 이상 이준호의 손이 아니었다.
"세 번째 기술자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박의령이 말했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밤이 더 깊어졌다.
한강의 물이 더 차갑게 흘렀다.
그리고 이준호는 깨달았다. 박의령이 말했던 '진정한 선택의 기로'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세 번째 빙의를 하겠다는 결정도, 이소영을 떠나보내는 것도, 모두 이미 정해진 것들이었다.
진정한 선택은 아직 앞에 있었다.
---
최영수 기자의 기사가 신문에 나왔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조선일보의 1면. 그 제목은 대담했다.
**'의료 영웅 이준호, 실은 영혼 빙의 능력자?—신약의 정체성을 둘러싼 미스터리'**
기사는 신중했다. 추측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추측하건대', '혹시 모르지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하지만 그 추측들이 모여지면, 하나의 확실한 그림이 그려졌다. 이준호의 신약은 그의 고유한 기술이 아니라, 남의 기억에서 빼앗은 지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그림 말이다.
신문이 배포되자마자, 시장은 요동쳤다.
제약 공장의 신약 판매량이 3일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빈민가 환자들은 여전히 신약을 사기 원했지만, 양반과 중상층 시민들은 의심했다. 약국 앞에는 환자들의 줄이 줄어들었다. 공장 직원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공장 주변의 상인들도 장사가 끊겼다. 한 달 내에 공장 폐쇄 위기까지 몰려왔다.
도마스 윌슨은 그 기사를 읽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완벽합니다. 이제 그 한의사는 끝입니다. 신약의 신뢰성이 무너졌으니까요."
그가 이준호에게 직접 말한 것이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전해줬다. 최영수 기자가.
최영수는 이준호를 찾아왔다. 진료소가 아닌, 제약 공장 뒤의 창고에서.
"죄송합니다."
기자가 말했다.
"기사를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자들이 알 권리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기사는 정확했습니다. 저는 영혼 빙의 능력자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제 기술이 아니라 남의 기억입니다."
"그렇다면 후회하십니까?"
최영수가 물었다.
"아니면 정당화하실 겁니까?"
"둘 다입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후회합니다. 왜냐하면 이소영이 떠났고, 박의령이 노심초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정당화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신약 때문에 수천 명의 환자들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최영수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졌다.
"당신은 정말로 이준호입니까?"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더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최영수가 말했다.
"당신이 세 번째 빙의를 할 때, 누구를 빙의시킬 겁니까?"
"플레밍입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스코틀랜드 세균학자.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그의 기억은 아직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엔?"
"모릅니다."
이준호가 진실하게 대답했다.
"그 후엔 제가 누구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최영수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연민이 있었지만, 동시에 거리감도 있었다.
"그렇다면 제 기사는 당신에게 도움이 됩니까?"
"네."
이준호가 대답했다.
"신약의 신뢰성이 무너졌으니, 이제 저는 더 강한 신약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세 번째 빙의가 필수입니다. 당신의 기사가 저를 그 길로 밀어 넣었으니까요."
"그러면 결국 당신은 처음부터 기사 유포를 예견했던 겁니까?"
최영수가 물었다.
이준호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모든 것을 말했다.
최영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냥 돌아갔다.
진료소 뒤의 창고에는 이준호 혼자만 남겨졌다.
그리고 그 순간, 박의령이 나타났다.
늙은 한의사의 손에는 또 다른 편지가 들려 있었다. 이번엔 완전한 편지였다. 끝이 찢겨 있지 않은.
"이제 읽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박의령이 말했다.
이준호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편지의 내용은 짧았다.
*'세 번째 기술자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그는 당신의 정반대편에 있을 것이다. 당신이 서양을 흡수했다면, 그는 동양을 지킬 것이다. 당신이 조선을 위해 자신을 버렸다면, 그는 자신을 위해 조선을 버릴 것이다. 그 순간이 올 때, 진정한 선택의 기로가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조선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한 선택이 될 것이다. 세 번째 기술자를 찾지 말고 기다려라. 그는 반드시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도 같은 능력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이준호의 손을 멈추게 했다.
'그도 같은 능력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무슨 뜻입니까?"
이준호가 박의령을 바라봤다.
"세 번째 기술자도 빙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박의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이준호의 눈을 바라봤다.
"이제 너는 알아야 한다. 당신이 빙의 능력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박의령이 말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그 순간, 창고의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목소리가 이준호와 똑같았으니까.
아니, 더 정확히는 이준호의 목소리에서 모든 외부 것들을 제거한, 순수한 조선의 말투였다.
"드디어 만나네요."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김재훈입니다. 그리고 당신처럼, 나도 빙의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달리, 나는 아직 누구도 빙의하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 사람의 손이 보였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차갑고,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의 진정한 게임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