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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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유치장의 철창이 열렸을 때, 이준호는 이미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손목의 쇠사슬을 풀고 나온 그는 박의령과 이소영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보였지만 감정이 따라오지 않았다. 스승의 주름진 이마, 제자 딸의 젖은 눈동자—그것들은 마치 낡은 그림 속의 형상처럼 느껴졌다.

"나가자."

이준호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슈미트의 독일 억양이 섞여 있었고, 더 낮고 차가웠다.

경찰서 뒷문을 나선 그들을 기다던 사람은 김재훈이었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정부 관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준호를 바라봤다.

"3일의 최후통첩이 끝나기 전에 나왔군요. 현명한 결정입니다."

"우리를 놓아줄 권력이 있으신가요?"

"권력이 아니라 필요성입니다. 조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둘 수 없지 않습니까?"

김재훈은 이준호를 따로 불렀다. 박의령과 이소영이 기다리는 수레에서 떨어진 골목, 한강 냄새가 나는 어두운 장소였다. 야간 순찰대는 이미 피해 있었다.

"윌슨은 3일을 기한으로 당신의 제조법을 요구합니다. 그 후 당신은 죽을 겁니다. 사업상 실패, 혹은 전염병으로. 명분은 충분합니다."

이준호는 침묵했다. 슈미트의 기억이 흐르고 있었다. 제국 제약 카르텔의 내부 메모, 경쟁사 제거 사례들. 그것들은 조선이라는 낯선 땅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김재훈은 주머니에서 문서를 꺼냈다. 공장 건설 계획, 정부 지원금 규모, 수출 항로. 숫자들이 정렬된 종이였다.

"조선 정부가 당신을 보호합니다. 신약을 국가 사업으로 등록시키고, 공장을 건설하며, 해외 수출까지 추진합니다. 그러면 윌슨은 당신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은 국가 사업의 핵심이 되고, 그것을 훼손하는 것은 조선에 대한 침략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국가 사업이라는 것이..."

"국익입니다. 조선의 약이, 조선의 힘이 됩니다. 5년 내 조선은 동아시아에서 의약품 수출국이 될 것입니다. 제국의 독점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준호의 심장이 빨라졌다. 아니, 그것은 슈미트의 심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 속에서 동아시아 시장 점유율, 수익성 분석, 경쟁사 제거 전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그것이 조선을 위한 것이었다.

"조건이 있습니까?"

"당신은 약을 만드십시오. 정부는 나머지를 처리합니다. 정치, 외교, 자본. 그것들은 정부의 일입니다."

"약은 약이어야 합니다."

이준호가 아니라 슈미트가 말한 것 같았다. 아니, 이제 그 구분이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합니다. 당신의 약이 강하면 강할수록, 조선은 강해집니다. 이것이 국익입니다."

김재훈은 떠났다. 문서는 이준호의 손에 남았다.

한강 냄새가 진했다. 이준호는 종이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박의령과 이소영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을 때, 첫 번째 균열이 생겼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소영이 물었다. 그녀는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목의 쇠사슬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당신의 손이 낯설어요."

"나는 여전히 나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소영의 눈물이 흘렀다. 그것을 보는 이준호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화면 속의 장면을 보는 것처럼.

박의령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 속에는 이미 예정된 비극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약은 약이어야 한다."

스승의 목소리가 떨렸다.

"정치의 도구가 되면 안 된다."

"조선을 위해서는 정치도 필요합니다."

이준호는 자신이 누구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김재훈의 합리성? 슈미트의 계산? 아니면 자신의 절망?

"약을 만들 자리가 필요합니다."

"공장을 건설하겠습니다. 정부가 지원합니다."

박의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낡은 편지를 다시 꺼냈다. 백 년 전 의관이 남긴 글씨.

"또 다른 기술자가 있다. 하지만 그를 찾으면..."

편지의 끝이 찢겨 있었다. 박의령의 손가락이 그 끝부분을 더듬었다.

"돌아올 수 없다."

그는 중얼거렸다. 마지막 문장은 읽을 수 없게 되어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완성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제약 공장의 터가 선정되었다. 서울 외곽, 한강변의 넓은 땅. 정부의 지원금이 흘러들어갔다. 목재, 벽돌, 유리—근대 공장의 재료들이 쌓여갔다. 조선에서 처음 보는 규모였다.

이준호는 매일 그 자리에 섰다. 공장 설계도를 들고, 기계 배치를 지시했다. 슈미트의 기억이 정확했다. 증류 탑, 원심분리기, 배양 탱크. 모든 것이 떠올라 입 밖으로 나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독일어 기술 용어들을 들은 노동자들은 경외감을 느꼈다. 신문은 '조선의 기적'이라고 썼다. 최영수 기자의 기사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의사 선생님, 혹시 당신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꿈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기자의 질문을 이준호는 피했다. 대신 신약의 임상 데이터를 보여줬다. 콜레라 사망률 15%, 장티푸스 치료율 87%. 수치들이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공장 근처의 작은 여인숙에서 이준호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 남자는 영국 제약사 회사의 기술자였다. 이름은 로버트 톰슨. 콜레라에 감염되었고, 3시간 안에 죽을 것이 분명했다. 여인숙 주인이 이준호를 불렀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왔다고 하니..."

톰슨의 눈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호흡이 불규칙했다. 그의 옆에는 수첩이 놓여 있었다. 영국 글래스고우 약품의 신약 개발 노트. 항생제 연구 기록.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슈미트의 기억에 없던 것들이 그 노트에 적혀 있었다. 페니실린의 전구체. 세균 번식 억제 원리. 조선의 풍토병뿐 아니라 모든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광범위 항생제의 설계도.

"누가 이 자를 여기 보냈는가?"

여인숙 주인이 떨렸다.

"김재훈 관리님이 보낸 사람이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라고..."

이준호는 톰슨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맥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임사 상태. 정확히 빙의 능력이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톰슨이 중얼거렸다. 영어였다.

"조선... 저를 구해주면... 모든 것을..."

이준호는 침을 준비했다. 한약 침구. 기혈을 소생시키는 기술. 그리고 슈미트의 기억 속 심폐소생술.

그 순간, 이준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톰슨을 살리면 빙의가 일어날 것이다. 그의 기술, 기억, 지식이 이준호의 뇌에 흘러들어올 것이다. 더욱 강력한 신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의료 독립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박의령의 말이 떠올랐다. 편지의 끝부분. "돌아올 수 없다."

그리고 이소영의 말. "당신의 손이 낯설어요."

이준호의 손이 멈췄다. 침이 반쯤 들어간 상태에서. 톰슨의 팔 위에서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슈미트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더 강해져라. 더 완벽해져라. 조선을 위해.

하지만 그 아래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박의령의 목소리. 약은 약이어야 한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침을 빼야 하는가, 아니면 깊숙이 꽂아야 하는가. 두 선택 사이에서 그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톰슨의 팔이 그의 손 아래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호흡이 끊어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분 단위였다. 침을 깊숙이 꽂으면 빙의가 완성될 것이다. 한 번의 움직임. 손가락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슈미트의 기억이 계산했다. 톰슨의 기술로 만든 신약. 페니실린 계열의 광범위 항생제. 그것이 조선에 가져올 변화. 의료 독립을 넘어 의료 패권. 동아시아 시장의 장악. 조선이 제국이 되는 길.

그 길은 명확했다. 합리적이었다.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톰슨의 얼굴을 봤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구해달라고 간청하던 얼굴. 그리고 그 얼굴 너머로 다른 얼굴들이 보였다.

박의령의 얼굴. 백 년 전 편지를 지켜온 얼굴. "약은 약이어야 한다"고 중얼거리던 얼굴.

이소영의 얼굴. 자신의 손이 낯설다고 울던 얼굴.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절망하던 얼굴.

그리고 자신의 손. 침을 들고 있는 손. 그 손이 누구의 손인가.

이준호는 침을 천천히 빼기 시작했다. 톰슨의 팔에서 빠져나오는 침. 그 움직임이 마치 자신의 영혼을 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재훈이었다. 그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가?

"이 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침은 여전히 톰슨의 팔에 박혀 있었다.

"아니다. 당신은 선택을 하고 있다."

김재훈이 걸어왔다. 그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마치 실험을 지켜보는 과학자처럼.

"톰슨은 이미 죽어가고 있다. 그를 살리면 당신은 한 걸음 더 멀어진다. 당신 자신에게서. 하지만 그의 기술이 있으면, 조선의 약은 세계 최고가 될 것이다. 이것이 국익이다."

"당신이 이 자를 여기 보냈습니까?"

"조선의 운명을 위해."

이준호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어느 방향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침을 깊숙이 꽂는 것인가, 아니면 빼내는 것인가.

침이 서서히 움직였다. 톰슨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방향이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한 번의 움직임이면 된다. 한 번의 결정이면 된다.

그 순간, 이준호의 다른 손이 움직였다. 첫 번째 손을 멈추는 손. 침을 들고 있는 손의 손목을 잡았다.

두 손이 충돌했다. 침은 중간에 멈췄다. 톤슨의 팔에 반쯤 박힌 채로. 이준호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그대로 신체에 표현되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김재훈이 한 발 다가섰다.

"모르겠습니다."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이준호도, 슈미트도 아닌 누군가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제3의 존재.

침을 빼내기 시작했다. 천천히. 마치 자신을 설득하듯이. 톰슨의 팔에서 침이 빠져나왔다. 혈흔이 남았다. 그 작은 상처가 마치 자신의 내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새로운 침을 집었다. 다른 혈위를 찾았다. 기혈을 소생시키는 정확한 지점. 손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명확했다. 이것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명확함.

"당신은 기회를 버렸습니다."

김재훈이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선택했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새로운 침이 정확한 혈위에 꽂혔다. 톰슨의 몸이 경련했다.

"톰슨을 죽이는 것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더 이상 나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조선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만드는 것은 조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톰슨의 호흡이 가빠졌다. 죽음의 경련이 아니었다. 생명이 돌아오는 경련이었다.

"당신은 나를 실망시켰습니다."

김재훈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실망보다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계산이 틀렸을 때의 감정. 예상 밖의 변수가 나타났을 때의 감정.

"그렇다면 나를 죽이십시오."

이준호가 말했다.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조선의 신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약은 조선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은 아직 모릅니다."

김재훈이 말했다.

"모릅니다?"

"윌슨은 당신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이 결과를 정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당신이 거절했다는 것을."

김재훈이 돌아섰다. 여인숙을 나가기 전에 그는 한 마디를 더 했다.

"박의령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만든 공장도."

그 말의 의미를 이준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협박이라는 것은 명확했다. 그리고 더 깊은 뜻이 숨어 있다는 것도.

이준호는 톰슨을 돌봤다. 밤새 침을 놓고, 약을 지었다. 새벽이 되자 톰슨의 눈이 떠졌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톰슨이 영어로 물었다.

"나는 이준호입니다. 조선의 의사입니다."

"당신이... 날 살렸습니까?"

"네."

"왜?"

이준호는 한참을 생각했다. 슈미트의 기억에서는 그런 질문이 나올 여지가 없었다. 모든 행동은 계산이었고, 모든 계산은 이익이었다.

"당신이 죽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 기술을 원하지 않습니까?"

"원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죽어서 얻는 기술은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체에서 꺼낸 것일 뿐입니다."

톰슨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수첩을 들었다.

"이것을 원하십니까?"

"당신이 원한다면."

이준호가 말했다.

"당신의 기술이 조선을 위해 사용되기를 원합니까?"

톰슨은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내 기술이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조선에 남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기술을 조선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시겠습니까?"

톰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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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을 나온 이준호는 한강 둑에 섰다. 밤하늘이 검었다. 별들이 흐릿했다.

손가락을 펴고 오므렸다. 이제 그것은 자신의 손이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손이었다.

그는 거울을 찾았다. 여인숙 주인의 작은 거울. 손에 들고 자신의 얼굴을 봤다. 슈미트의 얼굴도, 톰슨의 얼굴도 아닌 자신의 얼굴. 그 얼굴에서 자신의 이름을 다시 기억했다. 이준호. 조선의 의사. 박의령의 제자. 이소영을 사랑하는 남자.

그 이름들이 돌아왔다. 하나씩. 마치 죽음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공장에서 불이 켜져 있었다. 24시간 가동 준비. 새로운 신약 개발을 위해.

박의령과 이소영은 어디에 있을까.

이준호는 그들을 찾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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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뒤, 조선 정부 관보에 공식 발표가 났다. 신약 제조 사업이 국가 주요 산업으로 지정되었고, 한강 변에 대규모 제약 공장 건설이 승인되었다. 이준호의 이름은 '조선 의료 자립의 설계자'로 기록되었다. 신문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신약의 제조 기술은 조선 정부의 독점이 아니라 공개되었다. 모든 약사와 의사가 그 제조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가격도 최대한 낮게 책정되었다.

도마스 윌슨은 바이엘 본사에 긴급 전보를 보냈고, 런던의 글래스고우 약품 이사회는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조선의 신약이 독점되지 않는다고?"

"네. 공개된 기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복제할 수 있다는 뜻인가?"

"기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무엇인가?"

"조선 정부가 이미 대량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가격은 우리의 10분의 1입니다."

회의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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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촌 빈민가의 약방 거리는 활기를 되찾았다.

박의령의 약방 문이 다시 열렸다. 그는 여전히 낡은 의학서를 펼쳐놓고 있었지만, 이제 그의 손가락은 떨리지 않았다.

"약은 약이어야 한다."

박의령이 말했다.

이준호가 그 옆에 섰다. 한동안 그들은 말 없이 의학서를 함께 들었다. 제자의 손이 스승의 손과 같은 높이에 있었다.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그리고 약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박의령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비극이 아니라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렇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이제 자신의 것이었다. 슈미트의 억양도, 톰슨의 어조도 섞여 있지 않았다.

진료소 기록부를 정렬하고 있던 이소영이 고개를 들었다. 이준호의 필적이 담긴 종이들—처방전, 약 조제 기록, 환자 상태 메모. 글씨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필압이 부드러워졌고, 획이 둥글어졌다.

"의사 선생님."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확실함이 있었다.

"당신이 돌아왔습니다."

"네. 나는 돌아왔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는 이소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말은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 슈미트의 기억에도, 톰슨의 기억에도 없는 말이었다.

이소영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이번엔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박의령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있었지만, 그 위에 미소가 떠 있었다.

"톰슨은?"

이준호가 물었다.

"공장에 있습니다. 기술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의령이 대답했다.

"그는 조선의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그리고 그는 당신이 한 선택을 이해했습니다."

박의령이 말했다. 그의 손이 이준호의 어깨에 얹혀졌다.

"당신은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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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공장은 24시간 가동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조선의 자산이었다. 이준호와 톰슨은 함께 일했다. 톰슨은 조선의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이준호는 톰슨의 기술을 배웠다.

신약은 조선 전역에 배급되었다. 빈민가의 아이들도, 양반의 자식들도 모두 같은 약을 받았다. 가격은 누구나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최영수 기자는 그 장면들을 기록했다. 그의 기사는 조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조선의 약이, 조선 사람들을 살리다."

하지만 그 기사의 말미에 작은 문단이 있었다.

"이준호 의사는 더 이상 변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맑아졌고, 목소리가 안정되었으며, 환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따뜻해졌다. 그는 다시 이준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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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지하실에서 이준호는 혼자 서 있었다.

그 아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설계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톰슨의 기억 속에도 없었다.

하지만 슈미트의 기억 속에는 있었다.

"바이엘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다. 그곳은 국가다. 그리고 모든 국가는 비밀을 가진다."

이준호는 벽을 두드렸다. 빈 소리가 났다.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였다.

"의사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저입니다. 이소영입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 이준호는 그 얼굴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당신을 찾았습니다."

이소영이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등불이 들려 있었다.

"아버지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톰슨 선생님도."

"무엇이 있었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윌슨이 왔습니다."

이소영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신약의 기술을 사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독점권을 요구했습니다. 조선의 신약을 우리가 관리하겠다고."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아버지는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톰슨 선생님도."

이소영이 말했다.

"그들은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윌슨은 최후통첩을 남겼습니다."

"최후통첩?"

"당신이 기술을 양도하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그리고..."

이소영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당신을 죽이겠다고."

이준호는 침묵했다. 슈미트의 기억이 다시 움직였다. 협박, 압박, 최후통첩. 그것들은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박의령의 목소리. 이소영의 목소리. 그리고 톰슨의 목소리. 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거절합니다."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위층으로 가자."

---

회의실에서 윌슨은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놨다.

"신약의 기술을 우리에게 양도해 달라는 제안입니다."

박의령, 톰슨, 최영수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결연했다.

"조건이 있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독점권입니다. 조선의 신약은 우리가 관리합니다. 생산, 판매, 수출. 모든 것을."

"그리고 조선은?"

"조선은 우리에게 로열티를 받습니다. 충분한 액수입니다."

윌슨이 숫자를 제시했다. 확실히 큰 금액이었다. 조선 정부가 거절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그 대신 당신은 어떻게 됩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나는?"

"당신의 약이 조선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 되면, 당신은 어떻게 됩니까?"

윌슨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위협이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조선의 의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을 보호합니다."

"보호?"

"당신이 만든 약은 강합니다. 너무 강해서 위험합니다. 그런 약이 세상에 퍼지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나라가 그것을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원할 것입니다. 당신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입니다."

윌슨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명확한 협박이 들어 있었다.

"우리가 당신을 보호하면, 당신은 안전합니다. 그리고 조선도."

"조선도?"

"조선의 신약이 우리의 손에 있으면, 다른 제국들은 조선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윌슨은 계약서를 밀어냈다.

"당신의 선택입니다. 보호받는 길. 아니면..."

"아니면?"

이준호가 물었다.

"아니면 당신은 혼자가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윌슨의 눈이 박의령, 이소영, 톰슨을 차례로 바라봤다. 그것은 명확한 협박이었다.

"당신의 공장도 안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국의 압력은 예상보다 강할 수 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 소리는 마치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준호는 침묵했다. 슈미트의 기억이 계산하고 있었다. 로열티의 규모, 조선의 이익, 자신의 안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전.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 균형 아래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박의령의 목소리. 이소영의 목소리. 그리고 톰슨의 목소리. 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거절합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왜입니까?"

윌슨이 물었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왜냐하면 이 기술은 조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선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보호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거절할 수 없습니다."

윌슨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위협이었다.

"당신은 이미 나와 거래했습니다. 톰슨을 죽이기로."

"아닙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나는 톰슨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조선의 의사입니다."

톰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선에 남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은 조선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윌슨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움직였다. 마치 무언가를 누르려는 듯이.

"당신들은 제국을 상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상대하고 있습니다."

박의령이 말했다.

"신약은 이미 조선 전역에 배급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약사와 의사가 그 제조법을 배웠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죽인다고 해도, 조선의 약은 계속될 것입니다."

윌슨은 말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최영수를 바라봤다. 기자는 펜을 들고 있었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당신은 나를 협박하고 있습니까?"

윌슨이 물었다.

"아닙니다."

최영수가 말했다.

"저는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조선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든 신문에 실릴 것입니다."

윌슨은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찢었다.

"당신들은 후회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나는 이미 충분히 후회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선택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조선을 위해. 그것은 같은 것입니다."

윌슨은 회의실을 나갔다. 하지만 나가기 전에 그는 한 마디를 더 했다.

"당신의 공장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제국의 압력을 말입니다."

그 말 이후로 침묵만 남았다.

최영수가 펜을 들었다. 그의 손이 종이 위에서 움직였다.

"이것이 조선의 승리입니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것이 진정한 조선의 승리입니다."

박의령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이제 비극이 아니라 희망이 있었다.

"당신은 돌아왔습니다."

"네. 나는 돌아왔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이소영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의 온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손이 다시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밤하늘이 맑아졌다. 별들이 밝게 빛났다.

조선의 약이, 조선 사람들을 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공장 지하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김재훈의 마지막 경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박의령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만든 공장도."

이준호는 그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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