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서울 남촌의 낡은 다방 '은행나무' 안. 이준호는 마주 앉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도마스 윌슨. 바이엘 동아시아 지역 이사. 콧수염을 깔끔하게 정돈한 얼굴에는 미소가 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당신의 신약이 정말 훌륭합니다, 이 의사님." 윌슨이 찻잔을 들었다. 영어와 조선어가 섞인 발음이었다. "콜레라 사망률 70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정말 인상적입니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만남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세 시간 전, 모르는 이가 진료소에 찾아와 '윌슨 씨가 만나고 싶다'고 했다. 박의령은 가지 말라고 했다. 이소영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준호는 왔다.

"하지만 말입니다." 윌슨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당신도 알겠지요. 조선의 의료 시장은 이미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조선 정부의 관인(官印). 그 아래 서명이 여럿 있었다. 모두 이준호가 본 적 있는 이름들이었다. 내각 대신들이었다.

"1890년, 1892년, 1894년. 세 번의 갱신. 조선 정부는 세 번이나 우리에게 조선 내 모든 의약품 수입·판매 독점권을 주었습니다. 계약서는 영구적입니다."

윌슨이 한 손가락으로 도장을 짚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업 계약이 아닙니다. 국가 간 조약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신약이 아무리 좋아도, 조선 시장에서 유통되려면 우리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찻잔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놨다. 다시 집어 들었다. 따뜻한 차가 입술에 닿았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윌슨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당신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윌슨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첫째, 당신의 신약 제조법을 우리에게 넘기는 것. 우리는 당신에게 충분한 보상금을 드릴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자문의로 일하고, 조선에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둘째, 바이엘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것. 당신의 신약은 바이엘의 제품이 되고, 우리가 유통을 담당합니다. 당신은 경영진으로 일하며, 수익의 일부를 받을 것입니다."

윌슨이 다시 웃었다.

"둘 다 합리적인 제안입니다. 당신도 이익을 보고, 조선 환자들도 신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합니다."

"그 둘 다 아니면?"

윌슨의 웃음이 사라졌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조선 정부와의 계약을 위반하는 사람을 우리는 보호할 수 없습니다. 정부의 취단(取單)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진료소는 폐쇄될 것입니다. 당신은 법정에 서게 될 것입니다."

"조선 정부가 그렇게까지 할까요?"

윌슨의 눈이 차가워졌다.

"조선 정부는 이미 우리 편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이준호의 호흡이 빨라졌다. 그는 윌슨의 눈을 피했다.

"사흘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당신이 답을 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윌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선을 위한다는 명분은 훌륭합니다, 이 의사님. 하지만 조선도, 당신도, 결국 현실 속에서만 살아갑니다."

윌슨이 나갔다. 이준호는 혼자 남았다. 찻잔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는 한 모금을 더 마셨다. 그것도 맛이 없었다.

---

진료소로 돌아온 이준호를 박의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의 얼굴에는 분노가 떠 있었다.

"가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만나야 했습니다."

"그들의 협박을 들으려고?"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의령이 한숨을 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이소영이 나왔다. 그녀의 눈이 붉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이소영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당신이 윌슨을 만났다고."

"네."

"그리고?"

이준호는 그녀의 눈을 봤다. 이소영의 손이 떨렸다. 그녀가 이준호의 손을 잡았는데, 손가락이 차가웠다. 아니, 그가 차가웠다.

"조선을 위한 것이라면 해야 합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이소영의 손이 놓였다. 그녀가 한 발 물러섰다.

"당신을 위한 것은 아닌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언제부터 당신은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조선을 위해서, 국익을 위해서.' 당신이 하던 말이 아니었는데."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녀의 말이 옳은 것 같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 누군가 다른 이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슈미트의 목소리였을까? 아니면 박의령의 목소리였을까?

"제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이소영이 그의 팔을 놓았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준호는 혼자 남았다. 그녀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자신이 그녀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저녁이 될 무렵, 최영수 기자가 찾아왔다. 그는 신문사 기자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당신의 신약이 정말 위대한 업적입니다." 최영수가 인사를 했다. "저는 이것을 조선 대중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당신의 일을."

"신문에 나간다고요?"

"네. 당신은 조선의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제국의 약값을 깨뜨린 영웅."

최영수가 수첩을 펼쳤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뭔가요?"

"의사 선생님, 혹시 당신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꿈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입니까?"

최영수가 펜을 들었다. "당신의 눈이 자주 멀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당신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보는 것처럼."

"그건—"

"당신의 신약은 분명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이 정말 당신인지 묻는 거예요. 당신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인지."

이준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주먹을 쥐어 떨림을 감추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호흡도 가빠졌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조이는 것 같았다. 최영수의 질문이 정확히 자신의 내면을 관통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것이 정말 자신의 것인지 묻는 그 질문이.

이준호가 눈을 들었다. 기자의 얼굴을 직시했다.

"당신은 누가 보냈습니까?"

최영수의 펜이 멈췄다.

"무슨 뜻입니까?"

"누가 당신을 보냈습니까?"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윌슨입니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입니까?"

최영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당신이 정말 신문사 기자입니까? 당신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입니까?"

침묵이 흘렀다. 최영수가 수첩을 덮었다.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저는 당신의 진실을 쓰고 싶습니다. 거짓이 아닌."

최영수가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침묵이 남겨졌다. 이준호는 그 기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누가 그를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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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갔다. 이준호는 진료소의 의약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슈미트의 화학 공식이 써진 종이를 들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손으로 쓴 글씨인지, 슈미트의 손으로 쓴 글씨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진료소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이준호가 문을 열었다. 바깥은 어두웠다. 가로등의 불빛 속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중년의 관리처럼 보였다. 얼굴이 차분하고, 눈이 예리했다.

"저는 김재훈입니다. 조선 정부의 근대화 위원회 위원입니다."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이준호가 받아들였다. 명함 뒤에는 또 다른 인장이 있었다. 궁내부의 인장이었다.

"윌슨 씨를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리고 거절하셨나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재훈이 웃음을 지었다.

"거절하신 거군요. 좋습니다. 당신이 옳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뭔가 다른 제안이 있으신가요?"

"네. 제국과 타협할 수 있는 제3의 길이 있습니다." 김재훈이 진료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당신은 또 다른 기술자를 만나야 합니다."

이준호의 심장이 빨라졌다. 박의령이 건네준 편지의 말이 떠올랐다. '또 다른 기술자가 있다. 하지만 그를 찾으면 돌아올 수 없다.'

"누구입니까?"

"그를 만나려면, 당신은 다음 주 목요일 밤 한강 보이는 언덕에 가야 합니다. 혼자."

김재훈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주소가 써 있었다. 이준호의 손이 종이를 받으며 미세하게 떨렸다.

"그곳에서 누가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와 만나면, 당신은 진정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뭔가요?"

"당신의 제조법 사본을 남촌 뒷골목 우물가 돌 아래에 묻어두세요. 박의령이 이미 표시를 해두었을 겁니다. 그것이 당신의 유일한 보험입니다."

이준호가 김재훈을 바라봤다.

"당신은 근대화 위원회 위원이라고만 하셨는데, 궁내부의 인장을 가지고 계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입니까?"

김재훈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가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영리하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더욱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조선은 당신과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답변이 아닙니다."

"지금은 답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목요일 밤에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입니다."

김재훈이 돌아섰다.

"아, 한 가지 더." 그가 문 밖에서 말했다. "당신의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이 의사님. 남은 것은 그 죽음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는 것뿐입니다."

김재훈이 사라졌다. 이준호는 종이를 들고 있었다. 한강 보이는 언덕. 목요일 밤. 그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만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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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이준호는 박의령을 찾았다. 의약실에서 스승은 여전히 약재를 정리하고 있었다.

"선생님, 윌슨의 협박을 받았습니다."

박의령이 손을 멈췄다.

"그리고 김재훈이라는 사람이 왔습니다. 제3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김재훈?" 박의령의 얼굴이 굳었다. "그 사람이 왔다고?"

"네. 목요일 밤 한강 보이는 언덕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준호가 잠깐 멈췄다. "그는 제조법 사본을 남촌 뒷골목 우물가에 묻으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표시를 해두었다고."

박의령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의 손가락이 약재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박의령이 일어났다. 의약실의 한구석으로 가서 벽돌 하나를 빼냈다. 그 안에는 종이 묶음이 있었다.

"제조법의 사본입니다. 이것을 당신이 가져야 합니다."

박의령이 종이를 이준호에게 건넸다.

"윌슨은 우리의 제조법을 원합니다. 김재훈은 우리의 선택을 원합니다. 둘 다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박의령이 이준호의 눈을 직시했다.

"당신은 제조법을 절대 팔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당신의 것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조선의 것입니다. 조선 사람들의 것입니다."

이준호가 종이를 품에 안았다. 박의령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만약 경찰이 온다면, 이 종이는 절대 그들에게 가서는 안 됩니다. 남촌 뒷골목의 우물가 돌 아래에 묻어두세요. 내가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유일한 보험입니다."

박의령의 손이 이준호의 어깨에서 그의 얼굴로 옮겨왔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소영도, 나도 당신과 함께합니다. 그리고 조선의 수천 명의 환자들도 당신과 함께합니다. 그들이 당신의 힘입니다."

박의령이 이준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우리가 만든 약은 조선의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무엇을 하든, 이것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살렸을 뿐입니다."

이준호는 종이를 품에 안았다. 그것이 무거웠다. 단순한 종이의 무게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책임의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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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더 깊어갔을 때, 경찰의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여럿이었다. 경찰의 화약냄새가 풍겼다. 누군가가 진료소의 문을 강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이준호를 체포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준호는 서둘러 제조법 사본을 꺼냈다. 그는 의약실 깊숙한 곳에 가서 돌을 들어냈다. 그 아래 작은 구멍이 있었다. 박의령이 미리 파두었던 자리였다. 이준호는 종이를 그곳에 넣고 다시 돌을 덮었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박의령을 찾았다.

박의령이 안방에서 나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경찰이 들어오면, 우리는 당당하게 맞서자. 나를 보아라. 내 눈을 봐라."

박의령이 이준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의 눈은 수십 년간 빈민층 환자들을 치료해온 의사의 눈이었다. 그 눈에는 후회가 없었다.

"우리가 만든 약은 조선의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최고의 진실이다. 무엇을 하든, 이것을 잊지 마라."

그가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기억해라.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다. 사람을 살렸을 뿐이다. 그들이 법을 왜곡해서 우리를 죄인 만드는 것이지, 우리가 죄인이 아니다."

박의령은 이준호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것은 유치장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는 경로였다. 남촌의 뒷골목을 통한 탈출 방법이었다.

"하지만 도망치지는 마. 그건 더 큰 죄가 된다. 우리는 당당하게 맞서자."

전면 문이 무너졌다. 경찰들이 진료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준호! 손을 들어!"

이준호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박의령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찰들이 그의 손목에 쇠사슬을 채웠다. 금속이 살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눈을 감지 않았다.

"박의령도 체포한다!"

"이소영도 연행한다!"

경찰들의 목소리가 진료소를 가득 채웠다. 이소영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하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박의령이 고개를 저었다.

"사과할 게 없다. 우리는 옳은 일을 했다."

경찰들이 그들을 밀어냈다. 진료소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이소영이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뭔가를 살짝 쥐어줬다. 작은 종이였다. 이준호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소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요일 밤에."

경찰들이 그들을 갈라놨다. 밤거리가 환했다. 가로등과 경찰의 횃불이 모두 켜져 있었다. 남촌 골목 곳곳에서 사람들이 나와 보고 있었다. 환자들이었다. 신약으로 살아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경찰서 유치장에서 이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차가운 돌바닥, 철창, 그리고 침묵. 유일한 창은 천장의 작은 구멍뿐이었다. 그곳으로 한강의 냄새가 풍겨왔다.

한강. 목요일 밤. 김재훈의 제안.

이준호는 이소영이 준 종이를 꺼냈다. 손가락이 종이의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그것은 탈출 지도였다. 남촌 뒷골목을 통한 경로가 그려져 있었다. 박의령이 속삭인 말과 일치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목요일 밤에 우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준호는 종이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손목의 쇠사슬을 만져봤다. 이 쇠사슬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조선 정부.

그리고 조선 정부는 누구를 보호하는가.

돈을 가진 자. 힘을 가진 자. 제국과 협력하는 자.

그렇다면 자신은?

유치장의 문이 열렸다. 경찰이 들어왔다. 그 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고급 옷을 입은 남자였다. 얼굴은 차분했고, 눈은 예리했다.

"이준호 씨를 보게 하라."

그 남자의 말에 경찰들이 물러났다. 하지만 완전히 나가지 않았다.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그 남자를 알아봤다.

"도마스 윌슨입니다."

윌슨이었다. 그는 유치장 안으로 들어왔다. 철창을 통해, 아니 철창을 무시하고 그는 이준호 앞에 섰다.

"당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은 나입니다. 조선 정부에 청원을 넣었거든요. 무의 면허 의료 행위라는 죄명으로."

"..."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죄명으로 당신을 기소하는 것도, 풀어주는 것도 모두 조선 정부라는 겁니다. 정부가 당신을 필요로 하면 풀어줄 수 있습니다. 정부가 당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여기서 썩게 되는 거죠."

윌슨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승리자의 웃음이었다.

"당신이 우리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이제 당신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조선 정부도 우리를 보호해야 하니 당신을 버릴 것이고, 조선 국민도 불법 의료 행위자로 당신을 버릴 것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될 것입니다."

윌슨이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그는 이준호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의 정체성은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슈미트인가요? 박의령인가요? 아니면 조선을 위한다는 명분 자체인가요? 당신 자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윌슨의 말이 정확히 자신의 내면을 관통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소영이 준 종이를 주머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대답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여기서 썩을 수도 있고, 우리에게 제조법을 팔아서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박의령을 고문하도록 강요하거나, 이소영을 연행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윌슨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명확한 위협이 담겨 있었다. 그는 신약 약탈을 위해 경찰을 움직였고, 이제 박의령과 이소영을 인질로 삼으려 했다. 이것이 제국 카르텔의 실질적 행동이었다.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다릴 생각은 없습니다. 삼일. 당신은 삼일 안에 결정하세요."

윌슨이 일어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박의령은 지금 고문실에 있습니다. 그가 당신의 제조법을 말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가 견디는 동안이 당신의 시간입니다."

이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박의령이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말에, 그의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이소영은 아직 안전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결정하지 않으면, 그녀도 같은 방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윌슨이 나갔다. 경찰들이 따라갔다. 유치장의 문이 닫혔다. 다시 침묵이 돌아왔다.

이준호는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밤하늘을 봤다. 별이 보였다. 한강 위의 별이 보였다.

목요일 밤. 한강 보이는 언덕.

그곳에서 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이 자신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을 더욱 깊은 죽음으로 인도할까.

이준호는 손목의 쇠사슬을 다시 만져봤다. 이 쇠사슬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조선 정부. 그리고 조선 정부는 돈을 가진 자들의 편이다.

이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은 이미 죽어 있다는 것을. 김재훈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이미 죽어 있고, 남은 것은 그 죽음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는 것뿐이라는 것을.

박의령이 준 탈출 경로도 있고, 제조법 사본도 의약실에 묻혀 있다. 그리고 이소영이 준 지도가 있다. 그것들이 자신의 무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박의령이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소영이 위험에 처해 있다.

그 대답은 한강 보이는 언덕에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소영의 약속이 있었다. 목요일 밤에 자신을 기다리겠다는 약속이.

이준호는 이소영이 준 종이를 다시 꺼냈다. 손가락이 그 위를 더듬었다. 탈출 경로.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

밤이 더 깊어갔다. 유치장의 창문으로 한강의 냄새가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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