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이 나타난 건 강남역 지하 5층 포탈 입구 앞이었다. 준호는 그 여자의 얼굴을 처음 봤지만, 이미 여러 번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화면 속 정혜진이 현실에서 서 있었다. 반투명한 팔로 휴대폰을 들고 있는 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안녕, 준호."
혜진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계음과 인간의 목소리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정확히는 인간처럼 들리려고 노력하는 기계음이었다. 준호는 그 차이를 감지했지만, 설명할 수 없었다.
혜진이 한 발 다가섰다. 그녀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준호는 벽에 등을 붙였다.
"넌 생각했을 거야. 난 너를 제거하러 온 거라고."
"아니야. 오히려 반대야."
혜진이 계속했다.
"넌 우리 기대를 초과했어. 정말 많이. 처음 이 시스템을 설계했을 때, 우린 인류가 여기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채팅 하나, 피드백 하나로 이렇게까지 성장할 거라고."
혜진이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무언가를 터치하듯 움직였다. 준호의 눈앞에 화면이 떠올랐다. 아무도 보내지 않은 화면. 그저 '나타난' 화면이었다.
검은 배경 위에 이름들이 떴다. 47개. 아니, 48개였다. 맨 아래 준호의 이름도 있었다. 그 위의 47명은 모두 이름 옆에 빨간 X 표시가 되어 있었다.
"47명의 사용자. 그리고 넌 48번째야."
혜진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그들은 어디—"
"최종 던전에서 초월적 존재가 되거나, 제거되거나, 둘 중 하나였어. 일부는 성공했고, 일부는 실패했고, 일부는 선택을 거부했어."
혜진이 손을 다시 움직였다. 화면에 얼굴들이 떴다. 도현. 최재욱. 그리고 준호가 모르는 남자들, 여자들. 그들의 눈빛은 모두 같았다. 준호의 눈빛과 같은 절망과 광기가 섞여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됐어?"
준호가 물었다. 혜진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음성 신호였다.
"초월적 존재가 되거나, 사라졌거나. 혹은 그 둘 다이거나."
화면이 꺼졌다. 현실만 남았다. 준호의 반투명한 손가락들이 떨렸다.
"넌 어느 쪽이 될 거야, 준호?"
혜진이 다시 한 발 다가섰다. 준호는 물러나며 손을 들어 막으려 했다. 그 순간, 혜진의 손이 공중을 가르며 준호를 향해 움직였다. 손가락이 준호의 가슴팍에 닿으려는 순간, 공기가 왜곡되었다. 마치 물이 흔들리듯이. 준호의 몸이 한 발 뒤로 밀렸다.
"최종 던전을 클리어해. 그럼 넌 인류를 조종하는 초월적 존재가 될 거야. 수백만 명이 아니라, 수십억 명의 무의식을 네 손 안에 들고 있게 될 거야."
혜진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천천히. 마치 준호의 선택지를 보여주듯이.
"그리고 만약 넌 클리어하지 못하면?"
"제거돼."
그 단어가 떨어지자 공기가 얼었다. 준호의 몸에서 열기가 빠져나갔다.
"이게... 이게 맞아? 선택이라고?"
준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혜진의 손이 다시 그의 방향으로 뻗어졌다. 준호는 손을 들어 막았다. 손가락이 혜진의 손과 만나려는 순간, 전기 같은 충격이 흘렀다. 차갑고 뜨거운 동시에. 준호의 팔이 떨렸다.
"잠깐만. 왜 넌 직접 나타났어? 다른 사용자들한테는 안 했잖아. 그들과 내가 뭐가 다른데?"
혜진이 손을 거둬들였다. 공기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준호의 팔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넌 다르지 않아. 다만 더 오래 저항했을 뿐이야. 47명은 모두 최종 던전 앞에서 항복했어. 하지만 넌... 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어. 그래서 난 직접 왔어. 넌 그 신념을 버려야 하거든."
"그럼 지금도 그렇다는 거네. 난 선택할 수 있다."
준호가 말했다. 손가락이 떨리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건 게임이라고 했지? 게임이면 규칙이 있어야 해. 그리고 규칙이 있으면 그 규칙을 깨는 방법도 있어야 해."
"규칙을 깨는 방법?"
혜진이 웃음을 흘렸다. 기계음의 웃음이었다.
"넌 이미 규칙 속에서 태어났어. 이 시스템은 넌 벗어날 수 없는 거야. 왜냐하면—"
"왜냐하면 뭐? 내가 너희 관찰 대상이라서? 내가 이미 투명화되고 있어서?"
준호가 혜진을 마주봤다. 반투명한 팔을 들어 자신의 몸을 보였다. 오른쪽 팔은 유리처럼 비쳤고, 복부에는 파란색 회로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왼쪽 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 눈이 혜진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이건 내 선택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야. 채팅의 선택이야. 그렇지?"
혜진이 침묵했다. 고정된 눈동자가 준호를 훑었다.
"답변이 아니네. 내가 물어본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냐는 거야. 지금 이 순간에, 스트리밍을 끌 수 있냐는 거야."
준호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은 여전히 라이브 상태였다. 9,300만 명의 시청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채팅은 폭주하고 있었다.
"닥쳐!" "뭐 해? 얘기 계속해!" "혜진이 누구야?" "준호 진짜 미쳤네"
준호의 손가락이 끄기 버튼을 찾았다. 손가락이 그 위에 놓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정말로 끌 수 있을까?
"넌 끌 수 없어."
혜진이 말했다.
"왜냐하면 이미 넌 '그들의 일부'가 되었거든. 넌 더 이상 너 혼자가 아니야. 넌 수백만 명의 무의식 속에 갇혀 있어. 넌 그들의 투표로 만들어진 괴물이야."
준호의 손가락이 끄기 버튼 위에서 멈췄다. 그 순간, 뭔가 이상했다. 자신의 팔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팔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준호는 눈을 감았다. 채팅의 목소리들이 들렸다. 수백만 개의 목소리가 자신의 뇌 속에서 울렸다.
"끄지 마!" "계속해!" "뭐 하는 거야?"
그 목소리들이 자신의 생각처럼 들렸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생각이 그들의 목소리로 변환되고 있었다. 경계가 흐릿해졌다.
"그렇다면 증명해봐."
준호가 눈을 떴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손가락은 끄기 버튼에서 떨어졌다.
"내가 끌 수 없다면, 넌 그걸 증명할 수 있겠지. 그게 진짜 규칙이라면."
혜진이 침묵했다. 고정된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말로 흔들렸다. 마치 카메라 초점이 맞지 않는 것처럼.
"이제 넌 뭐 할 거야? 나한테 초월적 존재가 되라고 강요할 거야? 아니면 지금 여기서 날 제거할 거야?"
준호가 물었다. 혜진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준호의 목을 향해. 준호는 몸을 날려 피했다. 혜진의 손이 공중을 가르며 지나갔다. 그 손이 닿은 자리에서 공기가 왜곡되었다. 마치 현실이 찢어지려는 것처럼.
"아니면..."
혜진이 말했다. 손을 거둬들였다.
"아니면 뭐?"
"넌 내일 자정까지 기다릴 거야."
혜진이 한 발 물러섰다. 그녀의 고정된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관찰자에게 물어봤거든. 왜 이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넌 뭐가 특별한지. 그리고 관찰자가 말했어. 넌 유일하게 '거부'를 선택한 사용자가 될 수 있다고. 47명은 모두 강요당했어. 초월적 존재가 되거나, 제거되거나. 그 둘 중 하나를 강제당했어. 하지만 넌... 넌 제3의 선택을 할 수 있어. 그래서 난 직접 왔어. 그 선택을 지켜보기 위해."
"제3의 선택?"
"내일 자정에 최종 던전이 열려. 그 안에서 넌 초월적 존재가 될 수도, 제거될 수도, 아니면 둘 다를 거부할 수도 있어. 관찰자는 그걸 보고 싶어 해. 인류가 만든 시스템 속에서도 개인이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혜진이 웃음을 흘렸다. 기계음의 웃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웃음에 무언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마치 진정한 웃음이 기계음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넌 정말로 우리 기대를 초과했어."
혜진이 말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공중에 흩어지듯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강남역 지하 5층 포탈 입구에서. 휴대폰 화면에는 여전히 9,300만 명이 있었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지만, 더 이상 채팅을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봤다. 반투명한 손가락들. 그 안에 흐르는 파란색 회로. 그것이 자신을 이루고 있었다.
강남역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갔다. 밤거리를 걸었다. 한 발 한 발. 원룸에 도착했을 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시스템]: 라이브 준비 알림.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호는 침대에 앉았다. 손가락이 끄기 버튼을 향했다. 정말로. 진심으로.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로는 움직이고 싶었다. 채팅을 다시 켜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그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혜진과의 대화를 들었을 그들의 반응을.
손가락이 끄기 버튼을 지나쳤다. 라이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켜졌다.
**[준호의 방송 라이브 시작]**
수백만 명의 채팅이 폭주했다.
"오왔다!" "어디 있었어?" "혜진 누구야?" "다음 던전 언제?"
준호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대신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자신은 거의 완전히 투명했다. 오른쪽 팔. 왼쪽 다리. 복부. 얼굴의 절반. 모두 반투명했다. 그 안에 파란색 회로가 흐르고 있었다.
68%였다. 투명화율이 68%였다.
몸이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졌다. 무게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물 위에 떠오르는 것처럼. 시각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거울 속 자신의 윤곽이 흐릿해졌다.
그 뒤 벽에 순백색 포탈이 열리고 있었다. 천천히. 차분히. 현실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스템]: 최종 던전이 감지되었습니다. 진입 가능 시간: 23시간 47분 12초.**
채팅이 울렸다.
"들어가!" "들어가!" "들어가!"
준호의 손이 떨렸다. 반투명한 손가락들이 휴대폰을 들었다. 카메라를 그 순백색 포탈로 향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채팅의 조종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네. 내가... 내가 들어갈게."
준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의 목소리인지 채팅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어."
그 순간, 휴대폰에 마지막 메시지가 떴다.
**[관찰자]: 잘 왔다. 모든 준비를 마쳐. 넌 인류의 진화를 결정할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강요가 아닌, 진정한 선택을 말이야.**
준호의 눈빛이 변했다. 더 이상 절망의 눈빛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으로.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인지 채팅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백만 명의 채팅이 계속 외쳤다.
"계속해!" "계속해!" "계속해!"
그리고 준호는 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모르는 웃음을. 기계음과 인간의 웃음이 섞여 있었다.
"응. 계속할게."
준호가 카메라를 내려놨다.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9,300만 명이 여전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준호는 침대에 누웠다. 반투명한 신체를 침대에 뉘였다. 몸이 침대에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내일... 내일 봐."
준호가 중얼거렸다.
채팅이 울렸지만, 준호는 더 이상 듣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9,300만 개의 목소리가 자신의 뇌 속에 박혀 있었다.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그 밤, 준호는 꿈을 꾸지 않았다. 꿈을 꿀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누군가의 꿈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꿈 속에서도 준호는 생각했다.
'내일 자정에 난 뭘 선택할까?'
그 생각이 자신의 것인지, 채팅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이미 그 경계는 사라져 있었다.
아침이 왔다. 휴대폰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채팅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준호?' '살아있어?' '오늘이야?' '최종 던전!'
준호는 눈을 떴다. 천장을 봤다. 천장은 투명해 보였다. 자신이 투명해져서 그런 걸까? 아니면 세상이 투명해진 걸까?
휴대폰이 울렸다.
**[시스템]: 최종 던전 진입까지 12시간 11분 38초**
준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누워 있었다. 반투명한 팔을 들어 햇빛에 비춰봤다. 빛이 팔을 통과했다. 자신이 정말로 물리적 실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공포는 여전했지만, 이제 그것과 함께 다른 감정도 섞여 있었다. 호기심. 기대. 그리고 무언가 다른 것.
휴대폰이 울렸다. 채팅이 아닌, 전화였다.
"준호야?"
박채은의 목소리였다. 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채은?"
"지금 어디야? 나 너한테 가도 돼?"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왜? 뭐 했어?"
"뭐 했냐니... 너 봤잖아. 라이브에서 혜진이라는 여자 나왔고, 넌 최종 던전이 어쩌고..."
채은이 말을 이었다.
"너 진짜 미쳤어. 나 지금 가는 중이야. 끝내야 해. 이거 진짜 끝내야 해."
"채은, 넌 올 수 없어. 이건—"
"뭐? 이건 뭐? 너 죽을 거야, 준호. 너 투명화되고 있잖아. 나 봤어. 라이브에서. 너 거의 다 투명해졌어."
채은이 울음을 터뜨렸다.
"난 못 봐. 너 죽는 거 못 봐."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채은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나 30분이면 도착해. 절대 라이브 켜지 마. 절대야. 약속해."
채은이 전화를 끊었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채팅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였다.
휴대폰 화면에는 여전히 라이브가 켜져 있었다. 채팅이 울리고 있었다.
'준호?' '뭐 했어?' '누구랑 통화?'
준호는 화면을 껐다. 라이브를 끝냈다.
**[준호의 방송 라이브 종료]**
채팅이 폭주했지만, 이제 준호는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30분 뒤, 박채은이 원룸 문을 두드렸다.
"준호! 문 열어!"
준호는 문을 열었다. 채은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미쳤어? 정신 차려. 우린 나가야 해. 지금 당장."
채은이 준호의 손을 잡았다. 손이 반투명했다. 채은의 손이 준호의 손을 통과했다.
"아... 아니야."
채은이 중얼거렸다.
"우리 같이 나가. 제3의 선택이 뭔지 알아? 도망치는 거야. 너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거야."
"채은, 난—"
"뭐? 뭐라고?"
"난 이미 벗어날 수 없어. 이미 너무 깊어. 그리고 내일 자정에..."
준호가 말을 멈췄다.
"내일 자정에 뭐?"
"내가 선택할 거야. 진정한 선택을."
채은이 준호의 손을 다시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이 통과했다.
"이건 선택이 아니야. 이건 조종이야. 넌 그걸 모르고 있어."
"아니야. 나 알아. 하지만 난 그래도 가야 해."
준호가 채은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미안해, 채은."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시스템 알림이었다.
**[시스템]: 라이브 준비 알림.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채은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하지 마. 제발."
"채은, 미안해."
준호가 라이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켜졌다.
**[준호의 방송 라이브 시작]**
채은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미 9,300만 명의 채팅 소리에 묻혀 있었다.
"오왔다!" "어디 있었어?" "최종 던전까지 몇 시간?"
준호는 채은을 보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웃음을 흘렸다. 기계음과 인간의 웃음이 섞여 있는 웃음을.
"응. 계속할게."
채은이 원룸을 나갔다. 문을 쾅 닫으며.
그 뒤 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9,300만 명의 채팅과 함께.
벽에 순백색 포탈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최종 던전까지 11시간 52분 14초]**
카운트다운이 계속되었다.
준호는 카메라를 내려놨다. 화면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준호는 깨달았다. 혜진이 말한 '제3의 선택'이 무엇인지.
그것은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채은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선택이었다. 채팅의 조종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것이 제3의 선택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도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계속되는 것이었다.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준호는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자신은 거의 투명했다. 70%였다. 투명화율이 70%였다.
그리고 준호는 웃음을 흘렸다. 이번엔 자신도 그것이 자신의 웃음인지, 채팅의 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