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전
눈을 뜰 때 처음 느낀 건 무게였다. 몸 전체가 납으로 채워진 듯 움직이지 않았다. 천장은 희미하고, 소리는 먼 곳에서 울렸다. 무언가 입 안에 들어 있었다. 튜브다. 준호는 천천히 눈을 더 크게 떴다. 흰 천장, 의료용 기구들의 규칙적인 소음. 심전도 모니터가 처음 강하게 울렸다가 안정되었다.
격리 구역이었다.
아니다. 다시 보니 달랐다. 천장의 조명이 격리 구역치고는 너무 밝았고, 의료 기구들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벽의 회색 페인트는 벗겨져 있었고, 환기구에서 나오는 공기는 여전히 탁했다. 혼합 공간이었다. 아르크와 격리 구역 사이의 경계 어딘가.
준호는 손을 움직이려 했다. 튜브를 뽑아야 했다. 하지만 팔이 반응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 세 번째 시도. 다섯 번째 시도에야 손가락이 움찔했다.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는 중이었다.
문이 열렸다.
의료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나이는 대략 오십 대로 보였다. 검은 머리, 차분한 표정. 그는 준호의 심전도를 확인한 후 입 안의 튜브를 조심스럽게 빼냈다. 준호가 기침을 했다.
"당신이 깨었네요."
음성이 이상했다. 너무 깊었고, 너무 울렸다. 여러 음정이 겹쳐 있는 것처럼.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포칼립스가 시작되던 날 방사능 중독으로 쓰러진 당신. 2년 동안 혼수 상태에 있었어요."
의료복을 입은 인물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의 눈이 변했다. 동공이 가로로 늘어났다.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은 환각이었습니다."
준호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봤다.
검은 금이 손가락 끝부터 손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피부 위에 가는 검은 금이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었고, 그 금은 숨을 쉬듯 미묘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당신의 환각은 아주 구체적이었어요. 마치 진짜인 것처럼. 하지만 환각이에요. 당신이 보고 느꼈던 모든 것은 당신의 무의식이 만든 것입니다."
인물의 목소리가 더 깊어졌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는데, 나오는 음성은 여러 개였다. 동시에 여러 존재가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빼고요."
준호는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검은 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진하게 보였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금이 이제는 손등을 넘어 팔뚝까지 올라와 있었다. 2년 전과는 다르게, 훨씬 더 깊이 진행되어 있었다.
"당신이 이미 우리와 거래했으니까요."
준호는 입을 열려 했다. 목이 말랐다. 성악대처럼 울리는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당신이 본 그 환각은 미래예요. 피할 수 없는 미래. 당신이 이미 거래한 시간들입니다. 당신은 이미 죽음의 권능을 얻었고, 당신은 이미 우리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의료복의 인물이 일어섰다. 그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일렁거렸다.
"당신이 본 모든 것이 일어날 겁니다. 지금부터."
의료복의 인물이 사라졌다. 문이 닫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준호는 알았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었다. 성좌였다. 여러 성좌가 하나의 육체를 빌려 말하고 있었다.
준호는 다시 손을 내려다봤다. 검은 금은 이제 팔 전체를 덮고 있었고, 어깨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금 아래로는 피부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검은 금이 그의 팔을 집어삼킨 것처럼.
문이 다시 열렸다.
"준호."
박서현이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지쳐 있었고, 눈은 붉었다. 마치 며칠을 자지 않은 것처럼. 그녀는 준호의 손을 잡으려 했다가 검은 금을 보고 멈췄다. 하지만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 검은 금을 만졌다. 따뜻했다. 살아 있는 손이었다.
"넌 정말 오래 자고 있었어."
박서현의 목소리는 떨렸다.
"2년. 의사들이 계속 말했어. 당신은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방사능 중독이 뇌까지 침투했다고. 하지만 넌 깨어났어."
그녀가 준호의 손을 안았다. 자신의 뺨에 대고.
"이제 우리는 함께할 거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문이 또 열렸다.
김은지였다. 그녀는 준호를 보는 순간 멈춰 섰다. 그 다음 빠르게 다가와 준호를 안았다. 준호의 검은 금이 그녀의 팔에 닿았다. 그녀는 움찔했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우리 준호."
김은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울음이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넌 살아났어. 정말 살아났어."
준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팔을 들어 그녀를 안을 수 없었다. 그 검은 금이 무언가를 할 수 있었지만, 준호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입을 열었다.
"이게 환각인가?"
박서현과 김은지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표정이 변했다. 더 이상 위로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감추는 얼굴이었다.
박서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2년 동안 알고 있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정확했다.
"당신이 환각을 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환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김은지가 덧붙였다.
"성좌들이 우리에게 지시했어. 당신을 지켜두라고. 그들의 계획이 완성될 때까지."
"환각이 아니야."
김은지가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준호를 안고 있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창밖을 보라는 듯 박서현이 몸을 옆으로 밀었다. 준호는 창문을 통해 지표면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이 급증하고 있었다.
하늘이 녹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지표면의 방사능 레벨이 급격히 상승하는 신호였다. 아르크의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낮은 음으로, 그 다음 높은 음으로. 그 다음 모든 음이 동시에 울렸다.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어."
박서현이 말했다.
"당신이 본 그 미래가. 지금."
준호는 창밖을 계속 바라봤다. 지표면의 방사능이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파도 아래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거대한 형태. 금속 구조물. 또 다른 아르크였다.
지평선을 가득 채우는 규모로.
그것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고, 그 올라옴에 따라 아르크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의료실의 기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전도 모니터가 바닥에 떨어졌고, 신호음이 멈췄다.
"우리가 할 일이 뭔지 알지?"
박서현이 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진동하는 방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만 명확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구해야 해."
그녀의 눈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넌 이미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준호는 자신의 검은 금 팔을 다시 봤다. 그 금은 이제 팔 전체를 덮었고, 어깨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금 아래로는 더 이상 혈관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검은 금이 그의 진짜 모습인 것처럼. 마치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났던 것처럼.
"당신은 이미 죽어 있어요."
의료실 밖에서 성좌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러 음정이 겹친 목소리.
"당신은 이미 우리의 빚을 지고 있어요. 당신은 이미 우리의 연기의 배우예요."
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여 봤다. 그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 자체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죽음의 권능. 죽음의 시점을 조종하는 능력. 이미 그의 몸에 새겨져 있는 것.
아르크가 더 크게 진동했다.
의료실의 창문이 깨어질 것 같았고, 바닥이 갈라질 것 같았다. 또 다른 아르크는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그 아르크 위에서 또 다른 준호가 보였다. 그도 같은 검은 금 팔을 들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김은지가 준호를 놓지 않으며 말했다.
"당신이 이미 본 모든 것. 당신이 이미 거래한 모든 것. 그것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어."
박서현은 준호의 손을 다시 잡았다. 검은 금이 그녀의 피부를 건드렸다. 그 순간 그녀의 손도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검은 선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 나타났다.
"우리는 함께 이것을 끝내야 해."
박서현이 말했다.
"당신과 나. 그리고 모든 것."
또 다른 아르크가 준호가 있는 아르크와 부딪혔다.
충격이 의료실을 흔들었다. 준호는 창밖을 통해 또 다른 아르크 내부를 볼 수 있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도 같은 혼란 속에 있었다. 같은 진동 속에 있었다. 같은 미래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또 다른 준호도 같은 검은 금 팔을 들고 있었다.
"성좌의 계획이 뭔지 알아?"
의료실 밖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멸종이 아니야. 재시작이야. 당신이 본 그 모든 죽음들이 새로운 기초가 될 거야. 당신의 죽음이 그 기초가 될 거야. 그리고 당신은 이미 동의했어. 2년 전에. 당신이 우리와 거래한 그 순간에."
준호는 자신의 검은 금 팔을 들어올렸다. 그 팔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끊어졌다. 주변의 사람들의 생명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준호는 이 권능을 이미 사용해 봤다. 수천 번. 환각 속에서.
그런데 그것이 환각이 아니었다면?
준호의 호흡이 빨라졌다. 검은 금이 올라오는 속도에 맞춰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환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2년 전에.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은 죽음의 연장이었다.
"우리가 할 일이 뭔지 알아?"
박서현이 준호의 팔을 꼭 잡았다.
"우리는 이것을 끝내야 해.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해."
또 다른 아르크의 압력이 더 커졌다. 의료실의 벽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금은 준호의 검은 금과 같은 색이었다. 마치 준호의 권능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당신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야."
성좌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밖에서 들리지 않았다. 이제 준호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렸다.
"당신은 이미 죽었어. 당신은 이미 재시작의 첫 번째 기초야. 당신은 이미 우리의 연기의 마지막 배우야."
의료실이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의료실의 천장이 내려앉으며 준호의 머리 위로 콘크리트 파편이 쏟아졌다. 박서현이 준호를 밀어내며 몸으로 덮었다. 파편이 그녀의 등을 내려쳤다. 준호는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검은 금이 박서현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 그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신이 만지면 안 돼!"
김은지가 소리쳤다. 그녀는 준호의 팔을 밀어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그녀의 팔도 검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준호는 자신의 손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금은 그들의 피부 아래로 퍼져 나갔다.
"미안해, 미안해—"
준호가 중얼거렸다.
"당신 탓이 아니야."
박서현이 피를 흘리며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손은 이제 반 이상이 검은 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준호를 놓지 않았다.
"이미 정해진 거야."
의료실 밖의 복도가 무너져 내렸다. 의료진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 목소리들이 점점 멀어졌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준호는 그들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권능이 그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준호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아니, 심장이 아니었다. 그 아래 더 깊은 곳에서 뭔가 울리고 있었다. 마치 죽음 자체가 박동하는 것처럼. 그 박동이 강해질수록 주변의 생명들이 흔들렸다. 준호는 자신을 멈출 수 없었다.
"당신이 원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거야."
성좌의 목소리가 더 이상 밖에서 들리지 않았다. 이제 준호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렸다.
"당신의 죽음은 이미 시작됐어. 그리고 그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낼 거야."
준호는 자신의 가슴을 만져 봤다. 그 아래에서 뭔가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아니었다. 이미 심장은 2년 전에 멈춘 것 같았다. 이것은 더 깊은 곳에서 떨리고 있었다. 영혼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떨리고 있었다.
"우리가 나가야 해."
김은지가 준호를 당겼다. 그녀의 손은 이제 팔뚝까지 검은 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마치 그녀도 처음부터 이렇게 되도록 정해진 것처럼.
"격리 구역으로. 당신이 깨어나기 전에 이미 있던 곳으로."
박서현이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거기가 뭔지 알아?"
준호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이상했다. 동공이 없었다. 대신 검은 금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이미 성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그건 당신의 무덤이야."
박서현이 준호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의 탄생지야."
의료실의 나머지 벽이 무너져 내렸다. 준호는 아르크의 상층부가 붕괴되는 것을 봤다. 사람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들의 비명이 울렸다. 그리고 그 비명이 끝나는 순간, 준호는 그들의 죽음을 느꼈다. 자신의 권능으로.
그의 팔을 통해서.
"이건 당신이 한 거 아니야."
김은지가 말했다.
"이건 당신이 이미 한 거야. 2년 전에. 당신이 성좌와 거래했을 때."
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검은 금이 이제 손목을 넘어 팔뚝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가속되고 있는 것처럼.
"남은 시간이 얼마나 돼?"
준호가 물었다.
"모르겠어."
박서현이 대답했다.
"당신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당신의 권능이 알고 있으니까."
준호는 자신의 몸 안을 느껴 봤다. 그곳에서 뭔가 계산되고 있었다. 마치 타이머처럼.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그 숫자가 떨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아니었다.
생명이었다.
"격리 구역은 여기서 아래로 얼마나 돼?"
준호가 물었다.
"50층."
김은지가 대답했다.
"하지만 우린 내려갈 수 없어. 위에서 막고 있어."
"위에?"
"생존 의회. 그들은 당신을 막으려고 있어. 당신이 격리 구역에 도달하기 전에."
준호는 자신의 팔을 들어올렸다. 검은 금이 빛났다. 그 빛이 아르크 전체를 관통했다. 아래층들이 흔들렸다. 위층들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중간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렸다.
"당신이 그들을 죽이고 있어."
박서현이 말했다.
"그래."
준호가 대답했다.
"내가 그러고 있어."
"미안해?"
"모르겠어."
준호가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이미 미안함도 내 거 아닐 수도 있어. 이미 정해진 거라면."
아르크가 다시 진동했다. 이번에는 아래에서였다. 또 다른 아르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우리가 내려가는 게 낫겠어."
김은지가 말했다.
"당신의 권능이 계속 작동하고 있어.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권능이 이 아르크를 붕괴시킬 거야. 그리고 모든 사람을 죽일 거야."
"그럼 내가 죽음을 멈춰야 하는 건가?"
준호가 물었다.
"아니."
박서현이 일어나 섰다. 그녀의 팔은 이제 완전히 검은 금이었다.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당신이 그것을 완성해야 해."
"뭘?"
"당신이 이미 시작한 거. 당신이 환각 속에서 이미 한 거. 그 모든 죽음이. 그 모든 붕괴가. 그것들이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당신이 죽음으로 이루는 그 재시작이. 그게 성좌들이 원한 거야."
준호는 박서현의 눈을 봤다. 그 눈에 동공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검은 금으로 이루어진 동공이었다. 마치 그녀가 준호와 같은 것이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넌 날 죽이고 있어."
박서현이 웃음을 흘렸다.
"알아.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난 이걸 받아들여. 왜냐면..."
그녀가 준호의 검은 금 팔을 잡았다.
"넌 혼자가 아니니까."
그 순간 김은지도 준호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도 이제 완전히 검은 금이었다. 셋의 팔이 연결되자, 아르크 전체가 울렸다.
의료실 아래 50층이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격리 구역이 노출되었다.
준호는 그곳을 봤다. 2년 전 자신이 죽어가던 그 장소. 방사능에 오염된 그 장소. 시체들이 쌓여 있는 그 장소.
하지만 이제 그곳은 다른 것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얀 빛이었다. 그것은 성좌의 환상인지, 미래의 환영인지, 또 다른 버전의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누군가 서 있었다. 또 다른 준호였다. 그 준호의 손도 검은 금이었다. 하지만 그 금이 흰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아?"
또 다른 준호의 입에서 여러 목소리가 겹쳐 울렸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끝내고 다시 시작해야 해. 우리는 첫 번째 죽음이 되어야 해. 우리는 새로운 세상의 기초가 되어야 해."
준호는 자신의 팔을 들어올렸다. 검은 금이 하늘로 뻗어 나갔다. 그것이 격리 구역의 모든 시체에 닿았다. 그 시체들이 빛났다. 죽음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순간. 그것이 죽음이자 탄생이라는 것을 준호는 알았다.
"우리가 이미 한 거를 다시 해."
박서현이 준호의 귀에 속삭였다.
"우리가 이미 받아들인 거를 완성해."
준호의 검은 금 팔이 완전히 하얀 빛으로 변했다. 그것이 박서현과 김은지로 전해졌다. 그들도 하얀 빛이 되어 갔다.
아르크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표면을 향해.
새로운 세상을 향해.
그리고 준호는 알았다.
이것이 환각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 죽음이자 탄생이라는 것을.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을.